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의 이야기거리들과 청동기시대 유물 기타

고조선 시대의 유물, 유적을 말할 때, 요즘에는 흔히 위만이 왕위에 오른 이후의 시대부터를 철기 시대로 생각하고 그 이전을 청동기 시대로 생각해서,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에 맞추어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 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청동기 시대 유물, 유적 중에 흥미로운 것들을 소개해 보고, 그런 것에 어울릴만한 이야기 거리들, 엮일만한 설화 속 장면들을 나열해 보려고 합니다.

주로 청동기 시대에 초점을 맞춰 보기는 했습니다만, 구분이 또렷하지 않은 면이 있는만큼, 위만이 왕위에 오르기 전 시절에 해당하는 청동기 시대 말기, 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들까지 합해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실 정말 고조선 시대의 실제 사건이나 역사에 맞춰 본다면, 고조선의 중심지로 보통 이야기 되는 한반도 북서부나 요동 지역의 유물, 유적에 대한 내용을 대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좀 더 자료가 많고 친숙한 내용들, 찾아 볼 수 있는 것들을 모아 보다보니, 아무래도 고조선의 중심지와는 거리가 있는 한반도 남쪽 지역의 유물, 유적들 이야기를 많이 다루게 되었습니다.


1. 비파형 동검, 세형 동검

(비파형 동검: 한반도 남쪽에서도 발견되나, 북부와 요동, 요서 지역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시대 초기 요동 지역과 한반도 북부에서 주로 발견되는 유물이고, 세형 동검은 한반도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후기 이후에 주로 발견되는 유물입니다.

두 검 모두 칼날 부분과 손잡이 부분을 따로 만들어서 조립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 검과 구분되는 특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흔히 내려오는 여러 전설들 처럼, 아버지와 아들, 또는 남편과 아내가 증표로 칼을 분리해서 칼날 부분과 손잡이 부분을 나눠가졌다가 나중에 맞춰 본다는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혹은, 칼날 부분과 손잡이 부분을 서로 바꿔 끼워 가면서 가장 성능이 좋은 조합이 되도록 칼을 개선, 개조하는 이야기도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한편 이러한 동검에는 동물 모양 같은 간단한 그림이 끝트머리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어떤 가문이나 어떤 조직에서 쓰는 고유한 문장이 있어서 그것을 무기에 새겨 놓는다는 이야기도 생각 납니다.


(세형 동검: 한반도 지역에서 청동기 말기 이후에 주로 발견됩니다.)

비파형 동검이 보통 세형 동검 보다 훨씬 먼저 나온 유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두 칼 모두 칼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무기로서 특별히 강력했다기 보다는 그 모양이 멋졌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한때 이 칼들은 제사, 의례에 쓰는 장식적인 도구일 뿐 실제 공격용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칼날을 갈아 놓은 흔적을 많이 찾아내면서 제물로 쓰이는 짐승을 잡거나, 싸움에 일부 사용된 무기 등으로 어느 정도 활용 되었다는 주장이 많이 보입니다.

비파형 동검은 칼날 부분 가운데가 곡선을 이루며 튀어 나와 있어서, 옆으로 베기 보다는 칼 끝으로 찔러 박아 넣기에 좋아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원래 칼을 쓰는 법은 찔러 넣는 공격이 주로 유행했는데, 후대에 한반도 지역의 누군가가 칼의 모양을 바꾸어 세형동검을 개발했고 칼날 부분으로 베어서 공격할 수도 있는 더욱 강력한 칼 쓰는 법을 개발해서 대유행시켰다는 식의 이야기도 상상해 봅니다. 세형 동검 유물 중에는 칼 끝트머리 찌르는 부분만 강조해서 날을 갈아 놓은 것과 옆날 부분도 잘 갈아 놓은 것 둘 다 발견 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이렇게 칼 사용법이 사람마다 달랐다는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2. 다뉴세문경, 거친 무늬 거울(다뉴조문경)

(거친 무늬 거울)

뒤에 줄 무늬가 있는 청동 거울로, 거울 뒷면에 고리가 둘 이상이 있어서 끈을 묶어 걸어 두거나 몸에 걸고 다니기 특히 좋게 해 놓은 것이 한국 지역 청동 거울의 특징이라고들 합니다.

