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통에 털난 사나이 (1970) 영화

1970년작 한국영화 “염통에 털난 사나이”는 대체 어쩌자고 붙인 것인 줄은 알 수 없는 제목을 갖고 있긴 합니다만, 의외로 내용의 골조는 분명하게 잡힌 영화입니다. 종교 광신자들과 사기꾼들을 풍자하는 이야기인데, 대체로 한 30분 정도로 줄여서 “궁금한 이야기 Y”나 “경찰청 사람들”의 재연 에피소드 하나로 꾸미면 꽤 흥미로울 만한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 영화는 여기에 덕지덕지 잡다한 웃기려고 노력하는 장면들을 붙여서 다소간 구구하게 영화를 80분 정도되는 분량으로 벌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서울시내에 나타난 정감록 신봉자들과 교주, "정감")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남대문 일대의 분주한 서울 거리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왜인지 가마를 타고 조선시대 문관 복장을 한 사람 한 명과 무관 복장을 한 사람 한 명을 앞세운 채 남대문을 통과하려는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이고, 뭘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문관 역할은 코미디언 서영춘이 맡았고, 무관 역할은 코미디언 김희갑이 맡았습니다. 그렇다면 가마를 타고 있는 정체 불명의 주인공은 누구인고 하니, 바로 구봉서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단번에 흥미를 자아 내는 시작 장면에서, 이 이상한 사람들 앞에 기자들 두어명이 몰려 듭니다. 기자들에게 이 사람들은 정체를 밝히는데, 정체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유명한 예언서인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로, 바로 구봉서가 정감록에서 예언하고 있는 백성들의 새로운 지배자, 정도령이라고 하는 종교 조직인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교주를 “정감”이라고 부르고, 마치 왕처럼 다른 사람들이 “마마”라고 높여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스스로 정감이라고 주장하고 믿고 따르고 있는 구봉서와 그 직속 수하인 김희갑, 서영춘이 조선시대 임금처럼 높다고 주장하며 백성들의 인도자랍시고 서울 거리에 올라와서 벌이는 소동을 다루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야기의 핵심만 추려 보면 의외로 꽤 잘 발굴해서 이런 종교 광신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만한 요소를 여기저기에 잘 잡아 놓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이 황당 무계한 정감록 신봉자 교주 일행은, 서울에서 이 사람들을 믿고 있는 한 갑부의 집에 눌러 앉는데, 왜 이 갑부집에 교주가 눌러 앉을 수 있었냐 하면, 바로 이 갑부집의 재산을 틀어쥐고 있는 할머니가 예로부터 정감록을 믿고 있는 신도이고, 이렇게 재산이 불어나 갑부가 된 것도 다 교주를 열심히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딸, 사위, 외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데, 딸은 할머니와 함께 교주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사위는 교주 일행이 정신병자 내지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종교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재산을 모두 할머니가 갖고 있기 때문에 할머니가 사망하고 상속을 받을 때 까지만, 대충 할머니를 따라 주기로 합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외손녀 역시도 전혀 이런 사람들을 믿지는 않지만, 휩쓸려 다니고 있습니다. 상당히 현실적인 인물 구도로 내용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교주인 구봉서가 나름대로 미모를 갖춘 할머니의 외손녀 옥분이에게 홀딱 반하면서, 옥분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명령하고, 그러자 할머니와 딸은 “교주님이 택해 주셨다니, 이는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외손녀를 바치려고 하는 것으로 넘어 갑니다. 그러자 외손녀는 “이게 무슨 미친 짓”이라며 도주하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이어지면, 교주 일행이 병자를 치료하는 물을 판다면서 사기치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종교 광신에 대한 이야기의 꽤 중요한 굽이굽이들을 나름대로 다 다루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이런 면들만 보면 꽤 건실한 핵심이 있는 영화 같은 점도 분명히 있다고 할만 합니다.

그렇지만, 영화의 전체 감상은 그보다는 훨씬 더 아쉬운 쪽이었습니다. 이런 핵심 외에 나머지 부분은, 더러운 짓을 해서 웃겨 보려고 한다든가, 부질 없이 사팔뜨기 눈을 한다든가, 멍청해 보이는 복장을 입어서 웃기려고 한다든가, 등등의 비료값도 안나오는 답답한 개인기로 때우는 잡코미디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구봉서가 외손녀를 바치라고 한 바로 다음 대목입니다.

사위는 자기 딸을 바칠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미친 놈들이라고 욕하면서 교주 일행을 쫓아내면 할머니의 비위를 거슬려 재산을 상속 못 받을 것이 걱정입니다. 그래서, 사위는 자기 딸이 오늘은 “그 날”이라고 한 뒤에, 대신에 그 적적한 마음을 풀라고 교주 일행을 끈적한 나이트클럽으로 안내 해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이 다음 대목은, 이 무렵 옛날 한국영화에 자주 나오던 본론과 아무 관계 없이, 하여간 볼거리를 줘야 하니까 뭐든 쇼 장면을 한참 보여 주곤 하던 풍습을 따라 갑니다.

