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천생 (裵天生) 기타

배천생은 두 마리 붉은 용과 하늘에서 내려온 여자들이 보는 가운데 바다에서 신비롭게 나타난 아기였는데, 단군이 이 아이를 발견했고 15세로 자라났을 때 남해장(南海長)이라는 작위를 주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증보 문헌비고"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선 말엽에 자리 잡은 이야기로 보입니다.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에서 천자(天子) 그림: 해양 지역 무속 전설의 독특한 면을 나타내는 자료라고 합니다.)

배천생 전설은 비슷한 형식인 "여수기" 전설과 같이 배씨에 시조의 탄생에 대한 가문에서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이 역시 "여수기" 전설과 비슷하게 한자 글자가 어떻게 되어 있나 하는 점이 소재가 되고 있고, 아주 오랫 옛날에 이 성씨의 시조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랫 옛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단군 시대가 배경이 된 듯 합니다.

전설 전체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남명학 고문헌 시스템에서 검색 되는 "고촌집(孤村集)" 앞에 붙은 "단군조배씨득성상계(檀君朝裵氏得姓上系)"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기록 자체는 더 후대의 판본으로 보입니다만, 내용에 별 변화가 없어 보이므로, 그대로 소개해 봅니다.


* 단군이 바다 위를 살펴 보고, 땅의 신(后土: 후토)에게 재사를 지낼 때, 두 머리 붉은 용이 바닷 속에서 나타난 것이 보였다. (원문의 亦龍은 적룡(赤龍)의 오자로 보입니다.) 또 두 명의 신비한 여자 (神女)가 푸른 하늘에서 나타나 내려 오더니, 귀금속(紫金: 자금)으로 된 상자를 바쳐 바닷가에 두었다. 단군은 놀랍고 이상하게 여겨서 바로 열어서 안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붉은 옷을 입은 남자 아이가 있었다.

단군은 주위의 신하들과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분명히 하늘의 뜻(皇天)과 땅의 뜻(后土)이 서로 감응하여 이 신령스러운 아이를 내려 주면서 이상한 영험을 보여 준 것이다."라고 하고는, 좋은 아녀자에게 맡겨 아이를 기르도록 했다. 15년이 지나자, 체격이 좋아지고 그 뜻이 크게 자라났는데, 이에 단군은 붉은(緋) 옷(衣)을 입고 있었던 처음 모습을 따서, 그것을 합친 글자인 배(裵)를 성씨로 삼게 했고, 이름은 천생(天生)이라고 했다. 단군은 배천생을 상국(相國)으로 삼고, 남해장(南海長)이라는 작위를 주었다.

(君巡于海上祀后土有二亦龍見於海 中又有兩神女降自靑空捧紫金▩遺之海岸君驚異就而開視中有緋衣男子君顧謂臣民曰此必皇 天后土感於誠敬降此神兒以示靈異之跡使謹厚女養之年及十五體貌壯大志氣雄健君乃以所着 緋衣命緋字去▩從衣以裵爲姓名曰天生乃拜相國封南海長)


이 이야기 역시 "여수기" 이야기 등과 비슷하게, 단군이 어떤 사람을 신하로 거느리고, 동시에 그 사람은 어떤 지역을 관장하는 작은 임금 역할이라 할 수 있는 남해장이라는 작위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말엽에 굳어진 전설인만큼, 역시 당시 사람들은 먼 옛날의 정치와 나라 운영에 대해서 이런 식이 당연하다는 발상이 있었다는 생각으로 역시 이어질만한 이야기라고 생각 합니다.

배천생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는 배(裵)라는 성씨를 받기 전에는 붉은 옷 즉 비의(緋衣)에서 따온 비(緋)자를 붙여서 비천생(緋天生)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 듯 합니다. 배천생 전설은 내용이 그야말로 신화적인 형태이고, 건국 시조들의 전설들과 같이 어디선가 정체 불명의 아기가 신비롭게 탄생하는 만큼, 시조 신화의 틀을 따라 견주어 보기 좋은 내용이고, 특히 이런 내용이 조선 말기에 어떻게 받아 들여 졌는지 생각해 보는데도 좋은 재료인 듯도 합니다.

