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해제 (1975) 영화

1975년작 한국영화 "무장해제"는 1974년 "외다리"시리즈 곧 "찰리 셸(차-리 셸)"시리즈를 줄줄이 찍어서 흥행시키면서 무예 장면을 집어 넣은 활극에 짭짤하게 재미를 본 이두용 감독등의 제작진들이 뒤이어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좀 헐렁하게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당시 한국영화계에 널려 있었던 황당무계하고 어림없는 장면들이 가득한 트래쉬 무비들 수준에서는 벗어나 있어서, 그럭저럭 틀이 잡힌 영화입니다. 그런만큼 대신에 황당한 장면이나 어림없는 이상한 이야기 거리를 보는 재미는 조금 부족하기도 합니다.


(포스터)

이 영화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하면 20세기초 대한제국 군대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해산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 합니다. 그렇게해서 대한제국 군인들은 무기를 모두 빼앗기고 군복을 벗게 됩니다. 일본군들은 대한제국 군인들을 몰아 붙이는데, 어떤 대한제국 군인들은 절대 무장해제를 당할 수는 없다고 저항하다가 벽에 머리를 부딛혀 자결하기도 합니다. 비장한 내용에 비해서 소품과 연출이 초라하고, 연기와 죽는 장면의 효과가 터무니 없어서 엉성하니 다소 헛웃음이 나는 구석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담아 보여준다는 정도의 TV 오락프로그램의 재연 부분 정도의 역할은 해내는 수준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 영화의 본론은, 대한제국 군인들 중 한 명인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친구 두 사람이 일본군에게 저항을 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일본군들을 급습하여 화려한 무예 솜씨로 일본군을 두들겨패면서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무장해제를 당해서 무기가 없기 때문에 맨주먹으로 일본군을 습격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두 사람은 일본군을 공격한 후에, "우리도 너희 군복을 벗기겠다"면서 일본군의 옷을 강제로 벗겨서 속옷바람으로 일본군을 거리에 나뒹굴게 한 뒤에 사라지는 독특한 선전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리하여 이 두 사람의 활약을 보여 주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단점이라면 영화의 중간 부분을 장식하는 두 사람이 습격하면서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그냥 대충 상투적으로 설렁설렁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못만든 수준은 아닙니다. 무예가 뛰어난 주인공 두 명이 짝패로 나타나서, 일본군 수십명을 맨손으로 다 두들겨패서 엎어버린다는 내용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도록 표현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렇다고해서 싸움 장면에 특이한 아이디어가 표현 되어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일본군들이 모여 있고, 그러면 갑자기 두 사람이 어디선가 휙 나타나서, 빙빙돌면서 두들겨패고는 끝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군복을 벗게 된 복수로 '물리적으로 군복을 벗긴다'"는 중심 소재는 풍자성이 강한 내용으로 다양한 웃음거리로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 "무장해제를 당했기 때문에 맨손 무술로 싸운다"는 것도 아귀가 잘맞아들어서 이야기가 매끄럽게 잘 빠지는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역시도 대충 그냥 한 번 제시만 하고 넘어가는 수준이어서, 특이한 맛이 있는 구도를 별다른 이야기 거리로 써먹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싸움 장면 중에서 매우 빠른 연속 발차기로 발로 얻어 맞는 사람의 뺨을 찰싹찰싹 대리듯이 수십대를 패버리는 장면 같은 것은 재미난 기술이기는 하지만, 이 무렵 한국영화에서 남용되고 있다면 남용되고 있는 것이라 그냥 잠깐의 구경 거리 정도였습니다.


