리미트리스 (Limitless, 2011) 영화

방세 못내서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기 직전인 청년실업자 주인공. 이 주인공은 어느날 우연히 별로 친하지 않은 아는 사람을 만나 알약을 하나 받습니다. 주인공은 그 약을 하나 먹어 보는데, 이 약에는 인간의 뇌효율을 놀랍게 높여 주는 효능이 있어서 먹은 사람이 초능력에 가까운 지능을 갖게 해 줍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청년실업자에서 하루 아침에 의욕 넘치는 청년으로, 업계에서 사랑받는 인재로, 백만장자로 자꾸만 인생살이의 사다리에서 높은 단으로 치솟아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전반입니다. 이후, 이 영화는 도대체 이 약의 정체, 부작용, 급작스런 변화를 겪은 주인공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보자는 것으로 흘러 갑니다.


(뉴욕 맨하탄을 배경으로)

마법 같은 신기한 것이 평범한 사람 앞에 떨어지고, 그래서 이 사람은 꿈 같은 일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이니, 당연히 이 영화는 "환상특급", "기묘한 이야기", "환상여행"이나 "제3의 눈"과 같이 신비하고 기이한 일을 다루는 단막극 TV 시리즈를 연상하게 할만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를 끝까지 따라가보면, 정말로 이 내용은 그런 단막극 시리즈처럼 되어 있는 편입니다. 이상한 일을 구경 시켜 주는 내용에 충실하고, 누구나 즐길수 있을만한 흥미로운 줄거리를 계속 펼쳐 나가되 은은하게 칙칙한 감상도 살짝 깔아 놓은 것입니다. 특별히 엄청난 폭파장면이나 대인원이 난리를 치는 장면이 없이 그저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보고 겪는 일을 주인공 중심으로만 엮어 나가면서 작게 나간다는 점도 이런 단막극 TV 시리즈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뉴욕, 도시의 수많은 사람 중에 어느 누구인지 모를 한 사람의 사연을 다룬다는 느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니, 이 영화가 펼쳐진 모양을 보면, 이상한 이야기를 앞으로 앞으로 펼쳐 나가기 위해서 대충대충 빼먹고 넘어가는 점들이 꽤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넉넉한 시간을 두고 이것저것 엮인 이야기 거리로 풀어내면 그 자체가 나름대로 또 사연이 되고, 더 중후한 갈등을 부려 낼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가 있어도, 그냥 생략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 갈고 닦아 놓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초능력"이야기에만 집중하는 쪽에 가까운 영화 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는 도대체 주인공에게 처음 약을 준 사람은 왜 약을 줬는지, 중간에 주인공이 살인 혐의로 걸리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건 무슨 사연이라는 건지, 그런 영화 보다보면 생기는 궁금증들에 대해서 꼭 무슨 이야기가 있을 법 하다가 그냥 대강 뭐 대충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 하고는 넘어가버립니다. 영화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진상을 짐작은 해볼 수 있을만한 사건들이기는 합니다만,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 소동 하나가 독특한 성격의 인물을 제시하거나,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져 볼만할텐데 그냥 통과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영화가 간략하게 한 가지 이야기만 하는 투로 되어 있다는 점은 더 중요한 곳에서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영화의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 소재들을 가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대충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가 시작할 때 주인공은 작가 지망생인 실업자이고, 초능력을 주는 약은 뇌의 잠재력을 활용하게 해 준다는 약이며, 약을 먹고 주인공은 월스트리트의 거물들과 함께 일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작가 지망생은 그냥 작가 지망생이 아닌 실업자를 공감가게 묘사하기 귀찮으니까 아무렇게나 때려 넣은 정도의 인간일 뿐, 요즘 청년 실업자의 모습에 대해서 뭔가를 보여 주는 실감나는 내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작가가 소설을 쓰지만, 소설 쓰는 것에 대해서 묘사하는 내용도 없는 셈이었고, 편집자와 출판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양도 막연히 그냥 다른 TV물이나 영화에서 나오던 대로 따라할 뿐이었습니다.