오래된 유물일수록 그냥 일반적인 빗금무늬가 여러가지 형태로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나타나 있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초기 철기 시대 무렵이 되면, 무늬가 세밀하고 가늘어지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현대 과학 기술로도 꽤 공을 들여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극히 가는 무늬도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물들은 시대가 바뀌면 계속해서 계승되지 않고, 중국에서 들여온 청동 거울로 대체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 별 부질 없는 기교를 서로 겨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힘을 다해서 거울을 만들다가 폐인이 될 정도가 되어 버리는 예술가의 이야기나, 그런 교묘한 거울을 사서 자랑하며 사치 부리는 갑부,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상상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노력을 기울이다보니 결국 그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 주기 전에 죽어 버렸다든가, 미쳐 버렸다든가, 주문을 한 부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그런 작품을 또 만들지 못하도록 장인을 제거해 버렸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다뉴세문경: 잔무늬 거울. 무늬가 너무 가늘어 거의 재료의 재질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청동 거울들의 줄무늬는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구성이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데, 보통 이 거울들이 주술적인 의식이나 종교적인 제례에 사용 되었다고 추정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서로 믿는 신이 다른 조직이나 교단 간의 대립이나 구분, 계승과 분파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 나기도 합니다.


3. 대롱옥(관옥), 곡옥

(곡옥 1개와 목걸이 줄 부분을 이루는 대롱옥들)

천하석, 벽옥 같은 돌들을 잘 갈아서 대롱 모양으로 만들어 둔 것이 대롱옥, 관옥 이고, 쉼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곡옥입니다. 엮어서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둘을 쌍으로 귀고리로 사용하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널리 발견되는 유물이고, 주거지 유적에 이집 저집 흩어져서 나타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후대 삼한 시대에 구슬을 특별히 귀하게 여겼다는 기록을 보면, 지금 금괴나 은덩어리를 큰 금액의 가치를 가진 거래 수단, 저금 수단으로 쓰는 것 처럼, 옛날에는 사람들이 큰 가치를 거래할 때 대롱옥이나 곡옥을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패물로 아껴 놓기도 했을 것으로 상상해 봅니다.


(청동기말, 초기철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 재질 대롱옥)

또 한가지 재미난 점은 대롱옥, 곡옥이 널리 발견되는 것에 비해서 그 원료 산지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원료 산지가 나타나는 일본 열도에서 원료를 가져와서 한반도에서 가공하지 않았겠나 하는 이야기도 꽤 돌았던 것으로 압니다. 이런 점을 보면, 먼 곳에서 배에 막대한 양의 옥을 싣고 오는 보물선이라든가, 산넘고 물건너 먼 지역까지 옥덩어리를 운반해 가는 수송단의 이야기, 이것을 습격해서 한 몫 잡으려고 하는 도적들의 이야기도 떠올려 봅니다.

특히 이런 대롱옥, 곡옥은 제품은 갈아서 모양을 다듬고 광채를 내는 작업에 쓰이는 기술이 비교적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그에 비해 갈고 다듬기 전에는 별 보물처럼 안 보이는 편이라서, 갈고 다듬는 작업이 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 갈기 전 상태의 원료와 갈아낸 대롱옥 사이의 가치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가공한 대롱옥 제품의 품질을 두고 서로 흥정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는 이야기, 곡옥을 갈아서 광채를 내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돈을 버는 부자의 이야기 같은 것들도 생각해 볼만하다고 느꼈습니다.


4. 팔주령

(팔주령)

여덟개의 가지로 되어 있는 모양의 청동 방울로, 여덟개의 둥근 모양 하나 하나 마다에 각각 청동 구슬이 들어 있어서 흔들면 소리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무당이 굿을 할 때 흔드는 방울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으로 보고, 보통 흔히 종교 의식을 지낼 때나 굿을 할 때 흔들었던 것으로 상상하곤 합니다.

