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Your Vice Is a Locked Room and Only I Have the Key, 1972) 영화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Il Tuo vizio è una stanza chiusa e solo io ne ho la chiave, Your Vice Is a Locked Room and Only I Have the Key, 1972)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같은 해에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 지알로 영화에 같이 출연했던 에드위지 페네크(Edwige Fenech, 에드위지 페네치, 에드비지 페네쉬)와 이반 라시모프가 나오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감독을 맡은 사람은 그 바닥의 감독으로 유명한 세르지오 마르티노 입니다. 이만하면, 이 영화도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 지알로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의외로 이 영화는 지알로 영화스러운 점은 살짝만 가미된, 공포의 성이 나오는 예스러운 고딕 공포 영화 분위기로 진행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결말을 유명한 19세기 고전 공포 소설을 그대로 따라 가 버립니다.

이제 부터 이 영화의 줄거리를 끝까지 살펴 보겠습니다.


(포스터)

일단은 제목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 갈 수가 없습니다.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라니, 도대체 이게 어쩌자고 붙인 제목입니까?

이 영화의 제작진을 보고 난 다음에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갈만한 제목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70년대 지알로 영화라면 내용하고 무슨 상관이 있건 중요한 소재건 말건 일단 그럴싸하게 들리는 제목을 붙이는 식으로 했던 경우가 많았지 싶습니다. "여인의 가죽을 뒤집어 쓴 도마뱀"이라든가, "모든 어둠의 색깔" http://gerecter.egloos.com/5220895 은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멀쩡한 제목인 "수정 깃털의 새"만 해도 내용 보다는 제목 자체가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리는 지에 집중해서 붙인 제목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한 가지 더 특이한 것은, 제작진과 제목만 보면 과연 이 영화가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인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전형적인 특징에서는 좀 빗겨 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초반부에 아름다운 여인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살인마가 한 명 나오기는 하는데, 이 살인마는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얼마지나지 않아 스윽 정체가 확 밝혀져 버립니다. 그리고 이 살인마는 중심 줄거리와 큰 상관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또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인 줄 알았지? 사실은 아니지롱"하는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이건 의외의 전개이니 "도대체 이게 뭐 어떻게 되려고 그러나"하면서 더 호기심을 갖고 지켜 보게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저택의 주인인 부유한 중늙은이)

이 영화가 시작되면, 시골에 있는 한 예스러운 분위기의 저택에 외롭게 사는 부유한 중늙은이가 불길한 분위기의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분위기는 19세기 공포소설 속에 나오는 불길한 백작이 문학적인 대사를 괜히 요란하게 읊으며 사실은 퇴폐적인 비밀 잔치를 연다는 분위기 그대로 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 자체는 현대이기 때문에, 비슷한 취향의 다른 귀족과 농노들 대신에 인근의 히피들을 불러서 방종의 파티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 파티 장면은 취한 척 흐느적거리는 70년대 춤을 추는 질탕한 느낌으로 끝을 맺습니다만, 이 장면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부자가 거의 미친 수준으로 자기 부인을 멸시하며 막말하는 것을 즐기는 변태적인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자기 저택 가운데에 걸려 있는 여왕 초상화에 대해서 굉장한 사랑과 집착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두 가지 모두를 보여 주기 위해, 이 부자가 자기 부인이 그림 속 여왕과 똑같은 옷을 입게 한 뒤에 부인을 공격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음흉한 장면으로 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으시시한 성, 옛 저택과 관련된 19세기 풍의 고딕 공포물로 이야기는 흘러 가는 느낌이 물씬 나게 됩니다.


(파티)

그러고 나서, 잠시 이 부자가 서점 직원과 바람을 피우려고 하는데, 서점 직원이 살인마에게 살해 당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경찰은 부자가 바람난 사실을 밝혀 내면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데, 부인은 바람 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어쩔 수 없이 남편 편을 들어서 부자가 범인이 아니라고 확인해 줍니다. 만약 이쯤에서 살인마가 계속 활동하면서 싸돌아 다닌다면, 전형적인 70년대 지알로 영화 분위기로 가겠지만, 이 영화는 이 정도 까지만 한 뒤에, 살인마 이야기와는 다른 내용을 펼칩니다. 굳이 짚어 보고 넘어 가자면, 서점 직원은 서점 관리자에게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나옵니다.

얼마 후, 주인공 집의 하녀가 또 누군가에게 살해 당합니다. 이번에도 부자가 의심스러운 상황이고, 더군다나 서점 직원건으로 경찰의 주목도 받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결국 부자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에 부인과 힘을 합하여 하녀를 지하실 벽에 묻어 버립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집에 낯선 방문자인 셈인 에드위지 페네크가 찾아 와서 묵게 되면서, 이제 이야기는 음침한 비밀이 숨겨진 저택을 방문해서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형식의 이야기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릅니다.

