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The Master, 2012) 영화

“마스터”는 2차대전 참전용사로 방황하고 있는 알콜중독자 젊은이인 주인공이 우연히 몰려 다니는 “마스터”와 그 추종자들을 만나게 되고, 자기도 그 추종자의 일원이 되어서 같이 다니게 된다는 이야기인 영화입니다. 음침한 범죄영화 같은 느낌은 아니고 오히려 밝은 조명과 분명한 색상이 많은 영화였습니다만 대체로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로 되어 있는 영화이고, 그러는 가운데 허상에 가까운 “심령 치료” 비슷한 것을 믿는 이 조직과 지도자가 어떤 사건들을 겪어 가는지, 여러 면면들을 지루하지 않게 묘사하는 영화였습니다.


(포스터)

이 영화에서 다루는 조직이 믿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이비 종교 같은 것이지만, 더 정확히 보면 종교라기보다는 무슨 괴상한 “기 치료”나 “심령 치료”를 굳게 믿는 사람들에 가까웠습니다. 이 영화의 “지도자”가 하는 것은 일종의 최면술과 그 비슷한 정신적 충격 요법들인데, 최면술로 보는 환상들이 단순한 개꿈이 아니라 정말로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믿어서, 우주의 진리에 닿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 영혼의 본체를 나타낸다는 식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중반부 이후의 영화 줄거리는 이런 내용들의 면면을 볼만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만 핵심까지 치고 들어가서 긁어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2차대전 참전용사 개인의 사연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이런 새로운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깨달은 사람”인것처럼 고고하고 도가 트인 사람 행세를 하는지,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신비롭게 보며 따르는지, 그러다가 일이 꼬이면 그 “깨달은 사람”이라던 사람 조차도 화를 내고 욕을 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서 우스꽝스럽고 실망스러워 보이게 되는 지,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도자 자신이 자기의 추종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거나, 사기꾼으로 몰린다거나, “깨달은 사람”이라는 위대한 선전과 달리 초라하게 전단을 나눠주는 잡상인 같은 모습이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도 빠짐 없이 다루고 있었습니다.

이 지도자의 이야기는 종교적인 계시와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어서 재미난 개성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 지도자는 선택된 신의 위임자가 자신이라는 식으로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성스러운 혼령의 지시를 따른다거나, 자신이 고대 경전의 비밀을 알았다거나, 외계인이 준 신비한 초능력이 생겼다는 선택된 자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지도자가 갖고 있는 그릇된 믿음이란 그런 종교적인 것 보다는,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학문 쪽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연마한 기운이 들어간 물이나 약을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병을 고친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괴팍한 노인이나,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어떻게 집중하면서 수련을 하면 장풍도 쓸 수 있다고 믿는 괴상한 체육인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의 이론과 학문의 탈을 쓴 체계를 만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믿고 퍼뜨리고 있는 것은 최면술과 괴상한 심리가 만들어내는 극적인 감동과 환영 속에 정말로 대단한 우주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2차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40, 50년대에 미국에서 정신 없이 퍼지던 사이비 정신분석학 물결 풍조와 맞아 떨어지면서,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들을 훨씬 더 실감나고 구체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40, 50년대 모습 중에 사람들 옷차림, 머리 모양이나 백화점 풍경 같은 몇몇 이야기들은 무척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그 자체가 구경거리가 될 정도였습니다. 주인공이 사진 찍어주는 몇몇 사람들은 정말 50년대 사진관에서 가져온 사진 속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이니, 꿈을 해석하고 최면술로 환상을 보게 한 것을 나름대로 괴상하게 해석하면 새로운 진리처럼 보인다는 이 영화 속 사연들이 흥미롭게 잘 펼쳐졌습니다. 보고 있으면, 최면술 비슷한 수법으로 저 정도니, 60, 70년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막강한 마약과 환각제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면, “진짜 세상에 중요한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히피족 성자들과, 구루들, 깨달은 자들이 왜 그렇게 넘쳐 났는지 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한 단체)