당연이 이 영화는 제약이나, 금융 업계의 모습을 잡아 보여주는 대목도 없고, 월스트리트 갑부들의 모습을 재미나게 잡아 낸다거나 이런 것들을 통해 생동감있게 사회상을 보여주는 모습도 전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냥 관습적으로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월스트리트 사람들, 회의실에서 주인공이 뭐라고 몇 마디하면서 발표하면 자리에 앉아 구경하던 사람들이 대단한 아이디어라면서 생판 모르는 날건달 젊은이가 하는 소리라도 관심있게 듣다가 끄덕끄덕 하는 모습들을 또 보여 줄 뿐이었습니다. 자칫 이 영화는 영화를 시작시킬 수 있을만한 소재를 하나 잡았다는 데에만 빠져서, "이렇게 기발하다니"하고 혼자 좋아다가 답답하게 있을 수 없을 것 같이 막연한 그저 꾸민 이야기에만 등장하는 조잡한 인물, 사건만 줄줄 배열하다가 끝나고 말았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역할이 많은 편은 아닌 여자 주인공)

그런데, 영화는 그보다는 훨씬 재미났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로 내용을 꾸며 보여주는 촬영, 편집, 연출의 재주들이 넉넉히 펼쳐져 있어서 그게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도 더 재밌게 해 주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우선은 이 영화가 제목 보여줄 때 부터 장기처럼 내세우고 있는 길을 따라 쑥 들어 가듯이 끊임 없이 확대되며 보여주는 모습부터가 재미났습니다. 이 영화 속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는 뉴욕 시내의 공간들을 잘 잡아내서 보여주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기이한 일 한가지씩은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는 느낌으로 지나가는 행인들, 차들을 슥슥 스쳐가며 펼쳐지는 것도 재미났습니다. 무엇보다, 이 약을 먹고 머리가 좋아져서 정말 멀리까지 내다 보는 능력이 생겼다는 그 느낌을 살려주면서, "약 먹은 듯이" 빙글빙글 어지러운 느낌도 무척 와닿게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많이 보다보면 정말로 관객도 어지럽게 느껴질만큼 화면을 빠르고 부드럽게 잘 짜놓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정말 50년대 TV 단막극 시리즈처럼, 느와르 영화도 아니면서 주인공의 독백 나래이션이 스스로 푸념조로 비아냥 거리는 김빠진 농담으로 툭툭 나오는 데, 그런 사이사이에 짤막한 과거 회상 장면, 주인공이 관찰하고 있는 대상, 등등이 박자감 있게 끼어드는 것도 재미났습니다. 첫번째로 결혼했던 사람과 빨리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오는 부분처럼, 그 자체로 웃음을 더하는 부분들도 있었고, 한 가지 소재로 밀고 나가는 간촐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더 볼거리가 많아지게 치장해주고 꾸며 주는 효과도 재미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빌딩 숲이 높은 뉴욕 풍경을 칙칙한 무채색이 많이 드러나게 잡아내서 뭔가 사연있는 음침한 느낌, 삭막한 도시 느낌을 살린 것 역시 그럴듯하게 어울려 보일 때가 많았다고 느꼈습니다.

