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 (仙人) 기타

단군과 관련된 전설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신령, 신선에 대한 생각과 애초부터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단군 왕검 전설을 잘 채록한 고려 후기의 "삼국유사", "제왕운기"는 차이가 나는 부분들이 여기저기 있는 내용이지만, 공통적으로 단군의 마지막은 산에 들어가서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꾸준히 이어져서 조선 후기 "해동이적"에는 우리나라 신선술의 시초로 단군을 꼽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김홍도의 군선도: 중국 도교에서는 여러 신선들이 다양하게 묘사된 기록이 있어서, 이와 같이 신선들이 떼 지어 가는 장면 묘사가 유행했는데, 그 소재에 영향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이렇게 단군을 산신령이나 신선술과 엮어서 보는 생각은 조선시대가 지나는 동안 이러한 신선술을 계보로 정리하는 데에 이릅니다. 조선 후기의 책이라고 하는 "청학집"이나 "오계일지집"에 어떻게 해서 신선술이 탄생해서 내려오고 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단군이 선대에 이어 받은 신선술을 후대에 전수해 주었고, 그것이 세대에 걸쳐 계속 전수되어 이어 지고 있다는 류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군의 신선술을 이어 받았다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 중에 특별히 눈에 뜨이는 것은 "문박(文朴)"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문박은 단군에게 신선술을 배워서 이후 삼한, 삼국 시대에 신선 전설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로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청학집"에 나오는 기록의 경우, 문박에게서 신선술을 이어 받은 사람은 영랑으로 나옵니다. 영랑은 삼국시대의 유명한 신선 전설인 신라 사선(四仙) 전설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영랑을 말하는 듯 보입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 문박이 어떤 식으로 전설의 일부가 되었는지 상상해볼만 합니다. 조선 후기에 도술, 신선술, 산신령 숭배에 대한 계보를 따질 때에, 삼국시대 이후로는 자료들이 모여서 이야기 거리가 생기게 되는데, 단군과 삼국시대 사이에 너무 시간 차이가 커서 영 모양새가 좋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이의 시간에 대해 단군에게 직접 신선술을 전달 받은 후계자가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는데, 그 역할로 등장한 것이 "문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군에 대한 전설의 무대와 비슷한 장소나 시간을 배경으로 삼아 내려오는 "문박"에 관한 전설이 있어서 그것을 연결해 놓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단군과 큰 관계 없이 아주 오래전의 신선이라는 것으로 "문박" 전설이 있었는데, 그것을 단군 전설에 엮어다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유행하던 조선 후기에 사람들 사이에 "문박"을 믿는 이야기가 어떤 지역에서 특별히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내용이 통합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문박은 서로 다른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청학집"과 "오계일지집" 두 책에 동시에 등장하고 있으므로, 나름대로는 비교적 인상이 강한 편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문박"에 관한 이야기를 조선시대에 시간을 갖고 충분히 정착된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은 "청학집"과 "오계일지집"이라는 "문박"에 대해서 언급하는 책의 성격이 문제 입니다.

