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비밀객 (1977) 영화

"속 비밀객"은 스파이, 비밀요원에 해당하는 예스러운 말로 "비밀객"이라는 말을 쓰는 1977년작 한국영화입니다. 내용은 만주에 생긴 한 조선인 마을에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서로 염탐하고 다투는데, 알고 보면 보물인 황금불상을 손에 넣기 위해 그런다는 내용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런 내용들은 주먹질, 발길질하는 무예, 격투 장면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포스터: 뇌성벽력과 함께 가을비를 맞으며 마주선 사상최강의 무사들!)

이 영화는 한때 "국적불명, 시대불명" 영화라고 무던히도 조롱 받았던 바로 그 시대불명, 국적불명 영화입니다. 이소룡 붐 이전에도 홍콩 쇼브라더스 무술 영화에 영향을 받은 한국 영화들이 있었고, 이소룡 붐 이후에는 홍콩 무술 영화를 흉내낸 한국 영화들이 양산 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단 홍콩 무술 영화를 베낀 장면, 베낀 모습들을 집어 넣기 위해, 중국풍의 배경에서 중국 옷차림과 소도구를 쓰는 내용으로 하긴 했는데, 하여간 그냥 대충 주인공들이 다 한국인들이라고 하면서 나오는 경우가 잦았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다소 극단적인 경우로는 비교적 관객들이 옷차림이나 문화에 낯선, 고려시대 내지는 그 이전을 배경으로 해서, "고려시대에는 이랬다"라고 우기면서 중국 명나라 때나 송나라 때를 배경으로한 홍콩 영화를 베낀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고려물"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는데, 어찌보면, 중국 무협물 베끼는 경향이 잦은 몇몇 TV사극에서 21세기까지 계승되고 있는 풍습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고려물보다 조금 더 핑계를 그럴듯하게 만든 것이, 19세기말이나 20세기초의 만주 한인촌을 배경으로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은 60년대에서 부터 나온 만주를 배경으로한 서부극 한국영화에서부터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국적과 시대가 분명치 않은 모호한 배경을 위해서,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다양한 세력과 정부로 쪼개지기도 하면서 여러 민족들이 뒤섞여 있었던 19세기말, 20세기초의 만주 지역이 나오는 것입니다. 따져보자면야, 이 영화 "속 비밀객"도 바로 이런 계통에서 이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는 모든 주인공들이 뒤쫓는 보물로 이야기의 핵심인 황금불상이 나옵니다. 말하자면 맥거핀인 셈인데, "황금불상"이라는 것은 1970년작 "쇠사슬을 끊어라"의 중심 소재이기도 합니다. "쇠사슬을 끊어라"는 21세기에 부활했던 한국영화 만주물 서부극인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과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 영향을 끼친 영화로도 꼽히는 만큼, 한 계통으로 묶기에는 적당해 보입니다.

단지, "속 비밀객"은 그런 부류의 영화들 중에서도 좀 더 "시대불명", "국적불명"에 심하게 치우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 시작할 때 보면, 시대가 19세기 중엽 정도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래놓고는 놀랍게도 이 만주 한인촌 마을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관동군 복장을한 일본인들이 당시의 제식 소총을 들고 줄지어 뛰어 가고 있는 모습이 시작하자 마자 나옵니다. 그러면, 처음에 19세기 중엽이 배경으로 나온 것은 실수이고, 사실은 20세기 중반 공권력이 약한 무법지대가 많았던 만주국 시절이 배경인 영화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보다보면, 아직 조선이 멸망하지 않은 시기라는 면면이 충분히 보입니다. 그런데 그와중에도 학생 등장인물의 모습은 또 1920년대 무렵 학생복처럼 나오기도 하고, 가끔 양복을 입고 나타나는 사람들은 그냥 1970년대 영화 제작 당시 복장으로도 출연 해 버립니다. 이렇게 노고 보자면 이 영화는, 만사 다 무시하고, 그냥 순수한 상상 속의 세계에 가까운 배경인데, 왜인지 "일본인은 악의 편"이라는 점만이 정해져 있는 정도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1960년대 만주물 서부극에서부터 이런 영화들은 많았고, 따지고보면 원조 서부극이나 이탈리아산 서부영화도 미국 서부를 상상 속의 배경에 가깝게 쓴 경우가 많았으니, 이 방향 자체는 그럭저럭 이해는 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배경과 소품에 실감 나는 것들이 없고, 갈등이나 이야기 전개가 시대 상황과 맞아들며 진지해 보이는 효과도 전혀 없어져 버렸습니다.

