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야승 괴물열전 (1~16) 기타

* 이 글은 괴물 백과 사전 시리즈로 올린 것입니다. 현재 조선시대 이전의 그림들이 참고로 곁들여져 있습니다. 유럽권 그림을 이용한 과거 버전 글은 여기 http://gerecter.egloos.com/3268552 에 있습니다.

고전 중에 뛰어난 것, 재미있는 것을 골라서 엮어 보는 일들은 예전부터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초에 편찬된 "동 문선"은 삼국, 고려, 조선의 여러가지 아름다운 글귀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고, 조선후기에 나온 "대동 야승"은 주로 역사와 관련된 여러 잡다한 이야기 거리가 되는 책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신라, 고려, 조선의 고전들 중에서 괴물 이야기들만 모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책들을 훑어서, 30여종의 책에서 약 100 종 정도의 괴물을 꼽아 보았습니다.

우선 모을 대상이 되는 괴물들은 책이나 문서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제한했습니다. 물론,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구비문학, 구전설화가 훨씬 내용이 방대하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야기되었던 괴물인가?" "어떤 상황에서 유행하던 괴물인가?" 하는 괴물에 대한 사연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범위를 제한하려고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옛 책에 명확히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은 배제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종교나 미신으로 믿는 사람이 있던 괴물이나, 꿈 이야기를 다룰 지언정, 작자의 순수창작임이 확실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도 뺐습니다.

같은 이유로, 설령 기록이 있다하더라도, 글쓴이나, 편찬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도 빼버렸습니다. 또 글쓴이의 이름은 알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글쓴이의 생애에 대해서 알 수 없을 때에도 역시 제외 했습니다. 글쓴이에 대한 유물이나 유적이 없어서 글쓴이가 실제로 있었던 인물임이 의심스럽다거나, 실제로 책을 쓴 것이 확실한지 알기 어려울 때도 간혹 있는데, 이것도 기록이 부실하고 정확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빼버렸습니다. 사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순오지"나 "촌담해이" 같은 책에 실린 기록처럼, 포함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좀 애매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내용을 따져서, 그 특징이 개성있다거나, 후대에 끼친 영향이 생각할만한 경우에는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고려 도자기들)

또, 한편으로는, 1800년대 부터는 문화의 양상이 너무나 다양해지고, 문건의 숫자도 매우 방대해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이야기할 괴물들은 18세기 이전의 것으로 한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용재총화" "어우야담" 네 가지 책에 실린 괴물들은 모두 제외했습니다. 그래서 이상 네 가지 책에 등장하지 않는 괴물들만 실어서 좀 더 다양한 괴물들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괴물들 끼리는 기록을 합쳐서 하나의 보다 묘사가 풍부한 괴물로 정리했고, 반대로 이름이 같은 괴물이라도 현격히 모습과 습성이 다른 경우에는 다른 괴물로 분리해서 싣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괴물에 대한 설명은, 책에 언급된 그대로의 설명을 옮기는 것에 더하여, 다른 기록에 나오는 비슷한 괴물의 묘사, 비슷한 전설, 비슷한 괴물의 그림, 공예품을 참조한 것 등등을 참조하여 썼습니다.

괴물들은 "그 겉모습이 기이하여 괴물 같은 것"을 기준으로 선별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인간과 겉모습이 차이가 없는 단순한 귀신이나 유령, 신선이나 초능력자들은 모두 제외하였습니다.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설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하고,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토론하거나 주석, 해설을 달아볼만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아쉬운대로, 일단은 일부에만 간단한 주석을 달았습니다. 대신 모든 괴물들의 그 기록 출전과 글쓴이를 밝히고, 언제 어디서 목격되었는지를 최대한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괴물들은 그 겉모습에 따라 종류별로 분류하여 내용이 소개 될 것입니다. 그 차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말, 소, 사슴 따위와 닮은 무리들
- 둘째. 개, 쥐, 고양이 따위와 닮은 무리들
- 셋째. 닭, 매, 기러기 따위와 닮은 무리들
- 넷째. 뱀, 거북이, 개구리 따위와 닮은 무리들
- 다섯째. 돔, 메기, 피라미 따위와 닮은 무리들
- 여섯째. 벌, 거미, 지렁이 따위와 닮은 무리들
- 일곱째. 빛, 불, 별 따위와 닮은 무리들
- 여덟째. 무리를 짓기 어려운 것들
- 아홉째. 사람과 닮은 무리들

이렇게 모은 100 종류 정도의 괴물들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그림을 곁들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대로, 일단은 조선시대 그림과 민화 중에서 뽑아서 참고 삼아 같이 실었습니다.