"청학집"의 경우 그 내용은 화자인 조여적이 운학선생이라는 자기 스승의 이야기를 하는데, 내용은 그 운학선생이 소시적에 우연히 "청학상인"이라는 어느 신선술의 스승을 만난 뒤에, 그 스승을 따라 다른 신선술을 익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책 내용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쓴 연대는 대략 17세기 무렵입니다.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의 내용은 앞서 언급한 "문박"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신선술의 계보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몇몇 신선술 일화를 이야기 하는 가하면, 미래에 대한 예언이나, 시국에 대한 이야기, 그외에 신선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청나라나 일본을 정탐하고 온 이야기에 대해서도 내용이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청학집"의 내용은 일종의 주술적인 예언서, 비결서에 가까운 셈입니다. 그러면서 그 형식은 화자인 조여적을 1인칭 관찰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듯한 액자 소설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위에 나오는 "문박" 등에 대한 이야기는 대화 도중에 금선자라는 신선술 동료가 꺼내는 말 속에서 변지라는 사람이 썼다는 "기수사문록"이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꺼내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 이 내용은 어떻게 보면 여러가지 신비로운 이야기를 대화 형식으로 소설화 해서 엮어 본 것이고, 어떻게 생각해 보자면, 변지, 운학선생, 청학상인 등등을 섬기는 어떤 도술 연마 모임 같은 곳에서 나온 생각을 담은 책인 것처럼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이 작성된 시기는 책 내용에 나오는 17세기가 아니라 얼마든지 그 후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 수록된 내용은 어느 정도 널리 유포된 전설이나 소문을 담아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작가 한 사람만의 생각을 담은 것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내지는 작가가 속한 한 모임의 발상을 담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남아 있는 "청학집"의 판본이라는 것도 그 전래와 출처가 17세기에서부터 내려왔다고 선뜻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현재 "청학집"의 내용은 그 작가가 20세기초에 나름대로의 사상을 담아 한 벌을 썼던 것이 이리저리 돌면서 퍼진 것으로 볼 소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계일지집"의 경우에는 더 자료가 부족하고 "청학집"보다 덜 전파된 내용입니다만, 책에 대한 서지사항이나 판본의 전래가 잘 안찾아지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정도로 보아도 될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실 "문박"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긴 것이고, 언제부터 생겨서, 어떤 사람들을 중심으로 퍼져온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생각을 저는 많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적어도 20세기 초부터는 "문박"이 단군의 지식, 신선술을 이어 받았다는 이야기를 읽고 들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문박"이 조선 후기에 자리 잡은 "단군"이 우리나라에서 신선술의 시초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발전한 전설의 한 사례라고는 볼 수 있지 싶습니다.

좀 더 뿌리로 파고 들자면야, 굳이 이런 "문박" 같은 이름을 갖다 놓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사실 단군 전설은 애초부터 산신령이나 신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서, 단군 왕검에 대한 거의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볼 수 있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언급만 봐도, 평양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그 지역을 옛날에 왕검이라는 선인(仙人)이 있었던 곳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평양 지역에 내려오던 아주 오랜 옛날의 신선 전설이 있었는데, 그 신선이 바로 굉장히 오래 전에 나라를 세운 임금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고려시대 때 평양을 서경으로 중시하게 되면서, 평양에 있던 여러가지 전설이 유행하게 되었고 그런 이야기가 "삼국사기"에도 채록된 것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아예 신선 전설이 먼저이고 핵심인데, "왕검성"이라는 지명 해석에서 생각이 얽혀서 그 지역에 있던 신선 전설을 나라를 세운 임금의 전설로 보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전설은 아마 고구려가 평양에 도읍을 두던 시절에 그 원형이 자리 잡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중국의 역사 기록을 보면, "구당서"등 고구려가 평양을 도읍을 옮긴 후를 주로 다루는 기록에서 "기자신", "가한신"을 섬긴다고 해서, 고조선 임금 내지는 먼 과거의 임금을 고구려 사람들이 숭배한다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 때에 옛날 고조선 지역의 중심지이던 평양의 여러가지 과거 신선, 임금, 신령에 대한 숭배 풍습이 자리잡기 시작했던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지금은 고조선의 전설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신선스러운 존재에 대한 내용으로 점점 치장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던 고려 시대에 서경을 중심으로 해서 기존 조정 세력과 대립하던 묘청 일파의 무리가 여러가지 신선술, 풍수지리, 도참 사상등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지적해 볼만하다고 생각 합니다.

