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례 (高矢禮) 기타

( * 최근 아래 전설의 근거가 되는 "무당내력"이 20세기 이후 최근에 작성된 것이라는 연구가 발표 되어, 우선 이 항목은 전체 목록에서 잠시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시례는 단군 시대 때 농사와 관련해서 세운 공로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먹기 전에 땅에다가 음식을 조금 뿌리면서 "고수레"라고 외치는 고수레 풍습의 기원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국사당 무신도의 삼신제석으로 등장하는 인물도 중에 쌀을 들고 있는 사람)

고수레의 유래에 관한 전설은 전국 각지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습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머나먼 옛날"하면 흔히 떠오르는 단군 시대가 배경으로 잡힌 듯해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고수레 풍습이 시작된 과거를 단군 시대라는 설을 기록하고 있는 것 중에 널리 알려진 사례는 19세기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무당내력"입니다. "고시례"라는 표기도 "무당내력"을 따른 것입니다.

"무당내력"은 무당, 굿의 절차와 유래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하는 짤막한 책입니다. 책의 체재나 그림, 글자의 모양을 보면, 실제 무당이나 무당과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돌았던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현대에 내려오는 무속의 여러 관습들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는 옛 기록이기 때문에 꽤 관심을 끄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요즘 활동하는 실제 무속인이 좀 더 전통적인 정석 방식대로 굿을 하기 위해 참고 자료로 이 "무당내력"을 찾아 본다거나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당내력"의 재미난 점은 모든 무속의 원천을 단군 시대를 기리는 의미라고 보면서 설명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당내력" 내용에는 "대거리"가 단군을 직접 숭배하는 굿으로 설명되어 있기도 하고, 바로 고수레 풍습처럼, 짧은 책이지만 굿의 여러 면면에 대해 말하면서 단군 시대를 자주 언급하는 편입니다. 고수레 풍습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면서도 단군 시대 때에 농사에 대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준 위인인 "고시례"라는 사람을 기리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단군이 무속과 맺어온 깊은 관련을 잘 나타내는 사례라고 생각 합니다.


("무당내력"에서 "별성거리" 부분)

구월산의 단군 사당인 "삼성사(三聖祠)"에 대해서 조선초기의 기록을 보면, 단군에 대한 제사, 숭배가 기본적으로는 토속신앙이나 무속 관점에서 진행 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서울 "국사당"의 무속도와 같이 20세기의 자료나, 실제 현대의 무속인들 중에도 단군을 숭배하는 사례가 많기도 합니다.

나아가서, 요즘 연구결과 중에는 "단군"이 박달나무 신의 아들, 혹은 박달나무와 관계 있는 영험한 사람으로 전설에서 묘사된 이유가, 바로 민속적으로 계속해서 내려오는 큰 나무 숭배, 서낭당 숭배 풍습을 반영한다는 것이 굉장히 인기 있기도 합니다. 좀 더 도전적인 이야기로는 "단군"이라는 말자체가 우리말 "단골 무당", "단골집"이라고 할 때 "단골"과 뿌리가 같다는 살이라든가, 몽골 토속신앙에서 숭배하는 하늘신에 해당하는 "텡그리"라는 단어가 "단군"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여기저기서 보이는 편입니다.

