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2012)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서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여섯 가지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여섯가지 이야기는 다들 누구 한사람 이상 죽거나, 그게 아니면 감금 당하고 탈출하는 형태의 격정적인 점이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여섯가지 이야기를 1인 다역을 하는 배우들을 통해 보여 주면서,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 속에 뭔가 깊은 것이 연결 되어 있다는 불교풍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잘 연출된 편인 영화였습니다만, 이야기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줄거리가 단순하고 심심하기도한 영화였습니다.


(포스터)

여섯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9세기, 노예제 농장을 찾아간 주인공이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귀환하는 이야기
2) 20세기초, 가난한 음악가의 이야기
3) 20세기 중반,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언론인의 이야기
4) 2012년, 한 늙은 작가가 의외의 사건에 빠져 모험을 겪는 이야기
5) 미래에서 노예 취급 당하는 복제인간이 난리를 겪는 이야기
6) 인류 문명 멸망 후, 원시적인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 겪는 이야기

이야기들은 틀대로 진행되고 있고, 끝까지 보고 나면 그냥 그런 배경으로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한 번 더 돌릴 뿐인 것 아닌가 싶은 것들이 많은 편이었지 싶었습니다.

그나마 예외에 속하는 이야기가 2012년 배경의 늙은 작가 이야기인데, 이 내용은 상쾌한 파티로 시작하는 첫부분만 놓고 보면 도대체 무슨 황당한 사건이 일어날 지 그 다음을 짐작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사람이 죽어 나가고, 처절한 운명으로 울부짖는 사람들이 나오는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이 현재 배경의 이야기는 즐겁고 가볍고 "진짜 같은 면은 없지만 대신 웃고 넘어 가자"는 투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지하고 장엄한 분위기의 다른 내용들에 비해서 작고 곁다리처럼 보이게 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가장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뒷일 모르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전체에서 하는 역할은 잠깐 웃고 넘어가는 순간(comic relief) 정도 역할 밖에 못하는 듯 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큰 전환점도 없고 별달리 기발한 내용도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좀 기발한 내용이 나와도 될 법 해 보이는데도, 그냥 대강 때우고 넘어가는 것들이 많은 느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20세기 중반의 이야기를 보면, 음모를 캐던 주인공이 악당의 공격으로 물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떻게 이 위기에서 탈출하겠습니까? 기지를 발휘해서 살아 남겠습니까? 아니면 앞뒤 이야기 사이에서 암시된 절묘한 복선으로 내용이 연결되어 기막힌 장면을 연출하며 살아나는 것이겠습니까? 어느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그냥 "열심히 수영"합니다. 수압 때문에 자동차 유리가 깨지는 판에 수영 열심히 한다고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그래도 "아주 열심히" 수영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물쩡 다음 장면에서는 탈출해 살아 있습니다. 주인공이 뭔 배달의 파이터인지, 여기가 무슨 "넘버3"도 아니고.

19세기 배경의 이야기도 비슷하게 아쉬웠습니다. 노예제 농업의 현장을 보여주면서, 인종 차별의 간수에 푹 담가서 절여 놓은 듯한 인간들을 등장하게하는 도입부는 시선을 끌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로든 연결될 수 있어 보이는 출발이었고, 묘사나 대사들이 기억 남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들과 연결되는 모양 속을 놓고 보면, 가장 오랜 옛날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나오니, 원초적이고 상징적인 신화스러운 면이 강한 내용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막상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야기는 그냥 한 가지로 굳어지고 맙니다. 나름대로 반전이라면 반전을 끼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별달리 튼실한 단서나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 없이, 그냥 "에헤라 뒤집어나보자"하고 마는 정도라서 큰 재미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톰 행크스)

