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우 (彭虞) 기타

"팽우(彭虞)"는 단군의 신하로, 전국의 산과 강을 정리해서 사람이 살기 좋게 만들고, 사람들이 살 마을 지역을 정해서 잡아 준 공이 있고 특히 길을 뚫는 일에서 활약을 펼쳤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보통 팽우가 활약하던 시대는 아주 큰 홍수가 일어나서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시기를 전후로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강원도 지역 길 옆에 세워두던 돌장승의 모습: 이것은 화천 성불사지 석장승입니다.)

"팽우" 전설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해 볼만한 부분은, 팽우 전설은 이미 조선 시대에 학자들이 이 전설이 어떻게해서 탄생했는지 대부분 밝혀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러 합니다.

고조선에 대해서 상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기록 중에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것이 "사기"입니다. 물론 단군의 전설보다는 수천년의 시간 차이를 갖고 있는 위만 시대를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이 "사기"에는 중국 한나라 무제 시절에 "팽오"(彭吳)라는 사람이 고조선을 몰아내고 창해군(滄海郡)이라는 행정 구역을 설치하게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읽는 방법에 따라 "팽오"는 성이라서, 성명은 "팽오가(彭吳賈)"가 맞다고도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보통 이 사람은 후에 그냥 팽오라고 대부분 언급됩니다.

이것에 해당하는 기록이 "사기"보다 뒤에 나온 책인 "한서"에서 찾아 보면, 팽오가 고조선, 예맥과 통할 수 있게 했고 창해군을 설치하게 했다는 표현으로 바뀝니다. 아마도, 고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을 한나라 무제때 점령하고 오랫 동안 통치한 입장에서 쓰다보니까, 단순히 고조선을 몰아 냈다는 이야기 보다는 팽오의 활약이 그 인근 지역과 교류하려고 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당시 중국 한나라의 통치 지역 바깥에 있던 곳 중에서 고조선의 후예로 보았던 예맥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방향으로 쓰려고 그런 식으로 나타낸 듯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무렵에 예맥에 대한 생각이, 강원도 영동지역에는 옛날에 예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고, 강원도 영서지역에는 옛날에 맥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는 것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특히 신라에서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것인지, "삼국사기"에는 중국 당나라의 가탐이 남긴 기록을 옮겨 오면서 이런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생각들이 섞이다 보니, 옛날 맥국 지역에 팽오라는 사람이 왔는데, 그 사람은 길을 개척하는 역할을 했고, 나아가서 지리나 산과 강물에 대한 여러가지 국가 사업에도 공을 세웠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 듯 합니다. 그렇게 해서, 팽오가 와전된 팽우(彭虞)가 먼 옛날에 맥국 지역, 즉 지금의 춘천 지역에 도달했고, 그 사람은 산천을 정리한 공로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전설은 비교적 빨리 정착되었기 때문인지,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춘천 땅 우두산에 이 시절의 일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 있다는 전설이 상당히 널리 퍼졌습니다. 흔히 길을 뚫은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라고 해서 통도비(通道碑)라고 했던 것인데, 이것이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고 하다보니 중국 한나라 "팽오" 시절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서 단군 시절의 일이라고 전해지게 되었고, 조선시대 학자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다보니, 결국 팽우는 "팽오"에 대한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이 이름을 팽오(彭吳)라고 이름을 기록한 것들도 많고, 이렇게 팽우 이야기의 정체에 대해 밝히는 이야기는 "연려실기술"을 비롯해서 조선 후기의 여러 책에 실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반대로 이런 사연은 팽우 전설이 상당히 이른 시기에 단군과 얽힌 이야기로 나왔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여수기"에 대한 전설이 일부 가문에서만 내려오는 이야기로 조선 후기에 채록되었고, "신지"에 대한 전설은 조선 초에 퍼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신지"가 어떤 일을 한 어느 지방 사람인지 그저 막연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팽우" 전설은 인상적입니다.

