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2009) 영화

“10억”은 10억원을 상금으로 걸고 일반인들을 초청한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하는데, 그 8명의 참가자가 쇼에 출연한다고 호주에 와 보니, 그 쇼라는 것이 탈락자는 죽게 되는 진짜 생존 경쟁이라는 이야기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꽤 이름난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입니다만, 이 영화는 중저예산 B급 영화 분위기가 짙고, 대체로 살인마가 나와서 숲속의 오두막에 고립된 남녀들을 칼로 찌르고 다니는 소위 “슬래셔” 무비들 중에 흔한 것과 줄거리가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런 공포영화들이 칼질 장면을 잘 연출하는데 집중하는 데 비해서, 이 영화에는 잔인한 장면은 거의 안나오고 대신에 좀 늘어지는 신파극 비슷한 것에 시간을 쓴다는 것입니다.


(포스터)

막판에 신파극으로 돌변하는 것이 한국영화가 심심하면 넘어 가고야 마는 악마의 유혹이라고 할 지라도, 이 영화는 대뜸 중반부 부터, 잠시 신파극으로 지겨워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저 사람을 포기할 수 없어” “어떻게 사람이 죽는 것을 그냥 봐” 같은 대사를 신파극 분위기로 주절거리면서, 한참 시간을 끌어 대는 것입니다. 뭔가 펑펑 정신 없이 사건이 터지다가 쉬어 가는 분위기로 잠시 감정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별 재미난 일이 안 벌이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무슨 일이 터져야 될 것 같은 때가 되었는데, 갑자기 그런 신파극스러운 대사로 김을 확 빼고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로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그런 쉽게 만드는 중저예산 B급 영화로 갔다면 마땅했을 만한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2000년대 초에 망한 영화의 대표로 손꼽혔던 “아유레디”가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주인공이 여러 명으로 되어 있고, 자연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모험을 한다는 내용도 비슷하지만, 그 보다는 이야기가 자꾸 쳐지고 점점 재미가 없어져만 가는데 괴상하게 등장인물들은 꼭 “신기한 모험 이야기야, 재밌지? 재밌지?”하는 제작진들 사이에 둘러 쌓인 채 쥐어짜듯이 연기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보였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해야할지, 어떨지. 제작비를 꽤 쓴 것 같기도 할 때가 있으면서도, 괴상하게 촬영이나, 음악이 저렴해 보일 때가 있다는 점도 비슷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살인마와 여러 주인공들이 서로 “게임”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만, “나와 게임을 해 보지 않겠나?” 비스무레한 틀에 박힌 악당용 대사를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읊어 대는 그 많은 다른 영화들과 이 영화가 다른 차이점을 그래도 골라야 한다면, 역시 이 영화의 중심 소재와 배경 그대로, 다음TV팟으로 올리는 인터넷 방송용 리얼리티쇼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한 가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그런 특징을 살리는 부분이 거의 전혀 없습니다. 인터넷 매체에서 사람들이 남의 일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을 두고 영화 내용, 주제에 어떻게 엮어 보려고 한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막상 이 영화에서 인터넷 방송 소재와 엮이는 것은 중간에 악당이 다음 TV팟 동영상 올린 것에 덧글 달린 것을 읽는 장면 딱 한 군데로, 3초에서 4초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그게 앞뒤 이야기에 무슨 영향을 미친다거나 하는 것도 전혀 아닙니다.


(박해일, 신민아)

그나마 칭찬할 곳을 찾는다면, 정체 불명의 게임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 답게, 이야기의 초점을 “도대체 이 미친 제작자 놈은 왜 이런 짓을 하는가?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뭔가?” 하는 것을 계속해서 궁금증의 단초로 따라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중간 이야기가 쳐지는 가운데에서도 이것만은 계속 열심히 환기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인도 알고, 범행 수법도 다 보여 주지만, 도대체 이짓을 왜 하는지, 동기를 안 가르쳐 줘서, “동기를 추리하는 이야기”의 형태로 긴장감을 갖고 간다는 틀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또 마지막 결말에서 밝혀지는 “범죄의 동기”란 것이 무척 실망스럽습니다. 일단 밝히는 방법 부터가 재미가 없습니다. 단서나 복선들을 늘어 놓다가, 그것을 마지막에 절묘하게 결합시키면서 멋진 반전이나 화려한 추리력을 보여 주는 방식이 전혀 아닙니다. “동기가 궁금한데” “동기가 뭘까” “왜 이런 미친짓을 하는거야” 계속 짚어 가면서 뜸은 들입니다만, 아무말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가르쳐 주다가, 막판에 갑자기 그냥 긴 회상장면으로 줄줄이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연결점도 없이 “동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하고 별도로 화면에 던지는 방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동기를 밝히는 것이 결말입니다만, 그 동기란 것도 사실 이렇게 “도대체 우리랑 무슨 원한을 졌다고 우리한테 이러는 건데?”라면서 등장인물들이 따지는 영화에서는 워낙 자주 남용 되는 것이고, 어차피 이 영화는 그걸 알고 보든, 모르고 보든 별 재미가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 밝혀 보자면 이렇습니다.