특히,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두 가지 이야기는 줄거리만 보면 꽤 실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복제인간 이야기는 "복제인간도 노예가 아니고, 권리가 있다"는 한 가지 소재를, 또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있고, 또 축축한 도시의 밤풍경이 있는 미래 고층 빌딩 도시에서 펼치고 그냥 끝이었습니다. 인류 멸망 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좀 더 도가 지나쳐서 따지고 보자면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인류 멸망 이후 시대의 여러 가지 배경을 하나 둘 보여 주고 슬며시 대강 "기계 장치의 신"으로 이야기 맺어 보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점은 매우 아쉬웠습니다. 전체 구성이 불교 계통과 가까운 철학과 종교의 여러 면면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만큼, 미래 배경 SF물에서는 조금 더 복잡하고 미묘한 이야기, 뒤틀린 갈등과 절묘한 반전 같은 것이 나오는 내용을 기대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복제 인간 이야기를 끝까지 이야기해보자면, 이 이야기에서는 복제 인간이 반란군에 동참하는데, 이것은 반대 방향에서 보자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복제인간을 반란군 쪽에서 납치해서 세뇌시킨 뒤에 자살 작전에 투입했다는 것으로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소 거만하게 묘사되는 반란군 두목이나, 복제인간과 암기한 "선언"을 주고 받으며 정신무장을 하는 듯한 대사가 잠깐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런 쪽으로 이야기를 파고 들어가서 더 갈등을 묘하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결국 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악의 세력이 나쁜놈들, 반란군은 우리편으로만 나눠서 보여주고, 악의 세력은 악의 세력이라는 점을 확실히 강조하기 위해서, 속임수로 복제 인간 많이 죽여 시체 쌓는 장면이나 줄줄이 보여주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것은 대단한 비밀이 있을 것처럼 꾸민 앞부분에 비해 무슨 철지난 반공영화 같아 보여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기왕 정신과 육체를 처음부터 세뇌해서 조종할 수 있는 복제인간 아닙니까? 뭐하러 그렇게 복잡하고 요란하게 속임수를 써서 학살을 저지르는지, 차라리 아예 죽을 때가 되면 자동으로 기능이 정지하거나, 기꺼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프로그램/세뇌하고 말지, 왜 그런 어려운 속임수를 쓰고, 나중에 실체가 탄로나면 눈물 글썽글썽 하면서 분노하게 할 구멍을 만들어 뒀는 지 하는 점은 바로 이어질만한 생각 입니다. 이런 점들을 이야기로 파내서 달리 끌고 갔다면, 훨씬 더 재미난 줄거리가 생기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이 부분 이야기에서 과하다 싶게 모방하는 직접적인 원조 영화인 "블레이드 런너"가 그런 점에서도 더 낫다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기대 거리가 많을만 했던 SF물에서 그나마 무게를 잡아 보려고 쓰는 수법은 기독교 소재를 갖다 붙여 놓은 것입니다. SF물에 성경을 이어 붙이는 수법은 50년대에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같은 대표 작가들이 경지 위로 올려 놓은 이후로 자주 나오던 것인데, 언젠가부터 너무 남용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 합니다. 대충 보고 넘어 가면 그냥 헐렁한 이야기인데 기독교 문화권에서라면 굉장히 신성하고 거룩하고 거창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방법 같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인류 멸망 후 새로운 행성으로 갔는데, 거기에 간 남자 이름이 "아담"이었다더라 하는 류의 결말을 내놓는 잡다한 SF물이 이제는 얼마나 많은가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 주는 것은 어떤 단체가 선동적이고 사회에 불안을 조장한다고 비난을 받으면, "2천년전에 예수도 사회를 선동하는 세력이라고 비난 받았다"라는 주장을 하며 변호해 보려고 하던 20세기에 많이 돌았던 말들입니다. 종교적 전통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서, 예수를 어떤 혁명적인 사상을 제시하고 사람들을 이끌었던 조직 지도자처럼 서술하는 것인데, 한때는 여기저기서 종종 쓰일 때도 있었지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들 중에 좀 과격한 것에는 "원래 예수가 영향력을 미쳤던 것은 그 혁명적인 사상 때문이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그냥 조각상 앞에서 주문처럼 기도 외우면서 복이나 빌고 있다"고 비판하는 소재가 나오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 영화가 긴 세월을 다루는 SF물이라는 점을 활용해서 이런 이야기 거리를 바로 눈앞에 그대로 들이대서, 그냥 가감 없이 이런 소재를 대담하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다른 이야기에서 활용하는 방법과 차이가 있고 시선을 모으는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종교 소재를 장식용으로 억지로 끌어 들인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짜놓은 모양이 자연스럽게 자기 주제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고, 끌어들이는 종교 소재와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고려 시대의 시인 이규보는 성스러운 소재를 함부로 갖다 붙여서 대단해 보이려는 수법은 나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그것을 "귀한 것을 함부로 범하는 문체(凌犯尊貴體)"라고 했는데, 이 영화의 SF 부분 이야기 구성은 참신한 쪽보다는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느낌이 났습니다.