괴물의 이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억지로 "뭐뭐 귀鬼" 라든가 "천天 뭐뭐", "선仙 뭐뭐" 하는 식으로 한자를 조합해 이름을 짓는 일은 피했습니다. 마음대로 이름을 지어 붙이는 대신에, 책 원문에 나와있는 괴물을 묘사하는 데에 쓰인 한문어구를 그대로 발췌해서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여러 시대, 여러 가지 괴물들을 하나 둘 구경하면서, 괴물들 사이의 관계를 따져 보거나, 괴물이 펼칠 수 있는 다른 이야기들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18세기까지, 문헌 자료가 있는, 모습이 괴물 같은" 괴물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젠가 누군가 "19세기 이후의 괴물들, 문헌이 없는 구전 괴물들, 모습이 사람과 같은 신선, 초능력자 종류, 소설속에 등장하는 괴물" 등등을 또다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소개된 것들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이야기거리가 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이 블로그의 "별개시리즈" 카테고리에서 몇차례 더 이어집니다.)




첫째. 말, 소, 사슴 따위와 닮은 무리들:

(고려 도자기)


1. 추여묘 (雛如猫: 새끼가 고양이를 닮았다는 말)

(민화 기양동자도)
말과 비슷한데, 머리가 여러개 이고, 머리가 고양이 무리처럼 생겼다. 머리의 모양이 머리마다 서로 다르게 생겼는데, 두 개의 머리가 각각 귀가 하나씩 밖에 없는 등 나뉘어 있기도 하다. 평범한 암말이 이것을 낳게 된다. 가평 땅에서 1627년에 발견되었다. "인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 이상한 모양으로 태어난 말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나와서, 머리가 두 개라거나, 다리가 여러 개인 말이 태어났다는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보통 나라의 흉한 징조로 해석하여 기록된 것들로 보인다. 즉 옛 사람들은 나라에 나쁜 징조가 있거나 나라에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때문에 나라 안을 감도는 알 수 없는 기운 같은 것이 좋지 못하게 균형이 무너졌고, 그 때문에 이상한 짐승이 태어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다. 1627년 "인조실록" 사례는 그 중에 특이하여 새끼 말이 고양이 같았다는 것이라서 꼽아 본 것이다. 불길한 짐승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한 편으로는 단순히 모습이 다를 뿐인데 사람들이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여 미워하거나 이것이 나타난 소식을 숨기려고 하거나 없애려고 해서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혹언박혹언백 (或言駁或言貘矣 누구는 박이라고 하고 누구는 맥이라고 했다는 말, 박, 맥 駁, 貘)

(계명대 소장 책거리 병풍)
사나운 동물로, 중국 고전에서 말하는 "박(駁)" 또는 "맥(貘)" 두 짐승과 비슷한 짐승이나 두 짐승과는 다른 것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말과 곰의 중간 모습인데, 코는 산돼지 같으며 산양처럼 긴 털이 자라나 있다. 발은 곰발바닥처럼 되어 있는데, 그런 큼직하고 두툼한 발에 호랑이처럼 거센 발톱을 갖고 있다. 말이나 큰 곰 정도 크기의 커다란 것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무서운 짐승이다. 총을 쏘면 잡을 수 있기에, 군인들이 총을 쏘아 사냥한 뒤, 그 가죽을 조정에 보냈다고 한다. 평안도 일원에서 1747년 수차례 발견되었고, "영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 여기서 총은 임진왜란 후에 적극 도입했던 조총 류의 화승총을 말한다.


4. 천록벽사 (天祿辟邪)

(민화)
아주 작은 사슴 크기의 동물인데, 얼굴은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사나운 호랑이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나 있는데, 또 온몸은 비늘로 덮혀 있기도 하다. 발은 사나운 형체이다. 모습은 그렇지만, 특별히 무섭게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크기도 작다. 선량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은 아니며,. 반면에 악한일을 저지르는 악당, 괴물, 귀신 따위를 맹렬히 물리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경복궁 내부의 물 길에 누워 있는 돌조각이 바로 이것을 나타낸 것이다. 경복궁의 조각상에 관한 이야기로 이덕무가 쓴 "이목구심서"에 나와 있다.

* 원전은 중국 고전에서 사악한 것을 쫓아 주는 짐승으로 언급되는 "천록", "벽사"와 같은 동물에 빗대어, 그 나타낸 바를 알 수 없는 궁전의 이상한 조각상에 대해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5. 옥기린 (玉麒麟)

