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 (Lo Strano vizio della Signora Wardh, The Strange Vice of Mrs. Wardh, 1971) 영화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은 70년대에 특히 유행한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 내지는 지알로 영화의 표본이 될 만한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연쇄살인마가 아름다운 여자들을 공격해 죽이면서, 도대체 정체가 누구일까 궁금하게 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데, 줄거리가 약간 아귀가 안맞는 대신에 인상적인 화면 구성과 신비로운 음악이 강하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밀고 나가면서도 묘하게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 중에서 잘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바닥의 단골인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 에르네스토 가스탈디 작가와 이반 라시모프, 에드위지 페네크(Edwige Fenech, 에드위지 페네치, 에드비지 페네쉬) 같은 배우들이 참여했습니다.


(포스터)

이 영화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은, "수정 깃털의 새"가 한 해 먼저 나와서 70년대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가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시기에, 그 흐름에 어울릴 만한 정통파 지알로 영화의 유행을 그대로 잘 살리는 내용에 가까웠습니다. "수정깃털의 새" 이야기를 했는데, 다름 아닌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역시 꼬인 취향의 폭력적인 연인과 엮였다가 생긴 흉터 같이 남은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야기의 출발 입니다. 굳이 끼워 맞추자면, 제목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도 이런 놈을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두고 붙인 말이지 싶습니다.

이제부터, 이 영화의 줄거리를 끝까지 모두 다 밝혀 보면서 이야기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제의 면도날 살인마)

이 영화가 시작되면 도회적인 느낌이 나는 전자 오르간 연주와 함께 비틀비틀 도시의 밤거리를 보여 주면서 이야기를 시작 합니다. 제작진들의 이름을 주욱 보여 주고, 자동차를 타려고 하는 한 여자가 이발소 면도날을 휘두르는 정체불명의 살인자에게 살해 당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도입부 입니다. 그러니까, 도시의 거리 한쪽에 면도날을 휘두르는 살인마가 싸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름 아닌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라면, 어딘가 외국으로 나가거나, 외국에서 돌아오는 장면을 비행기 이착륙으로 보여 주면서 시작하거나 끝나는 것이 관습처럼 많았다는 기억이 납니다. 이 영화도 거기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은 그 비행기를 타고 주인공 에드위지 페네크가 부유한 남편과 함께 낯선 외국 도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에드위지 페네크는 초장부터 머리에 과한 듯한 장식을 하고 나타나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다양한 옷차림, 다양한 얼굴 표정, 아름다운 몸매를 여러 가지로 자랑합니다. 돈값을 할만큼 에드위지 페네크는 화면에 멋지게 잡혀 있고, 이것저것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의 의상 담당자 안목을 볼만한 구경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비행기 착륙 장면 이후 이어지는 주인공 등장)

에드위지 페네크는 곧 숙소로 향합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가면서 드디어 에드위지 페네크의 회상 장면이 이어 집니다.

대사 한 마디, 설명 하나 안나오는 회상 장면입니다만, 에드위지 페네크의 과거 연인에 관한 회상이라는 것은 바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데, 어디인지 알 수도 없는 길을 자동차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에드위지 페네크의 남자친구는 다름아닌 이반 라시모프인데, 특유의 칼처럼 예리한 얼굴이 무슨 만화에서 바로 튀어 나온 사람처럼 날카로운 인상입니다. 그리고, 꿈의 한 장면 같이 비가 내리고 있는 신비로운 숲과 같은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머릿 속을 휘젓는 음악과, 끈적한 느린 동작을 이용해서 회상 장면을 진행합니다.

다시 현재 장면으로 돌아 오면, 에드위지 페네크는 이반 라시모프와의 관계를 지금은 정리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게다가 에드위지 페네크는 이반 라시모프의 사람 괴롭히면서 좋아하는 변태스러움 때문에 충격을 받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갖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그 기억을 에드위지 페네크는 자꾸 돌이킵니다. 영화 속 이반 라시모프는 "당신은 피를 두려워 하면서도 피를 사랑한다고"라고 에드위지 페네크에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에드위지 페네크는 이반 라시모프를 두려워 하면서 피하는 장면이 계속 나옵니다만, 이반 라시모프는 뭔가 확신에 차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에드위지 페네크의 기억, 생각을 보여 주는 장면은 또 나오기도 하는데, 모두 꿈 같은 구성에 신비로움이 휘몰아치는 음악을 이용해서 관객의 기억에 남도록 펼쳐 집니다. 이반 라시모프가 에드위지 페네크에게 끈끈한 눈빛을 보내는데, 뭔 험하게 생긴 깨진 유리조각이 무슨 눈이 내리듯이 느린 동작으로 하얀 맨 살위에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고 그러는 겁니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표현해서 정말로 관객들에게도 잊혀지지 않게 하는 연출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에드위지 페네크의 모습과 두려워 하는 것인지, 취한 것인지, 애매한 독특한 표정도 인상을 남기는데 한몫 했습니다.