즉, 원래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신선에 대한 면이 많이 강조되지는 않은 이야기였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을 수도 있는데, 묘청이 서경, 즉 지금의 평양지역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활용하고 선전하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더 열심히 퍼뜨리고, 신비로운 면을 더 강조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보던지간에, 최소한 단군 전설이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어 기록되고 알려지는 고려시대에 이미 단군은 신선술, 산신령 숭배와 연결 되어서 이야기 되기 시작했고, 이런 전통은 꾸준하게 이어져서 조선 후대까지 계속 발전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단군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된 신선 이야기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꼽아 보자면, 다시 묘청 이야기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고려시대의 묘청은 나름대로 산신령, 신선에 대한 숭배 사상을 체계화해서 조정에서 우리나라의 여덟 신선을 숭배하는 팔성당(八聖黨)을 건립하도록 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토속적인 신선, 산신령 숭배가 가장 잘 정리된 형태라고 생각 합니다. 물론 이전에 삼국시대에도 "탐시선인(참시선인)"이니, "옥부선인"이니 해서 신선 전설들이 내려오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묘청의 팔성당처럼 체계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 합니다. 팔성당은 중국 도교에서 흔히 신선들을 꼽을 때 8신선을 꼽는다는 점에 영향을 받고, 또 고려의 팔관회 행사에 빗대어 정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중국의 8신선과 체계가 닮은 것이면서도, 내용에는 무속적인 우리나라 산신령 숭배의 옛 풍습에 따라 채워 넣은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묘청은 이 팔성당을 주장하면서, 팔성당의 각 신선들이 어떤 성격을 갖는지, 불교의 인물들을 갖다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도교, 불교, 토속신앙이 섞여 있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서 팔성당의 신선 중에는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 문수사리보살"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백두산의 신선으로 "태백선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태백선인"은 불교에서 문수보살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에 유럽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북유럽 신화의 오딘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한다"는 것처럼 설명하는 방식으로, 더 기록이 분명하고 객관적인 면이 있는 불교의 인물로 팔성당의 신선들이 어떤 느낌인지 이야기해볼만 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덟 신선들을 살펴 보면 재미있습니다. 이름을 네 글자로 다같이 맞춰서 "고려사"에 나와 있는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무신도에 나오는 인물들 모습을 흉내내어 만화체로 그려 본 고려시대 여덟 신선)

1. 태백선인
명철하고 지혜가 뛰어난 신선, 가장 존경 받는 우두머리 (문수보살에 대응됨, 원문: 護國白頭嶽 太白仙人 實德 文殊師利菩薩)

2. 육통존자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의지가 강한 신선 (석가모니에 대응됨, 원문: 龍圍嶽 六通尊者 實德 釋迦佛)

3. 월성천선(월성악천선)
세심하게 챙겨주는 비서 역할을 하는 여자 신선 (대변천신에 대응됨, 원문: 月城嶽 天仙 實德 大辨天神)

4. 평양선인
나이가 많고 신비로운 이전 세대의 신선 (연등불에 대응됨, 원문: 駒麗 平壤仙人 實德 燃燈佛)

5. 목멱선인
순박하고 착한 거인 종족 (비파시불에 대응됨, 원문: 駒麗 木覓仙人 實德 毗婆尸佛)

6. 진주거사
사람을 구출하거나 체포하는 일을 하는 의로운 신선 (금강색보살에 대응됨, 원문: 松嶽 震主居士 實德 金剛索菩薩)

7. 증성신인(증성악신인)
싸움을 잘하고 적을 물리치는데 뛰어난 신선 (늑차천왕에 대응됨, 원문: 甑城嶽 神人 實德 勒叉天王)

8. 두악천녀
보기만 해도 넋이 나갈 정도가 되는 미모를 가진 강한 설득력을 가진 여자 신선 (부동우파이에 대응됨, 원문: 頭嶽 天女 實德 不動優婆夷)


이 중에 "태백선인", "평양선인"은 단군 이야기 내지는 단군 왕검 전설에 나오는 "산신"이라는 언급과 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묘청과 같은 시기를 살았던 김부식도 "삼국사기"를 기록할 때, 평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선인 왕검"이 살았다는 말을 굳이 덧붙여 놓을 정도 였으니 말입니다.

이와 같이 단군이 말년에 산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다, 신선술을 익혀 영원히 살려고 했다는 이야기들을 모아보다보면, 나름대로 극적인 맛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즉, 오랫동안 내려오던 임금 자리를 튼튼하게 지키고 있었던 임금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지냈는데, 그러다가 말년이 되자, 한번 태어나면 몇 십년 만에 죽는 인생에, 부귀영화와 옥좌가 다 무슨 소용인가, 허무하다는 생각에 빠졌다가, 마침내 득도 하는 길, 내지는 영원히 죽지 않는 비법을 얻으려고 산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조선 초 "응제시"와 그 주석이 나온 후로는 단군이 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조인 단군 왕검 이후로 몇대에 걸쳐서 여러 사람이 계승해 왔다는 것이 좋은 해석으로 조선시대에 상당히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수십대를 거쳐서 1천년 이상 계속 옥좌를 이어 온 임금들 중에 마지막 임금은 옥좌를 버리고 신선이 되어 영원히 살고 싶어 했다는 전설이 되는 셈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제왕운기" 계열의 단군 전설에는 단군이 산으로 들어간 이후 164년간 임금이 없는 시대가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임금이 없었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소위 말하는 기자가 다시 새롭게 고조선을 계승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164년의 공백기 이야기가 생긴 까닭은, 새로운 세력인 기자의 무리가 단군을 공격해서 내쫓은 것이 아니라 자연히 임금이 되었다는 평화롭고 정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지금와서 이 내용을 돌아 보면, 임금인 단군이 이제 새로운 세력가들도 하나 둘 들어 오는 것 같고, 임금으로서, 사람으로서 누릴 것은 모두 다 누린 사람이, 임금 자리고, 부귀영화고 다 내팽개 치고 그저 도술을 얻고 영생을 찾기 위해 훗날도 생각안하고, 후사도 안따지고 그저 다 버리고 맨몸으로 산에 들어 간다는 꽤 강렬한 감상을 주는 이야기라고도 생각 합니다.