에드위지 페네크는 단번에 이 집에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에드위지 페네크는 모든 것을 비웃는 날렵한 도시 젊은이로 건들거리면서 싸돌아 다니는데, 부인을 극심하게 멸시하는 변태적인 부자의 성격을 파악하고, 다른 여러가지 사연들도 알게 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과 장난처럼 끈적한 관계를 맺고 심지어 부자가 애지중지하는 여왕의 복장을 하고 부자를 유혹해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부자는 에드위지 페네크가 다른 남자랑 만나는 것을 보고 격렬한 질투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 이야기가 진행 되었을 때가 이 영화가 가장 재미난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위지 페네크)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녀를 죽인 살인범이 누구인가 하는 수수께끼도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날 수 있을 것 같고, 어디로 무슨 일을 저지를 지 알 수 없는 에드위지 페네크와 그를 둘러싼 성격 파탄자들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간에 오토바이 경주를 취미로 하는 우유배달부와 에드위지 페네크가 엮이는 장면도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관계로 꼬일 단초는 널려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서, 영화 내내 흐르는 불안하고 끈적한 분위기에 어울려 지도록, 에드위지 페네크가 날카로운 화장과 짧은 머리를 한 모습으로 몸매 자랑을 하는 장면도 같이 나옵니다.

결국 이야기가 흘러 가는 방향은 부인이 견디다 못해 부자를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가위로 부자를 공격하는 눈이 희번덕거리는 부인 역할의 아니타 스트린드베르크의 연기는 또렷하게 새겨질만 합니다. 초장에 부자에게 시달리며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그렇게 잘 연기했는데, 무시무시한 공격자의 모습도 이렇게나 잘 보여 주는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 입니다.


(아니타 스트린드베르크)

그리고 진상이 펼쳐지는데, 좀 억지를 쓰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인고 하니, 부인이 "남편이 살인범으로 몰리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하며 망가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복수를 하기 위해서, 바로 부인 자신이 하녀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충분히 망했다 싶은 시점에서 남편까지 죽여서 역시 지하실 벽에 묻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부인이 결국 범인이었다는 구도 자체는, 내내 당하기만 하던 이야기에서 그럴듯한 뒤집기이기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만, 남편이 별로 망가지는 모습을 영화에서 안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방식으로 복수를 한 것이 무슨 큰 효과가 있었는지 알쏭달쏭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내용을 알려 주는 장면이, 지하실에서 "복수를 마쳤다"고 모든 것을 친절하게 다 설명해 주는 혼잣말(!)을 길게 늘어 놓는 부인의 연극 같은 독백으로 그냥 다 때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약간 말이 안되는 장면을 연기력으로 밀어 붙여서 볼만해 지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진기한 소재들과 그럴듯한 난리를 보여줄 것처럼 쌓아 올려 갔던 지금까지를 되돌아보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쯤해서, 지금껏 뭔가에 관해서는 범인이 아닐까 싶게 불길하게 주변을 맴돌던 무서운 사나이 역할의 이반 라시모프도 나타납니다. 알고보니, 이반 라시모프는 부인과 바람이 났던 것입니다. 이반 라시모프는 에드위지 페네크를 추적합니다. 에드위지 페네크는 살인에 대해 말하지 않고 떠나는 대신에 부인에게 보석을 받고 떠난 것입니다. 이반 라시모프는 오토바이 경주 선수 겸 우유배달부랑 떠나고 있는 에드위지 페네크의 앞길에 미끌거리는 기름을 뿌리고, 오토바이 사고를 나게 해서 두 사람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보석을 되찾아 옵니다.

이반 라시모프는 마지막 목격자까지 죽여 버렸다고 이제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고 부인에게 찾아 옵니다. 부인은 즐거워 합니다. 그렇지만, 곧 부인은 높은 전망 좋은 절벽에서 이반 라시모프까지 확 밀어서 떨어 뜨려 버리고, 정말로 아무 목격자가 없는 상태를 만듭니다. 영화 내내 가장 불쌍하게 구박 당하던 부인이, 막판에 가장 모질게 주변에 정 준 사람들을 다 싹쓸이로 죽여 버리고, 저택과 재산을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이반 라시모프)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 했던대로 유명한 19세기 고전 공포 소설을 그대로 따라 갑니다.

