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비언 (Oblivion, 2013) 영화

“오블리비언”은 돈을 집어 넣어 말끔하게 만들어내려고 노력한 영화면서도 SF물하면 떠올릴만한 SF물 다운 재미거리를 충실히 맛볼 수 있게 꾸민 재미난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돈을 많이 쓴 영화를 만들다보면, 흥행해야겠으니 거대한 전쟁 장면을 화려하게 넣는다든가, 코미디, 연애담, 신파극 같은 걸 많이 휘젓는다든가 혹은 팬들을 위해 던져 넣을 만한 이야기 거리들을 최대한 끌어 와서 하여간 많이 엮어 놓는다든가 하는 경우를 요즘에 여럿 봐 오다 보니, 이런 점이 더 좋게 보였습니다. “오블리비언”은 지구에서 인간이 떠나간 먼 미래에 마지막 관리자로 주인공이 파트너와 단 둘이 지구에 남아 일을 하면서 시작하는 내용으로, 무슨 임무를 어떤 식으로 하는 사연인지, 주인공을 방해하는 적의 비밀은 뭔 지에 대한 것이 서서히 밝혀지는 것이 영화 내용입니다.


(포스터)

“오블리비언”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탁 트인 경치였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 없는 텅 빈 지구를 톰 크루즈가 여기저기 싸 돌아 다니면서 드넓은 평원이나, 빙하 지형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산맥 같은 것이 아주 훌륭하게 화면에 잡혀 있었습니다. 풍경은 아름답고, 그 풍경을 가로지르는 흰색 계통 옷을 입은 톰 크루즈의 모습도 항상 좋은 구도로 멋지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도록 먼 외계행성의 모습을 근사하게 그려 놓은 SF 소설 표지 그림을 보면 “저건 또 무슨 기이한 이야기일까” 싶어서 책 내용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마치 그런 아름다운 그림처럼 그런 모습들이 잘 잡혀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영화 화면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주인공이 달리면서, 날아다니면서 그 풍경을 지나친다거나, 풍경이 주인공의 움직임에 따라 흘러가면서 넓게 시야에 들어오게 해 놓았는데, 보다 보면 그냥 무심하게 넘기게 될 수도 있지만 이런 것은 그냥 풍경화, 찍어 놓은 좋은 풍경 사진과는 또 다른 구경거리라고 생각 합니다. 가만히 있는 장면이 아니라, 영화 화면 답게 움직이는 화면으로 풍경을 드러내서 그 평화롭고도 신비롭고 그러면서도 황량하고 쓸쓸하고 외롭기도한 감상이 잘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지구의 인류 문명 멸망 후 상황을 중심 소재로 다룬 SF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들은 더 특색있게 보입니다. 상당수의 인류 문명 멸망 후를 다루는 SF물들은 지구가 대충 멸망한 후라는 상황이라는 점을 상상해서 배경을 항상 거대한 쓰레기장과 무너진 건물의 칙칙한 지하실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암담한 느낌과 갑갑한 느낌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서 이기도 했을 것이고,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꾸민 중저예산 SF물에서는 그렇게 쓰레기장 같은 곳을 배경으로 쓰는 게 꾸미는 돈이 덜 들어서 제작비가 확 줄어 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오블리비언”은 그런 방향을 중심에 삼지 않고 있었습니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깨끗한 미래 세계의 유니폼을 입고 매끈하게 생긴 미래 세계의 기지에 머물고 있고, 배경은 그저 넓게 펼쳐진 대자연의 모습으로 환하게, 텅빈 느낌을 더 강조시키는 밝은 조명 속에서 계속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인간이 없어진 세상”에 식물과 동물들이 다시 번성하게 된다는 내용의 요즘 나온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하는 맛도 있으면서, 이 영화에서 주특기로 내세울만한 멋진 운치를 잡아 냈다고 생각 합니다.