방울을 흔들며 굿을 할 때 보통 그야말로 넋이 나가도록 열정적으로 판을 벌리곤 합니다. 이런 모습에 비추어, 팔주령을 흔드는 의식도 아마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정신을 휘어 잡는 열정적인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방울과 관련해서는 고려시대 우탁에 관한 설화 중에 여덟개의 방울에 각각에 해당하는 여덟 신이 한 마을의 나무에 모여 살았다는 것도 유난히 떠오릅니다. 이 설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이 여덟 신들을 두려워 했는데, 만약 어떤 마을 사람에게 갑자기 방울 소리가 들리게 되면, 그 사람은 병에 걸리거나 저주를 받는다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설화의 결말은, 이런 잡신을 믿지 않는 우탁이 와서 방울을 없애 버리고 신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집어 넣어 보면, 팔주령 유물은 각각 여덟 명의 신, 여덟 가지의 상징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할 것이고, 그 방울소리가 울리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린다거나, 방울 울리는 소리로 귀신의 뜻을 나타낸는 말로 누군가에게 겁을 주는 사이비 무당의 속임수와 결합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여덟 신의 상징인 팔주령의 구슬 하나하나가 흩어져 있는데 그것을 찾아 모아서 팔주령을 완성해서 저주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만든다는 식의 이야기도 상상해 봅니다.


5. 견갑형 동기, 방패형 동기, 검파형 동기

(방패형 동기)

우리나라 충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말기, 초기 철기 시대 유물 중에 용도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 바로 이 견갑형 동기, 방패형 동기, 검파형 동기 같은 것들입니다. 청동으로 만든 금속판 형태로 되어 있고 무늬가 꽤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인데, 모양이 묘해서 어떤 용도로 썼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검파형 동기)

일단은 구멍이나 고리가 있다는 점에 근거해서, 어떤 식으로든 몸에 매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이 흔히 나도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볼 경우, 무당이나 제례의 집전자가 특이해 보이거나 번쩍거리는 금속의 멋을 과시하려고 늘어뜨리는 장신구처럼 보이게 됩니다. 혹은 부유하거나 힘센 사람이 과시하려고 몸에 걸치고 다니는 금속판이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호화로운 갑옷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갑옷이지만 실제 칼이나 화살을 막아내는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할 것이고, 마치 상상 속의 그림에나 나오는 장식용 갑옷처럼 몸의 조금만을 가리는, 장식에 가까운 방어장비가 될 것입니다. 이 사람에 맞서 싸운 사람은 여기에 주눅이 들어서 괜히 공격을 잘 못하게 되는 일도 있을만하고, 정반대로 갑옷을 입은 사람이 호화스러운 자신의 금속 장식이 자신을 막아 준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지만, 종교나 권위를 믿지 않는 반란자가 비웃으며 단칼에 그 사이로 칼을 찔러 넣어 공격하는 이야기도 떠오를만합니다.

실용적인 진짜 갑옷이라면, 함경북도 범의구석 유적에서 발견된 흔적이 청동기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흔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동물 뼛조각을 엮어서 갑옷을 만든 것인데, 비교적 온전한 형태가 발견된 삼국시대 뼈갑옷을 참고하면, 무게는 5 kg 내외가 되고, 뼈색깔인 흰색 갑옷이거나, 거기에 칠을 해서 검게 만든 모양일 것입니다. 강도가 그렇게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비해, 만들기 쉽지 않아 보이고, 발견된 흔적도 적다는 점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주 입는 것이었다기보다는 몇몇 특수한 사람들, 부자, 권력자등 일부 사람들이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입은 쪽으로 좀 더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 봅니다.


(검파형 동기에 새겨진 무늬: 왼쪽 것에는 작은 사슴 모양이 오른쪽 것에는 손바닥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견갑형 동기, 검파형 동기 등의 청동 금속판으로 만든 장비에는 동물 모양을 한쪽 끝에 새긴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 역시 어떤 가문이나 조직의 문장처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견갑형 동기 중에는 여러가지 동물을 동시에 새겨 놓은 것도 있는데, 상상해 보자면, 이런 것들은 여러 가문을 합한 영웅스러운 인물의 것이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한편, 이런 식의 동물 모양을 금속판에 새긴 유물이 북방 유목 민족 유물과 비슷한 면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이 유물의 주인이 말을 갖고 있는, 말 탄 전사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6. 농경문 청동기

(농경문 청동기에 새겨진 그림: 머리 쪽에 그려진 선을 머리에 꽂은 긴 깃털 장식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농경문 청동기는 견갑형 동기, 방패형 동기등과 비슷한 형태의 유물입니다. 이런 동기에는 가끔 낙서 같은 형식의 그림으로 사람 모양이 새겨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농경문 청동기는 그 사람 모양이 농사 짓는 사람 모양 같아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런 청동기들은 호사스러운 지배자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 농사 짓는 사람 모양 그림이 있었다는 것은, 지배자가 농업, 농사꾼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로 연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굿을 하거나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에도 주로 농사가 잘되게 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던 지역의 사람들이라고 이야기를 맞춰 보기도 할만합니다.

