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파이 이야기, 2012) 영화

좋은 평을 받고 많이 팔린 소설(파이 이야기)을 원작으로하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기막힌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들은 파이라는 사람에게 그 사연을 들어 보는 내용 입니다. 내용 대부분은 회상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회상은 파이가 독특한 문화와 종교들이 교차하는 인도의 한 지역에서 자라는 내용이 1/4 정도이고, 나머지는 파이가 바다에서 겪은 모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포스터)

이 영화에서 단연 사람을 사로 잡는 것은 아름다운 화면들입니다. 바다에서 모험을 겪으며 벌어지는 압도적인 자연의 풍경이 주력이고, 그 외에도 인도의 한 동네 이곳저곳을 보여 주는 따스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선명한 색채들이라든가, 커다란 영화관 화면에 펼쳐지는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들이 신기한 모습이 중심이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생생하고 실감나게 펼쳐지기도 합니다만, 동시에 진기하고 환상적이며, 미술적인 기교가 풍부한 표현 방법, 기이한 화면 구도등을 활용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바다에서 특이한 물고기를 만나는 장면이라든가, 바다 모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고래를 만나는 장면 같은 것들은 화려한 소재를 이렇게 마술과 같은 환상적인 표현을 마음껏 뿌려대는 대목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초반에 프랑스 한 수영장의 깨끗한 물을 묘사하는 장면처럼 사소하게 지나갈 수 있는 내용이라도 조금 더 재치있게 멋진 묘사를 부려 놓는 장면들도 틈틈히 많았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것들은 도전적인 시도에 깔끔한 화면으로 되어 있고, 널찍한 영화관 화면을 느긋하게 마음껏 쓰고 있어서, 눈에 담기는 것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러고보면, "이건 화려한 장면 많으니까 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라는 것들이 컴퓨터 그래픽 시대 이후로 유난히 잦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그런 많은 영화들 중에는, 정신 없이 뭐가 펑펑 터지고, 휙휙 날아 다녀서 뭐가 지나가고 뭐가 나왔는지 갈팡질팡해서 "내가 뭘 본 건가" 싶은 것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영화는 장엄한 광경, 한참 동안 지켜 볼 수 있는 넓은 풍경을 계속해서 보여 주면서, 그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결과물들을 똑똑하게 지켜보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로 "화려한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라 할만한 영화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맥스로 본다면 효과가 좋겠다는 생각도 유난히 들었습니다.