조선시대 이후로 우리나라의 신선술 이야기 중에 가장 상세한 묘사가 많은 것들은 대부분 "벽곡"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즉 신선이 되기 위해서 먹는 것을 점점 바꾸게 되면 나중에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경지가 되고 그렇게 되고나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선 중기의 상세한 신선술 묘사가 잘 나타나는 "남궁선생전"부터, 조선후기의 "해동이적"까지 주로 산에 들어 가서 신선이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먹지 않고 사는 길을 찾는 방법으로 신선이 된다는 것이 우리나라 전설에서는 흔한 것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신선술을 익히려고 임금 자리를 내던지고 산으로 들어간 그 마지막 단군은 아마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신선이 되려고 하다가 결국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서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구월산 단군 전설에 단군이 신선이 된 자리라고 내려오는 그 지점에서 갑자기 자신은 신선이 되었으니 날아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서 뛰어 내렸다가 죽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너무 요즘 생각 같은 이야기가 너무 암담하다면, 단군과 신선이 되어 있다는 전설을 예스럽고 멋지게 활용한 이야기를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예로는 조선초의 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에 "취유부벽정기"편이 으뜸이라고 생각 합니다.

"취유부벽정기"에서 주인공은 취해서 헛것을 보는 것인지, 꿈 속인지, 사실인지 잘 알 수 없지만 한 선녀 같은 미인을 만납니다. 이 미인은 자기 소개를 하면서 바로 자신이 옛날 고조선의 공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공주는 단군시대 사람은 아닙니다. 예의, 제도, 도덕, 법령을 중시하는 것으로 조선 시대에 널리 알려진 단군시대 이후의 기자 시대의 공주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 역사에 나오는대로 위만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공주는 위기에 빠지게 되고, 결국 공주는 자결하려고 마음 먹습니다. 그러면서, 화려하게 살면서 예의를 중시하고 지낸 고조선 공주로서의 한 인생이 덧없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때 홀연히 갑자기 "이 나라의 시조"라는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납니다. 이 사람은 임금이었는데 말년에는 전력을 기울여 신선이 되는 수법을 터득하려고 노력해서 결국 신선이 되는데 성공하고야 만 사람입니다. 다름아닌 위 전설 속의 그 마지막 단군인 셈인데, 바로 이 신선이 자신이 도술로 이끌어 줄테니, 이런 부질 없는 국가니, 조정이니, 궁전이니 공주니 하는 세상을 떠나서 자기와 같이 신선이 되자고 권합니다.

공주는 그 권유를 따르고, 그렇게 단군이 구출해 준 공주는 고조선의 궁전을 벗어나서 신선이 되어 하늘 나라와 세상 바깥으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 바깥에서 살다가 어느날 고향이 그리워져서 잠시 이곳에 내려왔다가 "취유부벽정기"의 조선시대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그날 밤 공주와 헤어진 후에도 그날 밤 받은 감명과 충격을 잊지 못하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내다가 곧 죽게 되는 것이 결말입니다. 사람들은 주인공도 아마 신선이 된 것이라고들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단군 시대를 끝내고 새롭게 시대를 연 작자들이 기자의 무리인데, 그 기자의 후예로 애처로운 처지에 빠진 공주를 단군이 구출해주러 간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세속을 떠난 신선 다운 맛이 있어서, 더욱 그럴듯한 분위기가 사는 내용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단군의 신선술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문박"을 언급했는데, 사실 좀 더 확실하고 더 오래된 기록 중에서 단군 시대의 마지막에 연결해볼만한 이름들이 몇 더 있습니다.