이어지는 기록을 보면, 시조인 배천생 이후에 그 후손들도 몇몇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단군의 다음 시대인 기자 시대가 되기 전까지만 그 이름을 나열해 보면, 천생(天生), 후정(垕精), 수옹(壽翁), 추강(秋江), 처인(處仁), 거안(居安), 왕신(王信), 익(翼) 이 나옵니다. 후손들 중에 이름이 전해 지는 것만 적어 놓은 것인데, 이 사람들은 모두 남해장(南海長) 작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남해장 작위는 과연 어느 정도는 세습해서 물려 주는 것으로, 남쪽 바다를 다스리는 작은 임금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상상도 해 볼만합니다. 반대로, 기록에 안 남은 자손들도 있으니, 그 사람들은 남해장 작위를 어떤 이유로 잠시 잃었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야기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상의 여덟 후손들 중에는 재미있게도, 그 후손에 관한 사연을 간단히 소개해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후정(垕精): 처음에 선대의 이름을 하늘의 뜻을 강조하는 이름을 썼는데, 이번에는 땅의 신(后土)의 뜻을 따랐다는 것. 이름도 그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垕精 南海長始遂后土之精故遂以名以明天佑神助之意)

*추강(秋江): 추강은 조정을 잘 섬긴 사람으로, 임금에게 나무(박달나무)를 바쳤는데, 60년 마다 꽃이 한 송이가 피었다고 합니다. 임금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그 이름을 남해장수화(南海長壽花)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秋江 南海長宣仁朝▩檀木爲壽每六十年一開花君奇之稱南海長壽花)

*거안(居安): 거안은 단군의 자리에 있던 가려(嘉麗)라는 임금의 둘째 딸인 천랑(天朗)이라는 공주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居安 南海長○配檀君嘉麗氏第二女名天朗)

*왕신(王信): 왕신은 지금까지 섬기던 임금인 아닌 다른 계통의 임금 아래에서, 남해장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王信 他本王臣南海長)


이런 기록을 보자면 시대가 지나면서 어떻게 점점 더 전설이 상세해 지고 신비로워 지는 지 그 양상이 나타나는 듯 합니다. 특히 "거안"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단군 "가려" 라는 임금이 언급되는 것은 눈에 확 뜨이는 부분입니다. "삼국유사"의 전설에서 단군이 천 몇 백년 동안 살았다는 것이, 정말로 한 사람이 아주 장수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단군의 후계자들이 단군이라는 칭호를 쓰면서 임금 자리를 계승했다는 설 자체는 조선 초부터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렇게 단군 왕검을 계승한 후계자 단군들이 누구냐하는 이름, 칭호는 거의 어느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선말 채록된 배씨 가문 족보의 기록에는 그 후계자 단군들 중 하나로 단군 "가려" 라는 이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단군 가려라는 이름은 다른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점을 짚어 보고 여러 전설, 기록들을 견주어 보면, 어떤 전설이 유행한 시대가 어느 때인지, 전설과 기록들 사이에 계통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볼 단서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말해서 구체적으로 단군의 이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런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초를 전후한 시점부터 아닌가 싶다는 것입니다.