이런 장면 중에는 "이런 경탄할 만한 광경을 보고 주인공이 감탄했다"는 것을 별도로 보여 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정성들여 꾸며 놓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 속 장면과 반대가 되는 상투적인 영화 연출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장면입니다. 조연 배우가 사소한 문제 때문에 투덜거리고 재잘거리면서 주인공을 보고 떠들고 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눈앞에 나타난 광경을 보고 놀라서 할말을 잃고 멍한 표정이 됩니다. 조연 배우는 그런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채 계속 엉뚱한 방향만 보며 떠벌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조연 배우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놀라운 광경을 넋을 잃고 보고만 있습니다. 조연 배우는 계속 주절거립니다. 마침내 주인공은 조연 배우가 고개를 돌려 자기가 보던 것을 보게 합니다. 조연 배우는 떠들다가 무심코 그쪽을 봅니다. 그러자 그 어마어마한 광경 때문에, 떠벌이 조연 배우도 갑자기 말을 멈추고 멍한 표정이 됩니다. 관객들은 도대체 조연 배우와 주인공이 뭘 보고 저렇게 놀랐는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영화는 뜸을 들이면서 조연 배우가 "세상에, 이럴수가..."라고 헛농담 한마디를 하는 것을 더 보여 줍니다. 관객들은 '도대체 뭔데 그러는거야' 라고 영화 속 두 주인공들이 어떤 걸 보고 있는 건지 보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그제서야 영화는 터져나오는 배경 음악과 함께 두 주인공이 보고 있던 거대한 외계 우주선과 공룡 떼들과 악마 군대 수백만명과 생전 보지 못한 눈부신 미녀를 화면에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기 전에 뜸을 들이고, 그 장면을 보고 놀라는 주인공들을 보여 주면서 "놀라운 광경이고, 그 광경을 보고 주인공들이 놀랐다"는 것을 하나하나 전달해 주는 장면들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그냥 보란듯이 확 놀라운 장면을 화면 속에 바로 풀어 놓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주인공이 감탄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의 놀란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뜸을 들인다거나 하는 짓을 별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에 주인공이 보는 바로 그 넘실거리는 장면을, 극장 은막의 직사각형을 수평선으로 삼아 화면에 온통 뿌려 주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놀라는 얼굴은 보여 주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관객들이 스스로 감탄하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이 감탄하는 그 감정이 바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절묘한 이입입니다. 극중의 등장인물과 그 감정이 영화 바깥 극장의 자리에 앉아 버터에 바른 옥수수 튀긴 것을 먹고 있는 관객들과 그대로 영화 화면에 펼쳐지는 시각적인 인상을 통해 흘러다니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이 영화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을 다시 각색한 것이라는 점과 견주어 보면, 이런 감상을 자아내는 영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느끼는 것과 같은 감흥으로 관객도 같이 느끼게 해 주는 이런 방식은, 이야기와 현실의 관계가 겹겹이 되어 이야기의 분위기를 깊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게 살펴보자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다채로운 활용이 굉장히 잘 들어간 영화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화면 속에 그려 넣어 눈으로 보여 준다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림이나, 그림에서 발전한 보통 애니매이션도 그런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극사실주의로 사진처럼 정밀하게 그린 그림과 차이가 나는 부분을 찾아 집어내 본다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담은 사진, 찍은 화면을 편집하고 변경하고 왜곡하고 뒤트는데에 편리한 기술이라는 점이 와닿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이미 자연에 존재있는 소재, 카메라로 찍어온 화면을 변형하고 이리저리 합쳐서 있음직하지만 환상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는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제 주특기를 톡톡히 드러내는 부분들 아닌가 합니다. 예를 들어서 물에 비친 풍경이 "거울 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런 풍경을 우리가 볼 수도 있고 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을 보여주면서 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통해 이런 특징이 강화되고 왜곡되도록, 풍경을 비추는 수면이 외려 거울 보다 더욱더 맑게 반사하는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에서 실제로도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현장감과 꿈 속의 풍경 같은 공상적인 느낌이 뒤섞여 절묘한 감상을 이끌어내기에 좋다고 느꼈습니다.


(바다 모험 이야기라면 항상 나오기 마련인 "뗏목")

이런 신비적인 풍경들은 좀 더 내딛고 나아가서 몇몇 장면에서는 정말 환상 장면, 꿈 장면으로 치달아 내딛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60, 70년대 사이키델릭 음악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가기도 합니다. 대낮에도 꿈에 빠져 흐느적거리며 인도에 가면 뭔가 색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60년대 히피족들의 미술, 음악, 문화와 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인도이고, 인도 문화, 음악도 중요한 소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연결은 더 눈에 뜨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런 특징들을 그저 복고풍 유행을 한 번 더 털어먹는다는 정도로 쉽게 넘기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몽상적인 문화를 사실 속에서, 실제 풍경 속에서 보여 주려는 영상을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환상의 세계나 먼 미래, 고대를 그린 영상이 아니라, 현장감이 풍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묘사하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몽환적인 심상들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깊은 해저에 대한 상상을 나타내는 장면처럼 그냥 대놓고 상장 장면으로 나타내는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런 장면들 보다는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화면에 보여 줘서, 붕붕 떠다니는 가운데 동물과 친구가 되고 야광 해파리들이 사방에서 어지럽게 춤추며 몰려다니는 모습들처럼, 몽환적인 소재를 사용하지만 현실적인 묘사를 넣어 보여 주는 것들이 훨씬 더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이런 이 영화의 표현은 이 영화의 결말과 이어지면서 힘을 더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이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장면이고 그냥 컴퓨터로 그려넣은 것인지, 혹은 어떤 것은 정말로 바다와 대자연을 관찰하다가 볼 수 있는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것이 이 영화 내내 펼쳐지는 표현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이 겪은 일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쟁하는 이야기 거리와 분위기가 맞아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영화 시작 부분에 언급 되었던 힌두교 신화의 몇몇 소재가 복선 역할을 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더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한 어린 신이 입을 벌렸더니 입 안에 온 우주가 있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한 신이 낮잠 자면서 꾸는 꿈 속의 일일 뿐이라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환상적인 장면과 생생한 자연의 풍경이 같이 나오는 이 영화에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세계관이나 종교관에 대한 다른 소재들도 끌어 들이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신이 돌보아 주고 신의 거룩한 뜻이 항상 함께하는 곳인지, 그런 목적이 없는 자연 현상과 현실다운 현실만 있는 세상인지,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을 한 가지 이야기 거리로 담아내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시작 장면에서 주인공의 종교에 대한 태도를 들먹인다든가, 이야기 시작 전에 "이 이야기를 들으면 신을 믿게 된다."는 말을 하면서 이런 분위기를 어떤 방향으로건 활용해 보려고 강조하는 점도 있었습니다.

