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 2012)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는 60년대에 나온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 “장고”에서 제목을 따온 2012년작 서부영화 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제목과 시작 장면에 나오는 배경음악만 따왔을 뿐 내용은 아무 상관도 없는 영화로, 줄거리는 노예였던 주인공이 어찌저찌 해서 동료와 함께 미국 남부를 떠돌아 다니는 현상금 사냥꾼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아내를 구출하기 위해 한 판 크게 싸운다는 것입니다.


(서부 영화의 주인공 일행)

두 부분으로 나뉘는 느낌이 많이 나는 영화였습니다. 첫 부분은 노예였던 주인공이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현상금 사냥꾼이 되었으며 어떻게 자리 잡아 나가는 지를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두번째 부분은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아내를 구출하기 위해 일을 벌이는 내용이었습니다. 두번째 부분의 말미에는 지금까지 영화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로 매우 빠르고 흥겹게 총격전을 펼치는 막판 대결전이 붙어 있어서 거의 영화가 세 토막으로 되어 있다고 할 만도 해 보였습니다.

3시간 가량 되는 영화라 시간을 넉넉히 쓰는 만큼, 이렇게 이리저리 바뀌어 가는 영화 분위기와 내용을 저마다 살려가며 채워 놓고 있었습니다. 돌아보자면, 전반과 후반이 나뉜 느낌은 내용을 잘 조정해서 2부작 영화로 꾸며도 될만했다는 정도였습니다. 내지는 중간에 막간 휴식이 있고 앞부분과 뒷부분이 나뉘어 있는 기나긴 대작 영화 같아 보이는 면도 있었습니다.

전반부에서는 주인공 일행이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며 이야기를 펼치는데, 후반부에서 미시시피에 있는 노예 시장에 온 후에 그 근처에서 사건을 벌입니다. 그런데 후반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미시시피 노예 시장 장면으로 넘어 갈 때 화면 좌에서 우로 커다랗게 “미시시피”라는 자막이 흘러 갑니다. 마침 이 영화는 노예 제도와 남북전쟁 전후 상황이 중요한 배경이기도 한 영화여서, 이 자막이 꼭 옛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시작 장면에 나오는 제목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런 옛 영화처럼 전반-막간휴식-후반으로 나뉜 긴 영화 같다는 느낌도 들었나 봅니다.

