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갑녀 (非西岬女) 기타

비서갑녀(非西岬女)는 단군 왕검의 아내로, 비서갑(非西岬)이라는 곳의 물을 다스리는 신인 하백(河伯)의 딸이라고 하며, 그 아들이 부루(夫婁)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왕운기"에도 채록되어 있는등, 고려 후기말부터 그 기록이 자주 확인되는 이야기 입니다.


(먼 옛날의 여신을 나타내는 석상으로는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 지리산의 성모상)

비서갑녀에 관한 전설에 대해서 가장 먼저 특이하고 괴상해 보이는 부분은 비서갑녀에 관한 이야기가 고구려의 주몽 이야기과 아주 닮은 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늘의 자손이고, 어머니는 물을 다스리는 신인 하백(河伯)의 딸인데, 그 사이에서 난 아들이 자리를 옮겨 가서 동부여와 관련있는 나라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단군과 비서갑녀의 아들인 부루는 원래 있던 곳에서 가서 동부여를 세우고, 해모수와 유화의 아들인 주몽은 동부여에서 탈출해서 고구려를 세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삼국유사"에서는 하백의 딸이라는 이유로 비서갑녀와 유화가 같은 인물 내지는 혼동 가능한 인물이라는 식의 이야기도 나와 있습니다.

복잡하게 계보를 밝히는 이야기에 앞서서 먼저 뚜렷하게 드러난 대목부터 이야기를 해보자면, 일단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고조선 단군 왕검의 후예가 부여 이고, 그 부여의 후예가 고구려라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한 뿌리의 나라라는 것인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단군 왕검의 아들이 부루이고, 부루는 금와(金蛙)를 아들로 삼았고, 금와는 주몽을 아들 비슷하게 키우면서 자기 나라에서 자라나게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몽이 금와로부터 탈출하게 되기는 합니다만, 결국 고조선을 세운 단군 왕검, 동부여를 세운 부루,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이어지는 이야기, 계보 속에서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고려 후기에 나온 "삼국유사" 이야기에서 고조선-부여-고구려를 계통이 같은 이어지는 나라로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다들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내용이 기록된데는 "삼국유사"가 나오던 시기의 고려도 바로 먼 옛날 고조선에서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가 꽤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 외에도, 고조선 - 부여 - 고구려가 하나의 계통으로 묶여 보이는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중국 기록인 "삼국지"의 동이전 부분에는 "예(濊)"라는 곳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곳이 고조선의 남은 땅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고조선은 단군 시대 이후의 기자 시대의 고조선과 위만이 반란을 일으키던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그러면서 고구려가 예를 다스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부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부여에 예성(濊城)이라는 옛 성이 있고, 그 땅이 예맥(濊貊) 땅이라고 하고, 옥새처럼 예왕(濊王)의 도장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라는 나라이름을 중심으로, 고구려, 부여, 고조선이 모두 엮여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외에도 역시 중국 기록인 "구당서"의 고구려 부분에서는 시작부터 고구려가 부여의 별종이라고 해서, 고구려와 부여의 밀접한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고구려에서 기자신을 모신다고 되어 있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은 고조선에서 단군 시대 다음에 나오는 기자를 신으로 모신다는 말이므로, 고구려에 기자를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설령 정확히 기자 본인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고구려에서 오랜 옛날 고조선 계통의 위대한 사람, 임금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는 할 것입니다.