내용으로 보면, 배천생과 후정, 추강, 거안, 왕신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임금이 사는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남해 지역을 다스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분이 재미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배천생 이야기는 임금이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진 변방의 실력자에 관한 이야기인데, 처음부터 "상국"의 벼슬을 주는만큼 아주 높게 대우 해 준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그렇게 엮어 보다보면, 나중에 기자시대의 일이지만, 고조선이 위만에게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주었다가 위만이 그 군사를 실력으로 삼아 반역하는 바람에 허망하게 망하는 이야기와도 비교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말을 엮어 보자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고조선이라는 곳은 임금이 있는 지역이나 그 근방에는 군사력이 매우 약했고, 나라의 경계를 지키는 멀리 국경지역에 매우 강한 군사력을 주는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결국 배천생의 이야기도 군사력을 갖고 멀리 있는 장군을 두고 혹시 그 힘을 갖고 배반하지나 않을까 임금이 불안해 할 수도 있는 모양새의 이야기로도 보입니다. 그래서 임금은 그만큼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국경지역에 보내지만, 그래 놓고도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람이 점차 군사를 훈련시켜서 강해질 수록 또 임금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보면, 배천생의 이야기도 젊고 어린 사람을 임금이 직접 발탁해서 큰 자리를 주어서 그만큼 임금이 쉽게 다스리고 임금에게 충성하라는 사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라는 이야기이니만큼, 이것은 노력해서 실력을 쌓은 인재도 아니고,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실력자도 아니고, 그저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사람을 임금이 발탁해서 바로 높은 자리에 앉히는 모습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남해 지역의 우두머리를 맡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던 기존의 유력자들이나, 그 자리를 두고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온 신하들이 허무하게 여기고 반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압도할 만큼 배천생이 놀라운 사람이었다는 생각과 잘 맞아드는 이야기라고 생각 합니다.

그렇게 했으면서도, 멀리 떨어진 지역의 실력자와 임금의 불신 관계는 계속 고민 거리라서, "추강"의 이야기는 실력자가 임금에게 선물을 바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거안"은 임금과 실력자가 서로 혼인 관계로 믿음을 굳히려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왕신"의 이야기는 그랬으면서도 결국에는 원래 섬기던 임금과 다른 임금을 섬기게 된다는 것 입니다. 이때의 시점은 단군 시대가 끝나고 기자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과 견주어 집니다.

좀 더 살펴 보자면, "추강" 이야기는 임금에게 선물을 바치는 이야기 입니다. 가장 간단히 살펴 보자면, 임금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굉장히 엄청난 보물을 구해서 바치는 이야기 분위기도 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류의 전설 중에는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자식을 바친다든가,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증명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꽤 있는 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임금에게 충성을 증명하거나 잘보여서 아부하려고 지나칠 정도로 잔인한 짓, 무서운 짓도 저지른다는 비판적인 내용도 있는 편입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추강"이 꽃나무를 바치는 이야기도, 임금에게 충성을 보이려고 온힘을 다해서 보물을 구해 바쳤는데, 정작 꽃나무에서 몇년이 지나도 꽃이 피지 않는 바람에 허무해지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꽃이 딱 한 송이 피니, 매우 허망한 느낌이 드는 결말이지 싶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임금과 먼 지역의 실력자가 서로 못 믿는 이야기에 꿰어 맞추면, 먼 지역의 실력자가 꽃나무라는 것을 바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꽃이 안피니까, 임금이 이게 무슨 조롱인 것인지, 불량품을 보내는 만큼 신경을 안쓰고 대충대충 대한다는 것인지 고민하면서 의심하고, 괴로워하는데, 수십년이 지나서야 꽃이 딱 한 송이가 피게 되어 그 진기함의 진가가 드러나니까, 그제서야 수십년 간의 의심을 털어내고 기뻐하는 이야기인 듯도 합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거안"의 이야기도 왜 하필 임금의 첫째딸이 아닌, 둘째딸과 결혼을 하게 되는지 하는 점을 두고 이런저런 사연들을 상상해 보기 좋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렇게 비교적 자료가 풍부한 편인 배천생 계통의 전설들은 그다지 오래 돌아다닌 이야기나 상대적으로 널리 퍼진 내용은 못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이러한 상세한 내용들은 조선말엽에 퍼지기 시작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 옳은 듯 합니다. 가장 근본이 되는 내용인 배천생 시조 전설 자체도, 1890년에 "달성배씨가승보"에서 채록된 것이 거의 최초 무렵의 기록인 듯 합니다. 그러니 족보에 실린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조선 후기의 전설들 중에서도 배천생 계통의 전설들은 시대가 뒤로 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봅니다.