(대한제국 군인 주인공을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나타난 일본군)

그러면서도 이야기 중반이 아주 지루하지는 않게 버텨 지는 것은, 어쨌거나 곁가지의 다채로운 이야기 거리를 꽤 많이 던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괴짜 일본군 장군, 일본군 헌병대와 일본군 특무대의 충성 경쟁, 일본군 장군의 잃어버린 훈장, 어쩔 수 없이 배신하게 되는 독립군, 한국 기생을 보고 푹 빠진 일본군 장군과 그 기생의 도움을 받는 독립 운동가 같은 소재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것 하나 이야기를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끌고 가고 있는 것은 없고, 결정적인 전환과 갈등으로 흘러가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뭐 저런 이야기도 나오네"하면서 잠깐 주의를 환기하는 정도입니다만, 그래도 그 정도 역할은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외다리" 시리즈에서 악당 역할을 꾸준히 해 온 배수천의 좀 정신나간 듯하게 우스꽝스러운 일본군 장군 역할은 괴상하게 눈길을 끄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정말로 신선한 사시미를 먹는 방법"이라면서, 어항에서 키우고 있던 금붕어를 맨손으로 잡아다가 씹어 먹으면서 좋아한다거나, TV무대의 코미디 쇼에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넋나간 표정으로 한참 기생을 쳐다보며 감탄하는 장면 같은 것들은 배우의 괴상한 코미디 표정 연기와 어울려서 이상한 즐길거리가 되어 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정도면 이 영화 줄거리를 대충 다 설명할만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의 결전 장면인 마지막 대결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절정장면을, 잠시 별 개의 제 2부로 돌입하는 것처럼 내용을 꾸며 놓았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일본군이 주인공에게 "네 명의 용사들과 차례로 결투를 해서 모두 승리하면 무죄 방면해 주겠다"고 말해서,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선을 긋고 순수한 무술 대회 장면을 한 바탕 보여주는 것입니다. 음침한 고문실, 취조실 같은 시멘트 건물 지하실 방처럼 되어 있는 곳에서, 주인공은 차례로 덤벼드는 일본군의 고수들과 결투를 합니다. 사실 이 장면의 싸움 장면도 굉장히 놀라운 수준이라거나, 무슨 감탄할만한 멋진 연출로 되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이 영화 평균에 비해서 유독 정성들여서 잘 만들어져 있는 편이고, 단 한 명의 주인공이 피로해서 쓰러질 지경인데 악착 같이 계속 덤벼드는 상대편 싸움꾼들과 결투, 또 결투, 그리고 또 결투를 보여 준다는 분위기는 살아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이소룡 무술 영화들의 영향이 역력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악당들이 차례차례 덤벼들어서 마지막 대결전을 벌이는 내용은,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악당들과 결투를 벌이는 "사망유희"나, 결투를 통해 나라의 자존심을 세운다는 "정무문"과 무척 비슷한 형식이라고 생각 합니다. 싸우는 구체적인 수법이 비슷한 장면도 꽤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의 마지막 결투는 선명하게 다른 특이한 점도 있습니다. 독특한 개성이라기 보다는, 당시 저예산으로 급하게 만든 한국 영화 특유의 괴상한 면이라고 생각되는데, 예를 들어서 "네 명만 이기면 된다"고 말했지만 막상 싸우게 되면 아무 설명 없이 예닐곱 차례에 걸쳐 팀으로 덤벼드는 수십명의 적과 싸우는 것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비열한 놈들 네 명이라고 해 놓고 왜 더 나오느냐?" 같은 대사를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왜인지 서로간에 별 말도 없이 그냥 그러려니하면서 계속 싸웁니다. 보다보면, 꼭 각본을 처음 쓸 때는 결투 네 판만 집어 넣으려고 했는데, 찍다보니 무술 잘하는 배우도 생각보다 많이 구해 왔고 상영시간도 좀 남아서 그냥 계속 더 찍었고, 이걸 막판에 급하게 그냥 다 집어 넣어 남겨 두다보니 이야기가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싶은 느낌마저 납니다.

그 외에도 일본군 장군이 패배한 자기편 싸움꾼들을 "죽어!" 따위의 말을 하면서 권총으로 모조리 다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다는 괴이한 장면이 꼭꼭 끼워져 있다든가, 기왕 여러명을 보내서 칼까지 들고 맨손으로 싸우는 주인공을 계속 괴롭히며 결투를 하게 하는 마당에 왜 바로 총으로 쏘아 죽이지는 않는지, 이상한 내용들이 엮여 있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 결전 장면은 주인공의 팔 다리 움직임에, 싸우기 전에 뜸들이면서 서로 위치와 발걸음을 보며 눈치 보는 장면으로 긴장을 만들어내는 장면들까지 잘 엮여 있어서 절정 장면 다운 볼거리 역할은 해 주는 편이었습니다.

