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달을 위한 다섯 인형들 (5 bambole per la luna d'agosto, Five Dolls for an August Moon, 1970) 영화

"8월의 달을 위한 다섯 인형들"은 70년대 이탈리아 연쇄살인마 영화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입니다. 배경은 똑같습니다. 외딴 섬의 저택에 사람들이 모여 고립되어 있는데 하나 둘 정체불명의 살인마에게 살해 당한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 바닥에서는 거장급인 마리오 바바가 감독을 맡은 영화인데, 영화를 지켜 보면 썩 재밌다기 보다는, 나름대로 개성이 볼만하다는 정도의 감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결말까지 한 번 이 영화의 내용을 다 살펴 보겠습니다.


(포스터: 포스터는 공포영화 같지만 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되면 상류층 부자들이 외딴 섬의 저택에 모여 술을 한잔씩 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 중 한 명인 에드위지 페네크(Edwige Fenech, 에드위지 페네치, 에드비지 페네쉬)는 술에 취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에드위지 페네크의 춤은 점점 달아 오르고, "악마에게 제물 바치는 놀이"라는 이런 영화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될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재밌다는 태도인 듯 합니다.

저택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그 중 한 명이 갖고 있는 "특수한 화학물질의 분자구조식"을 알아내기 위해서 입니다. 갑부들은 수표에 돈을 척척 써서 내밀면서 그 "특수한 화학물질의 분자구조식"을 돈 줄테니 넘겨 달라고 합니다. 서로 그것을 독차지 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걸고 다투는 분위기이고, 이 사람들은 도덕심이 그다지 강하지 않게 묘사되기 때문에, 아마 살인도 날 만한 상황인 것입니다.


(고립된 저택에 모인 사람들)

이 영화의 본론은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서 발견되고, 배가 끊겨서 외부로부터 고립된 가운데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 다음 희생자는 누구인지, 하는 의문을 이어 가는 것입니다. 이게 좀 애매한데, 범인의 정체를 숨기거나 궁금하게 하는 연출이 별로 잘 되어 있는 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보다보면, 계속 이 사람 죽고, 저 사람 죽고 반복적으로 일이 일어날 뿐이라서 그냥 별로 궁금해지지도 않을 지경입니다. 살인자의 공격이나 방어, 도주 같은 장면들도 인상적으로 나오는 것이 거의 없고, 그냥 "누가 죽었다"는 것을 하나 하나 차례로 보여주는 것 뿐입니다. 게다가 범인의 정체라는 것도 싱겁게 나오고 그나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소설을 읽었다면 심심할 뿐이었습니다.

사건이 반복적이고, 조금 지루할 정도로 대사나 행동에도 상큼하게 눈에 뜨이거나 재밌는 것들이 없다는 점에서, 급하게 대강 영화를 꾸며 밀어 붙인 느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등장인물이 여럿 나와서 서로 주고 받는 게 많이 필요한데도, 그런 각자의 특징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등장인물들이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대체로 선남선녀들이라, 그럭저럭 화면을 꾸며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에드위지 페네크)

개성은 좀 다른 데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배경 음악이 전부다 지중해 휴양지에서 들으면 좋을 것 같은 즐거운 음악들입니다. 듣다 보면, 섬에 갇혀서 서로 죽고 죽이는 데, 그런 등장인물들을 비웃고 놀리는 분위기 같은 느낌이 날 정도였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모습도, 이 사람 저 사람 죽어 가는 판에, "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거지"라는 약간 맛이 간 태도로 그냥 갑부가 주식투자 했다가 돈 좀 잃었다는 정도로 대할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부자들이 멋있는 척 치장하며 외딴 섬의 고급저택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모습에 살인극을 섞은 내용을 어두운 코미디로 넘기는 느낌이 났습니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에서는 사람 죽은 시체가 발견되면,

"이거 경찰 올 때까지 그냥 이대로 두면 상할 텐데 어쩌죠?"

