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 (神誌) 기타

"신지(神誌)"는 풍수 지리의 대가이자 미래를 예언한 예언자로, 말하자면 역사, 정세, 지리, 사회변화에 대한 안목을 잘 갖고 있어서 비밀스럽게 미래를 예측하는 기록을 남겼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화문 해태 석상: 이 해태 조각상을 두고, 예로부터 음양오행과 풍수지리에 따르면 서울에 미칠 불의 기운을 억누르는 효과를 준다는 속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지"는 신지가 남긴 글로 통하는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소개하는 이야기에서 처음 등장 합니다. "고려사"에서 고려시대의 김위제라는 풍수 지리에 관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신지비사"를 언급한 것입니다. 김위제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풍수지리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선의 말과 함께 "신지비사"라는 글을 언급합니다. 이 "신지비사"가 "신지"가 비밀스럽게 남긴 예언이라는 것과, 바로 이 신지가 단군 때의 사람이라는 말이 고려말, 조선초로 넘어 오면서 자리잡게 됩니다.

지금 전해져 내려 오는 "신지비사"의 내용은 양팔 저울에 비유해서 적당한 위치에 나라의 수도를 건설하고 도시를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류의 "비사", "비기"가 항상 그렇듯이 말이 모호하게 되어 있고, 비유법이 많아서 굉장히 심오하게 볼 수도 있게 꾸며져 있습니다. 대략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래의 것은 "성호사설"(한국고전종합DB - 고전번역총서)에 실린 김위제가 "신지비사"에 대해 한 말이라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 마치 칭추(稱錘:양팔저울 추), 극기(極器: 양팔저울 그릇)와 같으며 칭간(稱幹: 양팔저울의 가운데 부분)은 부소(扶疎: 지지대)라고 했으니, 칭추라는 것은 오덕(五德)의 땅이요, 극기는 백아강(白牙岡)이니, 이것은 저울로써 삼경(三京)을 비유한 것입니다.

송악(松岳:개성)이 중(中)이 되고 목멱(서울 남산)이 남이 되며 평양이 서가 되므로 극기라는 것은 머리요, 추(錘)라는 것은 꼬리이며, 칭간이라는 것은 벼리(綱)를 거는 곳이니 송악이 부소가 되어 칭간에 비유되고, 평양이 백아강이 되어 칭수(稱首)에 비유되며, 삼각산(三角山: 북한산)의 남쪽이 오덕구(五德丘)가 되어 칭추에 비유된 것입니다.

오덕이라는 것은, 가운데 있는 면악(面岳)이 원형(圓形)으로 토덕(土德)이 되고, 북쪽에 있는 감악(紺岳)이 곡형(曲形)으로 수덕(水德)이 되며, 남쪽에 있는 관악(冠岳)이 첨예(尖銳)하여 화덕(火德)이 되고, 동쪽에 있는 양주(楊州) 남행산(南行山)이 직형(直形)으로 목덕(木德)이 되고, 서쪽에 있는 수주(樹州)의 북악(北岳)이 금덕(金德)이 됩니다
....


도선이 신라말에 풍수지리설을 대유행시킨 이후로, 20세기까지 우리나라에는 풍수지리설이 크게 유행했고, 무덤 위치나, 집터잡기에 주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심하게 중요시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풍수지리 하면 항상 "도선"을 최고의 대가로 이야기하다보니, 도선을 능가하거나, 도선보다 더 먼저 풍수지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시초, 원초에 대해서도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도선 이전의 풍수지리 대가로 신지가 이야기 된 것으로 짐작 됩니다.

아득한 옛날의 신비한 사람으로 신지가 언급되다보니, 신지는 곧 "아득한 신비로운 옛날"하면 "단군 시대"로 통하게 된 고려말 이후에, 단군 때의 인물로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그런데, 위 "신지비사"내용은 바로 그 신지가 특히 지금의 서울 지역을 중시했다는 것이 특징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니, 고려에서 조선으로 정부가 바뀌면서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것도 이게 다 신통하게도 예언에 나오는 이야기다"라는 소문, 선전이 흥미를 끌어서 신지 이야기가 더 인기를 얻고 널리 퍼진 것인듯 합니다.