게다가 "구당서"에서 고구려의 좋은 풍습을 이야기하면서, "자뭇 기자의 풍습이 남아 있다"는 말을 하고 있어서, 구당서 기록자의 시각에서도 고구려가 기자 시대의 고조선을 이어 받고 있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보면 "구당서"가 나오던 무렵즈음 해서는 중국에서도 고구려,부여,고조선을 연결되는 한 계통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고조선, 부여, 고구려 전설이 같은 내용으로 어지럽게 반복되고 얽히고 설켜 있는 혼란스러운 부분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슷한 사람들, 비슷한 문화권의 나라들이 대를 이어서 오면서 "아주 오랜 옛날의 나라 처음 세운 사람"에 대한 신화적인 전설이 있었고, 나라들이 이어지면서 각각 저마다 자기 나라를 최초로 세운 사람을 그 신화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고조선, 부여, 고구려 사람들은 나라를 처음 세운 위대한 인물이면 이런 정도의 특이한 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꼭꼭 버릇처럼 "아버지 계통은 하늘에서 내려왔고, 어머니 계통은 강물에서 나왔다"는 말로 치장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치, 60,70년대 위인전에서 주인공들은 꼭 어릴 때 부터 효자고 똑똑한 것으로 나오고, 요즘 성공한 사람들은 저마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했고 항상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노력을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삼국시대, 고조선 시대 사람들은 위인이라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어머니가 강물에서 올라오는 게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훨씬 복잡한 이야기를 꾸미려고 노력하는 21세기초의 TV 사극 작가들도 임금이 되는 사람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몰락해서 노예 생활을 하고 다시 돌아와 복수도 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만들던 것을 생각해 보면, 비슷한 문화권, 이어지는 문화권의 수천년전 사람들이 익숙한 이야기를 비슷하게 써먹는 것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전설들이 비슷한 전설을 반복한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흔히 주몽 이야기는 고구려를 세운 첫 임금의 이야기인데, 이것이 부여를 세운 임금의 이야기로도 나오는 경우가 잦습니다.

주몽 이야기는 알에서 주인공이 태어나고, 그 주인공이 활을 잘쏘고, 나중에 자라서 강물에 떠오른 자라와 거북이를 밟고 탈출해서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오래 거슬러 올라간 기록을 찾아볼 수록 고구려를 세운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여를 세운 사람의 이야기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삼국지"의 동이전 부분에도 "부여" 부분에 이 이야기가 실려 있고, 동명(東明)이라는 임금이 고리국(高離)이라는 나라에서 탈출해서 부여를 세우는 이야기로 나옵니다.

동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주몽이 임금이 되었을 때 불리우는 말로 나오므로, 어떻게 보면 주인공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이야기에 나오는 "고리"라는 나라가 고려, 즉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는 부여에서 탈출해서 고구려를 세운 주몽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고구려를 탈출해서 부여를 세운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이것을 두고, 고구려가 부여를 멸망시켜서 합친 다음에, 고구려 임금을 높이기 위해서 원래 옛날 부터 있었던 부여 세운 임금 이야기를 고구려를 세운 임금 이야기로 장식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세력이 강력하고 후대에 좀 더 중국쪽의 나라들과 접촉을 많이 했던 고구려를 통해서 부여에 대해 들었던 중국 지역의 사람들에게 고구려를 처음 세운 이야기가 혼동되어 부여를 처음 세운 이야기로 전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나마 분명한 것은 "광개토왕릉비"에 고구려를 세운 첫번째 임금의 아버지가 하늘의 자손이고 어머니는 강물에서 온 하백의 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으므로, 적어도 광개토왕 무렵 이전에는 이 이야기가 고구려를 처음 세운 임금의 이야기로 분명히 자리 잡았다는 정도 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꼬여드는 혼란 상은 고조선의 단군과 부여, 고구려를 살펴 볼 때 더 심해 집니다.