이렇게 무속과 단군이 연결되어 온 것은 무척 뿌리가 깊어 보입니다. 중국 기록인 "구당서"에서 고구려가 여러가지 잡신을 많이 모시는 풍속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자신", "가한신"을 섬기는 묘사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고조선의 옛 임금, 혹은 까마득한 옛 임금을 무속의 숭배 대상으로 여기는 관습은 삼국시대에도 자리잡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물론 그 형태가 지금 무속에 내려오는 단군 숭배와는 상당히 다르겠습니다만, 계통이 같은 풍습으로 전래 관계가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 초기가 되면 지금의 무속이나 민간 신앙에서 단군을 숭배하는 방식과 거의 같은 형식으로 무속의 단군 숭배가 이루어 지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세종 때에는 고조선의 중심지인 평양을 중심으로 단군에 대한 제사를 나라에서 지내기 때문에, 구월산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 기록을 보면, 구월산에 있는 단군 사당은 환인, 환웅, 단군이라고 볼 수 있는 단인(檀因), 단웅(檀雄), 단군(檀君)을 함께 사당에 모셔두는 풍습이 예로부터 내려오고 있고, 천왕당(天王堂)이라는 산꼭대기에 있는 사당에서도 단군을 모시기도 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요즘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는 단군과 관련된 사당, 기념 장소의 형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보면, 아마 고려말, 조선초 부터는 단군에 대한 무속의 풍습이 요즘의 무속 풍습과 별 다를바 없이 자리잡아서 점차 굳어져 온 듯 합니다. 단군 왕검은 옛날의 기록부터 산신령, 신선이 되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데다가, 고려 후기에 채록된 단군에 관한 전설은 "삼국유사"에 보이는 동물의 자손이라는 설을 따르거나, 다른 기록에 보이는 박달나무의 신에서 나왔다는 설을 따르거나 간에, 여러 무속 설화들과 닮은 점이 많아 보이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오래 동안 무속에서 단군과 관련된 전설들은 어느 정도 애착을 두고 전승되어 온 듯 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단군에 관한 전설들은 무속에서 새로운 영향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평안도 무속의 "마고 할미와 단군 전설"이라고 생각 합니다. "살아 있는 우리 신화" 같은 요즘 책에도 실려 있는 이야기이고, 여기 저기에 인용되는 알려진 내용인 편인데, 이 이야기의 내용은 아주 먼 옛날 마고 할미라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여자가 주변 사람들을 복종시키고 위세를 떨쳤는데, 단군이 나타나서 몰아 내고 평화를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보이는, 마고, 성모 등의 먼 옛날의 여신 설화와 등장인물이 통하는 내용인데, 그러면서도 그 마고가 악역비슷하게 나와서 단군에게 패배한다는 내용이라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이런 것은, 중세 이후의 남존여비 사상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영웅전설의 형식이라는 생각도 들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역사 이전의 신비와 마법의 시대를 끝내고 단군이 국가체계와 제도가 갖춰진 역사 시대를 시작했다는 점을 나타내려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천연기념물 95호 삼척 도계리 긴잎느티나무 - 서낭당 나무로 정해져 있으며, 나무에 대한 숭배사상을 나타낸다는 점이 평가 받아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 되었다고 합니다.)

단군과 무속의 연결에 대해서 좀 더 급진적인 생각으로는 삼신 숭배와 연결 짓는 것도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삼신 할머니 숭배 사상이 사실은 삼신(三神)이라는 뜻이고, 이것은 삼성(三聖)에서 나온 말로, 다름 아닌 구월산 삼성사에서 다루는 것과 같이 환인, 환웅, 단군 3대를 숭배하는 것이 그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삼신 할머니의 유래에 대해서는, 세 명의 신이라는 3신에서 나왔다, 산의 신이라는 산신(山神)에서 나왔다, 임신과 출산의 신이라는 뜻인 산신(産神)에서 나왔다, 이상의 여러 개념들이 뒤섞여서 여신 숭배의 형식으로 통합된 것이다 갖가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성이라는 이름으로 환인, 환웅, 단군을 숭배한 기록이 조선초부터 분명히 나타나는 것도 있으니, 단군을 삼신 숭배에 이어다 붙이는 것도 시도는 해볼만도 했다 싶습니다.

