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2009) 영화

“백야행”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손예진과 고수의 모습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 주면서 시작합니다. 추리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범죄물입니다만, 범인은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보여 줍니다. 고수가 살인을 하는 것을 보여 주니 말입니다. 이 영화는 도대체 고수가 왜 살인을 하며, 그 살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은 손예진의 사연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 두 사람의 사연이 한석규가 집착하고 있는 14년전의 살인사건과는 무슨 관계인지 천천히 그 꼬인 사정을 드러내서 보여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포스터)

말하자면, 이 영화 역시, 분류해 보자면, “동기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형식의 이야기 입니다. 2000년대 이후로 한국 영화 범죄물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는 사실 그 “동기가 무엇이냐”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것은 또 아닙니다. 이 영화는 거기에 더해서, 범죄에 엮여 살아 가는 남녀 주인공들이 그 범죄의 주변에서 살아 가는 인생 역정, 여러 가지 괴상하게 꼬인 사연들을 보여 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좋은 점부터 골라보자면, 배역 선정이 분명하고 이런 인생 역정을 보여 주는 이야기에 걸맞을 만큼, 등장하는 주연, 조연들이 저마다 다들 성격이 뚜렷하고, 그 성격에 맞는 잘 달라붙는 연기를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범죄자들을 추적하는 닳아 빠진 형사 역할을 하는 한석규도 그럴싸하게 어울리고, 다른 형사들이나 조연들도 다들 자기 특징을 잘 살리는 제 몫을 할 수 있는 배역들을 맡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격인 손예진과 고수도 잘 어울렸다고 생각 합니다. 두 사람은 일종의 “미녀와 야수” 구도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손예진은 학교 교사로 갑부 애인이 있고 항상 선녀 같은 말투로 말하며 대부분 얼굴 빛부터 옷차림까지 모두 밝은 빛으로 거의 흰색으로 나옵니다. 고수는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칙칙한 사람으로 헝클어진 머리칼로 나와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사람 죽이는 일이나 하며 대부분 검은 색의 옷을 입고 등장 합니다. 두 사람은 분명히 무슨 중요한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주 조금씩, 조금씩만 알려 줍니다.

손예진이 맡은 역할이 좀 막나가는 면이 있는 역할이라서 사실 부드럽게 연기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손예진이 그런 인간 답지 않은 면까지 화려하게 극적으로 포장해서 보여 주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딘가 우울하고 쓸쓸한 면이 있으면서도, 하여간 “엄청나게 아름다운 미인”, “마땅히 밝은 세상에서 밝게 살아야 마땅할 것 같은 미모의 소유자”라는 점을 표현하는 데는 상당히 잘 맞아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만하면 제몫을 한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적당히 재밌어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분량을 맞춰서 등장하고, 도대체 감춰진 사연이 무엇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씩 조금씩 내용을 흘려서, 따라 가면서 궁금해 하며 마지막에 드러날 이야기를 기다리게 하는 맛이 있습니다. 추리물 구조를 가진 영화 답게, 그렇게 떨어지는 내용들을 영화를 보면서 끼워 맞추며, 나름대로 영화를 보는 관객 스스로 진상을 상상하고, 추리하는 맛도 조금은 즐겨볼만한 형태라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손예진)

이 영화에서 아까운 점을 골라 보자면, 그냥 그 정도에서 주저 앉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사연이란 것이 “환상적으로 기가 막힌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끈적거리고 답답한 이야기 쪽에 가깝습니다. 그러자니, 모든 이야기가 다 드러난다고 해도 절묘한 수법에 놀란다거나, 상상도 못했던 기묘한 재주에 놀란다거나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그런 것 보다는, 저주 같은 범죄로 엮인 사람들이 갑갑한 가슴을 억눌러가며 수십년 동안 발버둥치고, 그러는 와중에 인생이 더욱더 꼬여 가는 골치 아픈 삶들을 보여 주는 쪽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시대가 바뀌어 가고, 세상이 점점 변해가고, 주인공들이 점차 자라 가고, 늙어 가는 가운데 어떻게 바뀌어 가는 지를 묘사하는 것이 굉장한 재미 거리가 될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데 써먹으면 좋을 만한 그 재미 거리는 그냥 다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14년간 이어진 두통거리 같은 사연을 다루고 있는데, 90년대말과 2000년대를 거치며 달라지는 풍속들, 시대상들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안나옵니다. 요즘 유행한 90년대 추억을 돌아 보는 텔레비전 연속극들이 다룰만한 이야기들을,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좀 더 진지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볼만한 재료가 전부 다 주어진 바탕을 갖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제작할 때만해도 제작진이 90년대를 추억으로 돌아 본다는 것은 이야기 거리가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런 시대 묘사들, 사회 묘사들을 다 빼버리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것들 보다는, 그냥 손예진과 고수가 연기하는 복잡한 비극의 주인공들이 표현하는 상징적인 특이한 모습들과 그 속에서 살아 나는 개인의 모습, 한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데에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덕분에, 건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괴로운 사연과 확 대비되는 하얀 옷을 입은 손예진의 모습을 살려 띄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고, 그게 먹히는 때도 있기는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형사 한석규)

하지만 역시 무엇하나, 확실히 터지는 맛이 없는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들 적당히 괜찮기는 했지만, 화려한 반전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없고, 하다 못해 기막히게 아름답게 연출된 화면으로 장식된 장면이 확 사는 대목도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나마, 인상적인 고전음악이 잘 연주되고 녹음된 것을 가져와서 거침 없이 넉넉하게 풀어 놓으면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분위기를 확 돋구어 주는 것이 인상이 뚜렷해서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노래가 상징하는 바도 간단하게 맞아 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반면에, 영화의 마지막을 “그 사람들이 아직 행복했던 시절”의 과거 회상 장면으로 해서, 아련하고 슬픈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꾸며 버린 것은 또 그렇게 좀 지겹기도 하더란 말입니다.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장화, 홍련”이라든가 다른 한국 영화들이 잘 써먹었던 수법을 그냥 또 반복하는 정도로만 보였습니다.


그 밖에...

일본 소설이 원작이라고 합니다.

덧글

  • rumic71 2014/01/01 18:09 # 답글

    히가시노 케이고와 미야베 미유키가 없었으면 작년한해 한국 영화가 절반으로 줄 뻔 했습니다(진짜?)
  • 게렉터 2014/01/02 20:19 #

    그러고보면, 일본 추리 소설 수준에 비교해 보면, 우리 나라에도 나름대로 아이디어는 좋은 작가들은 꽤 있는 것 같은데, 피어날만한 환경이 잘 안된다는 생각도 막연히 해 보게 됩니다.
  • cesia 2014/01/02 12:41 # 삭제 답글

    11편으로 나왔던 일본 드라마 쪽을 먼저 봐서 그런지, 너무 내용이 부실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게렉터 2014/01/02 20:20 #

    14년간의 긴긴 사연을 넉넉하게 다루면 훨씬 다채로운 분위기로 갈 수 있는 영화였다는 생각도 과연 듭니다. 그러고 보면 훨씬 긴 연속극 형식에서는 또 다른 것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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