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말괄량이 (1961) 영화

1961년작 한국영화 “언니는 말괄량이”는 유도 도장 주인의 딸이 있는데, 유도의 고수인 이 사람이 “말괄량이”라서 시집을 안가서 아버지가 고민이라는 이야기가 배경입니다. 그런데 동생의 남자친구와 그 친구가 이리저리 엮여서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버릇을 고친다”는 이야기 입니다. 내용 자체는 특이한 구색도 별로 없는 느릿느릿한 편인 이야기입니다. 재미난 부분을 찾아 본다면, 영화에 담긴, 60년대초의 서울 풍경, 여러 옷차림이 하나 같이 잘 어울리는 조연 엄앵란의 모습, 몇몇 장면에서 괜히 이상하게 멋있게 잘 찍힌 화면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영화였습니다.


(말괄량이 문정숙)

이 영화는 나름대로 모양은 갖추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내용이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흘러 가는 편이고, 장면이 이상하게 잘려 있다거나, 앞뒤 사연도 안 알려주고 확 다른 내용으로 건너 뛴다거나 하는 부분은 없는 편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야기는 계속해서 뻔하게 흘러가기만 하고, 그나마 느릿느릿 천천히 진행이 되어서 사실 정말 재미난 부분이 보이는 편은 또 아니었습니다.

전체적으로도 문정숙의 모습이 무척 안어울린다는 점도 사실 꽤 큰 문제였습니다. 문정숙은 노회한 팜므파탈이나, 산전수전 다 겪으며 고생한 사람에 어울리는 모습처럼 보일 뿐이어서, 이 영화 속 “말괄량이”의 천방지축 날뛰는 밝고 경쾌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 주는데는 상당히 어색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괜히 과하게 어린 척, 귀여운 척 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전반부는 그나마 나았습니다. 선 보는 남자들마다 줄줄이 퇴짜를 놓는 “말괄량이” 언니 문정숙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흘러 가는 가운데, 미술을 하는 남자친구를 사귄 엄앵란이 남자친구가 만든 마네킨을 밤에 잘못 보고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오해하는 이야기가 같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엄앵란 남자친구의 친구와 주인공 문정숙이 엮여 들게 되는 등, 사연이 여럿 나오면서 얽히고 섥히는 가운데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실없는 농담도 재미가 있건 없건 나오긴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는 전화를 받을 때, 사람을 성으로 부릅니다. 그러니까, 곽재식을 찾을 때 “거기 곽 있소?”라고 말을 하고, “김을 만나서 내 소식을 전해 주시오.” 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이 나씨인 사람이 김진규가 맡은 남자 주인공이라, 이 양반은 전화를 받으면, “나 입니다.”라고 말하고, 상대방이 잘 못알아 들으면 “내가 나란 말이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한편, 성이 노씨인 김진규의 친구는 전화를 받으면 “놉니다” 라고 말해서, 상대방이 “놀려면 곱게 노시오!” 라고 말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영화가 처음 시작 될 때, 문정숙과 엄앵란이 딱 요즘 젊은이들 "셀카" 찍는 분위기로, 카메라를 자동 촬영으로 설정해 놓고 사진 찍으려고 하는 대목이라든가, 그 사진에 갑자기 끼어 들어서 문정숙과 엄앵란에게 찝쩍거리다가 문정숙에게 얻어 터지는 잡악당들이라든가, 사진 현상을 맡기고 찾으러 갔는데,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게 나온 것을 보고 사진관 주인 김진규에게 "이렇게 현상을 못했냐"고 억지를 쓰며 따진다든가 하는 그런데로 옛날 분위기가 정다우면서도 그 시절 젊은 사람들의 밝은 느낌은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사진관을 하는 김진규와 미술을 하는 이대엽)

아쉽게도 후반부로 갈 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단순해지고, 어떻게 꼬인 사연을 풀어갈 지 방법도 점점 없어져서 그냥 억지를 쓰면서 밀고 나가는 통에 내용은 재미가 적은 편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결혼한 “말괄량이” 문정숙이 열받아서 집 나오는 부분 전후입니다. 김진규는 전업 주부인 문정숙이 아침부터 자기 화장을 하는데만 신경 쓰고, 밥상을 차려주지 않아서 불만입니다. 문정숙이 퉁명스럽게 굴자, 김진규는 열받아서 문정숙에게 싸대기를 날리는데, 그러자 유도의 고수인 문정숙은 김진규를 붙잡아 내던져 버리고, 집을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고루한 이야기이지만 나름대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사연이고, 문정숙이 유도의 고수라는 점을 이용해서 이야기에 개성을 넣어 주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정숙이 유도 도장인 친정으로 돌아 오자, 친정 아버지는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고는 문정숙에게 “유도의 마지막 한 가지를 더 가르쳐 준다”면서 문정숙과 유도를 하면서 문정숙을 무수히 내던져서 아주 떡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말괄량이처럼 사냐고 꾸짖는데, 문정숙이 “그럼 때리는데 맞고 있어요?”라고 하니까, 아버지는 “맞을만 하면 맞아야지”라고 합니다. 문정숙이 동의하지 않으니, 아버지는 더욱더 문정숙을 내던지는데, 문정숙이 괴로워 숨이 넘어 가려고 하자, 심지어 “이럴 바에 차라리 내 손으로 널 죽이겠다!”고 까지 아버지가 외쳐 버립니다.