(민화)
말과 비슷한 짐승인데, 크지 않은 뿔이 돋아나 있고,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말과는 달리 보통 깊숙한 동굴이나 땅 밑의 토굴 속에서 사는데 하늘을 날 수 있기도 하며, 뛰어난 사람이라면 길들여 타고 다닐 수 있다. 이때 이 말을 다루는 채찍에는 옥편(玉鞭), 즉 옥으로된 채찍을 쓴다. 이 말이 날아오르는 것은 날개짓으로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조천석(朝天石), 즉 하늘 위 세상의 궁전에 조회하러 갈 때 타는 하늘로 떠오르는 돌 위에 올라 가서 하늘 위로 올라 간다. 평양 땅에 이것이 살았다는 기린굴이 있는데,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그곳에서 옥기린을 한 마리 길들였고, 그래서 타고 날아다닐 수 있었다고 사람들이 믿었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 "기린"은 중국 고전에서 언급되는 비슷한 신비한 짐승으로 "옥기린"은 옥과 같은 기린 혹은 아름다운 기린으로 이야기 되어, 도교 계통의 신비로운 이야기나 시에서 언급되기도 했고, 뛰어난 청년에 대한 비유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의 옛 이야기들 중에는 고구려의 주몽이 "옥기린"을 타고 다닌 이야기가 특별히 뚜렷하게 전해지고 있다.
"광개토왕릉비"에 나온 전설에는 주몽이 하늘로 오를 때에 하늘에서 황룡이 내려 왔고 그 머리를 딛고 올라 갔다고 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와 합쳐서 상상해 보자면 옥기린은 황색의 용과 비슷한 점이 있다거나, 그 크기가 크다거나 머리통의 모양이 특이해서 사람이 설 만한 모습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6. 식호표(食虎豹: 호랑이와 표범을 먹는다는 말)

(민화)
말 정도의 크기인 사나운 짐승으로 호랑이와 표범을 아주 많이 잡아 먹는 식성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매섭다. 중국고전에서 말하는 "박(駁)"과 비슷한 형태라고 분류하기도 하나, 색깔이 푸른빛이고 몸에 갈기가 길게 있다는 점에서 전체 모양이 다른 짐승에서 나타나지 않는 이상한 형태이다. 머리나 다리의 모양은 말을 많이 닮은 듯 하고, 사람 또한 잡아 먹는다. 양주 땅에서 나타났으며,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기록되어 있다.

* 그 숫자가 많지 않을 수 밖에 없는 호랑이나 표범을 먹고 사는 더욱 희귀한 짐승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호랑이나 표범이 더욱 흔치 않아져서 가끔 너무 배가 고프게 되면, 그보다 잡아 먹기 쉬운 인간을 잡아 먹으려고 하고, 이럴 때에 사람들에게 많이 눈에 뜨이게 된다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7. 용마 (龍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무신도)
주로 폭포아래의 맑은 물 깊숙한 곳에 사는 말모양의 동물로 보통 말보다는 상당히 크다. 추측해 보자면, 그 달리고 뛰는 속도는 보통 말 보다 비할 바 없이 뛰어나다. 그러나 그 기세가 너무나 맹렬하기 때문에 격렬하게 물밖으로 나와서 나돌아다닐 때에는 주변을 짓밟아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반대로 사람이 길들이면 훌륭한 말이 되어 물밖에서 보통 말처럼 타고 다닐 수 있다. 물속에서는 파란 빛을 내뿜는다. 행동이 기이하여 물밖으로 나와 말이나 다른 짐승과 잡종이 생기는 일도 있다. 이 경우에 이렇게 태어난 잡종은 이것 못지 않은 뛰어난 힘을 갖게 된다. 개성땅 박연폭포 근처의 마담 연못에 관한 이야기를 1607년에 들은 일이, 김육이 쓴 "천성일록"에 기록되어 있다.

* “용마”는 뛰어난 말에 대한 관용어구로도 널리 쓰인 말이라서, 용마에 대해 전해 내려온 기록이 있지만, 특별히 이상한 짐승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냥 뛰어난 말에 대한 이야기인 경우도 흔하다. 반면에 용마라는 이름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용과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물과 관련이 있다거나 용과 비슷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전해진 이야기도 적지 않다. 물속에서 사는 용에 비유해야할 만한 것이 튀어나와 말처럼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다른 나라에도 널리 퍼져 있어서, 중국고전 뿐만아니라,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 이야기에도 조선 무렵에 기록된 용마 이야기들과 비슷한 것이 있다.
보통 물 속에서 뛰어난 것은 물 밖으로 나오면 힘을 잃는 다는 식의 이야기가 흔한 편인데, 물에서 나와 하늘로 치솟는 용 이야기와 연결되기 때문인지, 용마에 관한 이야기에는 물속에서 사는 이것이, 물 밖으로 나오면 보통 말보다 외려 더 월등하다는 점도 이런 부류의 이야기의 특징으로 볼만 하다.
그 겉모습에 대해서는 물속에서 살기 때문에 아마도 물 속에서 숨쉬고 다니기에도 좋을 것으로 보아 아가미, 물갈퀴, 지느러미 같은 것이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의 기록인 "용성지"에는 남원 지역의 민속 놀이인 "용마놀이"를 소개하면서, "용마"라는 말을 언급하는데, 여기에서는 놀이에 사용하기 위해 용 모양으로 꾸민 목마 같은 탈 것으로 "용마"가 언급 되는 조금 다른 사례가 있다. 여기에서 용마는 다섯 색깔로 알록달록하게 채색해 두었고, 여러 많은 사람을 군사처럼 거느리고 스스로 장수에 해당하는 사람을 태운 채 그 모든 떼거리가 함께 다른 용마와 싸우는 것이다. 이때 남쪽편이 이기면 풍년이, 북쪽편이 이기면 흉년이 드는데, 그렇다면 어떤 지역의 농사를 돕거나 상징하는 용마가 있었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국세시풍속사전"의 "용마놀이" 항목을 보면, 현대에 복원 된 "용마놀이"에서는 남쪽을 황룡, 북쪽을 청룡으로 구분하고, 용마를 따르는 군사들은 삼지창, 북, 깃발, 몽둥이 등을 들고 있으며, 어떤 군사들은 무섭게 생긴 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마도 어떤 귀신과 괴물 같은 것을 용마가 이끌고 다닌다는 느낌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무렵의 이야기에는 장군이나 왕의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 이렇게 튀어나온 말을 다스린다거나, 이렇게 튀어나온 말과 사람의 잡종으로 태어났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꽤 있다.