중반에 부인이 싫어하고 부자가 좋아했던 "사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검은 고양이가 자꾸 나왔드랬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이 고양이를 무척 싫어 합니다. 거기다가 중간에 시체를 지하실 벽에 묻는 장면이 나왔지 않습니까. 이만하면 바로 결말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미국 고전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의 결말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검은 고양이가 너무 대놓고 나와서, 설마 설마 "검은 고양이" 소설 그대로 끝날까 싶기도 했습니다만, 이 영화는 확 그대로 가버립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될 지 궁금했던 영화 도중을 돌아 보면, 결말은 백년 묵은 유명한 소설을 그대로 따라 간다니, 처음에는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막상 영화를 지켜보니, 그래도 아주 재미없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고양이 소리가 들리고, 지하실로 내려가 보고, 벽에 시체를 묻어 놓은 것을 들키지 않게 하려고 대충 넘기려고 하지만 결국 들키고 만다는 이야기의 연출을 과연 조마조마하게 잘 해 놓았고, 이 부분에서 겁을 먹었다고 당황하기도 하는 부인의 연기는 이번에도 역시 눈에 확 들어 올 만큼 화려하게 깨끗했습니다.

거기다가 이야기의 인물들이 잔재미를 주는 점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경찰은 헐렁하니 좀 우스운 사람들입니다. 악랄한 부자나 얄밉게 건들거리는 에드위지 페네크, 인상부터가 날카롭고 겁나게 생긴 이반 라시모프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아 보일 정도 입니다. 그리고 이 경찰들이 찾아 온 이유부터가 뭐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 꿈도 못꿀만한 무지렁이처럼 묘사 되었던 동네 사람이 "동물 학대"를 하는 것 같다고 신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사악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올 것 같던 악당들을 모두 없애 버린 부인이, 도리어 아무 재주 없고 힘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딱 붙잡혀 버린다는 반어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인 자신이 초반에 학대 받는 힘없는 사람이었다가 나중에 복수하는 이야기였다는 점과 견주어 지면, 이런 내용은 당연한 이야기로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도 또다른 힘을 받는 점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문제의 사탄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신비한 장면, 괴상한 이야기를 들려 주기로 유명한 70년대 이탈리아 영화인데 제목이, 멋드러지게도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라면,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신기한 이야기일지, 정말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이 영화는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일지 보고 싶어질만 한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거기에 비해서는 이야기에 놀라운 대목은 부족한 편이고, 모두가 파멸해 버리는 결말로 나아 가는 방법도 싱거운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검은 고양이"의 이야기를 결합시켜 놓은 것은, 재미를 더하는 점도 있었지만 대신에 아주 화끈하게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갈 수도 있었는데, 그냥 고전 각색에 멈추고 말았다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다른 점들도 유명한 70년대 지알로 영화들에 비해서는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목에 비해서는 실망할 만한 영화라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바로바로 눈에 들어 오는 소재들을 뿌려서 궁금증을 이어 가는 이야기는 따라갈만 하고, 루이지 피스틸리가 날카롭지만 뒤틀려 있는 사악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재주, 에드위지 페네크의 아름다운 자태로 영화를 혼자 때우는 대목들, 여러 폭넓은 성격을 다양하게 모두 선명하게 보여 주는 아니타 스트린드베르크의 연기력이 기둥이 되어 주는 영화였지 싶습니다.


(아니타 스트린드베르크에는 뒤지지만 제 몫을 톡톡히 했던 에드위지 페네크)

몽환적인 느낌이 잘 사는 70년대 지알로 영화에서는 현실적인 범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꼭 악마나 마귀가 나와서 세상의 어느 구석을 돌아 다니고 있는 것을 언뜻 본 듯한 느낌이 감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고전적인 공포물 느낌이 강해서 그런 느낌은 적습니다. "검은 고양이" 이야기로 빠진 것이 심심하긴 했지만, 그 덕택에 그런 어두운 느낌이 막판에 좀 가미되는 면은 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이 화려한 제목은 같은 감독의 한 해 먼저 나온 영화,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 http://gerecter.egloos.com/5220798에 나오는 쪽지 문구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에도 에드위지 페네크와 이반 라시모프는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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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원한의 거리 2014/02/10 17:59 # 삭제 답글

    재미있어 보이는군요. 내용이 조금 억지 춘향이긴 하지만 확실히 나름대로 잔재미와 독특한 분위기가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게렉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태리 영화는 '일젠 제목만 잘 짓고 보자'라는 마인드에 충실한 영화가 많은 듯 합니다. <웃는 창문의 집>같은 영화도 그렇고...
  • 게렉터 2014/02/26 20:44 #

    그래도 웃는 창문의 집만 해도 개성 뚜렷한 괜찮은 영화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영화도 조만간 글 하나 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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