그렇습니다만, 환인, 환웅, 단군은 남자로 표현되는 인물이고, 전통적으로 역사적인 공을 세운 과거의 인물로 나타난다고 생각 합니다. 이것은 삼신 할머니가 항상 신비로운 방식으로 생활 곁에 있어서 삶에 도움을 주고, 여자로 표현된다는 점과 대조를 이룬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면에서, 삼신 할머니 숭배를 단군 숭배와 바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설령 어떤 연관이 있다고 해도, 이미 오래전에 단군의 모습과 삼신 할머니의 모습은 워낙에 뚜렷이 다른 모습으로 갈라져 나온 만큼, 지금 민속을 돌아보는 시각에서는 구분될 필요가 있지 싶습니다. 단지 이름이 비슷하다거나, 숫자 3이 공교롭다는 점에서만 보면 중국 도교에서 말하는 신비로운 지역인 삼신산(三神山)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 우리나라 무속의 삼신 숭배에 영향을 크게 끼쳤을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삼신"보다 본격적으로 단군과 관련된 전설이 무속 전설이나 풍습에 얽히는 예를 찾아 보자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실 무엇보다 환인(桓仁)이라고 생각 합니다. 환인은 환웅의 아버지이고, 단군 왕검의 할아버지입니다. 고려시대의 "제왕운기"에서는 이를 "상제(上帝)"라는 이름으로 설명해서,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환인"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나 중국 도교 신화의 옥황상제, 상제, 천존과 같은 느낌으로 인간이 사는 세계와는 구분되는 다른 세계인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인"이라는 이름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설명하는 기록 중에 가장 오랜 축에 속하는 "삼국유사"에서는 이것이 바로 "제석(帝釋)"을 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석은 불교에서 말하는 신비한 세계를 다스리는 신으로, 흔히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보통 제석천(帝釋天)으로 부르는 신입니다. 이것은 인도 신화가 불교의 여러 설명과 기록에 언급되면서 넘어온 것으로, "인드라(Indra)"라는 신을 말합니다. 인드라는 불교계열 문헌에서 한문으로 표기할 때 "석가제환 인다라((釋迦帝桓 因陀羅)"라고 표기하므로, 그 약칭이 "환인"이고, "삼국유사"에는 지금 단군 왕검 이야기 속에 나오는 환인도 바로 그 인드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대에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북유럽 신화의 '오딘'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삼국유사"에서는 "단군 왕검 이야기에 나오는 환인은 불교에 나오는 인도 신화의 인드라에 해당한다"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 세계를 다스리는 임금이 인드라, 제석에 비견되는 것은, 중국에서 불교를 이해할 때에 흔히 옥황상제를 제석에 비겨서 이야기하는 것과 통합니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유행하기 전에 이미 도교가 노장사상에서부터 황건적, 오두미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잡아 있었으므로, 이렇게 도교의 옥황상제와 인도신화의 인드라를 겹쳐 이해하는 설명이 자연스럽게 정착 되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진해 정암사 신중탱에 나오는 불교 제석천의 모습. 왼쪽에 보이는 것이 제석천의 주무기인 금강저)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에 나오는 무속의 제석 모습)

이렇게 하나 둘 살펴 보자면, "삼국유사"의 단군 왕검 전설에서 하늘 세계를 다스리는 임금을 하필이면 "제석"에 견준 것은 관심을 갖게 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삼국유사" 보다 먼저 나온 고려초기의 "삼국사기"나 "동명왕편"등에서 고구려의 설화를 묘사할 때는 하늘 세계를 다스리는 임금을 그저 "천제(天帝)"라고 부를 뿐입니다. 환인을 제석에 대응시키는 설명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후대 "조선왕조실록"등 조선시대의 여러 서술에서도 단군 왕검 전설을 이야기를 할 때에도 제석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불교와 거리를 두기 위해 제석이라는 호칭을 언급하지 않고, 그냥 "상제(上帝)"라고만 해서, 관념적으로 하늘 세계를 다스리는 임금으로 서술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하늘 세계를 다스리는 임금을 설명할 때 "삼국유사"에서 "제석"이라고 설명한 것은 일연이 불교에 너무 익숙히 빠져 있었기 때문에 불교 용어를 너무 남용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일이 잦습니다.

흥미 있는 대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이나 민간 신앙에서는 "제석"에 대한 숭배가 굉장히 많이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제석님"에게 굿을 한다거나, "제석님"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거나, 하는 곳들은 전국 곳곳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제석본풀이"는 일제시대 이후로 대표적인 한국의 무속 설화, 무가(巫歌)로 소개 되고 있고, 실제로 "삼신 할머니" 정도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공통적으로 무속에서 숭배 받는 하늘 세계의 신으로 이 "제석"만한 것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아예 "삼신 할머니"의 아들이 제석이라거나, "제석"은 사실 3명이라서, 이 세 신을 삼신제석이나, 삼불제석으로 부른다는 식으로 삼신 할머니 이야기와 결합 되어 있는 무속 전설도 꽤 흔한 편입니다.