이 영화의 내용은 이런 괴상한 지도자 및 그 단체의 이야기와 함께,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좀 더 비중 큰 주인공의 인생사를 다루는 내용이 같이 흘러 가면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로 이야기가 꾸며져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였습니다. 우선은 관객이 좀 더 과거와 상태를 많이 알고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서, 지도자에 비하면 더 평범해 보이는 이 주인공의 시각으로 괴상한 지도자를 보게 만든다는 점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좀 더 평범한 주인공의 눈으로 지도자를 보면서 “과연 이 지도자가 정말 뭔가 대단한 사람일까, 아니면 알쏭달쏭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소리만 잘 늘어 놓는 헛소리 꾼인가”하는 의심과 궁금증, 조마조마한 느낌을 잘 전달해 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지도자를 만나고 같이 다니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심경이나 변화를 더 잘 전달해 주기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감정을 좀 더 크게 살려서 눈길을 끄는 자극적인 장면들을 틈틈히 지루함 가시도록 끼워 넣고, 더 놀랍고 강한 상상 장면 같은 것들도 끼워 넣으면서 영화를 더 흥미롭게 끌고 가기도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한편으로는 오갈 곳 없는 방황하는 사람, 2차 대전 참전 용사들이 어떤 식으로 절망을 겪고 있고, 억눌려 있는 문제들을 가진 사람이 왜 저런 황당한 믿음에 잘 걸려 드는지 짐작하고 느끼게 해 주는 면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발 떨어져서 호아킨 피닉스가 보는 시선을 이용해서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감정들, 서글픈 한계들을 더 멋있어 보이게 표현하는 면도 컸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대놓고 대사나 행동으로 표현하면 “이 놈이 나쁜 놈이구나” “이 놈이 미친 놈이구나”하고 딱 잘라서 말하면 간단한 사연이 될만한 부분이라도, 애매하고 몽롱하게 처리해서 뭔가 더 미묘하고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시각을 이용해서 슬쩍 보여주기도 하고, 암시만 하고 안보여주기도 하면서 살짝살짝 가려 나가고 조금씩만 드러내는 이야기 속에서 그렇게 묘한 감상으로 그려내 주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할 무렵)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솜씨 좋다고 느꼈던 부분을 꼽아 본다면, 반복되는 장면들, 여러번 거듭 나오는 심상들,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같은 대사들을 서로 다른 상황에서 거듭 나오게 하면서 이야기를 재밌게 짜놓는 각본 솜씨였습니다. 여러 번 나오는 햇빛에 비치는 바닷물의 파란 모습 부터, 무심코 인물들이 던지는 한 마디, 지나가면서 욕하면서 떠드는 소리들을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잘 살리고 있었습니다.

복선으로 활용하는 것들도 예민하게 겹겹히 잘 조직되어 있었고, 관객에게 구구하게 입으로 설명하는 것 없이 보고 스스로 생각해서 직접 느끼게 하는 점들도 잘 살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그 때 쟤가 그런 소리 한 적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훨씬 더 화나 겠구나” 하는 식으로 옛날 대사, 장면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서 더 영화에 빠져들어서 보게 해주는 효과가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꾸며 놓은 이야기를 보다 보면, 지도자와 주인공의 관계라는 것이, 두 사람이 만나서 웃으며 껴안는 장면에서는 어째 애완동물과 주인이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 그러니까 동물주인이 개나 고양이를 다스린다고 생각하지만 지내다보면 개나 고양이에게 주인이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는 부분도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편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술집에서 어떤 아가씨를 만난 다음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지도자와 주인공의 관계가 좀 끈적하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이런식으로 꼭 영화 속의 다른 등장인물 하나가 나와서 “쟤를 애완동물처럼 생각하네요”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사를 하지 않아도 그렇게 상상 되기 좋게 앞뒤 사연을 맞춰 반복해 가면서 꾸며 놓은 덕분에 그런 느낌을 은근히 느끼고 보고 떠올리기 좋게 잘 맞춰져 있었습니다.