일단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나 그 전에 나온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해모수(解慕漱)"라는 사람이 주몽의 아버지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해모수가 주몽의 아버지라는 전설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삼국유사", "동명왕편"에는 동부여의 임금을 해부루로 소개하면서 "해"씨 인 것처럼 하고 있고, 고구려 임금들의 이름 중에 "해"로 시작하는 것들이 있으며, 고구려 사람들이 건너가서 건국했다는 백제에도 "해"씨성을 가진 높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모수"의 뒤를 이은 "해"씨가 부여, 고구려의 임금 자리에 있었던 성씨라는 생각도 꽤 뚜렷해 보입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왕력" 부분에서 해모수를 단군의 이야기인냥 소개하고 있기도 하고, "고구려" 부분에서는 "단군기"라는 기록을 소개하면서, "부루"는 "단군"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단군과의 사이에서 부루를 낳은 서하 하백의 딸을, 해모수와의 사이에서 주몽을 낳은 하백의 딸 유화와 혼동된다고 헷갈려 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해모수와 단군이 동격의 인물인 듯하기도 하고, 주몽과 부루가 동격의 인물인 듯 보이기도 하고, 서하 하백의 딸과 하백의 딸 유화와 동격의 인물인 듯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혼란스럽게도, "동명왕편"의 이야기에는 해부루가 해모수에게 원래 자리잡고 있던 북부여 땅을 비켜 주는 동부여 임금으로 나오는데, "삼국유사"의 북부여 부분 이야기에는 해부루는 해모수에게 북부여를 이어 받은 해모수의 아들로 나오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해모수와 해부루의 관계가 뒤집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동명왕편"에는 곰의 심장의 산이라는 뜻이 되는, 웅심산(熊心山)에 해모수가 나타났고, 곰의 심장의 연못이라는 뜻이 되는 웅심연(熊心淵)에서 하백의 딸인 유화를 만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곰 신의 산이라는 뜻이 되는 웅신산(熊神山) 아래에서 유화와 해모수가 만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단군의 어머니이자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의 아들 환웅과 맺어지는 웅녀를 떠오르게 하는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보면,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의 손자이고, 곰과 관계 있는 여자인 어머니의 아들인 단군 왕검은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의 손자이면서, 웅신산, 웅심연에서 만난 여자인 유화의 아들인 주몽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로 내용이 혼란스러워 진다면, 이야기에서 점점 더 확실해 지는 것은 고려시대가 되면, 고조선-부여-고구려를 한 계통으로 생각하는 전설들이 유행했다는 정도 뿐 아닌가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다소 과감하게 이렇게 얽힌 전설을 얽힌대로 두고, 어지럽게 얽힌 그 나름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흥미를 자아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해모수는 주몽의 아버지이기도 하면서, 부여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단군과 동격으로 보이기도 하면서, 동부여 임금 부루의 아버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루의 경쟁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습으로 이야기에 나옵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두고, 해모수가 다소 비밀스럽고 혼란한 상황을 겪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혼란한 상황 속에서 부여를 건국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되, 부루를 이끌어 주는 의형제 형, 양아버지 같은 존재였지만 부루의 경쟁자이기도 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조선시대 이후로 널리 퍼진, 단군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천년이상 대를 이어 내려온 임금의 칭호였다고 생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해모수는 처음 고조선을 세운 단군 왕검은 아니지만, 그 뒤에 고조선을 이어 받은 후대의 단군이라는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내용을 이야기가 되도록 엮은 대표적인 사례가 TV극 "주몽"의 앞부분인데, 여기에서는 해모수를 멸망한 고조선의 독립 운동, 부흥 운동을 하는 일종의 임시정부 대통령처럼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꼬인 이야기 거리들을 나름대로 한 뭉치로 잘 살린 모양으로 보입니다.

좀 더 전설을 있는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정말로 고조선, 부여, 고조선이 꼭 같은 법칙에 의해 건국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갖고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것처럼, 이 계통의 문화에서 "나라를 세운 영웅"이라는 사람들은 아버지 계열 조상은 고귀한 사람이고 뛰어난 집단의 사람이기는 하되 물려주는 것 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사람이고, 어머니 계열 조상은 강물에 근거를 두고 세력을 굳힌 사람으로 영웅을 오래도록 돌봐 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뜻을 이어 받은 사람이되, 강물을 근거로 해서 밑천을 마련한 사람이라면, 한 나라를 일으키는 발판으로 적합하다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단군 왕검은 신단수 아래에, 부루는 가섭원의 동부여 지역에, 주몽은 졸본으로 옮겨 온 사람이라는 것도 꿰어 맞추어 볼만 합니다. 원래 근거지로 터를 잡고 있던 곳이 있었지만, 그 자리를 떠나와서 새로운 자리에 터를 잡는 것이 이런 나라를 세우는 영웅들이 잘 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은 지리적, 경제적, 사상적인 어떤 장점이나 특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넓은 농토를 장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물을 장악해서 강물을 오가는 배들이나, 강물의 둑, 물을 장악하는 것이 나라 세우는 영웅에게는 경제적으로 훨씬 가치가 높다는 내용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단군 왕검, 부루, 주몽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서 이런 점에서 앞서서 영웅으로 남았다는 경쟁력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될만 하지 않나 하는 것들도 떠올려 봅니다.