(구경거리가 되는 연출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틀을 잡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 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에는 면도날로 여자를 살인하는 연쇄살인마가 나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주인공 에드위지 페네크의 주변 사람들도 공격을 당해서 에드위지 페네크는 겁에 질립니다. 그런데 동시에 과거의 골치아픈 폭력적인 애인이 자기에게 돌아 오라고 자꾸 스토킹하며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결코 좋은 관계가 아닌 현재의 남편도 에드위지 페네크의 편이 아니고, 조지 힐튼이 연기한 조지라는 남자가 에드위지 페네크에게 접근해 오기도 합니다. 이 인간도 여자 꼬드기는데 인생을 건 사나이인지라, 건전한 인간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살펴 보면, 범인이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딱 봐도 무섭게 생긴 전 애인 이반 라시모프가 범인이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너무 뻔합니다. 그렇다면, 바람난 부인과 관계가 좋지 않은 남편이겠습니까? 바람난 부인을 죽이려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것, 역시 못지 않게 너무 뻔한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 남은 바람둥이 같은 조지 힐튼이 범인이겠습니까? 이것도 너무 뻔한 것 두 개를 빼내면 바로 떨어지는 결론이라 역시 뻔해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가장 평범한 사람"을 꼽는 역설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만, 뭐 하여간 그러니, 뻔하면 뻔한대로, 살짝 덜 뻔하면 덜 뻔한대로, 셋 중에 누가 범인이 되어도 될만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범인후보1 - 전 애인: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 아닐것 같은 후보)


(범인후보2 - 현 애인)


(범인후보3 - 남편)

폭력적이고 저돌적인 전 애인, 지루하고 답답한 남편, 4D랍시고 상영한다면 관객들을 향해 식용유라도 뿌려야 할 정도로 느끼하게 말하는 바람난 상대. 세 사람이 아주 뚜렷하게 인상도 나뉘고 셋 다 화면 속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라, 과연 이 양반들 중에 누가 범인으로 나오는지 보자, 하면서 영화를 관심 갖고 구경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은 배우를 잘 기용하고, 잔대사들을 잘 꾸민 재미가 사는 부분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조지 힐튼이 여자 주인공에게 접근하기 위해 수작 부리며 읊조리는 대사들은 웃길 정도로 느끼해서 지루할 새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에드위지 페네크가 조지 힐튼이 겨울 가창 오리떼처럼 날리는 뻐꾸기들을 모두 거절하고, 맛난 식당에 밥 먹으러 떠나 버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드위지 페네크가 식당에 가보니, 모든 자리가 예약되어 있어서 밥 먹을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조지 힐튼이 식당 이름을 엿듣고 그 식당에 먼저 전화를 걸어서 남은 모든 자리를 다 예약해 버린 것입니다. 에드위지 페네크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조지 힐튼과 합석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이게 백만장자 바람둥이의 수법이구나"하고 관객이 생각하는 순간, 조지 힐튼은 합석이 성공한 것을 확인한 후에 앙큼하게도 "나머지 자리는 예약 취소 해 주세요"라고 해버리는 겁니다.

중반부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동안, 방탕하게 사는 이 상류층 사람들의 모습들과 연쇄살인마의 나날이 계속되는 살인 행각을 여럿 보여 줍니다. 방탕하게 사는 상류층 사람들의 모습이란, 파티에서 춤을 추다가 "이 옷은 종이 소재로 만든 옷이야"라면서 신기한 것을 자랑하니 "어디 보자!"라면서 놀리듯이 그 옷을 찢어 버리고, 그러자 옷을 찢으며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다들 구경하며 웃는다는 것, 등등이고, 연쇄살인마의 살인 행각은 70년대 지알로 영화의 특징대로, 조마조마하게 긴장감을 높이다가 선명한 색채가 화면 가운데에서 빛나듯이 강조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에드위지 페네크를 잡은 장면)