두 가지 이야기 중에 앞부분 이야기는 빡빡한 줄거리에 계속해서 흥미로운 위기와 수수께끼들을 던져 주면서 빠르고 경쾌하게 나가는 편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많고 사연이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뒷부분의 이야기는 내용을 앞뒤로 미리 정해 놓고 그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부여 주면서 내용을 채우는 형태였습니다. 말해보자면, 이야기가 적고 감상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서 자기 만의 왕국 같은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악당 두목에게 긴 시간 험한 길을 지나 찾아 가는 대목은 “암흑의 핵심”이나 “지옥의 묵시록” 같은 이야기에서 정글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미치광이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 분위기의 이야기 중에, 저는 앞부분 쪽을 더 재밌게 봤습니다. 앞부분이 재밌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에게충분히 빨려 들어서 뒷부분도 괜찮아졌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빠져 들었기 때문에, 미시시피를 기준으로 내용 구성이 자뭇 달라지는 영화인데도 막상 영화를 볼 때는 그렇게 뚝 잘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지켜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부분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제시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노예는 지금 왜 여기에 와 있고 어디로 끌려 가고 있는 건지, 노예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치과 의사는 뭐 하는 양반이고 이 노예를 왜 찾아 왔는지, 이 양반은 이제 어디로 가는 건지, 이 양반이 찾아간 마을에서 갑자기 보안관을 만났는데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 것인지. 문제를 자꾸 던져 주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더 진기한 장면을 보여줘서 “저건 또 왜 저러는거야”하면서 더 놀라고 더 궁금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하면서 부드럽게 무슨 사연인지 설명을 듣고 싶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걸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이 어떻게 살아 왔고, 어떤 성격의 사람들인지 하나 둘 비밀을 드러나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의외의 상황과 이어지는 위기들을 주인공의 숨겨진 사연과 연결시키고, 그렇게 해서 하나 둘 등장인물들의 비밀을 보여 주고 진행하는 내용들이 신나고 빠르게 잘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을 억울하고 불쌍해 보이게 잘 꾸며 보여주고, 동시에 악당들은 혐오스러우면서도 어디에서도 있음직하게 잘 꾸며 놓은 것들이 잘 먹혀서, 주인공이 악당과 싸울 때 그만큼 더 통쾌해지는 대목들이 있었다는 것도 효과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서부 영화 다운 맛이 잘 사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비정하게 싸우고, 흙먼지 진흙 구덩이로 지저분한 떠돌이 총잡이들이 돌아다녀서 괜히 더 어둡고 더 진짜 같은 느낌을 살리는 때도 가끔 있었는데, 정말 “장고” 같은 옛날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의 특징이라던 것이 잘 산다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가지 더 꼽아 볼만한 것은, 이 영화에서는 비정하고 처절한 감상을 살리기 위해서 흑인 노예 제도의 악랄함을 소재로 계속해서 써먹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광경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사악한 상황들을 영화 속에서 늘어 놓는 것입니다. 따져 보자면야 이런 이야기들은 인종차별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로 간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그냥 강한 소재니까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힘으로 활용한다는 정도에 더 가깝다 싶었습니다. 꼭 옛날 “굿바이 엉클톰”같은 영화처럼 과격한 풍자로 이어질 만한 내용이나, 어처구니 없는 장면으로 이목을 붙잡아 두려는 목적이 먼저였다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전반부와 막판 결전에서 지속해서 신나는 서부 영화 총싸움 이야기로 바람을 잡아 가는 영화니 만큼, 이 정도 수위로 무거운 소재를 연결해 놓은 것이 아주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전반부와 막판 대결전에서는 웃기려는 장면, 우스꽝스러운 대목들에도 꽤 무게를 많이 싣고 있었습니다. 그런만큼 이렇게 웃는 분위기가 풍자로 이어지는 바람에, 처절한 노예 제도를 좀 가볍게 써먹는 이야기 거리들이 잘 어울리는 점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만약에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을 정말로 처절하게 한답시고 자극적으로 나가던 이야기를 휘몰아쳐서 대뜸 후반부에 갑자기 신파극으로 나아 갔다면, 어느 이야기 하나 제대로 살지 않고 엉성한 재미 없는 이야기로 무너져 내렸을 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적당히 껄렁한 영화로 길을 파 놓고 이것저것 이야기 거리를 주워 담는 길에, 기가 차 보이는 풍자로서 흑인 노예 제도와 관련된 험한 대사, 장면들이 툭툭 떨어지는 것이 괜찮은 방법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웃고 넘어 가는 길에는 음악이 재미를 더한 부분도 꽤 컸다고 생각 합니다. 서부 영화에 어울릴 법한 음악이나 독특한 운치를 잡아 내는 낭만적인 음악을 쓰던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 음악 같은 것을 잘 쓰고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노래나 가사가 재미난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깔아 버리면서 재미를 더하는 부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킬 빌” 같은 영화처럼 음악이 절묘하게 딱 맞아 들어서 기가 막히다는 부분은 없는 듯해서 아쉽다면 아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개성이 강한 노래들이 잠깐 잠깐 재미와 웃음을 더 돋구어 주고, 뭔가 장난스럽게 놀리고 지나가는 것처럼 즐거움을 더해 주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남부 목화 농장의 갑부 농장 주인 - 배우는 자세히 보면 돈 존슨 입니다.)