돌아보자면, 이 부분은 그렇게 잘 표현되거나 썩 매끈하게 표현 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초반부에 주인공이 "신"이나 "종교"에 대한 특이한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한가지 주인공의 특징으로 시간을 들여 묘사한 것에 비해서, 나머지 이야기는 그렇게 한 관점으로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좀 맺어진다는 쪽으로만 생각하자면, 잘 안풀리는 이야기가 있으니, "인도에는 뭔가 신기한 것이 있고 인도인들은 이상한 족속이라 그 풍습에는 '우리와는 다른' 뭔가 신비한 것이 있다"는 식으로, 대충 뭔지 잘 모르지만 "동양의 신비"로 때우고 넘어 가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어떤 선을 지켜가면서 영화를 "멋있는 화면 위주"로 꾸민 덕택에, 더 은근하게 내용을 담아내는 점이 좋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관객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가 더 깊어지는 면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반에 복선으로 깔아 놓은 것들이 깔끔하게 잘 살지 않은 대신에, 종교 소재들과 상관 없이 구경할 수 있는 더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감흥이 영화의 중심에 잡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의 욥기나, 유치환의 "생명의 서" 같은 시처럼 극한 상황에서 외롭게 버티는 사람을 다루는 이야기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팔자에 이게 무슨 일인가"하는 푸념에서부터, 세상이 다 무슨 의미인지...하는 구도적인 배경이 그대로 감돌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영화 속 호랑이가 그저 지각 없는 야생동물이라는 점을 잘 보여 주면서도, 주인공의 친구 역할도 또 분명히 한 것을 같이 담아 놓은 것을 보면, 세상의 여러 일들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어떤 것인지, 마치 "풍랑이 몰아 닥치는 외로운 바다와 같은" 세상 살이를 하면서 사람이 어떤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지 잘 짚어 낸다는 면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일단 소재만 놓고 봐도,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알 수도 없는 길에, 동반자는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 뭐가 있는 지 알 수도 없는데, 그런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는 내용이니 말입니다.


(호랑이)

이 영화의 장점만 놓고 이야기하다 보니, 어째 영화가 좀 느릿느릿하게 화면을 늘어 놓으면서 약간 지루하게 가는 영화 같기도 해 보이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이 점도 즐거웠습니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고, 지루할 틈 없는 긴장감도 살리려고 하는 영화였습니다.

여기에는 영화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 합니다. 주인공이 과거의 사연을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며서, 중간 중간에 재미 없을 만한 내용은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고 짧게 해설만하고 넘어가고 재미난 장면, 재미난 이야기 거리만 엮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의 나래이션, 설명으로 재미난 말을 해서 이야기 구경을 더 즐겁고 우습게 만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단순한 장면들을 더 애절하고 진지하게 만들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과거 회상식으로 이야기를 꾸며서 장면들을 잘 이어 놓고 동시에 장면장면을 보여줄 때는 그때그때 아름다운 화면을 살리는 영화로는 "포레스트 검프"나 "빅 피쉬" 같은 선례들이 기억 납니다. 이 영화도 그런 영화들 못지 않게 잘 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등장동물로 "호랑이"라는, 살벌하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동물을 배치한 것도 영화가 처지지 않고 끝까지 가게 하는데 한몫 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영화만의 독특한 색이 꽤 있는 편이었던 주인공 어린 시절 묘사에 비하면, 주인공의 바다 모험에서 보고 겪는 소재들은 19세기 해양모험소설에서 흔히 나오던 것들이라는 점이 약간 아쉽기는 했습니다. 따져보면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 모험 장면들로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는 바다 모험에서 매번 나오는 이야기 거리들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랬기 때문에 그런 옛 이야기 책의 장면들을 어느때 보다 생생한 풍경으로 후련하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큼 반갑기도한 영화였습니다.


그 밖에...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큰 역할이라도 하는 것처럼 소개 자료에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오랑우탄보다도 역할이 훨씬 작습니다. 거의 단역 수준의 작은 역할입니다.