팽우는 도로를 건설했고, "연려실기술" 표현대로라면 산천(山川)을 다스려 백성들이 살 터전을 정해주었으며, 특히 춘천 지역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그 지역에 비석도 세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생한 이야기가 조선시대에 널리 퍼져 아는 사람이 꽤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점에 집중해서 내용을 살펴 보다보면, 팽우 전설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대홍수 전설과 관계가 많아 보인다는 점도 이목을 끕니다. 팽우는 조선 후기의 "이목구심서" 같은 책에 언급될 때 괜히 중국의 하나라 우 임금 전설과 견주어져서 나옵니다.

우 임금은 중국 전설에서 홍수를 예방하는 공사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데, 그렇게 본다면 팽우가 해낸 중요한 일 중에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둑을 쌓거나 물길을 조정한 일이 큰 몫을 차지한 것으로 많이들 생각 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현대에 채록된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전설 중에 팽우가 홍수 때 배를 타고 다니며 사람을 구출했고, 이때 배 타고 다니다가 하나라 우 임금을 만나기도 했다는 것도 있습니다. 즉 중국 전설에서 하나라 우 임금이 홍수를 막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이야기와 팽우 전설이 만나는 것입니다.

중국 책들에서는 옛부터 하나라 우 임금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홍수 문제를 해결한 것과 함께, 산맥, 강을 지나다닐 수 있게 하고, 여러 곳의 행정구역을 다스린 일들이 내려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하나라 우 임금에 대한 책들은 널리 읽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니, 아마 아득한 옛날에 길을 뚫었다는 팽우의 전설이 생긴 후에, 팽우도 그 비슷한 일을 했을 거라고 상상한 것이 점점 더 보태져서 내용이 풍부해진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편, 팽우가 홍수에서 사람을 구출하는 전설은 충북 괴산에서 채록된 것입니다. 이 전설은 우리나라 대홍수 전설의 전형적인 한 유형처럼 너무 크게 홍수가 나서 다 물에 잠기고 산꼭대기 부분만 섬처럼 남아 있었고, 그래서 그 산꼭대기를 지금 뭐라고 부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조선시대 기록에서 "산천을 다스렸다"는 팽우의 작업 중에 가장 크게 생각 된 것이 토목 공사 작업과 홍수나 산사태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백성들의 집과 마을의 위치를 조정해 준 작업이었다고 짐작해 볼만 합니다. 특히, 주로 춘천 지역에 얽힌 이야기로 나오던 "팽우"전설이 현대에 충북 괴산에도 채록된 것으로 보면, 과연 상당히 널리 유행한 전설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이런 전설을 우리나라 홍수 전설의 전형적인 유형 중 하나인 장자못 전설과 엮어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이 홍수가 나서 위험해진다는 것을 안 믿고 비웃고 있는 장면과 대조 됩니다. 그러니까, 팽우가 홍수를 조심해서 어느 지역에는 집을 지으면 안된다고 지시하고, 비상용으로 배를 준비해 놓으라고 떠들고 다니니까 웃음거리가 되었고, 거기다가 한 술 더떠서 높은 산의 어느 지역까지도 물에 잠길 위험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미친 사람 취급을 하는데, 정말로 대홍수가 밀어 닥치자 그 높은 산 봉우리 지역까지 물이 밀려 오고, 팽우가 배를 타고 다니며 후회하는 사람들을 구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팽우가 누구부터 먼저 구출해 주어야 할 것인가, 급박한 상황에서 갈등하게 되는 사연이라든지, 그 밖에 엄청난 재해에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은 사람들이 막막한 마음으로 새롭게 다시 마을을 건설하고 농토를 개척하는 여러 홍수 설화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생각날 법 합니다.

다른 면에서는 산과 강을 건너면서 험난한 곳을 마다 않고 돌아다니는 탐험가로서 팽우의 모습도 재미난 이야기 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춘천 지역은 현재 춘천 관광 홈페이지에도 소개된 "태기왕" 전설이 있듯이 별로 강력하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자기만의 요새를 건설하고 고립되어 있는 숨겨진 왕국 같은 모습으로 전설 속에 나타나는 면이 있습니다. 이것을 맥국의 전설로 연결하는 말도 가끔 인근에서 펴내는 전설집에 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팽우는 이런 곳에 들어와서, 멀리 이어지는 도로를 만들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통도비라는 기념비를 세워서 기념할만큼 공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정약용은 팽우를 언급하면서 강원도 춘천 인근 지역을 묘사할 때 유난히, 첩첩산중이고 하늘 위에 올라온 높은 지역으로 표현하여, 오기 어려운 곳에 왔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을 탐험하고 교류를 트는 주인공을 바로 팽우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정약용은 팽우 전설의 연원을 알고 있어서, 아예 반대로 중국 한나라 무제의 신하, 팽오가 우리나라 춘천까지 왔다는 식으로 생각 했습니다.)