신지가 남긴 글로는 나라 중심에 수도를 두고, 그 남북에 하나 씩 중요한 도시를 두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중심 내용인 듯한 이 "신지비사"이외에, 소위 "구변지국(九變之局)"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용비어천가"에도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우리 나라의 역사가 단군 이래로 크게 아홉번 변화한다, 내지는 수도가 아홉번 옮겨지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구변국도"를 "신지비사"의 일부로 보거나 둘이 해석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라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소 신비주의적이고 주술적인 내용으로 미래 예측을 하는 것은, 거기에 얼마나 말이 되는 면이 있는 지, 아니면 그저 황당하지만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는 점이 강한 지 하는 면을 따져 보는 것도 재미 거리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신지비사"나 "구변국도"의 내용을 보면 장단점이 명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 "신지비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토의 중심에 수도를 두고 양쪽에 각각 수도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도시를 건설하라는 점은 그럴듯해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국토를 관리하는 편의와 교통이 유리하다는 면에서 중앙에 수도를 두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고, 지방 거점 도시를 만들어 두는 것도 균형 발전에 유리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한반도는 고조선 때부터 북쪽의 고조선-부여-고구려와, 남쪽의 진-삼한-백제,신라의 문화가 구분 되어 나뉘는 경향이 있었고, 심지어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중앙에 서울, 남쪽에 도시 하나, 북쪽에 도시 하나를 건설한다는 것도 그럴싸한 생각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서울은 어디에, 남쪽 도시, 북쪽 도시는 각각 어디에 위치를 잡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내용이 허황된 느낌입니다. "신지비사"는 "부소량"을 수도로 삼고, "백아강"과 "오덕지"를 도시로 개발하라는 것인데, 일단 비유법 부터가 매우 애매합니다. 특히 "오덕지"의 오덕(...)이라는 것은 보통 4방과 중앙의 덕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대칭이라서 보기 좋다, 멋지다, 느끼기에 뭔가 균형이 맞는다, 혹은 뭔가 알 수 없지만 "기(氣)"가 잘 맞는 것 같다는 점 외에 대체 무슨 실리가 있는지, 실제로 따지기 어렵습니다.

굳이 꿰어 맞춰보자면야, 백아강은 흰 이빨이라는 뜻이니, 북쪽 도시는 군사기지로 잘 개발하고, 오덕지는 여러가지 물질을 말하니, 남쪽 도시는 생산기지로 잘 개발하고, 부소량은 불씨 붙이는 부싯돌이라는 뜻이니, 작은 움직임도 전국 여기저기에 그 뜻을 잘 퍼져 나가게 하도록 중심지 수도는 교통, 행정의 기지로 개발하라는 뜻이라고 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이런 사상을 경영에 접목시킨다는 말도 풀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경영의 중심을 두 군데에 나누어 운영하되, 백아강 - 즉 과감하게 공격적으로 개발하고 창조하는 것과, 오덕지 - 즉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기존사업을 유지하라는 것으로 나누고, 최고경영자는 항상 그 가운데에서 별도로 중심을 잡아 주어야 한다는 말도 꺼내 볼 수 있습니다.