그 동안 이 영화가 주로 야외를 무대로 갑자기 나타나 습격하고 홀연히 도망치는 내용으로 되어 있던 것에 비해, 마지막 결전은 아무도 없는 캄캄한 시멘트 방 안에서 도망칠 곳 없이 싸우는 내용이라 대조적인 면도 사는 편이었습니다.


(마지막 대결)

이 영화의 결말을 이야기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그 많은 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일본군 장군은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약속대로 내 보내 줍니다. 주인공은, 주인공의 애인과 친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부대 담장 바깥쪽을 향해 걸어 갑니다. 기다리던 애인과 친구는 주인공이 살아 돌아 왔다면 감격하여 기뻐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대문을 향해 걸어 나가는데, 영화 끝나기 직전에 비겁한 일본군에서는 소총을 든 부대를 보내 뒤에서 주인공을 쏘아 죽이려 합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이소룡 영화 "정무문"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맨손 맨발로 총든 부대를 향해 뛰어 드는 장면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깔끔한 영화라고 보기에는 이리저리 빠지는 면이 많이 있습니다만, 재미난 중심소재를 잘 택했고 싸움 장면이 평균으로는 되어 있는데다가, 지루함을 때워 줄 이야기 거리들이 그런대로 나오고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마지막 절정 장면도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대체로 당시 "권격물"이라고 불리우던 70년대 한국 무예, 격투 영화 중에서 이소룡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들 중 한 표본 역할을 할만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 밖에...

현재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서 어디서건 제대로 볼 수 없는 영화입니다. 다만 미국으로 팔려가서 만들어진 영어 더빙 DVD판이 남아 있어서, 이것이 퍼져 있는 편입니다. 이 DVD판에서는 마지막에 주인공을 총으로 공격하려는 장면을 빼고 갑자기 영화를 뚝 잘라버린 뒤에, 자막으로 "그래서 주인공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며 대한민국의 광복도 보았다" 라고 해 버려서 강제로 해피엔딩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영어 더빙 DVD판에는 얄궂게도 주인공들의 이름을 좀 더 친숙한 것으로 바꾼다고 "코우지" 등의 일본식 이름으로 해 놓았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 상영에서는 한국어 자막을 깔아 놓는데, 영어 더빙의 번역 자막을 깔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갖고 있던 이 영화 대본을 옮긴 것으로 추정되는 원래 한국어판의 자막을 넣어 보여 주었습니다. 영어 더빙과 비교해 보면, 영어 더빙 내용이 좀 더 자연스럽게 대사가 가다듬어져 있는 반면에, 한국어 대본판에는 더 재미난 말들이 많이 살아 있습니다. 가끔 영어 더빙이 완전하지 않아서 더빙 사이로, 원래 한국어로 녹음된 성우들의 목소리 같은 것이 조금씩 들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어떻게 한국어 원판 구해서 제대로 복원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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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2/11/25 16:10 # 답글

    사망유희처럼 마지막 결전장면부터 찍고 나머지를 끼워 맞췄을 수도 있겠군요.
  • 게렉터 2012/11/27 21:47 #

    맞습니다. 마지막 결전 장면이 딱 그렇게 찍어도 될 듯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 2012/11/26 04: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27 21: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황혼에서 새벽 2014/08/25 04:11 # 삭제 답글

    게릭터님이 마지막 엔딩부분을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대문을 향해 걸어나오다가 일본군들이 총구로 발사준비를 하자
    주인공이 대문을 향해 뛰기 시작하고 문밖에서 기다리던 친구도 대문안으로 주인공을 향해 마주 달려들어오던 중
    일본군들의 집중사격에 둘은 포옹하다시피하면서 동시에 나쥥굴며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뒤이어 기생출신 애인이 뛰어들어와 주인공을 껴안으며 통곡을 하다가 일본군을 향해 분노의 절규을 하는데
    뒤이어 일본군들의 집중사격소리가 울려퍼지고 여인의 절규하는 얼굴이 정지화면으로 클로즈업되며 영화는 끝납니다.
    전 마지막 이 엔딩장면을 중학시절 극장에서 인상깊게 보았는지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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