(미래의 컴퓨터)

그런 구경을 하면서 지켜보자면, 이 영화는 이렇게 좋은 배경을 바탕으로 깔끔하게 꾸며 놓은 예산 잘 들인 미술, 소품을 바탕으로 해서 SF물들의 전통적인 소재들을 여러가지 풍부하게 꾸려서 잘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에는 멸망 후의 세계에서부터, 외계인과 인간의 전쟁, 로봇, 우주선 같은 SF물하면 바로 떠오르는 고전적인 소재들이 다들 중요한 비중으로 이야기 속에 참여하면서 나옵니다. 거기에다가,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유전자에 관한 이야기 같은 황금기 이후에 유행한 SF물의 단골 소재들도 같이 나오고, 역시 대충 넘어 가는 것 없이 나름대로 이야기에 중요한 비중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덕분에 이 영화는 SF물, 특히 SF물하면 딱 떠오를만한 SF물을 하나 구경하기에 무척 좋은 영화라는 생각도 한 번 해 봤습니다. 시리즈물에서 인기를 끈 주인공의 인기로 영화의 재미를 때워 나가는 것도 아니고, 별달리 웃긴 장면이나 특출난 때리고 부수는 장면이 중심이 되어서 재미를 이끌어 나가는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SF물 답게 줄거리가 뒤집힐 때 보는 사람을 고민하게 하고 토론해 볼만한 공상적인 고민 거리들을 던져 주는 게 중요한 위치에 잡혀 있는 영화였습니다. 거기다가 그 못지 않게 중요하게 나오는 것이,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우주선, 미래의 로봇, 미래의 총, 미래의 컴퓨터, 미래의 음식, 미래의 옷 모양이 눈길을 끌고, 재밌고, 멋있게 보이도록 잘 꾸며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니, 그럴듯한 디자인, “미래의 풍경”하면 딱 떠올릴 만한 기계, 집들이 영화 속에서 움직이면서 계속 나오는 모습이 즐거운 구경거리였다고 생각 합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이야기나 줄거리에 정말 신선한 특색은 약간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필립 K. 딕 소설들이 많이 생각 났습니다. 줄거리들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몇 년 전에 나온 필립 K. 딕 소설 한국어판 단편집 제목이기도 했던 한 단편 소설과 똑같은 수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보안을 위해서 사람의 기억을 건드린다는 소재라든가, 혼자서 움직이는 기계 덩어리가 돌아다니는 풍경도 필립 K. 딕 단편 소설에서 인상적으로 나오던 것 아닌가 합니다. 영화 각색판인 “토탈리콜”처럼 이번에도 “꿈 속에서 자꾸만 보는 여자”가 중요한 소재이자 복선으로 나온다는 것은 또 어떻습니까.

줄거리 뿐만 아니라, 이 영화 특유의 황량한 분위기도 묘하게 필립 K. 딕 소설 속의 외계 행성, 화성 풍경과 비슷한 느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가족적이기도 하고, 사람 없이 넓디 넓은 공간이 자유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절망감이 감도는 쓸쓸한 분위기인 것이 계속 그런 소설들이 생각 났습니다. 그러다보니, 꼭 필립 K. 딕 소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영화의 이야기들이 아주 새롭고 신선한 것이라기보다는, 약간 끌어 모은 느낌이 나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의 막판 결말은 어떻게든 할리우드 영화 답게 몰아 가려고 여러가지 무리수를 다 끌어 모아다가 써서 부드럽게 나아가던 전체 내용에 비해서는 좀 힘겹다 싶기도 했습니다. 아마 아닌게 아니라 진짜 필립 K. 딕 소설이었다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결말로 끝냈지 않았겠나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이 영화만의 특징이 쉽게 잊혀질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조용하고 쓸쓸한 분위기로 은은하게 진행해 나가면서도, 계속해서 미래 세계의 진기한 구경 거리들을 계속 보여 주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뭘 계속 부수고, 심장을 울리는 음악을 자꾸 터뜨려 대야만 지루함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작진들도 많은데, 이 영화는 황량한 여러가지 풍경들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품들을 하나씩 조용히 꺼내 놓으면서 계속 재미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무너지는 건물에서 뛰어내린다거나 미친듯이 북을 쳐대는 요란한 음악을 틀지 않으면서도 텅빈 풍경이 태초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장엄한 느낌이 나도록 하고 있고, 높은 하늘에 치솟아 있는 매끈한 건물과 조각 같은 남녀들이 마치 신화 속의 장면처럼 움직이는 모습이어서 내용을 음미하기가 더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톰 크루즈)