좀 더 따져 보면서 이 영화 후반부 이야기를 다 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한 마을을 사악하게 지배하고 있는 조폭 두목 비슷한 일본인 칼잡이 실력자가 나옵니다. 악당에게 지배 받고 있는 마을에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나타나 파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서부 영화의 전형적인 이야기 중에 하나라고 할만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만주물 서부극으로 가고, 30년대 이후 만주국 시절의 만주로 배경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게다가 영화 후반에 보면, 이 사악한 악당이 꿈꾸는 목표는 일본 고위 관리에게 청탁해서 이 마을이 있는 곳의 "성주"라는 자리를 정식으로 얻는 것입니다. "성주"라는 직위 이름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부패하고 행정이 꼬여서 일본인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만주국에 잘 들어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보면, 차-리 셸(찰리 셸, 한용철) 시리즈, 외다리 시리즈 영화들처럼, 아예 만주물 서부극 구도를 적극적으로 살리면서 이야기를 거기에 어울리게 짰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워낙 배경이 모호한 영화로 만든 이야기 답게, 영화의 소재는 신기한 것을 다양하게 많이 끌어 모아 가려고 했던 흔적이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는 조춘이 정체 불명의 이상한 승려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승려는 악당이 잭 나이프 같은 칼을 들고 깝죽 거리자, 그 칼로 대뜸 자기 손등을 스스로 꿰뚫어 버리는 해괴한 짓을 해버려서, 악당을 경악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서 칼을 뽑고 나면, 갑자기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 버리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무슨 도술을 쓰는 것인지 초능력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마법을 쓰는 사람까지 나오는 이야기로 이 영화는 틀이 잡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화를 지켜보면, 이런 소재들이 사실 그다지 많이 나오는 편도 아닌데다가, 몇 가지 나온 이야기 거리들도 앞뒤 잘 맞아들게 재미나게 연결하는 것보다는 대충 몇 장면 보여 주다가 찍은 필름 다 썼다 싶으면 그냥 없던 일로 하는 듯이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면서 버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자니, 영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의 초능력 승려는 이런 초능력을 어떻게 얻은 것인지,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인지, 이런 이어지는 이야기 거리가 될만한 내용들은 조금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예 그런 초능력 쓰는 장면이 그 뒤로 하나도 안나와 버립니다.

내용들이 다 이런 식입니다. 이 영화의 전체 얼개는 중국 음식집 주인과 그 딸의 관찰자 시점으로, 이 마을에 찾아 온 이상한 사람들을 하나 둘 살펴보면서, 그 사람들의 정체와 이 사람들이 찾고 있는 황금불상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나는 형태입니다. 이 마을에 나타는 사람들은, 도술 쓰는 승려를 비롯해서, 세련된 척하려는 양복 입은 남자, 한국 전통 무용을 보여 준다는 무용수, 어딘가 맺힌데가 있어 보이는 과묵한 사나이 등등입니다.

이야기 중에는 무용수가 사실은 밤마다 귀신으로 분장하고 복수를 위해 일본인들을 공격한다거나, 양복 입은 남자가 정체를 숨기고 "요짐보"나 "황야의 무법자"처럼 악당 조직에 솜씨 좋은 대원으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이야기 거리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복잡하게 뒤얽히면서 절묘해지는 것이 아니람는 겁니다. 하다 못해 마구잡이 난장판이라도 되면 지겹지는 않을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듯 하다가 그냥 대충 없었던 것으로 하고 다음 장면으로, 다음으로 넘어 가버리고 맙니다.