한편으로, 이렇게 청동기에 나타나는 사람 모양 중에 머리에 깃털을 꽂은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몇 있습니다. 신라 사람이나 고구려 사람도 머리에 깃털을 꽂아 장식하곤 한 것을 보면, 더 옛날에도 그런 식으로 멋을 부려 꾸몄을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구려의 깃털 꽂은 사람은 두 개의 깃털을 양쪽에 꽂은 모습이지만, 이 시대의 모습은 주로 꽤 긴 깃털을 하나만 머리에 꽂은 모양으로 나타나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에서 어떤 작위의 상징이나, 영예로운 훈장의 의미로 깃털을 꽂아 주는 모습이나, 허영을 부리기 위해 화려한 새의 깃털을 비싼 값에 구해 꽂으려는 사람의 이야기 같은 것들도 떠올려 봅니다.


7. 칼 이외의 무기들

(청동 창끝)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 중에는 주로 말기로 갈 수록, 청동으로된 여러 가지 창끝들이 나타납니다. 그 외에 날카로운 돌을 잘 갈아서 만든 화살촉도 널리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톱니 바퀴 축 모양으로 되어 있는 돌로 된 도끼도 종종 발견 됩니다.

이런 무기들은 기존의 청동검들이 그다지 강도가 높지 않아서, 실제 무기로 사용하기에는 단점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좀 더 실용적인 면이 있어 보이는 것들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렇다면, 새로 등장한 싸움 잘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위험한 무기들은 장식적인 효과가 중요했던 칼이 아니라, 주로 이런 창, 도끼 같은 것들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혹은 명예와 멋을 중요시하는 무리들은 싸움터에서 무기로 칼을 쥐고 있지만, 정말로 이기는 것을 중요시 하는 비정한 싸움꾼들은 무기로 도끼나 창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창 중에서 깃발등을 달 수 있게 고리가 달려 있는 것도 발견됩니다. 이것을 위의 이야기 관점에 맞춰 보면, 이런 것은 양쪽의 특징이 조화를 이루어 실제 싸움하기에 유리하면서, 깃대로도 사용할 수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와 멋을 나타내는데도 유용한 물건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갖다 대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8. 환호

(창원 남산의 집자리 유적)

청동기 시대 집터 유적을 보면 하나의 마을을, 적이 들어 오기 어렵게 막기 위한 해자 역할을 하는 도랑이 두르고 있는 것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곳은 마을이나 방어해야할 지역을 높은 나무 울타리로 둘러친 곳이 많습니다. 그런 나무 울타리 바로 앞에 깊은 홈과 같이 구덩이를 깊게 파서 둘레를 둘러 놓고 거기에 물을 채워 놓거나 한 것입니다. 이런 도랑을 환호라고 합니다.

환호는 무턱대고 물을 첨벙거리고 건너려고 하면 거기에 발이 빠져서 발이 도랑의 좁은 틈에 끼이거나 발을 접질러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혹은 발을 찌르는 가시나 뾰족하게 깎은 나무 말뚝을 박아 놓아서 찔리게 하는 함정을 만들어 두기도 합니다. 거기에다가 높은 나무 울타리를 넘어 가기도 어려 우니, 높은 성벽 만큼은 아니어도 돌파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됩니다.