이런 이야기 거리들이 그렇게 참신한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중간에 유명한 옛날 SF 영화에서 인용한 명대사를 일부러 영화 도중에 한 번 언급하고 넘어 가기는 했습니다. "나도 나랑 비슷한 이야기 옛날부터 있었다는 거 알아."하고 먼저 투덜거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 줄거리 자체에 새로운 점이 있는지 없는지 너무 따지지 말고, 옛날 소재라고 하더라도 다시 새롭게 가공하는 재주를 봐달라고 보내는 신호인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본다고 하더라도, 6편의 이야기 각각에 재미난 대사, 멋있는 장면이 뭐 그렇게 있나 돌아보면, 역시 너무 평범하고 따분하다는 것이 단점으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의 서울)

이렇게 저렇게 돌아 보다 보면, 이야기 하나 하나를 따라가기 보다는 결국 여러 이야기들이 엮인 모양 쪽에서 이 영화의 재미 거리를 파볼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여섯 이야기를 합쳐서 보면, 확실히 따로 떼냈을 때 보다는 재밌어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같은 배우들이 1인 2역으로, 1인 3역, 4역으로 나오면서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라 할 지라도 괜히 밀접하게 연결된 느낌이 확 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바로 나타나는 것은 이 이야기 전체 구성이 불교 사상을 물씬 나타내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을 보여 주면서 같은 배우를 사용하는 것은, "이 사람이 이 사람으로 환생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굳어진 수법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누구는 누구의 환생이다", "우리는 전생에 어떤 사이였다"이런 대사가 꼭 직접 안나와도 그냥 그런 것처럼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대사 한 마디, 해설 한 대목 쓰지 않고, 그냥 같은 배우를 다른 이야기 속에서 쓰는 것 만으로 연관 관계가 자꾸 있는 것처럼 머릿 속에 남게 되어, 이야기 구성이 자연스럽게 다채롭게 보이게 되는 점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여러 모습으로 나오는 배우들이 환생 관계와 맞물리지는 않게 해 두기도 했습니다. 환생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어떤 아기는 어떤 대학자의 환생이라서 태어날 때 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다더라." 하는 간략한 이야기로 가는 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묘한 일들이 엮여 보이는 것들이 있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 꿈 같은 것이 이리저리 이상하게 연결 되어 있어서 미묘하게 뭔가 엮인 듯 신비한 느낌을 주는 정도였습니다.

보여 주는 방식도 여섯 개의 이야기를 나누어 차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섯 개의 이야기를 잘게 나눠서 적당히 배분해서 돌아가면서 나누어 보여 줍니다. 거기다가 각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 하나도 차근차근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 과거 회상조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에는 이렇게 여러 사람의 연결된 인생이라는 소재를 이야기 하면서, 심지어 세상이 시간순으로 차례대로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식의 생각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수많은 사람들의 많은 인생들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차례 대로 이어지는 긴 끈 다발과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 동시에 나타나 있는 풍경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미래에 벌어지는 사건을 어렴풋이 느끼고 영감을 받기도 하고, 직접 연관 관계가 없는 먼 미래에 아주 오랜 과거에 떠올렸던 생각이 구체화 되어 나타나는 순간도 보여 줍니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답답한 시대는 무의미하고 진취적인 시대는 보람차다는 관점을 넘어 서서, 모든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저마다 가치 있고, 짧은 인생의 시간의 한계와 관계 없이 한 사람의 인생과 마음은 우주 전체에서 중요한 한 지점이었다는 느낌도 나게 했습니다.

이런 것은 시간의 흐름 조차 초월 가능한 것으로 보는 불교의 "무거무래무주(無去無來無住)" 사상과 통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 합니다. 다른 것 없이 이런 생각만을 소재로 해서 가득 채운 이야기로는 듀나의 "태평양횡단특급"에 실려 있는 "끈" 같은 단편 소설이 생각 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끈"에 비하면 덜 재미있는 편이고, 은근히 분위기 까는 정도로 이런 이야기들을 써먹는 정도입니다만, 그래도 재미를 더하는 면모로 보였습니다.