그 외에 애초에 이 전설의 연원이 중국과 교류를 안정시킨 "팽오"라는 인물이라는 점이라든가, 하나라 우 임금과 만났다는 전설 속의 이야기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보면, 멀리 서쪽 중국 지역까지 오간 인물이라는 인상도 생깁니다.

한편으로는 "연려실기술"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팽우가 단군의 "신하"라는 점, 팽우의 이런 일들이 단군의 명령을 받아서 해낸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쓰고 있다는 점도 이 전설의 한 가지 특징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이 전설이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신지", "여수기" 같은 다른 전설과 달라 보이는 점이기도 합니다.

즉 팽우 전설은 비교적 널리 퍼진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조선 시대에 학자들이 단군 시절의 일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그 때 단군 신하로는 팽우가 있었다"는 것을 한번 짚어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단군의 가장 대표적인 신하로 팽우를 꼽게되는 인상도 생깁니다. 예를 들어서 "임하필기"등에는 우리나라 신하들의 관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단군에 대해서는 팽우를 꼽으면서 이야기를 시작 합니다.

그러고보면, 팽우라는 인물이 얼마나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는지, 혹은 단군이 팽우를 얼마나 굳게 믿고 잘 대해 주었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지역에 도로를 만드는 일이나, 토목 건설, 홍수 예방과 같은 힘겨운 임무를 맡기면서, 의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믿고 팽우가 활약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이라든가, 팽우가 성실하고 유능한 신하였던 까닭 때문에 어마어마한 일거리를 도맡게 되어 인간적으로 고민하지만 꿋꿋이 해내는 모습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떠올려 볼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눈치 없이 일 잘하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일 잘하는 사람으로 찍혀서 일복만 왕창 터져서 고생만 죽도록 하게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그 밖에...

팽우(彭虞)라는 한자는 "연려실기술"에 나온 것을 따른 것으로, 중국 한나라 역사 속에 실린 팽오와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사실 중국 하나라 우 임금과 관련된 단군 전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단군의 아들이라는 부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부루"에 관해 이야기해 볼 때에 더 언급해 보겠습니다.

팽우의 유래이기도한 중국 하나라 무제가 조선, 예, 맥과 연결되는 길을 뚫고, 창해군을 설치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옛날 예국의 땅으로 생각 되었던 지금의 강릉지역에 창해군과 관련된 전설도 이어진 것이 생긴 듯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하다가 실패했던 창해역사가 바로 예국, 지금의 강릉 지역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전설 중에 유명한 편입니다.

춘천 우두산에 옛날에 팽우가 세운 "통도비"가 있었다는 전설이 조선시대에 널리 이야기된 것을 보면, 우두산 지역에 뭐라도 비석 비슷한 것이 있기는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정말로 단군 시대의 팽우나, 한나라의 팽오가 온 것은 아니더라도 후대에 낙랑군이나 대방군 지역에서 누가 왔다 가면서 비석을 세웠다거나, 그게 아니면 삼국시대에 고구려나 신라에서 세운 비석을 착각했을 수도 있지 싶습니다.

아니면 강원도 지역 이곳저곳에 있었던 후삼국 시대의 실력자가 세운 복잡한 이두 문자 비석을 알아 보지 못했다거나, 몽골군이나 거란군이 침입해서 한자가 아닌 다른 문자로 쓴 비석이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못 알아봐서 착각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모자란 솜씨로 이런저런 이야기 소개해 보려다가 제가 틀린 부분이나 잘못 생각한 부분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지적해 주실 말씀이나, 의견 있으시면 덧글 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이 글은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시리즈 세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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