갑자기 무슨 변태적인 범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흘러가 버리는 것이 매우 안어울리고, 대사들도 무척 황당하게 들립니다. 즐겁고 밝은 코미디로 출발했고, 결말을 지켜 보아도 권선징악의 평화로운 교훈극 분위기로 되어 있는데, 이런 극단적인 내용이 그냥 별것 아닌것처럼 대충 영화 도중에 끼어 있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유도복을 입고 흠씬 내던져져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문정숙의 모습이 흑백화면에서 잘 설정한 조명을 받고 괴상하게도 매우 아름답게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유도로 딸을 패대기치는 아버지)

하여간 문정숙은 쓸쓸하게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 가고 있고, 머리에 반창고를 붙인 남편 김진규는 친구와 팔자타령을 하며 술을 먹고 있습니다. 남편은 문정숙을 반갑게 맞아 주는 편인데, 문정숙은 각방을 쓰자고 합니다.

그러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어느날 밤에 집에 갑자기 도둑이 들어서 문정숙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막으려다가 도둑에게 더 두들겨 맞습니다. 분노한 문정숙이 도둑을 두들겨 패서 떡을 만들어 버린 후에 남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말은 문정숙이 한복을 차려 입고 숭늉을 잘 끓여 줬고, 구두를 잘 닦아 놓았다고, 김진규가 칭찬을 해주고, 그러면 문정숙이 애교를 부리며 뽀뽀해 달라고 하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더더욱 재미 없게 막을 내려 버리고 맙니다.

줄거리 본론이 이런 식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잔재미는 있습니다만 큰 재미는 없고, 중반 이후로는 무척 어색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거리로는 영화 속에 숨겨져 있는 다른 몇 가지가 눈에 뜨이는 것이 있습니다.


(이대엽과 엄앵란)

일단은 문정숙 동생 역할의 조연으로 나온 엄앵란의 모습입니다. 엄앵란은 지금 관객의 눈으로 보면 얼굴이 그렇게 화려한 미인은 아니고, 당시의 다른 영화 배우들과 비교해 봐도 더 눈에 띠는 얼굴의 배우들도 적지 않은 편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점은 표시가 납니다.

그런데, 엄앵란이 괴력을 발휘하는 대목은 의상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점입니다. 갸냘픈 당시 엄앵란의 몸매 때문인지, 수수해 보이면서도 당당하고 귀해 보이는 얼굴 때문인지, 당시 60년대 초반, 50년대 후반 당시 한국에서 찾아 볼 수 있었던 여러가지 옷차림이 하나 같이 매우 잘 어울립니다. 이런 점은 예스러운 옛날 영화 분위기와 어울리면 훌륭한 구경거리라고 생각 합니다.


(엄앵란, 김승호, 안성기)

또 한가지는, 화면 연출이 아름다운 부분들이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밝은 코미디 느낌의 이 영화에 거의 아무런 도움은 안되지만, 순간적으로는 멋진 면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막판에 급하게 마무리를 짓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 도둑이 드는 장면에서 도둑이 살금살금 잠을 자고 있는 집으로 들어올 때, 흑백 느와르 영화처럼 도둑의 얼굴을 강조하고 그림자와 조명의 대비를 살리는 화면이 잡혀 있는데 이게 분위기가 확 살면서 무슨 정통 범죄 영화의 중요한 장면 같이 멋지게 보이는 면이 있었습니다.

또 중간에, 문정숙이 고민하는 중에 옛날에 문정숙에게 행패 부리다가 두들겨 맞은 잡범들이 와서 시비 거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문정숙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때려서 당신들 화가 풀린다면 때리세요.”