성벽이 하나의 도시나 커다란 거점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이 환호는 작은 마을 한 지역이나 어떤 부자의 집 한 채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두목이나 부자의 집과 그 집을 습격하려는 사람들의 다툼을 떠올리기에 좋고, 그런 사람들이 과연 이 복잡한 방어벽을 어떻게 넘어 갈 것인가, 어떤 꾀를 내어 이것을 돌파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기에도 재밌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또, 청동기시대, 초기철기시대 주거지 유적에서는 보통 고상 가옥이라고 하는, 망루 같이 생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다락 창고 모양의 집 터도 나온다고도 합니다. 이런 집들은 후대에 가야나 고구려에서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망루일 수도 있고, 고구려나 가야의 사례처럼 귀중한 것을 넣어둔 저장고, 보물 창고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몰래 울타리를 넘어 침입한 도둑의 이야기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보물 창고가 높은 다락 창고로 만들어져 있고, 함부로 올라갈 수 없게 사다리가 치워져 있습니다. 이 높은 보물 창고에 접근한 도둑이 어떻게 기어 올라 가서 무슨 수로 보물을 훔쳐서 다시 내려와 달아나는 지를 상상해 볼만하다는 것입니다.


9. 대형 주거지

(강화도의 청동기 시대 대형 주거지 유적)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 중에는 네모 모양의 방으로 생각되는 것이 줄줄이 이어져서 긴 직사각형 모양처럼 연결되어 늘어서 있는 유적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것을 개인, 가정 간의 구분이 약했던 청동기 시대 초기의 집 짓는 방식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대가족이 머물면서 새로 분가를 시킬 때 따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방을 연결한 것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서로 연결된 공동주택, 연립주택 모양이 되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조금 다른 것으로는 보통 무덤들이 모여 있는 묘지 지역에 가까운 곳에 이렇게 큰 집터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유적은 제사나 종교적 의례와 관련된 시설로 보기도 합니다. 즉, 신전이나 신당 역할을 한 건물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런 유적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집단에는 엄격한 공동 생활 문화, 모든 것이 규격화된 규정에 따르는 통제된 사회로 사람들을 키워 나가는 조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극단적으로는, 마치 농장의 우리에서 가축들을 키워 내듯이 일정하게 구획된 연결된 집에서 노예들을 키워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집 모양일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를 보고 놀라는 외부의 사람이나, 이런 곳에 끌려와서 살게 되다가 탈출이나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이야기도 떠올려 봅니다.

이런 집 모양에서 또 한가지 재미난 점은, 당시의 대부분의 집들은 방의 구분은 있었던 것 같지만, 방을 지금처럼 벽으로 나눠 놓은 것은 아닌 듯 하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칸막이로 쓰는 병풍 같은 나무판을 세워 놓거나, 휘장, 가죽 장막 같은 것을 쳐서 방 사이를 구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옆 방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옆쪽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뭘 하는 지 짐작하기 쉽게 됩니다. 휘장에 대강 그림자가 비쳐서 옆방에서 뭘 하는 지 언뜻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옆 방에 있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이야기를 한다거나, 일부러 헛소문을 내려고 소리를 흘린다거나 하는 음모를 꾸미기도 쉬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누가 권력자의 집을 공격하기 위해 쳐들어 온다면, 칸막이, 휘장을 찢고 부수고 뛰어다니면서 방을 넘나들며 그 집의 권력자를 찾아 다니는 장면도 떠오를 법 합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사람들은 집 바닥을 따로 만들지 않고 흙땅을 바닥으로 했는데, 그 위에 평상이나 깔개를 두고 생활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중요한 물건은 그릇(토기) 속에 저장한 사례가 나타나고, 물건을 저장해 놓는 곳으로 바닥에 판 구덩이를 활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집에 몰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 들어 온다면, 평상이나 깔개 위에서 자고 있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살금살금 들어와서, 그릇 속이나 구덩이 속을 뒤지고 다니는 이야기가 생각날법 합니다. 특히, 그릇이나 구덩이는 그 바닥까지 뒤져 보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통째로 들고 가기는 무거워서 도둑들이 특별한 수법을 개발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10.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고래들을 그린 부분)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 벽에 동물들을 사냥하는 장면들이 다양하게 새겨져 있는 곳으로 신석기 시대에서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동물들 중에 고래를 잡는 내용들이 많이 나타나 있어서 유명한 곳입니다.