8. 강철 (强鐵), 말과 닮은 형태

(김희겸 작 석천한유)
늪 속에 둥지를 틀고 사는 망아지와 흡사한 동물인데, 얼굴은 사자나 용과 비슷한 점도 있다. 늪 밖으로 튀어나와 활동을 개시하면 주변을 뜨겁게 하는 뜨거운 바람, 연기 따위를 뿌리고 다닌다. 그 정도가 강하고 상당히 멀리 퍼져 나가는데다가 사방으로 날뛰며 사납게 덤벼들기에 사람에게 피해가 크다. 특히, 논과 밭을 헤집고 다니면, 그 뜨거운 기운 때문에 일대가 가뭄이 들고, 농사를 망칠 정도가 된다. 뜨거운 기운 때문에 항상 늪이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르고, 바다로 뛰어들어가면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정도에 이른다. "강철이 있는 곳에는 가을이라도 봄과 같다"라는 관용 표현이 생길 정도로, 큰 피해를 주는 동물이었다. 이것은 가을에는 추수 무렵이 되어 곡식과 과일이 풍성해야할텐데, 강철이 날뛴 피해로 농사가 다 망하면, 이제 농사를 시작하는 봄과 다를 바 없는 황량한 꼴이 된다는 뜻이다. 김포에서 출현해서 농가 피해가 극심했기에, 주민들이 힘을 모아 강철을 바다로 몰아냈다는 이야기가, 1741년생인 이덕무가 쓴 "양엽기"에 기록되어 있다.


9. 강철 (强鐵), 소와 닮은 형태

(김식 작 수하모우)
연못이나 강 속에서 사는 소와 비슷한 동물인데, 얼굴과 피부의 생김은 용과 비슷한 점도 있다. 몸에서 이상한 연기, 바람 같은 것을 내 뿜는데, 이것이 폭풍과 번개, 우박을 일으킨다. 이것은 크기도 크고, 그 몰고다니는 번개와 폭풍의 피해도 극심해서 논밭을 심하게 부수어 농사를 망하게 한다. 그래서 이 동물이 끼치는 해악에 대해 "강철이 지나가는 곳에는 가을철이 봄처럼 된다"라는 속담이 널리 퍼졌을 정도이다. 이 동물이 뿌리는 우박의 피해가 특히 심한데, 정상적인 우박이 아니라서, 우박이 떨어진 곳은 풀이나 나무가 자랄 수 없게 황량해지고, 사람, 동물도 피해를 입는다. 서해안에서 낙동강 일원까지 끼친 피해에 대한 이야기가, 1681년생인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기록되어 있다.