이 영화의 연쇄살인마 묘사는 사실 아주 특출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비슷한 영화에 나오는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끼워 넣는 정도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칼든 살인마가 아름다운 여자를 살인하는 장면의 원조라고 할만한 "싸이코"의 샤워 장면이 거의 별 차이 없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물론 70년대 이탈리아산 영화라는 구색에 맞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작의 60년 영화와는 달리, 모든 것을 컬러로 거리낌 없이 보여 준다는 차이가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외에도 오스트리아 빈의 유적지 모습을 이용해서, 미로 같은 정원으로 둘러 쌓인 현실 세계와는 차단된 이상한 나라처럼 해질녘의 배경을 묘사하고, 그런 괴상한 곳에서 도망칠 곳 없이 악당에게 쫓기는 느낌을 준다든가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유적지의 공원에서 악당의 공격을 받기 직전)

이렇게 해서, 계속해서 이야기 거리를 풀어 놓다가, 마침내 에드위지 페네크는 멀리 도망치기로 결심하고 스페인으로 갑니다.

그렇지만 스페인으로 가서도 정체 불명의 협박 메시지 같은 꽃배달은 계속 이어집니다. "저기 있는 아저씨가 꽃 배달을 시켰어요"라고 말하면서 꽃을 받았는데, "저기"를 봐도 그 아저씨는 없습니다. 범인의 정체가 드러날까말까 하는 순간에 살짝 감추는 것입니다. 값싸다면 값싼 연출이지만 호기심을 돋구는데는 그만입니다. 그렇게 받는 쪽지 중에는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갖고 있다"라고 써 놓은 것도 있습니다.


(저기 저 아저씨가 갖다 주라고 했어요... 어 아까 저기 있던 아저씨 어디갔지?)

결국, 끝날 즈음해서 에드위지 페네크는 자살로 위장된 형식으로 밀폐된 방에서 가스를 마시고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드러나는 이 모든 일들의 진상은 이러합니다.

일단, 오스트리아 빈의 연쇄살인마는 에드위지 페네크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별개의 살인마 입니다. 다만, 이 기회를 이용해서 원래 에드위지 페네크의 친구를 죽이고 싶어 했던 조지 힐튼이 똑같은 수법을 따라해서 살인을 꾸민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의심하는 대신에, 그 연쇄살인마의 범행으로 수사진이 착각할 거라고 노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드위지 페네크를 위협하고 죽이려고 한 사람은 전애인, 애인, 남편 중에 누구인고하니, 바로 전애인, 애인, 남편, 셋이서 모두 힘을 합해서 짜고 저지른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유한 줄 알았던 남편은 사실 파산 지경이라서 에드위지 페네크의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을 하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조지 힐튼은 유산을 노리고 에드위지 페네크의 친구를 살인하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래서 둘이 서로 합심해서 공동으로 두 건을 처리한 것입니다. 가장 무시무시한 척 하면서 나왔던 이반 라시모프는 사실은 그냥 얼간이로 돈 받고 시키는대로 하는 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묘하게도 에드위지 페네크의 남자1, 남자2, 남자3,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일종의 살인 계를 조직했고 없애고 싶은 사람들을 힘을 모아 죽였다는 것이 진상입니다. 이것은 아가사 크리스티,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소설과 똑같은 아이디어를 뒤섞어서 울궈 먹은 것이라서,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좀 말도 안된다" 싶기는 했습니다.

상상해보자면 이 세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내 아내랑 바람난 애인이야?"
"나는 애인이 아니고 전 애인인데."
"네가 그 여자 남편이냐?"
"나는 그 여자 애인인데?"
"이 자식들이! 장난하냐!"
"잠깐만, 진정하고.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어디 가서 같이 맥주나 한 잔씩 하면서 얼굴이나 알고 지내자. 세상 누가 알아? 나중에 혹시 살인 같은 거 할 일 생기면, 우리끼리 도움 주고 받을 일 생길지도 모르잖아."

뭐 이러기라도 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잡아 온 균형에서 어느 한 곳으로 쓰러지지 않으면서도, 확 다 뒤엎어 버리는 결말로 가는 것이라서 그런데로 놀랍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이렇게 막나간 마당에 어떻게 끝을 맺으려나 정말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진상을 밝히는 부분 부터는, 시간을 끌지 않고 빠르게 이야기를 확확 밀고 갑니다. 지금까지처럼 분위기 잡고 뜸들이고 그런 장면이 확 줄어 듭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간다, 하늘로 간다, 성층권으로 간다, 우주로 간다, 어어어- 하는 느낌이 나도록 달리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끝날지 한번 끝을 보자고 기다리게 되는 마음이 생길만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반 라시모프는 이렇게 이야기가 이리저리 뒤집히는 와중에, 초장에 가장 살인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종종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에서 겪는대로, 의외로 본인이 희생 당해 죽은 채로 발견되는 일도 겪습니다. 그랬다가 좀 지나면 사실은 죽은 척 한 연기를 했을 뿐 살아 있었다면서 다시 나오는데, 그리고 나서 그 다음 번에는 다른 두 남자에게 배신 당해서 진짜로 또 죽기도 합니다.