고래들은 대부분 신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이 많고, 청동기 시대에 그려진 것은 적은 것으로 볼 때, 청동기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당시 기준으로 수천년 전에 고래를 잡아 횡재한 사람들의 전설을 보고 일확천금을 꿈꾸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특히 고래들이 많은 숫자가 매우 여러 마리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저는 뭔가 기묘한 방법으로 수십마리 고래 떼를 한꺼번에 습격해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부를 사람들에게 안겨준 어느 굉장한 고래잡이 배의 신화적인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반구대 암각화: 사슴, 멧돼지를 그린 부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고래를 잡은 옛 사람들이 고래 특유의 기름, 힘줄, 껍질 같은 것들을 활용해서 여러가지 귀한 물건들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것도 생각 해봅니다. 또한 고래가 있는 바다 까지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뱃사람들, 항해술에 관한 내용도 엮여들만하다고 생각 합니다.


11. 미송리식 토기, 붉은간 토기

(미송리식 토기)

청동기 시대의 그릇들 중에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청동기 시대 초기부터 요동 지역에서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자주 발견되는 미송리식 토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외에 청동기 시대 말기에 한반도 남부 지역과 한반도 동북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붉은간토기라는 것도 꼽아 볼만 합니다.

미송리식 토기는 손잡이가 달려 있고, 입구 자체는 작은데 입구에는 점점 넓어지는 나팔 같은 부분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입구 자체가 작으면 안에 있는 물건이 흔들려도 바깥으로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항아리 모양의 물건에는 물이나 술 같은 액체를 담기에 좋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손잡이가 있기 때문에, 어딘가로 운반하기에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미송리식 토기는 주로 물을 길어 오는 물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기에 좋은 모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동이를 이고 다니면서 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 그것을 방해하는 이야기, 기술, 시험에 관한 여러 가지 전설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물이 부족한 곳에 있는 부자집에서 물동이를 여러 개 마련해 두고 하인들에게 수십 동씩 길어 오도록해서 물을 저장해 놓고 살아가는 경우도 이야기 거리로 생각해 봅니다. 물을 길어 오려면 한참 멀리 가야 하는 지역에서 갑자기 물동이를 다 두들겨 깨어 버려서 낭패를 보게 하는 장면 같은 것도 생각 납니다.

한편 입구 쪽이 점점 넓어지는 모양인 것은 거기에 뭔가를 멀리서 던졌을 때 잘 들어가게 하거나, 혹은 뭔가를 꽂아 놓았을 때 자연스럽게 흩어지면서 모양이 좋게 되고 뽑아 쓰기 좋게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보통 꽃병이 이런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미송리식 토기도 뭔가를 던져 놓는 통이나, 뭔가 긴것을 꽂아 놓는 통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처럼 꽃병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고, 화살이나 어떤 목적으로 쓰는 긴 나뭇가지, 수숫대 같은 것을 꽂아 놓기에도 좋아 보인다고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그릇은 멀리서 뭘 던져서 그릇 속에 넣기로 내기나 대결을 하기에 좋은 모양이라고도 생각 합니다.


(붉은간토기)

붉은간토기는 그릇 바깥 쪽에 색깔을 내는 것을 바르고, 표면이 반들반들해 지도록 갈아 놓은 그릇입니다. 이렇게 하면 겉면의 색깔이 빨갛게 되고, 재질의 광택이 좀 더 좋아 보인다고 합니다. 비슷한 것으로 검은색이 나는 검은간토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릇을 구울 때 가지 모양의 독특한 무늬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위만 조선 멸망 후에 중국 역사에 기록된 내용 중에 보면, 기자가 고조선 지역에 정착해서 풍속을 좋게 한 후에, 이곳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에도 조두(俎豆)라는 제사에 사용하는 격식있고 예의 바른 그릇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풍속에 사치스럽고 음란한 것이 다시 유행하게 되면서 다른 그릇들이 쓰이게 되었다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붉은간토기 처럼 후기에 나온 그릇은 사치스러운 비싼 그릇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비싼 그릇 하나를 실수로 아이가 잘못해서 깨뜨린 것 때문에 큰 손해를 입혀 비싼 돈을 물어 주게 되고 집과 땅을 날리게 된다든가, 그 빚 때문에 노비로 팔리게 된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혹은 유난히 이렇게 그릇을 쓰는 예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엄격하게 예의나 격식을 따지는 사람들은 그릇의 모양과 배치에 집착하여, 사람들을 평하거나 비웃고, 화를 내거나 기뻐하는 이야기도 나올만하다고 생각 합니다. 혹은 부자나 권력자들 중에 그릇을 모으는 취미가 있거나, 그릇을 잘 정비하는 것으로 뽐내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거나, 속임수를 쓴다는 식의 이야기도 상상해 봅니다.