* 강철이 우선 관심을 끄는 것은 17세기 이후 기록에서도 자주 언급된 괴물이면서 꾸준히 그 전설이 이어져서 현대까지 지방의 민속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현대에 채록된 이야기들을 보면 "꽝철", "깡철"이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고,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에는 "강철이"라는 항목으로 올라가 있다. 여기서는 옛 기록에 자주 쓰인 말을 살려서, "강철"이라고 표기 했다. 한편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유행하지 않고 조선 이후로 한국에서만 유행한 괴물이면서, 그 겉모습도 상당히 특이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강철에 대한 기록 중에 시기가 비교적 앞서는 것은 1614년 기록인 "지봉유설"에 실린 내용이다. 이 기록은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 즉, 강철이 오면 추수할 것이 없어진다는 당시 조선에 돌던 속담의 의미를 궁금해 하는 대목인데, 글쓴이 이수광이 시골 노인에게 물어 본 결과, "강철"이란 괴물인데 그 근처 몇 리(몇 백미터)의 풀, 나무, 곡식이 모두 타 죽는다는 전설을 알려 줬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이수광은 강철을 중국 고전, "산해경"에 나오는 소와 닮은 모습의 "비(蜚)"라는 괴물이 아닐까 추측한다. 중국 고전에서 "비"는 눈이 하나이고 꼬리는 뱀 모양이라고 되어 있고, 이것이 나타나면 전쟁이나 전염병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후의 기록들은 비슷하고도 조금씩 다르다.
1740년 경의 기록인 "성호사설"에서는 중국 고전의 "독룡(毒龍)"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것이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 속의 강철과 비슷한 것 같다고 언급한다. 여기서도 묘사는 소와 비슷한데, 이번에는 "지봉유설"과 달리 불 기운으로 말리고 타 죽이는 괴물이 아니라 폭풍우로 농사에 해를 끼치는 동물로 되어 있다.
1742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학고집"의 "기이"라는 글에서는 강철을 뿔이 있는 독룡 비슷한 것이기는 하지만 온몸에 털이 있고 황색 기운을 띄는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도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인용하고 있는데, 번개와 폭우를 내려서 재해를 일으키는 괴물이다. 글쓴이 김이만은 중국 고전의 "효(蟂)"라는 것이 강철과 비슷한 것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1779년 경의 기록인 "학산한언"에서는 이의제라는 사람이 계룡산에서 소 같기도 하고 말 같기도 하고 용 같기도 한 동물을 보고 강철(江鐵:한자가 다릅니다.)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철원의 연못 속에 사는 괴물을 제거 하기 위해 근처 관원들이 물 속에 뜨거운 장작을 집어 넣었더니 말처럼 생긴 괴물이 튀어 나와 우박을 뿌리며 날아 갔는데, 그것도 강철인 듯 하다고 언급한다. 글쓴이 신돈복은 강철이 가뭄을 일으키는 중국 고전의 "한발(旱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여기서도 맨 먼저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인용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기록인 "양엽기"에서 강철은 망아지 같은 괴물로 김포의 늪 속에 살고 있는데 가뭄을 일으켰고, 바다 속으로 숨으니 바닷물이 끓었던 일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글쓴이 이덕무는 강철이 중국 고전의 "후(犼)"와 비슷한 것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여기서도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인용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는 "용이 되려다 못한 것이 강철"이라는 말이 나온다.
1780년의 일을 기록한 "열하일기" 중 "성경잡지"의 "상루필담" 대목에서는 청나라 사람이 불 같은 기운으로 주변을 뜨겁게 해서 일대를 고생시킨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른 청나라 사람들은 그 이름을 화룡(火龍), 응룡(應龍), 한발(旱魃) 등으로 지칭 합니다. 그런데 글쓴이 박지원이 그런 것을 조선에서는 "강철(罡鐵:한자가 다름)"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도,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인용하는데, 아울러 가난한 사람이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별 득이 없을 때 "강철의 가을이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정리해 보자면, 폭우, 번개, 우박을 일으켜서 농사를 망치는 종류가 있고, 가뭄, 불, 뜨거운 기운을 일으켜서 농사를 망치는 종류가 있다. 이렇게 상반된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는, 강철이라는 괴물이 가진 힘에 대해 처음부터 구체적인 특징이 있었다기 보다는, "강철"이 어떤 형태로건 농작물을 망치는 자연 재해의 상징 정도로 취급 되었기 때문 아닌가 짐작해 본다.
또한 강철에 대한 이야기에서 유난히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이 인용되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해 볼만 하다. 짐작해 보자면, 이 알 수 없는 속담이 당시 조선에 먼저 돌았고, 이후 그 속담의 뜻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강철이라는 괴물에 대한 상상이 따라 붙은 것이라고도 볼만 하다. 강철에 대한 한자 표기가 조금 엇갈리는 것도 이런 짐작에 걸맞는다.
상상 해 보자면, 아마도 조선 중기의 전쟁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런 새롭고 특이한 속담이나 떠도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나타난 듯 싶다. 그런 말은 전쟁 중에 일본이나 중국 계통의 괴물에 대한 다른 전설이 전해진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한 지역의 괴물 이야기가 전국으로 퍼진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강철" 비슷한 발음의 어떤 농사일을 괴롭히는 사람이나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퍼진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무기나 쇠붙이를 상징하는 "강철"이라는 말이 근원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처음에는 어떤 흉폭한 사람이 나타나면, 혹은 어떤 사건이나 전쟁이 터지면 농사 지은 것은 몽땅 망한다는 뜻 정도의 말이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이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랬던 것이, 원래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자연재해 때에 본 신기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이리저리 들러 붙어 "강철" 전설이 완성 된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폭풍우가 몰아 칠 때에 어느 초가집 지붕이 날아가 지푸라기가 온통 날리는 광경을 멀리서 보고 무슨 괴물이 춤추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누군가 "저게 그 농사 망친다는 강철 아니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과 방향이 비슷한 자료로 "강철"과 발음이 비슷한 "강길"이 나오는 "연도기행"의 기록도 있다. 여기에서는 "강길(羌吉)" 또는 화룡이라는 괴물의 소문이 이렇게 소개 되어 있다. 1656년에 용천을 지나다가 말 꼬리 같은 괴물이 비바람을 타고 날아 다니는데, 크기는 두 세 길 정도이고, 뭔가 톱으로 써는 것처럼 하며, 집을 부수고 숲의 나무를 박살내며 곡식을 망가뜨려서 주변을 황폐화시킨다. 1626년에도 이런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전쟁의 징조였다는 말도 언급되어 있다.
현대에 조사된 민속에서는 “용이 되려다 못된 것이 강철”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특히 눈에 뜨인다. “한국민속신앙사전"에는 “꽝철이 쫓기”라는 기우제가 소개 되어 있는데, “꽝철이”는 용이 되는데 실패하여 땅으로 떨어지는 괴물로, 가뭄을 일으키며 날아 갈 때는 불덩이가 보이고, 코에 물이 들어가면 사라진다고 한다. 꽝철이는 산 능선에 앉곤 하기 때문에, 경북 남부, 경남 지역에서 산 능선을 다니며 꽹가리와 징을 치며 꽝철이를 쫓는 풍속이 있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현대에 채록된 전설의 사례로는 청도 대비사의 승려가 용이 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꽝철이가 되어 농사를 망치므로, 이 지역에서 "꽝철이 쫓기" 풍속이 생겼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강철에 관한 이런 많은 이야기들은 현대에도 무척 널리, 깊게 퍼져 있어서 심지어 1950년대 후반까지도 실제로 사람들이 "강철"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보도될 정도였다.