제석, 즉 인드라는 인도 신화에서 무척 활달하고 쾌락주의 적이며 호탕하고 싸움을 잘하는 신으로 나옵니다. 주위에 여자도 많고, 술을 마시고 힘을 얻어 잘 싸우는 장면 같은 것들이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천왕과 하늘 세계의 용사들을 이끌고 불교를 수호하는 싸움 잘하는 왕과 같은 느낌으로 등장하고, "금강저"라고 하는 매우 단단한 둔기 같은 것을 무기로 삼아 브리트라 같은 악한 신을 물리치고 다닙니다.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도 있는 "제망(帝網)"이라는 그물을 쓸 수도 있습니다.

또 제석은 인도에서 불교나 힌두교가 성립하기 이전, 아주 오랜 예전부터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제석이라는 신은 좀 더 현세적인 신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심오한 깨달음이나, 진리, 영혼의 구원 같은 문제를 다루는 신이 아니라, 제석은 좀더 원초적인 삶의 즐거움, 행운, 성공을 비는 신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듭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무속에서는 거기서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제석은 주로 재물이나 장수를 기원하는 신으로 자리 잡은 듯 합니다.

그러면서도 제석, 환인이 등장한 단군 왕검 전설과 무속의 제석 숭배를 견주어 보면, 무속에서 제석을 단군에 직접 연결시키는 사례가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상관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불교의 제석에 대한 숭배는 고려 시대 때부터 뚜렷이 나타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려 시대 조정에서 주관했던 불교 행사 중에 제석에 관련된 것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불교에 인용된 인도 신화 중에 제석에 관한 내용들이 고려 시대에 꽤 인기를 끌었고, 이것이 단군 왕검 전설 속의 하늘 세계를 다스리는 임금과 일맥 상통하게 느껴져서 "삼국유사"에서 제석, "환인"으로 설명되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닌게 아니라, 굳이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환인의 여러 명의 부인 중에 정실 자식이 아닌 서자로 나온다든가, 부여-고구려 전설에서 하늘 세계를 다스리는 임금의 아들로 나오는 "해모수"가 좀 방정 맞게 여자 따라다니며 술먹고 떼지어 놀다가 사고 치는 인물로 나온다든가 하는 면을 보면, 인도 신화 속 제석의 쾌락주의적이고 호방한 면과 통하는 구석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괜히 해보게 됩니다. 사실 인도 신화에서 인드라도 이상하게 출생해서 아버지에게 버림 받고 어머니를 떠나는 이야기도 나오니, 단군-해부루, 해모수-주몽 등의 고조선, 부여 계통 신화들과 계속해서 견주어 지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살펴 보자면, 우리 나라 무석의 제석 숭배를 단군의 할아버지뻘 되는 환인과 연결시켜보던 과거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이종휘의 "동사"는 18세기에 나온 책에 바로 이런 생각이 그대로 설명 되어 있습니다. "동사"에서는 당시 조선시대 민속에서 "제석신(帝釋神)"을 받드는 풍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단군의 할아버지뻘 되는 환인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19세기말의 "무당내력"에서 제석에 대한 숭배를 단군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 역시 그런 사례 중에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무당내력"에서는 제석에 대한 굿이라고 할 수 있는 "제석거리"를 설명하면서 아예 단군을 일컫기를 "삼신제석(三神帝釋)"이라고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산상왕이 삼신에게 빌어서 아이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어린 아이는 위험한 일이 있으면 삼신이 보호해 준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단군 왕검 전설에서 언급되는 단군이, 환인, 곧 제석의 한 후손으로 제석과 동일시 되고 있고, 나아가서 아기를 점지해 주고, 아이들을 보호해 주는 무속 신앙의 대상인 삼신과도 같은 성격으로 "무당내력"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당내력"은 기본적으로 무속과 단군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니 만큼, "제석거리"에 대한 설명에서 무속의 단골 소재인 삼신 할머니 모시기, 제석님 받들기가 곧 단군에 대한 숭배의 일환이라고 나 연결되어 나온다는 느낌입니다.