그 밖에...

- 모자란 솜씨로 이런저런 이야기 소개해 보려다가 제가 틀린 부분이나 잘못 생각한 부분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지적해 주실 말씀이나, 의견 있으시면 덧글 주시면 무엇이건 감사히 읽겠습니다. 이 글은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시리즈 부록 입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단군과 전설 속의 이상한 고조선 사람들 2012-11-04 18:26:05 #

    ... 하겠습니다. 1. 신지 2. 여수기 3. 팽우 4. 선인 5. 고시례 6. 배천생 7. 비서갑녀 8. 부루 9. 삼랑 부록1) 전설 속의 고조선 사람들과 역사 부록2) 전설 속이 이야기거리들과 청동기시대 유물 그 밖에... 몇 년 전 평양에서 "단군릉"이란 것을 건설한다고 하면서, 주변을 장식하는 석상들을 세울 때에도 위 인물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more

덧글

  • 솔까역사 2012/11/04 21:49 # 답글

    역사적 사실을 학술적인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의 칼레발라는 19세기 한 의사가 각지의 전설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훗날 핀란드가 러시아에 통합되지 않고 독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또 반지의 제왕도 니벨룽의 노래, 베오울프와 함께 칼레발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네요.
  • 게렉터 2012/11/05 08:45 #

    이야기 소개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면 핀란드는 민족, 언어가 주변에 비해 독특해서 특이한 이야기가 몇몇있지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 존다리안 2012/11/04 22:02 # 답글

    그러고 보면 고대 일본도 거의 직도에 가까운 칼을 쓰다가 이후 조금씩 일본도에 가까운 곡도 형태로 변하더군요.
    유럽이나 중근동은 또 어땠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게렉터 2012/11/05 08:38 #

    일본도 발전에 비교하기에는 시대,기록,유물량이 차이가 커서 진지한 탐구주제로는 아직 넘어야할 과제들이 있겠습니다만, 다양한 유물들의 유형, 개별특징들을 살펴보고 이야기거리로 삼기에는 이것저것 재미난 사연들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 ㄴㅇㄹ 2012/11/04 22:27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게렉터 2012/11/05 08:33 #

    감사합니다.
  • 2012/11/04 22: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05 08: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1/05 20: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08 00: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눈떼굴 2013/02/18 11:05 # 삭제 답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그런데 고대 유물을 응용하는 스토리가 황금가지에 나온 해를 부르는 제사장 이야기와 흡사하군요.
    그런데 이런 시각은 고대사회나 고대인들을 낮추어 보던 서구학자들도 이젠 기피하는 낡은 시각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저 그런 스토리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건 개인의 자유이지만요.
    특히 다뉴세문경의 경우 현대 기술로 재현이 아직은 불가능 합니다. 한 전문가가 힘들게 재현을 했다곤 하지만 비슷하게 흉내낸 정도라고 하는군요.
    고대의 청동기가 지니는 의미가 커다람을 비춰보면 단순히 사치나 기예대결로 볼수만은 없습니다. 갑자기 사라진것도 고려의 청자기술처럼 나라의 운명과 함께했다면 모를까. 그리고 팔주령의 우탁설화를 찾아봤는데 재미있는 얘기더군요. 전 일종의 종교박해로 읽혔습니다만...ㅎㅎ.
    제정일치 시대때의 무당이나 제사장, 샤먼. 뭐 이런 사람들이 단군과 연관이 깊다는 글도 많이 읽었던 터라 현대의 무당처럼 사기꾼으로 묘사되는 글을 본다면 좀 마음이 아플것 같습니다. 일제시대와 새마을 운동때 그런식으로 문화유산이라 할 많은 민속신앙이 사라지고 지금은 기형적인 형태로 남게 되었으니까요.
    괴물에 관한 글도 보고 있으며 비공으로 담기도 합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 게렉터 2013/03/04 21:27 #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요즘에 보이는 사건/사고들은 사기꾼 주술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보니, 요즘 사람인 제가 생각해 보는 이야기의 한계가 이런저런 정도가 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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