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빈 인 더 우즈 (The Cabin in the Woods, 2012) 영화

"캐빈 인 더 우즈"는 "13일의 금요일" 아류작 영화등등 뻔하게 굳어진 공포 영화의 틀을 이야기 거리로 삼는 영화로, "스크림"같은 이런 부류의 영화답게 코미디도 과하지 않게 알맞게 들어가 있는 영화 입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이 재미를 더하는 영화이니만큼, 도대체 뭘 보게 될 지도 모른 채 보는 것이 가장 재미나겠습니다만, 이제부터 형식 정도는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놀래키는 장면 몇몇, 피 튀기는 장면 몇몇이 "공포 영화의 틀"을 보여 준다는 역할을 위해서 약간 들어 있을 뿐, 무서움이 강조되기 보다는 흥미진진한 수수께끼 풀이에 좀 더 치중하는 재미난 영화로, 막판에는 상당히 화려한 장면들도 들어 있었습니다.


(숲속에 있는 별장의 대학생들)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특이한 두 가지 발단을 보여 주면서 출발합니다. 첫번째로는 이상한 특수 비밀 기지 시설에 근무하는 연구원과 요원들을 보여 줍니다. 중저예산 영화나 TV 단막극 시리즈에 나올법한 구식 특수기지 세트가 정겹고, 연구원과 요원들이 싱거운 농담 따먹기를 잘 하는 가벼운 분위기로 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작전을 펼치는 지, 목적이 뭔지는 일단 안 알려 줍니다.

두번째로는 이 특수 비밀기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지역에서 역시 아무 상관이 없이 사는 대학생들을 보여 줍니다. 이 대학생들은 외딴 별장으로 놀러 가서 즐겁게 놀아 보려고 합니다. 이 대학생들의 이야기는 젊은이들이 놀러 가서 방탕하게 놀다가 하나 둘 희생당하는 이제 정형화된 것을 넘어서, 그 정형화된 것을 비웃는 이야기들마저 정형화되어 가는 공포영화의 정해진 길을 지하철 노선처럼 어긋남없이 따라 갑니다. 그리고나서, 첫번째 소재인 비밀 기지에 있는 연구원과 요원들이 바로 이 두번째로 소재인 대학생들을 몰래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해서 두 가지 떨어진 이야기로 진행 되어 나갑니다. 공포 영화의 틀대로 나아가는 대학생들과 이 대학생들을 관찰하며 농담하고 야유하면서 그 공포 영화의 틀을 비아냥거리기도 하는 요원들이 따로 떨어진 채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이 영화가 비춰 주는 배경이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왔다갔다하는 동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짓이고, 이 요원들은 왜 저걸 관찰하고 있고 이 요원들이 뭘 하는 사람들인지, 결국 어쩌려고 이렇게 되는지 점점 궁금해 질만합니다. 이 궁금증을 요리조리 달아오르게 해서 이 영화는 계속해서 내용을 지켜보게 만들고 있고, 그러다가 결국 막판이 되면 이렇게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틀"자체를 이야기 거리로 삼은 내용에 잘맞는 진상을 드러내면서 영화가 결말을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장과 부가 넘어 갈 때 마다 주인공과 배경이 바뀌는 소설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소설 있지 않습니까. 1장에서는 어느 도시의 중년 아저씨가 주인공인 회사의 부정부패 이야기가 나오고, 2장에서는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한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주인공인 연애 이야기가 나옵니다. 3장에서는 다시 중년 아저씨 이야기, 4장에서는 젊은 여자 이야기가 나오고, 이런식으로 장마다 번갈아가면서 계속 내용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형식을 쓰는 소설에서 결말 부분 즈음에 벌어지는 일이 이 영화에서도 벌어진다는 면에서 더 비슷한 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비밀기지의 연구원들: 산과 같은 안정감을 가진 코미디 연기의 기본을 선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옛날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은 "현기증"에서부터도 강조 되었던 것입니다만, 이 영화는 맨 막판에 반전을 짠 하면서 제시해서 한번 놀라게 하는 대신에, 진상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순간을 좀 더 앞쪽으로 당겨 놓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꽤 남겨두고 반전을 알려 준다음에, 남은 시간 동안 그런 놀랄만한 사연이 있는 상황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진기한 장면, 이상한 이야기 거리를 시원하게 뿌려 준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특히, 무슨 TV물 중저예산 에피소드처럼 할리우드 영화사 구석에서 흔히 찾아낼 수 있을 법한 아주 전형적인 세트에서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일을 매우 정형화된 이야기대로 다루어 나가는 것이 이야기의 한 축이었습니다. 그러자니 중반까지 내용이 무척 간촐한 편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영화에 주인공들을 공격하는 괴물로 나오는 것들도 분장이 그다지 특징이 없게 그저 그렇게 꾸며져 있다 싶었습니다. 그나마 어두운 그늘 속에 몸을 가려서 값싼 분장을 숨기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화려한 것, 거창한 것이 적다는 생각이 들기 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반전 이후로, 새롭게 드러난 진상을 활력을 불어 넣는 소재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전을 활용해서, 지금껏 너무 저예산처럼 진행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한껏 화려한 장면, 난장판 대소동을 부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 격렬한 모습이 막판 대결전 다운 절정으로도 충분했고, 이 영화가 다루는 공포영화의 틀을 소재로 삼는다는 점과 내용도 딱 맞아 떨어지면서 더욱더 재미나는 대목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고보면, 코미디 요소와 공포 요소의 배합이 매우 잘 갖춰진 영화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포쪽을 담당하는 쪽에 더 가깝다고 할 만한 대학생들 이야기와, 코미디쪽을 담당하는 쪽에 더 가깝다고 할 만한 특수연구원들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서로 짝을 잘 맞춰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 이야기라도 공포물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로 헐렁하게 넘어갈 틈도 마련해 두고, 특수연구원들 이야기도 농담이지만 공포물 소재를 응용하는 농담으로 짜 놓아서 서로서로 잘 엮여 들게 고리들도 잘 마련해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뿐만아니라 이렇게 잘 엮여 들도록, 이런 내용들을 표현해서 화면으로 보여주는 방법도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뒷모습만 보여주는 발레리나 괴물 등과 같이 그럴싸한 모습으로 꾸며 놓은 것이 그냥 화면에 나와서 뜸들이기만 해도 훌륭해 보이는 것들이 있었나하면, 공포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시각을 악용해서 조마조마한 감상을 천연덕스럽게 밀고 당기는 늑대 박제와 입맞추는 장면도 기술이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그외에도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코미디 연기 재주를 활용하는 바탕이 좋은 내용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인어 운운하는 이야기를 써먹는 수법이라든가, 맨 마지막에 약간 의외의 배우를 활용해서 갑자기 진지한 윤리학 문제 중 하나인 희생양에 대해 잠깐 제시해서 이 헐렁한 농담쇼 속에서 갈등을 갈등 답게 고조해 주는 방법도 괜찮았다고 생각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막판에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서 갑자기 줄줄 해설을 하는 얕은 수법인 듯 하기도 하지만, 또 그런것치고는 매끄럽게 잘 연결되어 있었고, 호기심과 계속해서 이상한 일을 구경하는 빠른 느낌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 합니다.