이번에는 비키니를 입고 끈끈한 춤을 추는 무희가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어떻게 웃겨보려고, 구봉서, 김희갑, 서영춘 세 코미디언들이 별별 잡다한 즉석 개인기들을 애처롭게 계속 펼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결국 술 먹고 남자들이 업소에서 추태 부리는 모습의 향연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구봉서가 웃통을 벗고 비키니 무희 옆에서 같이 춤을 추다가 괜히 춤추는 사람을 건드리다가 술 취해 바닥에 엎어진다는 따위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지금 보면, 웃기다기 보다는 무슨 사회 고발 프로그램의 쓸쓸한 장면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말하자면, 70년대식으로 유흥업소 가서 술 먹고 추태 보이는 남자들의 모습이 딱 저렇겠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면서, 이게 사회의 어두운 면이구나 싶은 감상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성의 없이 시간 때우는 코미디로 이야기 사이를 채우는 영화인만큼, 졸렬하게 웃기는 수법의 꺼지지 않는 영원한 등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장”도 당연하게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는 터프가이, 위엄 있는 악당 역할로 굳건한 인기를 얻었던 허장강이 여장을 합니다. 전혀 재미 있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허장강이 여장을 하고 나와서 구봉서를 홀리는 장면이 있다는 면에서, 나름대로 한국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는 특징은 있었습니다.

허장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의 중반은 종교 광신 이야기와는 별 상관 없이 구봉서가 허장강과 함께 외손녀를 두고 사랑의 다툼을 하는 이야기가 좀 장황하게 이어지는 형태 입니다.

허장강은 재일교포 사업가라는 사람으로 외손녀가 하고 있는 가게를 정리하고 일본으로 같이 가자고 약속한 상태입니다. 외손녀를 좋아하게 된 구봉서는 허장강을 미워하여 허장강과 싸우려고 하다가, 허장강의 권투 솜씨에 두들겨 맞고 쫓겨 나게 됩니다. 이때 이런 류의 싸움 장면을 많이 찍어 본 허장강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헐렁한 분위기에 비해 굉장히 깔끔한 권투로 사람 패는 장면을 보여 준다는 것은 아주 잠깐이지만 묘한 구경거리였습니다.


(옥분이와 자칭 재일교포 사업가 허장강)

그리하여, 구봉서 일행은 허장강을 이기기 위해서, 갑자기 무술 단련을 시작합니다. 구봉서는 놀랍게도 펜싱용 칼을 들고 펜싱 복장을 입고, 김희갑은 권투 복장, 서영춘은 태권도 복장을 입고 잡다한 동작과 표정을 바꿔가며 거리 이곳저곳을 싸돌아 다니는 모습을 여럿 보여 줍니다. 뭔가 정신나간 바보짓이라는 느낌은 들어서 웃기려는 기색이 있기는 한 대목입니다. 그런 장면을 좀 보여주고 나서, 다시 구봉서는 허장강에게 덤비고, 허장강은 이번에는 도주하는데, 그러다가 허장강이 구봉서를 피하기 위해 여장을 하는 것입니다.

구봉서는 여장한 허장강에게 갑자기 집적거립니다. 미치광이 같은 종교 광신자라지만, 어떻게 여장한 허장강에게 뭘 느낀 것인지. 보면 이 영화 속 교주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이에 여장한 허장강은,

“이 사실을 원래 당신이 좋아하던 옥분이에게 알리겠어요.”

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구봉서는 제발 옥분이에게 자기가 딴 여자, 물론 사실은 여자가 아닌 여장한 허장강에게 집적거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애원합니다. 그러자, 허장강은 그러면 그 부탁을 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허장강은 대뜸 손을 내밉니다. 그러면서 허장강은,

“아니 부탁을 들어 줬으면, 인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합니다. 돈을 달라는 이야기인데, 구봉서는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소중한 것을 준다는 의미로 자기 상투를 잘라 줍니다.

그리고, 구봉서는 무슨 이상한 논리의 비유법인지,

“성경에 나오는 삼손이 머리털을 잘린 뒤에 영원히 데릴라를 놓치게 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그 신세로구나.”