(한창 에드위지 페네크를 위협할 때)

결말은 남은 두 남자가 낄낄거리면서 도망 치다가 갑자기 죽은 에드위지 페네크의 유령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를 돌리며 헤메는데, 그러다가 경찰에 포위 되고, 당황해서 운전 실수를 하여 벼랑에서 떨어져 죽어 버립니다.

알고 보니, 에드위지 페네크는 치료를 잘 해서 사실은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찰과 협조해서 함정을 파기 위해 일부러 죽은 척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굳이 처녀귀신처럼 머리를 길게 늘어 뜨리고 유령처럼 두 남자가 떠나는 길에 보란 듯이 서 있을 필요는 없었겠지만, 그 정도야 음산한 분위기를 영화팬들에게 서비스해 주기 위해서 아니었겠습니까. 이것도 또 아가사 크리스티 내지는 브왈로-나르스자크 무렵의 소설 반전을 그대로 박아 놓은 것 같긴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에드위지 페네크는 차를 타고 떠나면서 "어째 남자라고 걸린게 하나 같이 다 이 모양이냐"라는 요지로 푸념을 합니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심하게 서정적이면서도 아주 신비로운 이 영화의 주제곡이 흐릅니다. 그런데 그때 옆자리에 있는 에드위지 페네크를 구해 준 의사가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그러자 딱 1초 밖에 안 지났는데도, 두 사람의 주고 받는 눈빛을 보면, 에드위지 페네크는 또 이 의사와 엮이겠구나 싶은 확신을 뿌리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수수께끼의 쪽지: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갖고 있다... 뭐라고?)

이 영화에는 군데군데 신비롭고 아름다운 음악, 몽환적인 연출, 말은 좀 안되지만 하여간 잠을 깨게 하는 줄거리를 잘 엮어 놓은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 무렵 이탈리아 영화 답게, 에드위지 페네크의 몸매 자랑을 하는 장면들도 힘을 받은 편입니다. 이야기 줄기에도 잘 어울리게 에드위지 페네크의 모습이 엮여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의 전반부에 에드위지 페네크가 외출했다 돌아와서 샤워 하러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누구나 날마다 하는 행동을 그냥 보여 줄 뿐인 대목입니다.

그런데, 슬쩍슬쩍 흔들리는 불안한 화면이, 어떨 때는 움직이면서 에드위지 페네크를 따라다니고, 어떨 때는 가만히 서서 지켜 보기만 합니다. 어떨 때는 가만히 있으면서 고개만 살짝 돌리듯이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밝고 어두움이 교묘한 조명에서 이 긴장한 느낌이 절로 나는 화면의 움직임을 보면, 그냥 평범한 일상 장면인데도 어느 구석에서 음흉하게 에드위지 페네크를 지켜 보는 살인마의 꼬인 시선을 표현한 느낌이 납니다. 이러니, 별것 아닌 상황인데 당장이라도 뭐가 확 터질 것 같은 조마조마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작 "사이코"의 유명한 장면부터도 그렇지만, 이런 장면들은 그 자체로 자극적인 소재이기도 하지만, 가장 사적인 순간, 가장 무방비 상태인 상황에서 악당의 칼날이 덥쳐 온다는 그 무시무시하고 절망적인 대조 효과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비교해 보자면야, 이 영화의 장면들은 "수정 깃털의 새"나 "딥 레드" 같은 영화들의 진기한 미술이라는 수준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하나 있어야 할만한 장면 장면들이 잘 다듬어져 채워져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에드위지 페네크)

배우들 중에는 앞서 언급한 조지 힐튼 외에, 주인공 에드위지 페네크와 조연 이반 라시모프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반 라시모프는 처음 나올 때만 해도, 너무 "눈빛 연기"가 불타오르는 것이 자칫 과장된 맛에 웃길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판이 되면 이 이반 라시모프가 그냥 돈 받고 심부름하는 인간이었다는, 진짜 우스꽝스러운 놈이라는 결론으로 가면서, 도리어 더 극적인 느낌이었습니다.