(1957년 8월 11일 동아일보 기사 중 발췌) "깡철의 마력" - 양산군 금산부락 앞 물 들판에는 홍수가 휘몰아치던 지난 3일 "깡철"이란 동물 두 마리가 나타나 가산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은 "깡철" 구경에 한창 법석댔는데, "깡철"의 움직임에 따라 그 지대 수면이 약 5미터 가량 높았다 얕았다 동요하더란...

만약 강철을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 본다면, 마을을 부수고 다니는 무시무시한 거대한 괴물 이야기로 만드는 것을 상상해 봄 직하다. 재해를 일으키는 괴물이라는 강철의 가장 큰 특징에도 잘 들어 맞는다. 번개나 우박을 이용해 공격하는 강철이라면 어지간한 무기로도 싸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구름과 안개 사이로 조금씩 보일듯 말듯 신비감 속에서, 그걸 보고 한 학자가 진짜 강철이라는 괴물 나타다고 주장하면서, 믿지 않는 다른 학자들을 뒤로하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이야기도 생각해 볼만하다.


10. 반회반흑 (半灰半黑: 반은 회색이고 반은 검은색이라는 말)

(천로역정 삽화)
곰과 비슷하나 곰보다 더 큰 짐승으로, 흉폭하다. 그 모습은 반은 회색이고 반은 검은 색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배쪽은 회색, 등쪽은 검은색이거나 그 반대인 듯하다. 붉은색과 흰색의 줄무늬나 점박이 무늬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성격이 매우 흉폭하여 사람을 죽여 버릴 수 있다. 벽동 땅에서 1671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현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11. 사린(似麟: 기린을 닮았다는 말)

(계명대 소장 민화)
작은 망아지만한 짐승인데, 색깔은 잿빛이면서 반질반질하게 윤이나는 아름다운 것이다. 이마에 반 뼘이 되는 정도의 털이 보송보송 높게 나 있다. 온순하고 즐거운 동물로 사람에게 친하게 군다. 이마에 나 있는 털을 헤쳐보면, 뿔 하나가 조그맣게 숨겨져 있다. 머리와 꼬리는 말과 같고, 눈은 소처럼 순하며, 발굽이 둥글다고 한다. 걸어 다닐 때 풀을 밟지 않고 사뿐사뿐하게 걸어다닌다. 사람을 만나면 처음 보는데도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한다. 중국 고전의 "기린"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원주 땅에서 두 차례에 걸쳐 원우손이 목격했으며, 이를 조덕윤을 통해 전하여 조정에 까지 알려졌다. 1793년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 나쁜 것과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알 지 못해서, 처음보는 사람 앞에서도 길들인 동물처럼 행동하는 사랑스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린"과 닮았다는 느낌으로 실록에서 언급했던 것을 보면, 평화와 좋은 정치에 대한 상징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개, 쥐, 고양이 따위와 닮은 무리들:

(고려 도자기)


12. 서입기혈 (鼠入其穴: 이것을 다룬 이야기의 소제목으로 붙여져 있는 말)

(경기대 소장 극채삼고초려도)
조그마한 쥐 종류의 짐승이다. 그런데,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 사람의 몸의 구멍을 통해 사람 몸 속에 들어가는 수가 있어서 낭패를 보게 한다. 움직인이 매우 재빠르고 능숙하며 익숙하기 때문에, 그 동안 사람은 알아채기는 하지만 아프다거나 괴로웠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게 이것은 사람의 몸 속에서 제법 오랫동안 지낼 수 있고 그 동안에도 사람이 특별히 심하게 괴로워 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민한 편이라서, 몸 속의 자신에게 무엇이 닿거나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 깨물어 공격한다. 그럴 때에 이것에게 당한 사람이나 주변사람에게 무척 위험해지는 수도 있다. 조선의 어느 시골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웃긴 이야기로, 강희맹이 쓴 "촌담해이"에 기록되어 있다.