"양엽기"에는 왕수긍(王受兢)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왕수긍은 따지자면야 단군 시대의 사람은 아니고, 바로 그 다음 시대인 기자 시대의 첫머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즉, 기자가 조선에 와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토착인으로 뛰어난 사람이었던 왕수긍을 사사(士師 - 법률을 다루는 직책)라는 직위로 뽑아서 잘 정착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양엽기"에서는 믿을 수 없는 전설이 있다면서, 왕수긍은 기를 운용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도 하고, 그러다가 산 속이 신인과 술을 마시고 놀거나, 신녀를 만난다거나 상제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등, 무척 신선스러운 사람이라고 이야기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왕씨, 차씨 등의 족보에서 내려오는 설화를 옮긴 것입니다. 왕수긍 이야기는 해동운부군옥에도 실려있으니 조선초쯤에 자리잡아 퍼지기 시작한 전설인듯도 합니다. 

이 족보에 실린 이야기를 좀더 찾아 보면, 훨씬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딸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 하나라 때 용을 기르는 것을 배우다가 잘못해서 용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벌 받을 까봐 두려워서 도주한 사람이 있었다는 중국 기록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도주한 사람들 중에 하나라 왕족도 있었는데 그 사람이 도망쳐서 단군시대의 조선 지역에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대대로 내려온 후예가 수긍인데, 수긍이 기자 시절에 공을 세우자, 수긍이 살던 곳이 해가 솟아오르는 땅이라고 해서, 흙 토(土)자에 뭔가 솟아오는 느낌으로 한 일(一)자를 합한 모양인 왕(王)을 성으로 내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단군 시대의 최후와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다른 이야기로는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종 때의 기록에 보면 구월산 근처에 전염병이 유행하자 주민들이 단군에 대해 대대로 내려오던 제사를 잘 안 지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불만을 표출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구월산에 있는 단군 사당인 삼성사(三聖祠)에 대해 조사를 실시 합니다.

조사를 해서 올린 보고문을 보면, 삼성사 사당은 가운데에 환인을 모시고, 좌우에 각각 단군과 환웅을 모셔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방에는 "구월산대왕(九月山大王)"을 중심으로 "토지정신(土地精神)", "사직신(四直臣)"을 모시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대왕(大往)"이 "오계일지집"에서 단군 무렵의 신선으로 언급되는 것을 보면 이 이름들도 괜히 눈길을 끕니다.

- 모자란 솜씨로 이런저런 이야기 소개해 보려다가 제가 틀린 부분이나 잘못 생각한 부분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지적해 주실 말씀이나, 의견 있으시면 덧글 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이 글은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시리즈 네번째 글입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2012-09-14 22:24:33 #

    ...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이 9명 각각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글을 앞으로 한 편씩 차례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지 2. 여수기 3. 팽우 4. 선인 그 밖에... 몇 년 전 평양에서 "단군릉"이란 것을 건설한다고 하면서, 주변을 장식하는 석상들을 세울 때에도 위 인물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중에는 " ... more

덧글

  • 무상공여 2012/09/14 22:44 # 답글

    우리나라 얘긴데 왜 이렇게 낯선 느낌이 드는지...

    와닿아야 할 것 같은데 잘 안 와닿으니 좀 당혹스럽습니다.
  • 게렉터 2012/09/15 23:06 #

    아무래도 별로 안알려진 전설, 알려진 전설 이것저것 다 모아서 소개하다 보니 조금 특이한 이야기들도 하게 되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또한편으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단군도 그렇고 묘청도 그렇고, 심각한 민족 의식 문제나, 민족의 숨겨진 역사를 찾는 단초, 등에 대해서 항상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재미 거리, 이야기가 될만한 내용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들은 부족해서 그런 면도 있지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항거 2012/09/16 00:01 # 답글

    왕검과 임금의 발음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 합니다. 단군 왕검? 왕검성?
  • 게렉터 2012/09/17 11:53 # 답글

    발음 비슷한 이야기야 전설, 신화를 다룰 때 워낙 온갖 설이 다 나오니, 아무래도 골라보기도 어려운 듯 합니다. "왕검"이라는 말이 임금이 있을 만한 유리한 땅이다 라는 "왕험"과 통한다는 말은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한때는 단군 왕검에서 "왕검"이라는 이름자체가 이런식의 착오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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