주로 빠른 곡들을 신나는 박자에 맞춰서 배치해 놓은 음악도 즐거웠고, 현재의 도시를 무대로 삼고 있는 배경과 어울리면서 장면장면을 살리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약에 취했을 때 벌어지는 장면들을 묘사할 때에는 공상적인 장면, 초현실적인 화면들을 이런 음악들에 섞어서 보여 주되, 너무 과하게 빠져서 영화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게 조절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만이 중심이 아니라, 주인공이 겪는 모험과 갈등이 핵심인 줄거리가 중심에 있다는 것이 드러나도록 잘 균형을 잡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이 영화의 사연이 벌어지는 공간인 뉴욕 맨하탄 배경을 알뜰하게 잘 활용한 영화이기도 했다고 생각 합니다. 비좁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사는 주인공으로 시작해서, 돈을 벌고 출세하는 방법은 뉴욕과 돈 하면 생각날 법한 월스트리트로 해 두었고, 오랫동안 머물러 살아온 토박이에서부터 방금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 되는 그 모습들을 이야기 굽이굽이에 잘 써먹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 놓은 덕에, 이 영화 전체의 모습이 일관성을 갖고 있게 보이는 효과도 좀 있고,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어떤 자리에서 벌어진 것 같다는 현장감도 좀 살았다고 생각 합니다. 한편으로는, 지도상의 지점으로는 거의 같은 위치지만, 지하에는 하루 종일 지하철 타고 헤메는 날건달 시정잡배가 있고, 그 위의 하늘, 마천루 주상복합 높은 건물 위에는 백만장자가 같이 있는 그 다양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엮여서 도시가 돌아간다는 심상이 잘 사는 면도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뉴욕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세세한 묘사나 현실감 있는 인물이 부족한 것이 흠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돌아 보면, 주인공 자체는 이상한 일을 겪는 평범한 "환상특급" 주인공 인물을 표현하기에 딱 맞다고 할만큼 잘 움직여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거리들은 별 현실감 없다고 할 지언정, 약을 먹고 능력을 얻는 이 영화의 주인공을 묘사하면서, 마약 중독자의 모습과 비스무레하게 표현하는 점들과 거기에 엮이는 이야기들만은 꽤 잘 살아 있었습니다. 약 먹고 능력을 얻었다는 듯이 기뻐하지만, 부작용도 크고, 곧 끊을 거라고 장담하기도 하고, 약 때문에 죽자고 고생도 하고, 갑자기 필름 끊겨서 당황하기도 하고, 폭력조직과 얽히기도 하고, 감각이 날카로워지고 자신감과 활력이 넘쳐지기도 하는 그 모습들만은 그럴듯해서, 이야기의 뼈대로 든든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영화의 절정 장면, 주인공이 가장 깊은 위기에 빠졌다가 다시 약을 먹어 벗어나는 장면의 처절한 묘사를 보면, 이런 위기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역시, "환상특급" 같은 이야기의 비슷한 사연으로 적당할만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따져보자면야, 이런 식으로 주인공이 위기를 돌파한다면, 그냥 독백 나래이션으로 설명하고 폴짝 넘어가는 대신에, 여기에 어울리는 복선이 미리부터 좀 잘 배치되어 있었다거나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정도 선도 볼만했다고 생각 합니다.

조금 더 아귀가 맞게 이야기가 배치되어 있거나, 맨 마지막 결말에 크고 화려한 무슨 장면이 있었다거나 해도 더 좋았을 성 싶습니다. 하지만, 막연한 공상을 막연하게 다룬 이야기치고, 큰 욕심 없이 지금 처럼 도시전설 분위기로 슬그머니 꾸며주고 넘어 가는 것도 멀끔하니 재밌었습니다.


그 밖에...

예고편을 보면 로버트 드니로가 무슨 비밀을 움켜진 악역처럼 나옵니다만, 그런 내용은 아니고 악역도 아닙니다. 주인공에게 위협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없는 그냥 갑부 아저씨로 나오고, 오히려 주인공에게 기회를 주는 일을 많이 해 줍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로,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원래 직업이 소설 작가가 아니라, 광고 문안 같은 것 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2011년작인 영화인데, 한국에서는 요즘 개봉한 영화입니다.

덧글

  • 차원이동자 2012/07/19 10:24 # 답글

    예전에 애드머피인가? 월스트리트를 지망하는 웨이터알바생이 약물실험에 참여해 오감이 남들의 5배는 민감해지는 약을 먹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 약의 부작용이 갑자기 특정감각이 5배 둔해지는거여서 장님처럼 더듬거리거나 하는식의 원맨쇼가 멋졌죠.

    이영화는 그런 개그보다 신비감에 더 힘을 실으려고 한거같군요
  • 게렉터 2012/07/23 20:35 #

    개그 요소도 의외로 꽤 있는 영화인데 너무 진지하게만 나가는 것도 아니면서 칙칙한 분위기는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그야말로 "환상특급", 그 중에서도 80년대판 분위기였습니다.
  • FlakGear 2012/07/19 10:44 # 답글

    원작은 어둡다고 하더군요. 역시 원작 본 사람들은 원작이 낫다고들 하더라구요 -ㅂ-;;;
  • 게렉터 2012/07/23 20:36 #

    저는 이런 내용 - 사람은 뇌의 몇 % 밖에 못쓰는데 잠재력을 살리면 - 으로 나가는 영화치고 오히려 너무 진지하면 또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도 있지 않았겠나 싶어서 지금 영화 정도도 괜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 2012/07/23 16:22 # 삭제 답글

    배에서 재밌게 본 영화 ㅎ
    하선한지 일주일 되었다ㅋㅋ 대문사진 멋지네 ㅋ
  • 게렉터 2012/07/23 20:36 #

    또 언제가 승선일이신가? 반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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