한편으로 세 나라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오면서 비서갑 하백의 딸인 비서갑녀가 주몽의 어머니인 청하 하백의 딸 유화와 혼동되고 같은 성격으로 견주어지는 점을 살펴 보면, 비서갑녀에 관한 이야기도 유화에 관한 이야기에 비추어 볼 수 있지 싶습니다.

"동명왕편"에서 유화는 아름다운 미모를 갖고 있고, 화려한 하백의 집의 풍경과 한번 마시면 7일이 지나야 깬다는 술, 자매 세 명과 한 명의 미남자가 같이 술판을 벌리고 노는 모습 등등 호사스럽고 쾌락적인 묘사가 강한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유화와 인연을 맺은 남자는 굳이 유화를 남겨두고 도망쳐 떠나버리는 것으로 나오고, 그 덕분에 그 아들인 주몽은 외롭게 태어나서 도망치는 삶을 사는 것으로 나옵니다.

단군의 아내로 되어 있는 비서갑녀에 대해서는 이렇게 구체적인 묘사가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그 아들로 나오는 부루가 원래의 나라를 그대로 이어 받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지역은 그곳의 주인은 하늘이 정해준 따로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건너가서 동부여를 새롭게 세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정통을 그대로 곱게 계승하지 못하고 방계, 곁가지로 튀어 나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역시 그 어머니인 비서갑녀가 유화와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지 않나 싶어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백의 딸은 많은 쾌락과 부유함을 내어 놓고, 스스로도 미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단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하백"에 대한 기록 중에 오래된 축에 속하는 중국의 "하백"에 대한 언급을 보면, 하백이 잘생기고 부유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그 아내는 바람이 난다는 식의 전설이 있으니, 이런 중국의 "하백" 이야기와도 통하는 데가 있어 보입니다.

단군이 신선의 대명사이고, 성스러운 임금으로 나오는 만큼, 이것을 두고 단군이 이런 하백, 하백의 딸이 추구하는 많은 쾌락에 스스로 염증을 느끼고 퇴폐적인 허무에 빠져서 떠나갔다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이러한 퇴폐적인 향락 이면에 가려져 있는 낭비나 빈부의 격차에 대한 문제를 보고 단군이 불만을 품었다는 이야기도 갖다 대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면, 부부 사이에 어떠한 객관적인 풍요로도 극복할 수 없는 성격 차이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따라가다가, 고조선의 유력자, 임금들이 즐겼을만한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전설들을 살펴 보자면, 단군 시대보다는 그 다음 시대인 기자 시대에 대해 내려오는 내용들을 짚어 보면 이야기할 거리들이 꽤 있습니다. 고조선에 대한 전설 속의 풍요와 쾌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소재들을 떠올려 볼만 하다고 생각 합니다.

1) 새로 지은 궁궐 -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구월산에 단군이 새로 지은 궁궐이 있었기 때문에, 궁궐의 궐에서 나온 이름인 "구월"이 산이름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 퍼졌습니다.

2) 화려한 무늬가 있는 가죽, 가죽 장식, 가죽옷 - 중국 기록인 "관자"에는 조선에서 무늬가 있는 가죽을 선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표범 가죽 등의 무늬가 특이하고 아름다운 귀한 가죽으로 생각되며, 조선시대의 "성호사설"등에서 이런 이야기를 알고 따져보는 것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3) 빈부의 격차, 넓은 농토와 가난한 사람들 - 조선시대 학자들, 특히 후기의 실학자들은 기자 시대의 가장 큰 업적으로, 기자가 농토를 사람들에게 잘 분배한 정전제도를 운영한 것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반대로 기자가 정전제도를 도입하기 이전 시대의 단군 시대에는 넓은 농토를 가진 사람과 농토가 적거나 없는 사람들의 차이가 심했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만 합니다.