반대로 고조선과 관련된 가문에서 내려오는 전설 중에서 오래된 축에 속하는 것을 꼽는다면, 왕수긍 전설과 왕씨 가문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왕수긍 전설은 일단은 고조선과 관련된 신선 전설로 꼽을 수 있는 것 입니다. 그 기본 내용은 왕수긍이라는 하늘을 날아 다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여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기자 시대에 신하가 되어서, 임금이 나라를 재정비하고 풍속을 다스리는 것을 크게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대동운부군옥"에 채록되어 있으니, 조선 전기에 이미 정착되어 퍼지기 시작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동운부군옥"에는 이 왕수긍의 조상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왕수긍의 조상은 조명(祖名)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단군 시대의 사람이 되는 셈입니다. 왕수긍 계통 전설에서는 왕(王)씨라는 성씨의 유래를 설명하는 부분도 일토(一土)라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두 글자를 합한 글자인 왕(王)을 성씨로 삼았다거나, 땅에서 해가 나오는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땅(土)에서 무엇인가 하나 나오는 것(一)을 합친 글자인 왕(王)을 성씨로 삼았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왕수긍 계통 전설도 "여수기"나 "배천생" 전설 처럼, 글자를 풀이해서 성씨의 유래를 이야기 하되, 아주 오랜 옛날이 배경이 되다보니 단군 시대가 배경으로 잡히는 듯한 형태와 같은 부류로 보입니다.

역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인 남명학 고문헌 시스템에서 검색되는 "어적선생문집"에 같이 나오는 "어적 유선생 세계(漁適 柳先生 世系)"를 보면, 단군시대에 해당하는 조명에서 수긍 사이에 대를 계승해 온 사람들의 이름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역시 훨씬 후대에 부연된 자료일 수는 있습니다만, 이를 옮겨 보면, 조명(祖名), 선우(仙牛), 북두(北頭), 해월(海月), 벽옥(磨玉), 동락(東洛), 험(險), 명지(明知), 을도(乙度), 익(益), 개남(介男), 결(僪), 계(洎), 분(分), 서(徐), 국이(國伊), 심(心), 창(昌), 금석(金石), 천호(天好), 길(吉), 각씨(各氏), 세물(世勿), 문(文), 수긍(受兢) 등입니다.

나중에 점차 부연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왕수긍 계통 전설 중에는 성씨의 시조가 되는 "조명"에 대한 전설도 내용이 좀 더 풍부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기록에 엮인 이야기로 나온 것입니다. "창해역사" 이야기에 엮여서 나온 강릉의 예국 창해용사 "여용사" 전설이나, 진시황이 동쪽으로 불로초를 찾으라고 사람들을 보냈는데, 그 사람이 제주도 등지에 들렀다 왔다는 전설과 비슷한 형태인 것입니다. 따지고보자면야, 고조선 후반에 등장하는 "기자"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매우 굳건히 뿌리를 내리는 바람에 아주 진지해져서 그렇지, 형태 자체는 "중국 기록에 동쪽으로 갔다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나라의 어느 지역에 있는 어떤 유적에 관한 것이다"라는 모양입니다. 역시 중국 옛 기록에 우리나라를 엮어낸 이런 부류의 이야기들과 닮아 보인다고 생각 합니다.