(빠져들기 시작하는 무렵)

이 영화는 정신 나간 믿음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이런 괴상한 믿음에 대한 소재만 밑바닥까지 파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정확한 사연은 신비롭게 숨겨서 안가르쳐 주는 부분도 많고, 괴상한 믿음 자체 보다도, 그런저런 사연 속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의 인생 살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인생의 인간적인 문제와 고민들을 드러내는 것도 비중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호아킨 피닉스가 맡은 주인공과 그 개인 사연에 더 큰 비중을 싣고 있으니 더 그랬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로도 명쾌하고 격정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괴상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추고 지나가는 가라앉은 분위기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영화였으니, 잘못하면 영화가 어중간하게 이야기를 다루다가 확 재미없어져 버릴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복선과 상징적인 장면들을 여러번 써먹는 기교가 훌륭해서 훨씬 볼만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지도자 역할을 맡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모습은 영화에 딱 필요한 만큼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좀 더 구경거리가 되는 배우는 역시 주인공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순진한 세상 멋모르는 골치덩어리 병사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겉늙어 보이는 무시무시한 정신 나간 놈 같기도 하고, 혐오스러운면서도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술에 쩔은 모습은 진짜 술 먹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제대로 술에 쩔어 보였습니다. 이야기 속에 어울리지 않게 혼자 튀는 것 없이 실감나게 자연스럽게 섞여 있으면서도, 곳곳에 얼굴 표정, 걸음걸이, 말투가 영화로 볼만한 장면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당시 시대 노래들 중에 낭만적인 곡들을 골라서 애잔하게 활용하고 있는 음악도 좋게 들리는 부분이 많은 영화 였습니다.

사이언톨로지가 생기던 때를 소재로 한 이야기라는 말이 파다한 영화이고, 정말 사이언톨로지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간간히 있기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정말 “사이언톨로지 창시자나 추종자들의 사건을 다룬다”고 할만한 영화는 아니었다고 느꼈습니다. 사이언톨로지에 관련된 사건, 사고, 자료에서도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은 이야기 정도로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덧글

  • 이원 2013/08/04 21:28 # 삭제 답글

    에이미 애덤스는 좀 어떤가요? 봐야한다면 큰 이유 중 하나라서. ㅎㅎ
  • 게렉터 2013/09/02 21:35 #

    출연 시간은 많지 않은 편인데, 비중은 큰 역할이었습니다.
  • 갑인 2013/08/05 03:25 # 답글

    최근에가장즐겁게본영화인데다시한번생각하게되네요-잘봤습니다^^
  • 게렉터 2013/09/02 21:35 #

    감사합니다. 저도 몇몇 장면은 기억에 남습니다.
  • ㅇㅇ 2013/08/05 11:46 # 삭제 답글

    영화가 정말 미묘하더군요. 알 듯 말 듯.
  • 게렉터 2013/09/02 21:35 #

    조직에 대한 이야기와, 개인 방황의 이야기가 반반씩 들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 소바 2013/10/05 09:23 # 답글

    와, 이 영화 후기는 블로거들 중 처음 보는 듯 하네요. 저 역시 호아킨 피닉스의 재발견을 한 기분이었습니다 ㅎㅎ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구루와 참전병사 간의 묘한 집착관계가 과연 뭘 의미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끙끙거리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다는..ㅋ
  • 게렉터 2013/10/07 00:02 #

    사실 좀 모호하고 여러가지 의미를 흐릿하게 섞어 가는 기색이 많은 편이고, 어떤 부분은 좀 대충 때운다 싶은 느낌도 있고 반면에 그래서 신비롭고 궁금해지는 맛이 재미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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