가족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장면은 성경 속 노아의 방주 모습과 겹쳐 보이는 점들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얼마나 의도한 것인지 궁금하다는 생각도 한 번 해 봅니다.

결말까지 다 언급하면서, 이 이야기의 종교적인 소재에 대해 교과서스러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런 내용을 살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사건은 호랑이를 보고 우정을 느끼는 이야기로도 볼 수도 있고, 요리사와 살인난동을 벌이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더 진실처럼 들리는 이야기는 살인난동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느 이야기이건 다를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호랑이 이야기를 믿기로 선택합니다. 이것은 유쾌합니다. 그러는만큼 호랑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이런 점이 숭고하게 묘사 됩니다. 이런 선택은 종교에 대한 관점에도 그대로 비교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신이 돌봐 주는 곳일 수도 있고, 신이 없는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을 믿는 것이 멋진 면이 있고 그것이 그 자체로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살인난동 이야기가 더 "진상"같은 점이 있는만큼, 사실 신이 없는 세상이라는 게 더 "진실"에 가깝기는 하다는 배경까지 같이 깔아주는 내용인 셈입니다.

도입부의 이야기들과 이런 내용들이 분명하게 어울려 나타나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더 재밌어진 면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호랑이 이야기" 쪽의 사연을 기억에 남고 그대로 와닿을 수 밖에 없는 생생한 화면들로 가득가득 와닿게 상영시간 내내 눈으로 보여 주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어낸 이야기" 쪽으로 위치를 잡고 있는 호랑이 이야기가 오히려 훨씬 더 실체가 있는 생생한 내용으로 관객들에게 남는 느낌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더 "진상" 쪽으로 위치를 잡고 있는 살인난동 이야기가 그냥 주절주절 말 몇마디로 때우고 넘어 가는 이야기라서 더 그냥 실체 없는 이야기일 뿐인 이야기 같아 졌습니다. 이런 묘한 조절이 있으니, 이 영화는 선명한 모양으로 주제를 내세우는 이야기보다 더 복합적인 구경거리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덧글

  • 남선북마 2013/01/09 10:49 # 답글

    요즘은 왠만한 가정집에는 다 대화면 TV가 보급되다 보니. 영화업계에서도 극장에서만 볼수 있는 특별함에 더 집착하는 거 같습니다.
    예를 들면 48프레임이라던가.. 저되 최근에는 거의 아이맥스에서만 영화를 본거 같네요..
    제르드 드파르디외는 관객들에게 마지막에 요리사 이야기가 등장할때 쉽게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한 각인역할 같더군요..
    일본인 불교신자 얼굴은 생각안나도 요리사의 짐승같던 이미지는 바로 떠오르던..
  • 게렉터 2013/01/11 00:01 # 삭제 답글

    말씀하신 내용 읽으니 저도 그런 생각 듭니다. 그런 점에서도 이 영화는 제 몫 톡톡히 하는 영화였다고 느꼈습니다. 넓은 화면이 번쩍번쩍하고 음악이 사방에서 들리던 것이 기억에 아직도 잘 남아 있습니다.
  • 잘읽었습니다 2013/01/20 22:24 # 삭제 답글

    오늘 보고왔는데요 중간에 일본인 불교신자가 잠시 등장했었잖아요 고기소스가 어쩌고하면서요
    그게 무엇을 뜻하는것이있을텐데 영화끝나고 난뒤에 갸우뚱하게되더라구요 게렉터님 생각은어떠신가요?
    항상 블로그잘읽고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줄거리 2013/01/28 23:30 # 삭제 답글

    고기 없는 국물만 먹으면 괜찮다는 불교신자였죠
  • 악당잰 2013/07/30 23:06 # 삭제 답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게되었습니다. 게렉터님의 글을 보니 영화가 정리되는 느낌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에 내용들을 영화로 전달하다보니 좀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더군요.
    특히 폰디체리에 이야기들은..
    좋은글 감사합니다.
  • 게렉터 2013/08/04 20:46 #

    말씀하신 대로 소설에 비하면 빠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믿을 만한 이야기"의 실체감이라는 측면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와 말로만 전해 주는 이야기의 대비 때문에 어떤게 "종교적 진실"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역설적인 면은 더 잘 사는 부분도 있어서 영화도 이야기의 묘미가 재밌어지는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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