이 영화의 악당은 자기 아내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때 아내를 구해 줄 수도 있었지만 구경만 하고 도와 주지 않은 사람들도 죄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때 아내를 구해 줄 수 있었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다가, 죄를 묻는다고 살인 게임을 시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실제로 영화를 보니 이상해 보였습니다. 일단, 그때 “아내를 구해 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진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범죄자가 칼을 들고 위협하며 설치는 상황에서 그러면 뭘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 상황을 오히려 “껀 수”로 삼았던, 놈이 한 명 있기는 한데, 그런만큼 그 사람 조차도 “구해 줄 수도 있었지만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와는 좀 다른 위치일 겁니다.

더 해괴한 것은, 어쨌거나 끓어 오르는 분노심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에 대해 다 원한을 가졌다면, 그 사람들을 그냥 찾아 가서 나름대로 복수를 하든, 응징을 하든 하면 될텐데, 이 양반은 어쩌자고 대체 왜 호주까지 가서 이런 엄청난 게임쇼를 하는 것입니까? 거기다가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 한테는 10억을 상금으로 주기까지 합니다. 이게 뭡니까?

악당과 주인공들이 여러 가지로 두뇌싸움을 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로 대결을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면 고루한 틀 속에서도 어떻게든 재미를 뽑을 수 있었을텐데, 그런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죽은척하기" 장면 딱 한 번 밖에 안나오고, 그나마 그 다음 이야기에 아무 영향도 못미치고, “그냥 없던 것”으로 하고 맙니다.

악당과 겨루는 “게임” 방식에도 재미난 것이 없습니다. 막판에 제작진이 “에이, 뭐 게임하는 방식도 별로 못 떠올리겠다”고 포기했는지, 대뜸 그냥 러시안 룰렛이나 하는 정도 입니다. 그 외에는 그냥, 열심히 걸어 가거나 뛰어 가다가 쳐지는 사람은 죽는 것이 전부입니다.

호주를 배경으로 해서, 바다, 사막, 숲, 계곡의 다양한 정경을 담아내면서 배경이 자꾸 바뀌어서 것으로 지루함의 끝 만은 간신히 피해 가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그나마도 그런 자연경관을 멋지게 화면에 담아낸다든가 하는 식은 아닙니다. 그냥 이야기를 보여 주다 보니, 주인공들 뒤로 그런 자연 경관도 같이 찍혔다는 정도에서 조금 더 나은 느낌이었습니다.


(열대에서 펼쳐지는 리얼리티쇼라면 이런 장면이라도 꽤 나올 것 같지만, 몇 초도 채 안나옵니다)

그래도 그나마 호주 풍경이 시간을 때워 주는 역할을 하는데에 비하면, 각본상의 대사는 나쁜 쪽으로 확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대사들이 영화에 걸맞는 자연스러운 것들이 없고, 그림을 대충 그린 만화에서 그림 못 알아볼 까봐 대사칸에 써넣은 말로 때울 때 써넣음직한 말들을 대사로 읊어 대었습니다.

그러고 있자니,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인물을 맡은 악당역의 박휘순은 가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지경입니다. 배우들 중에는 그나마, 자기 나름대로 등장인물의 모습을 해석해서 열심히 풀어 보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 박해일 정도가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 밖에...

다시 한 번, “고사”나, “4교시 추리영역” 같은 것처럼 아예 중저예산 B급 영화 분위기로 차라리 나갔으면 어땠나 싶었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몸값이 꽤 되어 보이는 배우들은 정말 아까워 보였습니다. 배우들의 미모나 몸매를 써먹으며 때우는 부분조차도 거의 전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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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4/01/01 10: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02 20: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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