왕수긍의 시조인 "조명"에 관한 전설은 중국 하나라 때 용을 기르고 조련시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국 기록에 보면 하나라 때 나라에서 맡은 임무로 용을 키우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실수로 용을 상하게 해서 그 죄로 벌 받을까봐 두려워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명은 바로 이때 도망친 사람의 동료로 함께 도망친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분은 하나라의 왕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해서 도망친 곳이 당시 고조선의 평양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나왔던 이야기 대로, 그 도망쳐서 정착한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그곳의 지명, 내지는 지역에 대한 설명을 하는 한자 문구가 일토(一土)인데, 이것을 하나의 글자로 합친 왕(王)을 성씨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 모양을 보면, 먼저 중국 하나라 때의 오래된 왕족이 한 성씨의 조상이라는 이야기가 먼저 퍼졌고,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반도 근처 지역으로 건너왔는가하는 내용을 살피면서 적당한 사연과 연결된 이야기가 다음에 다시 돌게된 듯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삼국시대에 나온 말들 중에는 유명한 성씨가 그 유래가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 성씨가 중국 기록의 아주 오랫 옛날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연결하는 것들이 몇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김(金)씨는 소호 금천씨의 후예라고 하는 이야기나, 고(高)씨는 고양씨의 후예라고 하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조명에 관한 이야기도 이런식으로 하나라 왕족의 후예라는 내용이 먼저 자리 잡은 뒤에, 세세한 이야기가 그 뒤에 살이 붙은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명"의 이야기의 경우에는 "태양이 뜨는 곳"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멀리 도망쳐 왔다는 점에서, 아주아주 먼 곳까지 도망치고 또 도망치지만 지긋지긋하게 추적해 오고 또 끝까지 도망다니는 추적자의 이야기가 생각 나기도 하고, 과거의 죄를 숨기고 멀리 떠나온 사람이 새로 정착한 지역에서 오히려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 받고 사는데 이 사람이 어두운 과거와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이야기 혹은 과거를 숨기려고 하고, 과거를 까발리려고 하는 자들과 다투는 이야기도 생각나는 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용을 기르는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도망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면에서는, "용을 기를 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두고 먼 옛날 사람들이 사기꾼이다, 진짜다, 속임수다, 나는 굳게 믿어서 억울하다, 등등의 의견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내용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왕수긍 계통 전설에서 또 한가지 매우 흥미를 끄는 대목은 바로 이 왕수긍 계통 전설을 기록해서 남긴 사람으로 고려시대 정지상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 초기의 "대동운부군옥"에서부터 왕수긍 계통 전설을 이야기한 사람으로 정지상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보면, 바로 이 왕수긍의 자손으로 기자 시대 말기에 위만이 반란을 일으키는 시점에서 같이 도망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고려를 건국한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왕수긍 계통 전설이 생긴 모양은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 왕씨에 대한 전설로 기자 시대 말엽에 원조를 두는 이야기가 먼저 생겼다가, 거기서 다시 한 번 그 기자시대 말엽의 조상은 그 아버지, 할아버지가 누구냐는 식으로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가서, 왕수긍 전설이 생겼고, 그리고 왕수긍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시 한 번 더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명을 비롯한 그 조상들에 대한 단군시대의 이야기도 생겨난 것처럼도 보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본다면, 정지상이 묘청 일파의 중요한 일원이었다는 점과 바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고려시대 묘청 일파는 서경, 즉 평양 지역을 고려의 중심지로 삼아서 평양을 발전시키려고 힘을 다하던 세력인데, 바로 이 왕수긍 계통 전설은 고려의 임금도 그 조상은 평양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내용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묘청 일파가 자신들의 서경 중시 전략을 내세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 왕수긍 전설을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퍼뜨렸을 가능성도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왕수긍 전설이 기자시대, 즉 고조선의 신선 전설로 나타나는 비교적 묘사가 풍부한 내용이라는 점도 눈에 뜨입니다. 게다가 비록 지금 볼 수 있는 내용은 후대의 기록이지만, 왕수긍의 조상 중에 "험(險)"이라는 이름도 나타나는데, 이렇게 하면, 성명이 "왕험"이 되어 단군 "왕검"이라는 말이나,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과 흔히 혼동 되던 표현인 "왕험"과 일치한다는 점도 공교롭습니다. 그렇다면, 단군 왕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평양 지역의 신선이라는 언급을 하는 "삼국사기"의 이야기가, 바로 이 왕수긍 계통 전설과 뿌리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볼만 합니다.