(늑대 박제)

굳이 아쉬운 점을 캐낸다면야, 공포 영화에서 웃기고 헐렁한 내용을 집어 넣기 위해 약에 쩔은 녀석을 웃기는 놈으로 보여주는 수법이 이제 케케묵은 듯 해 보이는 면이 있다는 것 정도가 생각이 납니다. 2000년 무렵의 "패컬티"나 "아이들 핸드" 시절에는 이런 것이 정말 황당하게 웃기기도 했고 나름대로 묘하게 풍자적인 면도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는 한 번 웃겼던 수법 또 울궈먹는 정도 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도 우려먹을 만큼 우려나기는 해서, 텀블러를 무기로 사용하는 장면의 늠늠함처럼 한번 웃게 만드는 대목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나머지로 보자면 "오히려 저런 것을 역으로 또 놀림거리로 삼나보다"하고 오해하게 될 정도로 식상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중은 있는 편이면서도 "공포 영화 속의 금발미녀"치고는 여자 조연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점, 반대로 "똑똑하고 내성적인 학생"은 배우가 멀쩡해 보이는데 꼭 무슨 큰 역할을 할 것처럼하지만 너무 비중이 적다는 점 등등 대학생 배우들 역할간에 안배가 조금 더 정리되었으면 더 매력을 더할 수 있게 포장할 수 있지 않았겠나 생각해 봤습니다.

재미 있는 형식을 잘 살린 영화라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그런 형식이 만들어 내는 국면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 배치해 놓은 복선들도 멋진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영화의 복선 답게, 대충 넘어 갈 때는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무슨 다른 이야기를 위한 복선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드는 장면, 장면들이 나중에 보면, 그게 그런 의미로 나왔던 것이구나, 하고 돌이켜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몇 가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만큼, 이렇게 잘 꾸민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를 다 보고, 진상을 다 알고 나서, 시작부터 나왔던 장면장면들을 복기해 보는 것도 재미가 되는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거기다가 한쪽 이야기가 다른 한쪽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활용해서, 이 공포 영화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까지 한 번에 싸잡아서 풍자하는 것도 묘한 맛이 있었습니다. 결코 이 영화의 다른 부분과 엇나가지 않을 만큼 잘 간수되어 있지만, 공포 영화를 보고 자극적인 장면을 기다리고, 영화 속 인물들이 온갖 고초를 겪는 것을 구경거리로 삼는 관객들의 태도를 슬쩍 비추어서 즐거운 농담거리로 꾸며 낸 것입니다. 이런 농담거리 자체가 아주 크게 웃긴 것은 아닙니다만, 이 영화가 막판에 드러내는 진상과 이런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점이 있어서, 영화 전체에 잘 스며든다는 점에서는 멋졌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이런 장면을 웃음기 있고 어색함 없이 잘 풀어 내는 배우들, 단역들, 엑스트라들의 모습도 중요한 디딤돌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IMDB를 보면 헴스워스가 토르 등에 출연해서 본격적인 유명세를 얻기 전인 몇년 전에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라고 합니다. 감독, 작가등은 반대 했음에도 굳이 3D 효과를 넣으려고 개봉을 미뤘다는데, 그러다가 영화사가 파산 절차에 들어 가는 바람에 개봉되지 못하고 떠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끝에 결국 다른 곳으로 팔려서 2012년에 뒤늦게 개봉된 영화라고 합니다.