배우들 중에는 주인공들의 모습도 잘 봤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악당 역할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 악당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사무엘 L. 잭슨 두 사람이 기억에 남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괴상한 광기와 이상한 허세에 찌들어 있으면서도 부유한 갑부 특유의 화사하고 요란한 맛을 계속 뿜어 내는 모습이 그만이었습니다. 항상 약간 맛이 간 사상에 빠져 있는 멍청한 면모를 유지하면서도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 때의 날뛰는 모습은 날카롭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과 영웅 같은 면을 같이 갖고 있는 “주인공 다운 주인공”으로 나올 때가 많은데, 이런 모습이 악당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팽팽하게 겨루는 느낌이 잘 살면서 재미를 더했다고 생각 합니다.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워낙에 배우 개인으로 인상이 강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영화 속 역할을 잘 하는데도, 영화 속 세상에서 사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할리우드 인기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모습이 조금씩 비쳐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옛 영화를 별로 본 적이 없는 젊은 관객들이라면, 아역 배우 시절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아 온 관객들에 비해 좀 더 더 이 인물이 재미나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에 비하면, 사무엘 L. 잭슨은 훨씬 더 영화 속 세상에 실제로 살아 있는 인물처럼 보이게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말 한 마디 한 마디, 말투 하나 하나, 표정 하나 하나가 아주 재밌고 독특해서 이 영화 후반부의 영화 내용을 공짜로 두툼하게 만들어 주고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사무엘 L. 잭슨 쪽에 부족했던 것은 줄거리의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활약이 조금 적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L. 잭슨이 이렇게 재밌는 대사, 장면을 많이 차지하는 인물을 맡았는데도, 정작 이 인물이 주인공의 생사나 싸움의 결정적인 방향을 좌지우지 하는 대목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로 재미난 등장인물이라면 좀 더 결정적인 활약을 하도록 하면 더 좋지 않았겠나, 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긴 영화로 잡아서 초반부는 흥미를 끌게 나아가고, 후반부는 조금 더 느긋하고 아슬아슬하게 진행하면서 이것저것 풍성히 많이 담아 놓은 영화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 말미의 막판 대결전은 거의 별책부록처럼 느껴질 정도로 또다른 내용이 달라 붙은 분위기였습니다. 비교적 어두운 분위기의 후반부에 비해 막판 대결전은 거의 총 쏘면서 춤추는 뮤지컬처럼 영화가 흥겹게 내달리고 신나고 웃기게 잔치를 벌이듯이 싸웁니다. 2층으로 되어 있는 집 안에서 탄환이 빗발치고 총 맞은 사람들이 피흘리며 다 박살내며 싸우는 싸움 장면들은 홍콩 느와르 영화 전성기의 2층집 결전 장면들과 똑같은 분위기인데, 좀 더 빠르고 더 장난스러울 정도로 경쾌하게 연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겁게 내려 앉았던 후반부에 비해, 막판은 꼭 “바스터즈: 나쁜 녀석들”때 처럼 마치 막연한 공상 같은 느낌으로 매듭짓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 보다는 이 덩치 큰 긴 영화에서 좀 더 매끈한 결말을 찾았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잠깐 들기는 했습니다. 그 외에도 그때껏 묘한 이야기의 굴곡을 도맡아 나갔던 가장 재치가 많았던 인물인 치과의사 출신 현상금 사냥꾼이 마지막 총질을 할 때는 “그냥 홧김에”라는 식으로 별 대책도 없이 단순하게 한 번 밀어 붙이고 말았던 것도 결정적인 영화의 전환점인 것 치고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대로 악당 쪽에도 악당을 사기쳐도 되고 죽여도 될만한 인물로 보이기 위해 “만딩고 파이팅”이라는 잔인한 짓을 무척 좋아하는 인간으로 보여 주고 있었는데, 굳이 한 줄기 벗어나 보이는 잔인한 짓 하기 장면을 써서 이렇게 죽어도 싸다는 이유를 보여 주기 보다는 좀 더 매끈하게 이야기를 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도 가볍게 웃으며 지나가는 경쾌한 총질 싸움 영화로 지나 가면서, 노예 제도와 인종 차별에 대한 내용도 거기에 어울리게 풀어 놓은 이야기로 이어 붙이는 균형이 그럭저럭 맞아 떨어진 영화였다고 느꼈습니다. 초반에 촘촘하고 이야기가 꼬이고 풀리는 데 재치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더 갈등이 무거운 후반이 우직하고 단순해서 조금 처지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서부 보다는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면서도, 정통 서부 영화 다운 맛이 사는 확 트인 북아메리카 대륙의 풍경에서부터 옛날 이탈리아산 영화 같은 진창 속에서 탄환이 날아 다니는 화약 냄새도 화면에 잘 잡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살벌한 장면을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고 놀래키는 술수도 없이도 빨려 들만한 이야기로 꽉 틀어 쥐고 나가고 있었으니, 인상 깊은 소재를 다룬 재미난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화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손에 피 묻히고 설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피가 원래 묻은 게 아니라 영화 찍다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다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피를 흘리는 모습을 활용해 가면서 미친 것처럼 설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즉흥 연기가 훌륭해서 그대로 영화에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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