4) 돈 - 삼국시대부터 기자 시대에는 여덟개의 법이 있었다는 기록이 중국에 있었고, 여기에 "죄를 용서 받고 싶으면 50만전을 내야 한다"라는 말이 있어서, 막연히 아주 오랜 고조선 시대에 돈이 있었다는 생각이 돌았습니다.

5) 노예, 돈만 있으면 죄도 피할 수 있는 풍속 - 역시 기자 시대의 여덟개의 법에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고조선 때부터 노예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들은 이 기록을 꼽아 보며 기자 시대에 노예 제도가 처음 언급되며, 그러므로 고조선때에 처음 노예 제도가 생겼다는 식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50만전을 내면 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돈만 있으면 죄도 피할 수 있는 풍속을 나타내는 면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한 인간의 가치를 돈 50만전으로 평가했다는 가격을 나타내는 면도 있어 보입니다.

6) 돈을 주고 처첩, 남편을 살 수 있는 풍속 - "한서"등 중국 기록에는 기자 시대에 예의와 좋은 풍속을 퍼뜨린 예를 설명하면서, 혼인의 대가로 재물을 주는 것을 금지 했다는 말이 나오고, 이 역시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인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반대로 놓고 보면, 그 이전 단군 시절에는 재물을 대가로 좋은 남편을 사들이고, 돈만 있으면 여자를 살 수도 있는 풍속이 심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7) 힘을 나타내기 위해 부질없이 커다란 무덤을 만드는 것 - 조선 시대, "동국여지승람"에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단군의 무덤에 대한 전설이 나오는데, 이 무덤의 크기가 둘레 410척으로 나옵니다. 이것은 이후 시대의 왕릉에 견줄만한 크기로, 단군 시대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꽤나 과도하게 큰 무덤을 많은 비용을 써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되는 셈입니다.

8) 머리 모양과 모자를 꾸미는 것 - 조선시대에는 단군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흔히 편발개수(編髮蓋首)를 가르쳤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머리를 한쪽으로 땋고 머리를 덮는 모자나 상투 같은 것을 갖추게 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표현 자체가 강조하는 점은 원시인처럼 산발로 머리 기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가지런하게 갖추고 사는 문명인이 되었다는 점인데, 조선시대 학자들은 이것이 어떤 특정한 머리 모양, 모자 모양을 나타낸다는 식으로도 생각했습니다.

9) 여러 외국의 진기한 문물 - 조선시대 기록에는 단군이 구이(九夷)의 임금이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종종 나타납니다. 이것은 동쪽의 민족을 주로 이(夷)로 표현했기 때문에 모든 동쪽 민족들의 임금이라는 점을 상징하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문자 그대로 보면 여러 다양한 이민족들을 다스린 임금이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다른 전설 속에서도 단군 시대에 중국과 교류한 기록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여러 외국의 문물이 단군 임금 앞에 모이는 이야기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10) 임금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많은 사람들의 합창, 노래 - 고려 시대에 전해지던 고조선 시대의 노래로 "대동강곡", "서경곡"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고려사"에 나와 있는데, 그 내용은 기자 시대에 고조선 임금이 훌륭하다고 칭송하고 그 때문에 백성들이 즐겁다는 것을 가사로 해서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라고 합니다. 원래 즐겁고 행복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 였겠습니다만, 요즘 시각으로 돌아보면 어째 아부하고 억지로 떠받드는 이야기에 더 잘어울리는 분위가도 나는 것이 묘합니다.