불교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에는 아주 긴 시간을 두고, 몇몇 등장인물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간접적인 인연을 이루고 있는 장면도 몇 군데 나온다는 점도 기억 납니다. 이런 장면은 불교에서 "인연"을 강조하는 연기설을 그대로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거리는 이 영화의 구조 속에서 훨씬 더 확실하게 나올 수 있었습니다. 몇백년을 떨어진 시간을 두고 영향을 주고 받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이야기는 길어 지고 구구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시간 대의 이야기 여섯 가지를 처음부터 계속 번갈아 가면서 끌고 나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백년 전의 이야기를 하다 말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수백년 후의 시간으로 편집해서 건너가도 이상할 게 없는 것입니다. 먼 시간, 먼 공간을 떨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 바로 이어져 있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장면 전환 사이에 바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긴 시간, 서로 다른 배경, 서로 다른 인물을 풍부하게 동시에 다루면서 지나가는 이 영화의 구조를 잘 살린 재미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간촐한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보여 주기 위해 이야기를 잘 자르고 잘 조립해서 붙인 솜씨를 진짜 구경거리로 삼은 영화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이 영화에는 한 이야기 속에서 같은 심상으로 연결해서 장면 전환을 하는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19세기 이야기에서 돛단배의 선실로 문을 열고 들어 가는 사람의 장면이 나오는데, 그 다음 순간에 장면 전환 되면서 20세 이야기에서 높게 층을 올린 빌딩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 가는 것입니다. 인기 있었던 대중 소설인 "퇴마록"이나 "은하영웅전설" 같은 곳에서는 장면 전환 부분마다 심심하면 이런 수법을 쓰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무척 많이 나왔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고보면, 70년대 한국 권격 영화 "용호대련"에서도 괴상하게 이런 수법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는 점도 기억 납니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연결해 붙인 것이 재밌었던 부분은, 이런 수법 자체 보다는 그렇게 해서 이야기를 끊어 놓고 붙여 놓은 시점들이었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지 더 기대될만하게 잘 끊어 놓고, 그렇게 하면서도 다른 시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 가는 느낌이 들게 잘 갖다 붙여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되는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기다리게 되듯이, 같은 이야기라도 더 재미있게, 더 긴장감 있게 보여주는 방법들이 더 살아났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나 변주되는 음악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 사이에 연결되어 흘러 다니면서 이어져 배경 음악으로 울려퍼질 때,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더욱 더 응집도 높게 보이게 되는 것은 훌륭한 효과였다고 생각 합니다. 음악 자체도 좋았고, 몇 백년에 걸쳐 떨어진 이야기를 펼쳐 보여 주는 데도, 그 이야기들이 동시에 펼쳐지는 것처럼 보여서 여섯 이야기들이 화음을 이루는 것 같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의 별 상관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영화 속 세계에서는 같이 연결되어 펼쳐지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마치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흔히 나오듯이, 주연이 악당 두목과 싸우고 조연이 악당 조무래기들과 싸우는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주다가 둘 다 같이 이기면서 끝나는 것을 보여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정말 멋졌던 부분은, 이런 이야기들이 이렇게 조합된 덕분에, 결말 즈음에 가면 비극과 희극이 절묘하게 어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펼쳐지는 이야기들 중에 어떤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만화 같이 유쾌한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이고, 어떤 것은 19세기 오페라 같은 정형화된 비극입니다. 그 사이에는 적당히 포기하고 대신에 적당히 성취를 거두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이렇게 동시에 펼쳐지면서 묘하게 연결된 덕분에, 에누리 없는 처절한 비극인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그 속에서 긍정적인 희망의 감상이 감돌게도 되었습니다. 반대로, 허황되기까지한 희극적 결말인데도, 어째 감개무량한 인간승리 같은 느낌이 서리게 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문자 그대로 희극과 비극을 교차시켜 놓은 덕분에, 실제 우리 인생의 여러 풍경들에는, 그렇게 순수한 비극도 없고, 매끈하기만한 희극도 없다는 치밀한 느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은 다른 영화에서는 결코 보기 쉽지 않은 이 영화만의 멋이었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주요 배역들이 1인 다역을 하는 배우들이 맡고 있는 만큼, 배우들의 연기 솜씨가 멋지게 드러는 순간이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톰 행크스는 "이런 배우를 두고 옛날에는 코미디언 출신이라서 연기력이 어떻다 하는 말이 돌던 시절도 있었구나" 싶은 웃음이 나올 정도였고, 휴고 위빙처럼 잘 하는 역할을 맡아서 "이런 건 내가 세계 최강이다" 싶게 보여 주는 배우들도 꽤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벤 위쇼나 배두나 역시 마찬가지 였다고 생각 합니다.


(휴고 위빙)

여러 부분을 살펴보는 동안에도, 저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독특한 면이 적고 간촐한 점은 단점이라는 생각은 계속 남았습니다. 하지만, 좋게 보자면, 그렇게 간촐하게 간 덕분에 그냥 정통 수법으로 최대한 잘만든 것이 참 잘 찍었다 싶은 부분도 곳곳에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서 20세기 초의 가난한 음악가 이야기는 가난한 음악가 청년, 부잣집 도련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악인 등등이 등장하는 거의 규격화되었다고 봐야할만한 내용으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결말도 딱 맨날 가던대로 입니다. 그런데 그렇게하면서도 참 이야기를 잘 가다듬어 놓아서 그런 부류 이야기의 표준 자리를 꿰어 찰듯한 정성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잘못 흘러가면 "인간들 간의 차별"을 다루는 것으로 휘어 잡혀 묶일 만한 소재들 속에서 감동 짜내려고 무슨 피해의식에 빠진냥 여러번 애쓰기만 하다가 무너질 수도 있었을텐데, 그래도 열심히 엮어간 영화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밖에...