한 술 더 뜬다면, 고조선은 평양을 중심으로 보면 남쪽보다는 북쪽이 더 발달해 있는만큼, 당시 신지의 뜻은 북쪽 - 즉 기술 개발과 도전, 투자 쪽 - 에 더 많은 관할권을 주어라는 해석도 가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야 시대의 유행에 맞게 얼마든지 멋대로 지어 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갖다 붙이기 따라서는 정 반대의 해석도 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한계는 명백해 보입니다. "신지비사"는 단군 때부터 내려오는 기록이라는 전설이 조선시대 초기부터 확고히 자리 잡았는데, 그 기록의 표현은 매우 애매모호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이런류의 뜬소문, 예언, 주술적인 믿음에 대해서 뭔가 심오한 이치를 담고 있는 이야기인것처럼 여러가지 해석이 가해지거나, 대단한 지혜를 주는 상징적인 금언인냥 생각되면서 유행한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신지 이야기는 일부 합리적이고 좋은 원칙이 있어서 득이 되기도 했지만, 그러한 득 때문에 자신의 생각에 더욱 빠져들어, 신비주의적인 대칭, 주술적인 상징 등등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오히려 세상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살아가던 사람들을 이리저리 이사가게 하거나, 집과 땅을 갈아 앞어 버리게도 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기도 하는 실제와 동떨어진 이론, 믿음, 맹종, 맹신에 매달리는 모습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덤으로 더 엮어 보자면, 신지 이야기가 수도를 옮기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만큼, 고조선이 수도를 옮겼다는 전설에 대해서도 한 번 이야기해 볼만 합니다. 전통적으로 고조선의 중심지로 이야기되는 평양 이외에, 황해도 구월산 근처에도 단군이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는 전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고려사" 지리지에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이미 고려시대 무렵부터 돌아다닌 전설이라고 생각 합니다.

보통 구월산은 단군이 신선이 되어 산으로 들어가는 최후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최후의 모습 말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고, 그곳에 옛 궁궐터가 있다는 둥, "구월산"이 원래 궁궐 할 때 "궐"을 딴 "궐산"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둥 하는 기록이 있고 이곳의 옛날 이름이 당장경(唐藏京)이라는 식의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엮어보자면 단군이 신지비사의 설과 비슷하게, 원래 있던 평양에서 더 남쪽인 구월산 일대 당장경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더군다나, 이 구월산 전설에서는 대궐터, 궁전이 중심 소재라는 것도 눈길을 끕니다. 본래 단군은 흔히 중국 요순시대와 비교되어 매우 질박한 시대의 소박하고 검소한 임금이라서 초가집을 궁궐로 삼았다는 식으로 흔히 묘사되었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구월산은 "구월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로 불리울 만큼 새로운 도시의 궁전 건설을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전체 전설을 엮어 보자면, 부질 없이 신지의 이론적인 풍수지리 주장에 집착해서 괜히 힘들게 새 도시를 만들고 재물을 많이 들여 엉뚱한 산속에다가 궁전을 건설하느라 소란을 피우고, 거기에 신비주의적인 대칭과 방향을 열심히 따져 건설한다고 여러 사람 고생시킨 이야기들이 상상 되기도 합니다.


그 밖에...

평양 - 구월산으로 단군이 이동하는 것이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을 상징한다거나, 고조선의 영향력이 남쪽으로 확장되는 것을 나타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야기해 볼 수도 있을텐데, 그런 식으로 구체적인 사실과 연결하기에는 많은 전설들이 너무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내용도 저마다 기초적인 연대부터 크게 오락가락하고 있어서, 여기서는 그냥 이야기 거리인 전설 그대로만 다루겠습니다.

현대에 수집된 "한국구비문학대계"의 고수레 풍습 유래 설화를 보다 보면, 풍수 잘하는 사람을 말하면서 "신기 도선"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신기"는 "신지"가 와전 된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신지" 전설은 단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그 어느 전설 못지 않게 후대에 영향력이 큰 전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구변지국"은 조선시대에 소위 예언, 구원자, 피난처 등등에 대한 소문이 가끔 돌 때에 여러가지로 모습을 꾸준히 보이는 듯 합니다. 옛날 부터 내려오는 예언이 있고, 풍수지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언제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의 수도가 바뀌게 된다 어쩐다 하는 이야기들말입니다.

- 모자란 솜씨로 이런저런 이야기 소개해 보려다가 제가 틀린 부분이나 잘못 생각한 부분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지적해 주실 말씀이나, 의견 있으시면 덧글 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이 글은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시리즈 첫번째 글입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2012-09-11 22:51:17 #

    ... 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정도로 이어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이 9명 각각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글을 앞으로 한 편씩 차례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지 그 밖에... 몇 년 전 평양에서 "단군릉"이란 것을 건설한다고 하면서, 주변을 장식하는 석상들을 세울 때에도 위 인물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중에는 "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