11) 기이한 약 - 흔히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기 위해 잠시 모습을 바꿀 때 약을 먹고 변신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오고, 그 외에도 웅녀가 곰에서 사람이 될 때도 약을 먹고 변신했다는 식으로 표현된 것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동사"에는 영약으로 동해지애(東海之艾)와 경구지산(瓊丘之蒜), 즉 동해의 쑥과 경구(瓊丘)의 마늘이 있어서, 이것을 먹여서 곰이 사람으로 변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괴상한 약, 신기한 약초 따위가 고조선 때에 있었다고 전설 속에 묘사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백의 딸을 표현한 소상이라는 별명이 붙은 대성산성의 고구려 유물)

이런 풍요를 상징하는 하백의 딸과 단군이 멀어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단군이 도덕적인 가치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너무 밋밋하고 재미 없게만 보인다면, 반대 입장에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실제로 후대에 더 존경을 받는 것은 아버지 계통인 단군 보다는 어머니 계통인 하백의 딸이고, 후대에 더 발전해 나가는 쪽도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인 하백의 딸과 더 가까운 부루, 주몽 계열이니, 고상한 취향이었던 것은 단군이지만 더 성공한 것은 하백의 딸 쪽이라는 것입니다.

전설의 방향이, 아버지 쪽이 어머니 쪽을 떠나갔지만, 결국 아버지쪽보다 어머니쪽이 나중에 더 길이 성공한 기억으로 남았다는 느낌이 난다는 것입니다. 중국계 기록에도 고구려에서는 하백의 딸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그 다음 세대가 되는 백제에서도 소서노로 생각할 수 있는 어머니 계통, 국모를 모시는 것이 강조되어 있었다는 점도 공교롭습니다.

그렇게 보면, 단군이 비서갑녀와 멀어지고, 비서갑녀의 아들인 부루가 원래 있던 곳을 떠나서 다른 곳에 자리를 잡는 이야기도, 오히려 단군이 결과적으로 쇠락해가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 비서갑녀에 대해서 굳이 결벽증적인 도덕주의를 내세우면서 단군이 떠나가지만, 막연히 뒤틀리는 열등감으로 "나는 검소하고 어질게 다스린다"는 점을 내세우려고 해도 결국 좌절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어떻게 보면 거의 정신병적인 이상주의에 취해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간사 360가지 일을 모두 완벽하게 다스린다"는 꿈에 부풀어 있지만, 결국 먼 옛날 성읍국가, 도시 하나를 다스리는 정도의 힘밖에 없었던 고조선 임금의 한계로는 허황된 생각에 실패일 뿐이고, 차라리 돈 쓰고 노예 거느리며 호화롭게 살았던 비서갑녀가 더 뚜렷한 자취를 남긴다는 좀 쓸쓸한 결말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밖에...

시기로는 고려 전기가 되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의 기록에도 고려의 시초를 설명하면서 고려의 전신으로 고구려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에서는 "주몽"이라는 말까지 옮겨가면서 주몽의 전설을 이야기하는데, 그 시기는 기자 시대나 위만 시대의 고조선 멸망 이전으로 보면서, 나라로는 부여의 건국 전설로 주몽 이야기를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고조선, 부여, 고구려가 한 계통으로 뒤섞여 생각되는 모양이 보이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고려 후기로 가면서 단군에 대한 전설들이 더 인기를 얻고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얽혀 있던 고조선-부여-고구려 이야기가 단군 왕검이 비서갑녀와 결혼하는 전설에도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 것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 모자란 솜씨로 이런저런 이야기 소개해 보려다가 제가 틀린 부분이나 잘못 생각한 부분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지적해 주실 말씀이나, 의견 있으시면 덧글 주시면 무엇이건 감사히 읽겠습니다. 이 글은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시리즈 일곱번째 글입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2012-10-11 22:04:37 #

    ... 이 9명 각각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글을 앞으로 한 편씩 차례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지 2. 여수기 3. 팽우 4. 선인 5. 고시례 6. 배천생 7. 비서갑녀 그 밖에... 몇 년 전 평양에서 "단군릉"이란 것을 건설한다고 하면서, 주변을 장식하는 석상들을 세울 때에도 위 인물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중에는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