13. 귀구 (鬼狗)

(경기대 소장 극채호렵도)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는 개와 닮은 짐승이다. 눈이 빨강색이며, 밤에 나타난 이야기가 주로 전해 온다. 두 마리가 쌍으로 다닌다. 보통 개와 달리 짖거나 움직이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으며, 그저 꼼짝않고 위엄있게 있으면서 가만히 지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조정 관리의 의관을 갖춘 듬직한 사람 모습인 신령스러운 사람 같은 것이 부하로 거느리는 짐승이기도 한데, 이 신령스러운 것이 나타나거나 사라질 때는 그 조용하던 이 개와 비슷한 것이 갑자기 날뛰고 소리지른다. 사람에게 달려 들거나 싸우는 일에도 신중한 듯 하여 함부로 날뛰는 일은 이야기 속에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한번 내린 명령은 끝끝내 따르는 짐승으로 나타난다. 한 번 어느 집을 지키라고 명령하면, 밤마다 찾아가 소리 한 번 안내고 한자리에 꼼짝않고 버티며 온갖 일이 벌어져도 날마다 꿋꿋이 나타났다고 한다. 지금의 서울 필동에 있던 흉가에서 발견된 이야기가 임방이 쓴 "천예록"에 기록되어 있다.


14. 노작저 (老作猪: 늙어서 돼지가 된다는 말)

(경기대 소장 당채호렵도)
사람과 같은 것인데, 나이가 백살 정도가 되면, 어느날 갑자기 커다란 돼지로 순식간에 돌변하는 것이다. 사람일 때는 보통 사람과 아무 차이가 없고, 보통 사람보다 더 튼튼하고 사람이 걸리는 아무 병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노인이 되어 어느 나이가 되고 돼지로 변할 순간이 되면 스스로 그 변하는 느낌을 감지할 수 있어서 변신하는 날에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피한다. 일단 돼지로 한 번 돌변하고 나면, 사람일 때의 생각이나 사람으로서의 특징은 전혀 남지 않는 듯 하므로, 그냥 산돼지와 아무 다를바 없어진다. 따라서 사람으로서는 사실 상 죽은 것과 같다. 조선의 김류가 그 친척 한 사람의 일을 전한 것이 1640년생인 임방이 쓴 "천예록"에 기록되어 있다.

*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의 뜻이 무엇인지, 삶과 죽음, 사람의 기억이나 사람의 생각하는 힘이 깊고 얕은 것이 바뀌게 되면 사람이란 어떻게 바뀌어 가는 지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중심만 놓고 보면 늑대인간 류의 변신 인간 이야기와 비슷하기도 한데,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전혀 다른 상태로 바뀌고 그 이어지는 점도 거의 없는 완전히 달라지는 변신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분명하다. 돼지로 변할 때 보이지 않는 곳으로 피하는 것을 보면, 변신하는 동안 몰골이 흉칙할 것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변화를 알았다면, 원래부터 그런 변화를 짐작했는데 그러한 본성을 숨기고 살았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원전의 이야기에서 이것의 자손은 보통 사람과 별 다를바 없이 같았다.


15. 목요 (木妖)

(경기대 소장 당채호렵도)
커다란 썩은 나무 속의 공간에서 사는 작은 털이 없는 짐승이다. 그런데, 그 모양은 고양이와 말을 섞은 듯한 모양으로 생겼다. 눈이 하나이고, 꿈틀 거리며 움직인다. 이것을 만나게 되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거나 이것에게 당해서 죽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전주 땅에서 완성군 이만 이 발견한 이야기가 1681년생인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기록되어 있다.

* 원전의 이야기 속에서 이것이 나오자마자 곧 죽었다는 이야기가 먼저 소개 되어 있는 점에서 상상해 보자면, 어린 시절에는 나무 속에서 수액을 먹거나 작은 벌레를 잡아 먹으며 사는 것으로 짐작된다. 자라나면 훨씬 더 커지고 강해져서 날뛰고 설칠 수도 있으나, 어린 상태일 때는 나무 밖으로 나오게 되면 비실비실하다가 맥을 못추고 그냥 죽어버리고 만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원전의 이야기 중에서 이것이 나왔을 때 저주를 받았다는 식의 뒷 이야기에 무게를 싣는다면, 이것이 나무 속에서 결국 자라나서 튀어나오면 사람이나 동물을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집요하게 괴롭히는 악한 것이 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6. 남입연중 (攬入淵中 끌고 연못 속으로 들어 간다는 말, 도근천의 달구: 獺狗)

(경기대 소장 민화)
물속에 사는 수달이나 족제비와 비슷한 짐승인데, 물속 깊은 곳에서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물 한가운데 깊은 곳에 둥지를 만들 것으로 짐작된다. 보물과 보석을 좋아하여, 물속을 통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물속에 빠진 물건들을 모아서 쌓아 놓는다. 사람이 근처에 오면, 보물을 들고 보여주며, 자랑하는데, 사람이 다가가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려서 사람을 놀린다. 아마도 이러한 일을 즐기는 듯 하다. 제주도의 도근천에 있다는 이야기가 이원진이 쓴 "탐라지"에 기록되어 있다.