라고 독백을 하고, 이후에 “딜라일라”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면서, 그 노래가 끝나도록 구봉서 일행과 할머니네 식구들이 잠 자는 모습을 거의 무의미하게 계속 지루하게 보여 주는 허탈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한편 구봉서의 졸개인 김희갑과 서영춘은 미용실 앞에서 우연히 전날 끈적한 업소에서 불렀던 여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이 여자들을 좋아한다면서 매달리는데, 그러자 이 여자들은, “팁도 안주는 그런 사람들이 어디있냐”고 따지면서, 돈 생기면 명함에 있는 연락처로 부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교주 구봉서 일행과 졸개들은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병자를 치료하는 신비한 능력”을 장사할 궁리를 하면서, 드디어 다시 종교 광신 이야기의 본류로 돌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봉서 일행은 길바닥의 걸인들을 섭외해서 중풍에 걸렸는데, 구봉서가 안수기도를 하는 듯한 동작을 하면서 주문을 외우면 중풍이 낫는 척 하게 합니다. 이걸 이용해서, 구봉서는 물에 다가 주문을 건 뒤에 사람들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는 물”이라고 판매하면서 한 몫 돈을 법니다. 이때 구봉서가 아무 의미도 없는 긴 말을 리드미컬하게 주문이랍시고 중얼거리는 부분은 90년대말 2000년대 초에 유행했던 심현섭이 아프리카식 주술사의 주문 외우는 장면을 외치며 흥겹게 춤을 추던 장면과도 좀 비슷한 데가 있었습니다.


(빰빠야아아아~: 기도의 힘으로 병을 치료한다)

그렇게 해서, 구봉서는 돈을 모아서 옥분이에게 찾아 가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옥분이가 재일교포 사업가 허장강과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허장강도 사기꾼이었던 것으로, 옥분이가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가게 판 돈을 들고 혼자 도망치려는 것이었습니다. 구봉서 일행은 허장강을 붙잡아서, 의기 양양하게 옥분이의 팔짱을 끼고 다시 집으로 돌아 옵니다.

그렇지만, 집에 돌아 오니, 구봉서가 판 물을 먹고 배탈난 사람들이 분노해서 몰려와 있습니다. 할머니 사위의 말로는, “그 미친놈이 주문 건다면서 손으로 휘저은 땟국물을 먹였으니 배탈 나는게 당연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구봉서는 군중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사람들에게 돈도 다 돌려 줍니다.

이리하여, 구봉서 일행은 이제 걸인이 되어 길거리를 돌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서영춘이 구걸 타령하는 잡다한 노래를 부르는 솜씨가 평균 이상은 되어 귀에 잘 들어 옵니다. 세 사람은 어느 집에 찾아 가 구걸을 하다가, 초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을 만납니다. 이 교장 선생님은 모든 사실을 알고, 세 사람을 꾸짖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립니다. 세 사람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교장 선생님께 싹싹 빕니다.

마지막 장면은 왜인지 알수 없게도, 하고 많은 노래 중에서도 향토예비군 노래가 배경 음악으로 나오고, 세 사람이 예비군복을 입고 도로를 질주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있는데 옥분이가 빨간 차를 타고 그 주위를 따라 가며 응원해 주는 것이 나옵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지는 절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제 정감록 믿는 종교 장사는 때려 치웠다는 것을 나타내는 장면 같아 보이기는 합니다.


(복수를 위해 무예를 연마하는 구봉서, 김희갑, 서영춘)

이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코미디 영화 “돈에 눌려 죽은 사나이”와 출연진이 비슷하고, 제목이나 내용 분위기도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돈에 눌려 죽은 사나이”와 비교해 보면, 그나마 이 영화가 황당무계하고 막 나가는 내용은 적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 “염통에 털난 사나이”는 “돈에 눌려 죽은 사나이”에 비해 지금 보면 놀라워 보이는 장면들은 적은 대신에, 그 보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좀 더 부드럽습니다. “돈에 눌려 죽은 사나이”에는 그냥 대충 때우고 다음 장면으로 끊어 먹으며 넘어 가는 식의 막 집어 넣은 장면들이 많은 편인데, “염통에 털난 사나이”는 그런 부분도 좀 더 적은 영화였기도 합니다.

종교 광신을 다루는 요소요소들을 이런 설렁설렁 넘어 가는 중저예산 영화 분위기에서도 나름대로 잘 잡아 냈다는 점, 주인공들의 적수였던 허장강 조차도 결국은 정체가 사기꾼인 것으로 해 놓아서, 정말 요지경 세상, 사기꾼 바다로구나, 싶은 감흥을 줄 수도 있었던 줄거리라는 점은, 비는 곳이 많았던 내용 중에서도 한번 돌아 볼만한 점이었다고 기억해 봅니다.


그 밖에...

할머니의 딸, 그러니까 옥분이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중년의 도금봉이 나옵니다.


(도금봉)

매력을 발산하는 역할은 전혀 아니지만, 도금봉 특유의 개성은 좋아 보였습니다. 역할이 매우 작은 편입니다만, 연기도 아주 안정되어 있어서, 다시 도금봉의 기본기 연기력을 생각해 보게 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이야기 초반에, 남대문에 가마를 타고 통과하려던 구봉서가 스스로 자신이 정감록에 예언된 나라의 새로운 지배자인 "정감"이라고 주장을 한 후에, 바로 정신병원에 잡혀 가게 됩니다. 일행 세 사람은 정신병원에 갇혀서 골치아파 하는데, 다음 장면에서 세 사람은 무슨 수를 냈는지 계단을 뛰어 내려오며 도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신병원 탈출에 성공했는지는 아무리 봐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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