즉, 고려시대 전기에 묘청, 정지상 등이 평양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채록하거나 퍼뜨리기 위해 노력 했는데, 그러면서 아주 오랜 옛날 평양에 있었다는 신선스러운 사람에 대한 전설들을 많이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묘청, 정지상 등은 이러한 신선 이야기를 즐겨 활용하기도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양이 고조선의 중심지였으므로 고조선 시대를 배경으로한 옛 신선 이야기들에 점점 살이 붙게 되는데, 그 중에 후대에 고려의 임금인 왕씨 시조와 연결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정착된 이야기가 왕수긍 계통의 전설이고, 머나먼 옛날이라는 긴 시간, 가장 오래된 도읍지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정착된 이야기가 단군 왕검 계통의 전설 아닌가 싶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현재 전래되고 있는 단군 왕검 계통 전설과 왕수긍 계통 전설은 둘 모두, 평양 지역 신선 전설에 뿌리를 두고 고려시대 묘청 일파의 활동 시기에 정착시킨 판본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보인다는 생각도 한 번 해 봤습니다.

한편 이런 식으로 가문에서 내려오는 전설 중에 단군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가장 유명하고 내용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을 꼽아 보자면, 제주도의 삼성혈 전설이 단연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삼성혈 전설은 보통 조선 초기의 기록으로 고려시대의 일을 다룬 "고려사"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충실한 원형으로 볼만하지 싶습니다. "고려사"에 채록된 삼성혈 전설은 제주도에는 고씨, 양씨, 부씨라는 성씨가 내려오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아주 오래된 옛날에 제주도에 있는 삼성혈이라는 신비로운 땅에 난 구멍에서 튀어나온 사람이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어느날 바다에서 흘러든 일본의 공주와 결혼한 후에 제주도의 지배자들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성혈 전설은 처음에는 막연한 옛날이었던 이야기의 배경이 조선시대를 지나게 되면서 아주 오랜 옛날의 상징인 "단군 시대" 내지는 "단군과 같은 시대"로 이야기가 기록되는 경우가 곳곳에 보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이야기의 배경을 "단군 시대"로 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주 오랜 옛날"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일종의 시적인 표현 내지는 수식어로 그런 말을 쓴 것이 정착된 경우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같은 관용 표현처럼, 왕도 아니고 장군도 아니고 "단군(檀君)"이라는 예스러운 표현을 지배자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던 시절이라는 말로 "단군 시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인데 이것이 그대로 자리 잡은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렇게 저렇게 이런 방향의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져서, 현대에는 제주도의 고씨 가문에서 단군 시대 때부터 대대로 제주도 지역의 임금 역할을 했던 그 계보가 완성되어 있는 형태로까지 나아간 상태입니다. 이것은 18세기 무렵에 이곳저곳에 퍼지게 된 기자 시대 고조선의 임금 계보가 족보에서 나타나는 것과도 상당히 닮은 모습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밖에...

왕수긍 계통 전설은 왕씨 시조의 전설이고, 차씨, 전씨, 유씨 등이 왕씨에서 나온 성씨라는 이야기가 돌았던 만큼 각 가문별로 왕수긍 계통 전설에 대해 의견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설로 받아들이는 가문이 있었는가 하면, 그저 전설일 뿐으로 실제 조상을 공경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가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이덕무 같은 사람도 왕수긍 전설을 고려 왕건의 왕씨와 연결시킨 것은 정지상이 억지를 부린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모자란 솜씨로 이런저런 이야기 소개해 보려다가 제가 틀린 부분이나 잘못 생각한 부분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지적해 주실 말씀이나, 의견 있으시면 덧글 주시면 무엇이건 감사히 읽겠습니다. 이 글은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시리즈 여섯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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