이 영화가 아이디어 한 가지에 의존하는 면이 많은 만큼, "환상특급"이나 "환상여행"처럼 기이한 이야기를 보여 주는 TV 단막극 시리즈와 비슷한 점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넓은 세상 어느 곳에는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지만, 사실 엄청난 일을 감추고 있는 비밀 기관, 단체,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이 많은 큰 일들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늘도 전혀 모른채 세상 한 쪽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그런 도시전설스러운 신비로운 느낌도 많이 풍겼습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2012년에 글을 써본 것 중에서 최고의 영화들 2013-01-03 21:06:44 #

    ... 저곳 보여 주는 대목 한 부분이 나머지 영화 전체 못지 않게 즐거운 영화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3. 가장 좋은 기술을 보여준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http://gerecter.egloos.com/5125501 재치 있는 아이디어로 즐거운 재미거리를 만들어 준 영화로는 "캐빈 인 더 우즈"가 기억에 남습니다. 기본 틀은 "스크림" 이후로는 거의 터져 나오 ... more

덧글

  • 베이글 2012/07/27 08:39 # 답글

    저도 이 영화를 봤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조금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가볍게 볼 수 있는 심야 티비영화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게렉터 2012/07/29 13:39 #

    서사시적인 인물의 성장과 변화가 있거나 긴 사연을 다루는 내용은 전혀 아닌 소품스러운 구성인만큼, 환상, SF, 공포 단막극 느낌도 말하신대로 많이 나지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막판 대결전에는 거의 블록버스터급으로 충실한 이야기를 뿜는 것도 재미났습니다.
  • 유령 2012/07/27 21:22 # 답글

    포스터만 보면 당최 뭔 내용인지 짐작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상상하는 그 모든 걸 넘어설 것이다!"라고 광고하는 게 참 마음에 안 들었는데, 써놓으신 글을 보니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좀 드는군요.
  • 게렉터 2012/07/29 13:38 #

    맞습니다. 애초에 영화를 보면 뭘 크게 그렇게 상상할 건덕지를 많이 주는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재미난 형식이 처음부터 눈길을 끌고 끝까지 활용을 잘 하는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 유나씨 2012/07/27 21:42 # 답글

    연구원들을 헐리우드 영화제작자..
    아래층의 XXX을 호러팬
    그리고 대학생 그룹을 배우와 영화내용...이라고 치환하고 보면 블랙코메디도 그런 블렉 코메디가 없더라구요. ^^
    헐리우드 호러영화의 공식을 유쾌하게 비틀은 영화라 즐거웠습니다. 특히 중후반부에 나온 '톱니 헤드'와 '퍼즐'을 보고는 대폭소 했죠!
  • 게렉터 2012/07/29 13:37 #

    동의합니다. 말씀하신 부분을 적극적인 풍자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상당히 가미되어 있어서 재미났고, 그렇게 하면서도 그런 점에만 너무 쏠리지 않은 점도 재미났다고 생각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난 농담이었던 일본의 긴머리 귀신이 나오던 부분들도 저는 즐겁게 기억에 남습니다.
  • 2012/11/02 18:46 # 답글

    진짜 확, 방출이 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대단했지요.
    어찌보면 헐리우드식 '세카이계' 같기도 합니다.
  • 게렉터 2012/11/04 18:30 #

    그러고보면 한동안은 재미 삼아 세계가 확 흔적도 없이 멸망하는 이야기가 꽤 많이 유행처럼 나온 때도 있었던 듯 합니다.

    이 영화는 영화가 본격적으로 진상을 드러낼때 그전까지는 저예산 소규모 영화 같았는데 그때부터는 의외로 대형 액션 블록버스터스럽게 특수효과 장면이 꾸며져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 MCtheMad 2013/05/12 12:36 # 답글

    그 엘리베이터 네개가 있는 로비 씬이 역시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장면인 것 같아요 와 정말.. 본지 일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네요
  • 게렉터 2013/05/25 00:16 #

    뭔가 장난스러운 저예산 영화 같이 진행되다가 거기서부터 갑자기 특수효과에 물량을 확확 퍼넣어 버리니 효과도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