톰 크루즈는 주인공 다운 주인공 모습을 톰 크루즈 답게 잘 맡아서 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배우 본인이 수십년동안 일반인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의 삶을 살면서, 말끔한 주인공을 수도 없이 맡아본 억만장자 배우우라서 그런지, 미래세계의 비현실적인 괴상한 사람 느낌 같은 것이 항상 감도는 듯한 것도 이 영화에는 썩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다만 웃기는 부분에서는 훨씬 더 재밌게할 배우들이 있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톰 크루즈의 보좌역으로 나온 첫번째 여자 주인공 역할인 안드레아 라이즈보로도 괜찮았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두번째 여자 주인공 역할로 나온 올가 쿠릴렌코는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멀쩡한 편이기는 했는데, 톰 크루즈와 같이 서서 활약하기에 “꿈 속의 여인” 같은 압도적인 데가 있는 외모나 신비로운 느낌은 부족 했다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오블리비언”에서 방사능 구역으로 가지 못하는 지역이 왜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나, 결말에서 여러가지 한심하고 엉성한 계획들이 영화 같기만해 보이게 모조리 다 맞아드는 점 등등, 줄거리의 몇몇 부분은 SF물의 특징이 중요했던 이야기 치고는 흠을 남기는 내용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한편으로는 잠깐잠깐 웃기는 장면들도 좀 엉성하게 계속 어긋나는 느낌들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서 맨 마지막에 톰 크루즈가 욕 한 마디 하는 것도, 영화 분위기를 조금 바꾸고 훨씬 더 욕을 재밌게 하는 배우가 했다면 훨씬 더 흥겹게 꾸밀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아니면, 대사를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만, 정리되어 있는 SF물의 면면들이 정갈한 장면들 속에서 훌륭한 풍경, 고즈넉한 분위기로 계속해서 재미나게 펼쳐지는 것의 특색이 항상 즐거운 영화였다고 느꼈습니다. 따지고보면 이런 영화도 오랫만에 구경해 본다 싶었습니다.


그 밖에...

필립 K. 딕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고보면 돈을 많이 쓴 영화이면서 SF물 줄거리를 굉장히 크게 써먹는데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조용한 분위기가 있다는 점에서 “블레이드 러너”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어둠컴컴하고 답답한 “블레이드 러너” 분위기랑은 정 반대 입니다만. 톰 크루즈가 주인공이다 보니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생각나고. 특히 나온지 벌써 한 참 지났는데도 아직 신형 컴퓨터의 독특한 조작 장면 나올 때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생각부터 먼저 하게 됩니다.

아무 것도 영화 보기 전에 모르고 봤기에 한 반쯤 봤을 때, 이거 분명히 필립 K. 딕 원작 영화 각색판일 거라고 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막지막에 자막 올라갈 때 필립 K. 딕 이름이 크게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막상 보니까 영화 감독이 지은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라고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밀려 닥치는 생각이, 이렇게 영화로 특색 있게 꾸몄으니 망정이지 만약에 영화 없이 그냥 대충 소설로 먼저 냈다면 필립 K. 딕 어설픈 아류작이라고 굉장히 놀림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덧글로 skysurfr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이 영화 속 옷차림이나 기계들 모습은 요즘 컴퓨터 게임 속의 미래, 외계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게 컴퓨터 그래픽을 워낙 많이 써서 요즘에는 시각효과를 쓰니까, 컴퓨터 게임 쪽 그래픽 작업에서 인상을 남긴 사례와 서로 영향을 더 긴밀하게 주고 받기 때문인지 어떤지도 궁금해지고 그렇습니다. skysurfr 님께서는 하프라이프2랑 포탈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영화 속 약탈자들 모습 보면서 배경도 멸망 이후이다 보니 "보더랜즈"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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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kysurfr 2013/04/27 20:49 # 삭제 답글

    SF나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축복이었죠.
    여러 작품에서 본 클리셰들이 잘 섞여서 그런지 만큼 아는 만큼 보이는 작품 같아요. 전 게임 하프라이프2와 포탈이 생각났어요.
  • 게렉터 2013/04/28 09:56 #

    저도 보면서 게임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본문 중에도 넣어야 겠습니다. 특히 톰크루즈 옷이나 총쏘는 모습, 적들의 모습, 날아다니는 비행체, 로봇들 모습들이 컴퓨터 게임들과 무척 비슷해 보였습니다.
  • SM6 2013/04/28 17:07 # 삭제 답글

    영화자체는 아직 못 봤지만, 도입부만 본다면 P.K.딕의 단편 '귀중한 유산'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있네요.
  • 게렉터 2013/04/30 08:23 #

    반전이 그대로 노출됩니다만, 말씀하신대로 "귀중한 유산"과도 무척 닮았고, 중심소재는 아예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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