* 이야기에 따라서는 "수달이나 족제비와 비슷한 무엇인가가 물 한가운데에 있는데, 사람이 보면 꼭 매우 희귀한 것처럼 보이기에, 사람을 물속으로 들어오도록 유혹하는 듯 하다" 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사람의 보물을 보면 끌고 연못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고 되어 있다. 어느 쪽이든 보물을 좋아하고 물 속에서 사람을 따돌릴 수 있게 잘 숨는 것을 보면, 물 속에서 아주 잘 머물고 아마도 아가미가 있다거나 특별히 몸의 모양이 다른 짐승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수달에 대해 현대에 채록된 전설 중에는 "한국민속문학사전"에 소개된 진해 웅천 천자바위 설화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수달이 사람처럼 행동하며, 사람을 잡아 가서 그 사이에 자식을 낳기도 하는 등의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힘이 제법 세거나, 그 크기가 사람과 비슷하거나 더 크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는 바닷속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내용도 나타난다.
직접 관련은 없지만 후삼국시대의 능창(能昌)과 같은 해적으로 유명했던 인물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 별명으로 불렸던 적이 있었던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짐승이 해적 같은 습성을 갖고 있다거나, 이 짐승이 해적의 별명이었다거나, 이 짐승 자체가 해적질에 대한 상징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더 많은 괴물들에 대해서는 괴물 백과 사전 글 목록으로 돌아 가는 링크를 참조하십시오.


삭제2. 상포이와 (相抱而臥: 끌어 안고 누운 채로 있다는 뜻)
머리 부분은 소와 비슷한데, 등이 고운 밝은 빛깔이고 나머지 부분은 붉은 빛이며 털이 없는 미끈한 모양이다, 그리고 다리가 마치 촉수처럼 여러개 뻗어나와 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등과 촉수는 흐물흐물하여 자유롭게 변형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 이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래서 그 등과 촉수의 모양을, 떨어져서 살펴보면, 해괴하게도 마치 인간이 서로 끌어안고 누워 있는 듯한 조각과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색깔까지 흰 피부 색과 비슷하기에 매우 흡사하다. 이 동물은 몸의 일부분이 이렇게 흐늘거리기에 다른 모양을 하고 다닐 수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리는 여섯개 일곱개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편인데, 이 중 몇 개를 잘라내도 별 문제가 없다. 꼬리는 노루와 흡사하다. 상원 땅에서 1519년에 발견되었고, 이후 몇차례 비슷한 일이, "중종실록" "명종실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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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4/04/20 02:00 # 답글

    역시 멋진 삽화본입니다. 각 파트를 분량을 늘려 제대로 된 삽화가와 함께 하루 빨리 단행본이 나오면 하기를 수년째 빌고 있습니다.
  • 게렉터 2014/04/23 21:10 #

    유럽권에 비하면 주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그림 자료가 전체적으로 양이 부족한 편이라 아쉬운 편입니다만, 그러니 만큼 조금 있는 그림이라도 고해상도 스캔본을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문화재청이나 박물관에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오래토록 갖고 있습니다. 커다란 불교 탱화나 기록화류에는 갖가지 재미난 도상들이 조그맣게 여기저기 그려진 것이 많아서 고해상도 스캔본으로 확대해 가면서 들여다 볼 것들이 많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 역사관심 2014/04/23 22:27 #

    크게 동감합니다. 사실 김홍도 신윤복 선생등의 그림외에는 국민들에게 인지적으로 널리 알려진 민화류, 삽화류, 부조류, 탱화류의 그림이 많이 없는게 사실인데, 그 그림들에 문화컨텐츠로서의 풍부함을 더해줄 보석들이 많다고 저도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프로젝트야 말로 문화재쪽 관련기관에서 정부에 건의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해외문화재까지 포함해서 말이지요 .
  • 2014/06/11 22:4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게렉터 2014/06/20 06:54 #

    감사합니다.
  • apono 2014/10/23 16:46 # 삭제 답글

    노작저는 치매환자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기 위해 생긴 민담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사람이 아니라 노작저였다..하면서 유기하려고..
  • 게렉터 2014/11/08 00:33 #

    잘 보셨습니다. 사실 "순오지"에 나오는 털난 산에서 사는 괴상한 사람 같은 괴물 이야기는 그야 말로 알츠하이머 병자 같은 내용과 엮여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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