"무당내력"에서 "제석거리" 바로 다음에 나오는 것이 고시례에 대해 언급하는 "별성거리"입니다. 별성(別星)은 흔히 무속에서 "별상", "별상님"으로도 이야기하는데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파견한 높은 신하를 "별성"이라고 하므로, 아마 별성이 원형이 맞지 않나 짐작해 봅니다. 대부분의 무속에서 "별성님"으로 모시는 것들은 주로 억울하게 죽은 장군, 신하나, 폐위된 임금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천연두 귀신, 전염병 귀신 같이, 너무 두려워서 함부로 부르기 어려운 것을 "별성님", "별상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당내력"에서는 "별성거리"가 단군의 신하인 고시례를 받드는 굿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고시례가 농사 짓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것을 존경하여 사람들이 받들어 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무당내력"의 이야기도 전국에 퍼져 있는 고수레에 대한 일반적인 전설 그대로를 따르되, 고수레 전설이 "먼 옛날에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줬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 착안해서, 바로 먼 옛날의 상징이라고할 수 있는 단군 시대로 정해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전국 각지의 고수레 전설들을 살펴 보다 보면, 고수레 전설이 착하고 열심히 살면서 뭔가 잘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노력 해 봤자 불운을 이길 수 없어서 실패하고 비참하게 죽은 사람 이야기가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고수레 풍습이 더 잘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퍼진 이야기 형식 중에는 "고씨 할머니"가 여기저기 밥 얻어 먹고 다니면서 목숨을 이어 갔는데 결국 굶어 죽게 되어,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겨서 바깥에서 음식 먹을 때는 고씨 할머니 먼저 드시라고 음식을 땅에 뿌리면서 "고씨네-"하고 부르는 것이 "고수레" 풍습의 유래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고씨 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논밭을 일구어 잘 살아 보려고 온힘을 다해서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늘이 돕지 않으니 농사가 잘 되지 않아서 절망했는데, 굶고 힘이 없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온힘을 다해서 농사를 잘해 보려고 하다가 기운이 다해서 농토에서 자빠져 그대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자 후대의 사람들이 불쌍해서 역시 "고씨네"를 부르면서 음식을 뿌리는 풍습이 고수레 풍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둘 다 요즘의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조사 되어 있는 이야기들 입니다.

이보다 조금 더 윤색된 듯한 이야기로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는데 앞장서던 고씨가 있었는데, 엄청난 흉년이 들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다음해 농사를 지을 씨앗까지 먹어버렸을 때, 고씨는 혼자서 끝까지 씨앗으로 쓸 곡식은 먹지 않고 버티다가 굶어 죽어 버리고, 뒤늦게 시체가 된 고씨를 찾아낸 다른 사람들이 고씨가 남겨 놓은 씨앗으로 다음 해 농사를 지어 살아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많은 전설 속에서, "고시례" 전설은 비참한 흉년에서 굶어 죽게 되는 농사꾼들의 이야기와, 그것을 극복해 보려고 갖은 애를 쓰는 여러가지 노력들을 나타내는 이야기로 자주 보이는 듯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고시례" 전설은 자연, 야생의 힘이나 혹은 정해진 운명, 팔자와 의욕적으로 맞서고 온힘을 다해서 착하게 살면서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해 버린 불쌍한 좌절감이 엿보이는 이야기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기려서 불쌍히 여긴 후대의 사람들이 누구나 먹기 전에는 한숟갈 "고시례"의 몫을 챙겨서 땅에 뿌린다는 풍습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렇지만 그 후대의 사람들인 우리는 그런 좌절을 가만히 볼 수가 없어서 이렇게 다같이 힘을 모아서 그때 그 불쌍한 사람이 운명에게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상징적으로 응원하고, 도와준다는 분위기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고수레 유래에 관한 전설은 농사 짓는 법 가르쳐 준 위인, 굶어 죽은 사람에 초점을 맞춘 전설 이외에, 풍수지리에 초점을 맞춘 전설들이 또 있습니다.