한편 가장 중요한 배우인 에드위지 페네크는 본격적으로 단독 주인공을 맡아 처음으로 펼치는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 살인마 영화 연기에서 훌륭하게 화려한 매력을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워드 부인 역할을 맡은 이때만 해도 에드위지 페네크는 24세였는데, 이런 영화에서 꼭 필요한 겁먹은 표정 연기와 함께, 에드위지 페네크가 무척 많이 맡았던 "돈 걱정 안하고 사는 설렁설렁 사는 아름다운 여자인데 왠지 남자들과 많이 엮이고 스리슬쩍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고장에서 낯설어 하다가 악당의 공격을 받으면 커다란 눈으로 겁먹은 표정을 아주 잘짓는" 모습을 농염하게 잘 펼치고 있었습니다.


(에드위지 페네크)

전반부는 감상이 몰아치는 음악을 내세워서 기억 속의 환상, 꿈 같은 장면들이 인상이 강하고, 후반부는 이런저런 소설의 그럴듯한 결말 수법들을 모아서 줄거리를 계속 몰아 가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만한 구색을 갖춘 영화였다고 기억될만 합니다.

몽환적인 느낌이 잘 사는 70년대 지알로 영화에서는 현실적인 범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꼭 악마나 마귀가 나와서 세상의 어느 구석을 돌아 다니고 있는 것을 언뜻 본 듯한 느낌이 감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가"하는 수수께끼 풀이로 줄거리가 너무 구체적인 형식이고 비중이 커서 이런 점에는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가 막힌 음악들과 느릿느릿 꿈처럼 펼쳐 보이는 회상 장면들, 주변의 모두가 악당이라는 결론은 환상적인 맛과도 기묘하게 어울렸습니다.


그 밖에...

면도날로 연쇄살인을 일삼았던 진범 연쇄살인마는 후반부에 영화 본론과 아무 상관 없는 어떤 여자 항공사 승무원을 공격하다가, 이 항공사 승무원에게 반격 당해서 사망합니다.

꽤 장사가 되는 영화들을 연출한 편인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은 감독 경력 초창기에 이런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를 여럿 찍었습니다. 이 영화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은 1971년작으로 그 중 첫 영화인 셈입니다.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관능적인 모습을 뽐낸 여자 주인공, 에드위지 페네크를 계속 기용해서, 1972년까지 2년 사이에 "모든 어둠의 색깔" http://gerecter.egloos.com/5220895,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http://gerecter.egloos.com/5221114를 더 찍었습니다.

이 세 영화들에는 남자배우인 이반 라시모프가 모두 상당한 비중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무숙자"의 각본에도 참여한 에르네스토 가스탈디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 "모든 어둠의 색깔",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3편은 페네크 주연, 라시모프 조연, 마르티노 감독, 가스탈디 각본 살인마 영화 시리즈 3부작으로 묶어 볼만한 느낌입니다.

이 세 편 중에서는 대체로 맨처음 나온 이 영화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이 가장 인기가 많은 듯 합니다. 나머지 두 편은 사실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의 정통에서는 빗겨 가 있기도 했습니다.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수수께끼의 성을 배경으로 한 고전 공포 영화 분위기가 강한 내용이고, "모든 어둠의 색깔"은 악마와 마녀 이야기 분위기를 깐 영화로 아예 연쇄 살인은 일어나지도 않는 것입니다.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은 다큐멘터리 몇 편을 감독했다가, 70년대 초에 지알로 영화로 업계에서 자리를 잡은 경력입니다. 이 영화를 포함한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작 3편의 초창기 지알로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으로 활약한 에드위지 페네크는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의 동생과 그 무렵 사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해외로 어지럽게 수출했던 70년대 이탈리아 영화의 특성 상, 이 영화의 제목은 "다음!(Next!, 영국)", "다음 희생자!(The Next Victim!, 미국)", "면도날 살인자의 칼날(Blade of the Ripper, 미국)", "빈의 살인자(Der Killer von Wien, 독일)" 등등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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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4/02/05 11:22 # 답글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제목도 요즘같으면 나오기 힘든 묘한 부분이 있구요. 보고 싶어도 구할수 없는게 아쉽습니다 ㅎ.
  • 게렉터 2014/02/06 21:27 #

    70년대 이탈리아 유행을 타고 나온 영화라 확실히 묘한 기색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요즘도 지알로 영화들의 팬들이 있는 이유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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