그나마 전체 줄거리에 가장 많이 연결되는 인물은 "과묵한 사나이" 입니다. 이 사람은 원수를 갚고 황금 불상을 되찾기 위해 찾아 온 사람으로 밝혀지는데, 사실 무용수의 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싸우다가 악당에게 한쪽 팔을 잃고, 이 사람은 절망하다가 중국음식점 딸의 간호로 기운을 찾습니다. 이 사람은 몸이 회복되자 없어진 한쪽 팔에 무쇠 덩어리를 달고, 그것으로 주먹질을 하는 것을 연마하는데, 결국 어느 계곡에서 그 무쇠덩어리를 내 질러서 계곡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실력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악당과 대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의 "외팔이" 시리즈와 "금비동"의 영향이 짙은 이야기이고, 한용철의 외다리 시리즈와도 비슷한 이야기 입니다만, 이 사람의 내용은 그래도 앞뒤로 이어지고 있고 영화 결말 장면까지 나오는터라 그럭저럭 내용이 자리는 잡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나마 이 인물은 워낙에 "과묵한 사나이"라서 초중반에 한창 이야기가 전개될 때는 정말 비중이 적고, 재미난 장면, 대사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제일 재미 없는 등장인물로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이렇게 이야기가 잡다하고 힘이 부족한데, 결정적으로 속도도 천천히 느릿느릿 넘어 간다는 것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야,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들다가 말고 그냥 스크린 쿼터 때우기 용으로 대충 걸어 버린 듯이 보이는 "트래쉬 무비"급 영화보다는 모양새가 낫기는 합니다. 이 영화는 어쨌거나 앞뒤 내용을 연결하고 뭘 보여주려는 장면인지 알아 볼 수는 있게 꾸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만, 이 영화는 이야기가 천천히 진행되어 지루한 탓에 지금 보면 훨씬 막만든 "트래쉬 무비"급 영화들보다 오히려 더 재미없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자 대장장이"나 "아라한" 같은 영화도 정체 불명의 만주 한국인 마을에서 홍콩 무술 영화의 영향을 받은 줄거리가 펼쳐지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역시, 이런 영화들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넘어가는 지 제대로 알아 볼수도 없을 지경으로 되어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야기 거리가 계속 튀어 나오고, 후다닥 넘어가는 내용 속에 이상한 어림 없는 장면들이 쏟아지는 통에 하여간 지루하지 않게 헛웃음 웃으면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들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느릿느릿 넘어 가는 이 영화, "속 비밀객"은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훨씬 볼만한 점이 적은 영화이지 싶습니다. 천천히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정말로 진지하게 볼만한 이야기 거리나 화려하게 연출된 구경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욱 그랬다고 생각 합니다.

싸움 장면도 거의 대부분 평이한 편이고, 억지로 격투 장면을 짜낸 듯이 보인 것들이 있는 편이라 구경거리는 더욱 부족해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다만, 낮에는 무용수이지만, 밤에는 귀신인척 하면서 싸우는 사람의 격투 장면 중에, 무용 동작을 응용해서 격투를 하는 것이 딱 한 번 나오는데, 이것은 적당히 재미난 정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한 번 뿐이고, 더 재미난 장면을 보여 줄듯했던, 괴상한 승려나 무쇠팔을 달고 싸우는 "과묵한 사나이"는 그냥 심심하게 싸울 뿐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자면, 더 깔끔하고 무게 있는 이야기로 꾸미는 것은 불가능했겠다 싶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조금 더 빠르고 긴장감 있게, 그래서 지루함은 적도록 이야기를 꾸밀 수 있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한용철이나 정소녀, 우연정 같은 나름의 매력있는 배우들, 인물들이 없다시피 했던 것도 이 영화를 좀 더 힘없게 만든 이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 번 해 봅니다.


그 밖에...

이 영화는 시작될 때, 007 제임스 본드 영화 시작할 때처럼, 춤추는 한 여자의 실루엣을 보여주면서 제목과 제작진을 보여 줍니다.

이두용이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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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2/12/11 04: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9 16: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차원이동자 2012/12/11 07:53 # 답글

    황금불상이라하면 다른영화에서도 찾아다녔고 최근에ㅔㄴ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특급열차를 타라에서도 찾아다녔던걸로 압니다.
    설정 제밌네요
  • 게렉터 2012/12/19 16:56 #

    맞습니다. 다찌마와리... 쪽의 이야기가 이어받은 쪽 원류가 쇠사슬을 끊어라 라는 70년대초 영화입니다.
  • Wolverine 2012/12/11 11:26 # 답글

    과묵한 사나이에 관한 내용을 읽어보면 쇼브라더스 영화 중에서 <잔결>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 게렉터 2012/12/19 16:58 #

    맞습니다. 잔결, 금비동 이나 장철 감독작 쇼브라더스 영화들에간접영향 보이는 영화들이 당시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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