라고 당황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시체를 하나하나 비닐 봉지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놓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일견 섬뜩하기도 하면서, 일견 무의미하게 웃기는 면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결국 뒤늦게 경찰이 출동하고, 이런저런 사연 끝에 잡힌 범인이 사형을 기다리며 감옥에 잡혀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놀며 뛰어 다니던 여자 아이가 사형 당할 범인을 찾아와,

"죽은 사람들이 남긴 수백만 달러를 벌써 놀다 보니 다 써버렸지 뭐에요. 돈 될 거 더 숨겨 놓은 거 가르쳐 주세요."

라고 하고는, 대답을 듣고 돈을 챙긴 후에 흥겹게 또 돈 쓰러 나가는 장면 입니다. 그냥 꼼짝 없이 사형만 기다려야 하는 범인의 감옥 모습은 반짝거리는 세트로 무슨 저승세계처럼 묘하게 환상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연쇄살인을 목격하고, 흥청망청 돈 써버리고, 사형 당하는 사람에게 돈 또 털어 가는 일을 하면서도 그저 해맑기만한 여자 아이의 표정도 마치 누군가를 조롱하는 꿈과 같아서 기억에 남을만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형수를 면회하러 감옥에 최후의 승자인 여자 아이가 찾아 오는 장면)

몽환적인 느낌이 잘 사는 70년대 지알로 영화에서는 현실적인 범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꼭 악마나 마귀가 나와서 세상의 어느 구석을 돌아 다니고 있는 것을 언뜻 본 듯한 느낌이 감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도 이 마지막 장면에서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의 감옥 속 범인 표정을 보면, 잠깐은 이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간단한 줄거리로 이어지는 살인들을 모아 놓은 것이 내용의 거의 전부라는 면에서 훗날의 "13일과의 금요일", "할로윈" 같은 영화 아류작과 통하는 점이 조금 있다고도 할만합니다. 영화를 꾸민 기본 정신은 그러고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서, 이 영화는 살인마가 주인공이 되는 느낌도 아니고, 영화 포스터와는 달리 공포물 분위기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코미디라고 보기는 어렵고 아쉽게도 코미디가 약하긴 합니다만, 환상적인 연출이 조금 서려 있는 결말과 흥겨운 음악을 보면, 그래도 차라리 "살인무도회""5인의 탐정가" 같은 추리영화의 패러디물을 보고 싶을 때 보면 조금 더 가깝게 보일 거라는 생각 해 봅니다.


그 밖에...

모두가 노리고 있는 것이 무슨 화학물질인지는 끝까지 구체적으로는 안가르쳐 주는데, 중간에 "혹시 핵폭탄이라도 만들 수 있는 거냐?"라는 물음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공업적으로 가치가 있는 플라스틱"이라고만 말해 버립니다. 그야말로 "맥거핀"이라서, 허상과도 같은 무의미한 부유함을 목적으로 싸우는 허무한 모습이라는 심상을 깔아 주는데 어울렸습니다.

이 영화는 분류하기에 "지알로 영화"라고 한다면 안들어 맞는 부분도 꽤 많긴 합니다만,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에서 자주 출연한 에드위지 페네크가 처음으로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에 출연한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여러 배우들이 비중을 나눠 갖고 있는 영화라 에드위지 페네크가 주인공,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출연 분량은 중간 이상은 될만 합니다. 이 이후로, 에드위지 페네크는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 "피투성이 아이리스 사건", "모든 어둠의 색깔",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살인자를 향하여 옷을 벗으세요" 등등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핑백

덧글

  • 원한의 거리 2014/03/13 22:23 # 삭제 답글

    확실히 보고 있으면 굉장히 묘한 느낌이 드는 영화입니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제가 6~70년대 이태리 지알로 영화를 그렇게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호러영화는 다른 뭔가 색다른 매력과 자유분방한 표현력이 있었습니다
  • 게렉터 2014/04/11 21:04 #

    특히 막판에 좀 환상적인 분위기로 편집을 확 잘라 먹어 가면서 꿈 같은 이야기로 빼 버리는 것이, 이 시절 유럽권 영화들에서 종종 보여서 기억에 남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