한글 자막은 비교해보자면 성실하기는 한데, 번역한 사람이 자기는 이해한 것을 혹시 관객들이 잘 모를까봐 자기가 이해한대로 설명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지나치게 많았다고 생각 합니다. 나쁘지 않을 때도 있겠습니다만, 오묘한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이런 영화에서는 굳이 필요했나 싶습니다. 어차피 영어권 관객들이라고 다 옛날 영화 챙겨보고 이해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닐텐데, 유명한 옛날 영화 대사 인용이 나올 때는 굳이 해설하지 않고 그대로 직역해서 보여 주는 것이 차라리 영어 듣기 잘 안되는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 아마 많이들 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배두나가 나오는 미래 시대의 배경은 "네오 서울"이라는 미래의 서울입니다. 영어가 공용으로 쓰이고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섞인 미래의 도시로 별로 "한국"스러움은 없는 곳입니다. 그래도 중간에 뭔가 미래의 제복을 입은 병사 같은 사람들이 잠깐 나오는 데, 이때 나름대로 한국적인 분위기 낸다고 한복 저고리를 변형시킨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어째 초등학교 운동회때 꼭두각시 놀음할 때 어린이들이 입는 저고리처럼 보여서 상당히 웃겨 보였습니다.

덧글

  • 달려옹 2013/01/15 05:01 # 답글

    책에서 주요 포인트만 추려내고 스토리를 바꾸다 보니 복제인간들의 성격같은 설정을 제대로 설명못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손미의 모험은 절반정도 날아갔고 나머지 에피소드도 결말이 조금씩 다르더군요
  • 게렉터 2013/01/15 07:59 #

    저는 책은 안읽어 봤는데 영화로 만들면서 더 재밌어진 연출, 편집, 배우들이 있는만큼 원작에서 날아간 것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영화중에 종합적으로 어떤 것이 더 재밌는지도 궁금합니다.
  • 역사관심 2013/01/15 06:14 # 답글

    배두나가 나오는 미래 시대의 배경은 "네오 서울"이라는 미래의 서울입니다. 영어가 공용으로 쓰이고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섞인 미래의 도시로 별로 "한국"스러움은 없는 곳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건 아니겠지만, 현재 서울의 모습이 씁슬하지만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스러움 없는...
  • 게렉터 2013/01/15 07:58 #

    그래도 저는 꼭 전통적인 한국문화 요소가 아니더라도, 좀 난잡해도 뭔가 한국색있는 도시 풍경을 잡아 넣을 수 있기는 했을 거라고생각합니다. 거리에 술먹고 있는 직장인들이 연탄불에 삼겹살 구우며 허허거리며 와글와글 소주 마시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라도.
  • 역사관심 2013/01/15 09:34 #

    그것도 훌륭한 한국'스러움'(전통)이지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 rumic71 2013/01/15 15:02 # 답글

    미래의 세종시...
  • 게렉터 2013/01/18 19:52 #

    영화 속에 나오는 네오 서울은 확 난개발 된 것 같은 모습이, 그래도 대도시로 있던 역사가 긴 서울이나 부산 같은 곳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고보면, 지금 같은 식으로 세종시가 좀 기형적으로 자라나는 방향이 수습되지 못하고 확 망가진다면 그것도 또 다른방향으로 아주 괴상하고 놀라워 보일 거라는 상상도 됩니다.
  • 남선북마 2013/01/15 16:01 # 답글

    미래 서울의 한국 문화요소가 한글밖에 없다는건 실제로 그럴가능성이 높으니 그렇다고 치고..
    명색이 워쇼스키가 보여주는 미래도시인데.. 기존 SF에서 수도 없이 써먹었던 클리셰들을 한치도 변함없이 흉내만 낸것 좀 안이한것 같더군요.
  • rumic71 2013/01/15 16:18 #

    원래 워쇼스키의 특기가 클리셰 버무리기 아니겠습니까.
  • 게렉터 2013/01/18 19:53 #

    너무 블레이드러너 시절 틀과 가까운 모습이라는 점은 저도 좀 아쉬웠습니다. 모양 자체가 가까웠다기 보다는, 복제인간/인조인간 소재에, 또 동양적 분위기이다 보니 더 연상이 심하게 되어서 그런 점도 있었다고 돌아 봅니다.
  • 2013/02/07 09: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04 21: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05 00: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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