라고 말하고, 맞는 장면이 있는데, 이 맞는 장면이 어림 없게도 퇴폐적인 암흑가를 다룬 영화나, 비정한 다툼을 다룬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맞는 장면 같은 것처럼, 뭔가 중후하게 화면에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전체 방향에는 거의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심지어 밝아야 마땅할 줄거리를 방해하는 면도 많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앞뒤 안따지고 보면, 몇 초간은 보기 좋은 장면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첫 데이트로 높디 높은 산으로 등반을 가는 김진규, 문정숙)

끝으로, 싸움 장면이 잘 알아 볼 수 있게 들어가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 영화보다, 10년, 15년 후에 나온 영화들을 보아도 영화 속 격투 장면들이 심하게 어색한 것은 널려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처럼, 일반 여배우, 그러니까 무술을 익힌 전문 배우가 아닌 배우가 싸우는 장면을 연기하는 경우에는 누가 어딜 때렸는지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엉망인 싸움 장면도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유도 기술을 어떻게 쓰는지, 내던져지면 얼마나 아프겠는지 꽤 잘 알아 볼 수 있게 잘 촬영한 편이었습니다.

싸움 장면 자체가 멋지거나, 화려한 기술을 묘기 처럼 감상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격투 영화의 수준은 결코 아니긴 합니다. 그냥 “싸운다”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는 정도 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만한 것도 의외로 찾아 보기가 쉽지는 않으니 주목할만한 점은 있다고 생각 합니다. 중간에 잠깐 젊은 시절의 엄앵란이 유도로 남자들을 패대기치는 장면이 들어가 있는데, 어느 곳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기억해둘만한 한국 영화의 한 순간 아니겠나 싶었습니다.


그 밖에...

시네마스코프 촬영 영화로 잘 찍은 화면들이 잘 어울려 보기 좋은 곳이 몇몇 있습니다. 중간에 두 주연/조연 커플이 데이트를 하면서, 첫 데이트로 “하이킹”을 간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첫 데이트인데도 사소하게 적당한 수목원이나 산책로를 가는 것이 아니라, 화끈하게 북한산 정도 되어 보이는 높은 산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보이는 높은 곳에서 보이는 옛날 풍광이 화면에 잠시 나오는데, 눈여겨 볼만 하다고 생각 합니다.

문정숙에게 선 보러 온 남자 중에 한 명은 무슨 운동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듣자, “글쎄요. 둘이서, 방안에서 하는 것, 그게 운동이라면 좋아하지요.” 정도의 말을 하며 음흉하게 낄낄거립니다. 그러자, 문정숙은 긴치 않은 말을 몇마디 주고 받다가, “그러면 일어서 보시죠. 한번 해 볼까요.”라고 합니다. 남자는 얼굴에 땀이 흐르면서도 화색이 돕니다. 물론 다음 장면은, 당연하게도 문정숙이 유도 도장으로 남자를 데려가 메치기를 해서 패대기쳐 버리는 것입니다.

문정숙과 엄앵란의 꼬마 남동생으로 지금 모습은 알아 보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안성기가 나옵니다. 무슨 짓인지 자기 집 강아지 뒷다리를 붙잡고 강아지를 든 채로 빙빙 돌리는 따위의 장난을 하다가 아버지 김승호에게 “동물을 사랑해야지”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한테 따지니까 그 말을 하면서 아버지는 닭을 잡아 털을 뽑고 있다는 장면 등등에 등장합니다. 초등학생 나이면서도, “오래 살다 보니 별 꼴 다보겠네.” 라는 대사를 하는 고전 유머도 한 번 합니다.

“여사장”에서도 감독을 맡았던 한형모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코미디언 김희갑이 결혼식 축사를 맡아 잠깐 나왔다 가는데, 축사를 짧게 10초 안에 끝내라고 하자, 정말로 10초 안에 축사를 한다고 “좌우지간 악착같이 행복하게 사시오” 정도의 말 한 마디를 합니다.

유도라는 소재도 그렇고, 중간 중간에 몇몇 웃기는 장면을 만든 수법도 그렇고, 일본색이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본 영화나 TV물에 직접/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한동안 이어져 왔던 일본 문화의 영향이 그대로 이어져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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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verever 2014/02/05 13:53 # 삭제 답글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한국식으로 해석한 작품인가보네요
  • 게렉터 2014/02/06 21:27 #

    소재의 원초를 따져 올라가면 자체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꾸며 놓은 것을 보면 만담형태의 대사라든가 중간중간의 묘사가 일본색이 강하지 않은가 싶은 부분들이 저는 많았습니다.
  • 삘구 2015/09/28 22:07 # 삭제 답글

    잘 보았습니다. 영화의 내용보다 후기가 더 깊이가 있군요.
  • 게렉터 2015/10/05 20:40 #

    감사합니다. 영화도 영화 자체보다 옛날 한국의 모습을 엿본다는 느낌으로 보면 또 다르게 재밌게 볼 수 있는 구석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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