이것은 "도선"과 같은 전설적인 풍수지리의 대가들이 주로 주인공인데, "한국구비문학대계"에 나타나는 것들은 보통 이런 이야기 입니다. 주인공이 승려라서 후손이 없기에 어머니 - 이 경우에도 고씨 할머니 처럼 여자인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 무덤에 제사가 끊길 것 같아서 걱정하는데, 그러다가 어떤 이상한 나빠 보이는 묘자리에 어머니를 묻고 사라집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뭐 저런 자리에 무덤을 썼냐고 생각하여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고 죽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대신 그 묘자리에 음식을 뿌리는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고수레 풍습으로 굳어지는 바람에, 정말로 묘하게도 제사 지내주는 후손이 없어도 대대로 제사밥에 해당하는 음식을 사람들이 뿌려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속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살펴보자면, 무속에서 섬기는 신들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는 내용 중에 조금 더 시대가 앞서는 원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18세기말에 활동했던 이옥이 쓴 "최생원전"의 말미 부분도 관심을 끕니다. 이 내용은 당시 사람들이 믿던 무속의 신들을 한자 표기로 쓰고, 간략히 언급 하는 것인데, 나오는 말들을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성주(城主): 사람이 사는 장소, 토지의 신. 현대 무속의 성주와 같습니다. 현대 무속에서는 사람이 사는 집의 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2) 허주(墟主): 성주와 비슷한 신. 현대 무속의 터주와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무속에서는 주로 사람이 사는 장소, 땅의 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3) 말명(末明): 남의 조상의 영혼을 나타내는 신. 현대 무속의 만신 말명, 만명과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옛날 죽은 사람의 영혼, 떠돌이 영혼이나 아주 오랜 옛날에 살았던 사람이 죽은 후에 변한 여신 등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군웅(軍雄): 무사, 장군 형태의 신으로 일종의 괴물 영웅. 현대 무속의 별상님, 장군님, 신장 등과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5) 삼신(三神): 사람의 임신, 출상을 담당하는 신. 현대 무속의 삼신과 같습니다.
6) 제석(帝釋): 불교계통 인도신화의 신을 상징하는 신. 현대 무속의 제석과 같습니다.
7) 호구파파(虎口婆婆): 천연두, 전염병의 여신. 파파라는 말이 할머니를 부르는 말이므로, 결국 현대 무속의 호구마님, 호구마마, 호구아씨, 호구할미 등과 같습니다.
8) 선왕(船王): 성황(城隍). 특정 마을, 지역을 관장하는 신. 현대 무속의 서낭신, 서낭님과 비슷해 보입니다.
9) 사자(使者): 잡 귀신.
*지궐(地厥): 신의 저주. 신의 힘으로 사람이 해를 당하거나 죽게 되는 것.
*수배(隨陪): 신의 졸개, 부하. 또는 신을 따르고 그 명령에 복종하는 일.
*안반고사(安盤告辭): 무당들이 신에게 고하고 그 말을 듣기 위해 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의식.

이렇게 해서, 성주, 허주, 말명, 군웅, 삼신, 제석, 호구, 선왕의 여덟이 18세기 말 조선시대 민속에서 대표적으로 생각하던 무속의 신들로 언급된 셈입니다. 여기에 사자를 더 하면 총 아홉 신이 됩니다. 이 여덟신은 현대 무속에서 자주쓰이는 말로 옮겨 보면, 성주, 터주, 말명, 별상, 삼신, 제석, 호구, 서낭 이 됩니다.

- 모자란 솜씨로 이런저런 이야기 소개해 보려다가 제가 틀린 부분이나 잘못 생각한 부분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지적해 주실 말씀이나, 의견 있으시면 덧글 주시면 무엇이건 감사히 읽겠습니다. 이 글은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시리즈 다섯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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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2012-09-17 22:20:30 #

    ... 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이, 이 9명 각각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글을 앞으로 한 편씩 차례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지 2. 여수기 3. 팽우 4. 선인 5. 고시례 그 밖에... 몇 년 전 평양에서 "단군릉"이란 것을 건설한다고 하면서, 주변을 장식하는 석상들을 세울 때에도 위 인물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중에는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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