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야승 괴물열전 (46~70) 기타

* 이 글은 괴물 백과 사전 시리즈로 올린 것입니다. 현재 조선시대 이전의 그림들이 참고로 곁들여져 있습니다. 유럽권 그림을 이용한 과거 버전의 글은 여기 http://gerecter.egloos.com/3271517 에 있습니다.


여섯째. 벌, 거미, 지렁이 따위와 닮은 무리들:

(고려 도자기)


46. 향랑 (香娘)

(경기대 소장 민화)
사람과 닮은 데가 있는 꽤 큰 지네나 노래기류의 벌레이다. 혹은 인간으로 변한다거나 인간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입에 독침이 있고, 그 독을 연기처럼 내뿜을 수도 있다. 크기에는 보통의 지네 크기 벌레 부터, 사람 키의 열 배 스무 배에 이르는 거대한 것까지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사는 장소는 외딴 동굴에서부터, 민가의 지붕 속, 구들장 아래 등등 다양한데, 사람 사는 건물속에서 사는 것은 흔히 "향랑각시" 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지칭해 부른다. 뚜렷한 천적이 없는 동물이라서 가축이나 사람을 죽이기도 할 정도이지만, 뱀, 지네, 독개구리 따위와 그 독성을 겨루다가 죽는 수가 많다. 상황이 위험하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지 않은 이상, 잽싸게 몸을 숨기고 멀리멀리 도망간다. 서울에서 음력 2월 1일이 되면, 대청소를 마친뒤에, 사람들이 목조 건물에 사는 노래기 벌레를 쫓기 위해, "향랑각시야 천리밖으로 어서 도망가거라" 라고 글을 써서 건물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1749년생인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에 기록되어 있따.

- 지네의 모습을 한 괴물 이야기를 모아 본 항목입니다. "송천필담"의 오공원 두꺼비 이야기에 나오는 지네는 사람을 잡아 먹는 지네 이야기이고, "경도잡지"의 내용은 지네를 의인화하여 "향랑 각시"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47. 거잠 (巨蠶)

(불화 중 발췌)
커다란 누에 모양의 꿈틀거리는 벌레이다. 크기는 소나 말 정도의 크기이다. 크기만큼 엄청나게 많은 뽕잎을 먹는다. 죽일 경우에 세상 각지의 누에들이 이 누에를 추도하고 그 후예를 잇기 위해 이 누에가 죽은 장소로 몰려든다. 따라서, 만약 이것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가 관리하는 뽕나무 밭으로 끌어들인뒤에 잡아 죽이면, 수많은 누에가 모이게 되어 매우 많은 누에 고치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신라 때에 흔히 방이라는 사람의 발견한 일이 "태평광기"는 중국 설화집에 실렸고, 1712년생 안정복이 쓴 "동사강목"등에도 재인용되어 있다.

- 거잠이 나오는 방이의 이야기는 귀신들이 몰려 와 요술 방망이를 쓰는 이야기로 이어지므로, 도깨비 이야기의 원천으로도 자주 언급되는 것입니다.


48. 의충폐해 (蟻蟲蔽海: 개미가 바다를 덮는다는 뜻)

(경기대 소장 민화)
바다 건너, 혹은 물속에서 사는 개미인데, 개미이면서도 헤엄을 칠 수 있고, 날 수 있는 종류도 있다. 가끔 어마어마한 숫자가 바다를 까맣게 덮을 만큼 많이 몰려온다. 이것이 해안가를 습격해서 마치 전쟁을 하는 것처럼 공격하여 피해를 입힌다. 날아다니는 종류가 몇 안되는데, 추측하건데 이런 것들이 오래버티면서 장군노릇을 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1591년에 양양, 삼척에서 발견된 일이 1736년생인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49. 주견사 (蛛罥蛇: 원전의 소제목으로, 거미가 뱀을 옭아 매었다는 뜻)

(경기대 소장 초충도)
뱀을 잡아 먹는 거미이다. 거미 자체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닌데, 추측하건데 거미줄을 매우 크게 치고, 거미줄의 질긴 정도가 매우 강한 것으로 짐작된다. 거미줄을 친 뒤에 거미가 걸리는 것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뱀에게 갑자기 거미줄을 입으로 토해내어 공격한다. 한번 뱀이 끈끈한 거미줄 때문에 귀찮아 한다 싶으면, 집요하게 계속 거미줄을 뿌려서 결국 뱀을 단단하게 얽혀지도록 꼼짝못하게 거미줄로 뒤덮어 버린다. 그런 뒤에는 이빨을 뱀의 몸에 박아넣은 뒤, 온몸의 액을 쪽쪽 빨아먹는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잘 먹는 부분은 다름아닌 뱀의 독이다. 그래서, 사람이 맹독을 가진 뱀에게 물렸을 때, 재빨리 이것을 구해서 그 자리에 갖다 놓으면, 뱀의 독을 다 빨아먹어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치료가 된다고 한다. 운산, 안산에서 오래 산 1681년생 이익 이 쓴 "성호사설"에 한 시골 사람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


50. 식인충 (食人蟲)

(경기대 소장 인물풍속도)
작은 벌레로 고운 망사 모양의 껍질에 쌓여 있다. 잡아서 껍질을 쪼깨고 보면, 매우 가늘고 길다랗고 흰 색의 실같은 중심부가 있다. 이 부분은 꼭 말의 갈기털 같이 생겼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 비처럼 수없이 많은 숫자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 벌레는 묘한 사람 몸에 들어 가 사는 벌레이면서 독기를 가진 덩어리여서, 이 벌레가 닿은 음식이나 물을 먹게 되면, 지독한 병에 걸려서 죽게 된다. 동물의 몸 속에서도 잘 살아남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이 벌레가 있는지 없는지 잘 살펴보고 조심한다면 직접 이 벌레를 먹는 일은 피할 수 있겠지만, 물에 떨어진 이 벌레를 우연히 삼킨 생선을 사람이 먹어도 문제가 된다. 즉 이 벌레는 죽은 물고기 속에서 버티다가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이 벌레는 그 흰색 중심부를 사람의 피부 속에 꽂은 뒤에 사람의 살을 조금씩 녹여서 직접 빨아 먹기도 한다. 그런식으로 해서 나중에는 몸속으로 깊숙히 파고들어가서 창자나 간을 빨아 먹을 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매우 위험하다. 이런식으로 해서 사람을 무수히 괴롭히고 죽게 만들며 퍼져나가므로, "식인충"이라는 별명이 있다. 파즙을 뿌리면 죽는다는 약점이 있다. 1246년 개성 일원에서 발견된 일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51. 홍성의 병졸 모양 벌레

(조선대 소장 삼국검무도)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병사나 장군, 혹은 군인의 형상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 같이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날아다니는 벌레가 수없이 많이 모인 것이다. 매우 많은 숫자의 벌레들이 뭉쳐서 일제히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그 덩어리가 마치 무예를 익혀서 싸우고 창칼을 휘두르며 활을 쏘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1628년에 홍성 땅에서 발견된 일이,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 기록되어 있다.


52. 개성의 푸른 지렁이

(경기대 소장 민화)
발이 없는 길다란 지렁 같은 벌레로 색깔은 파랑색이다. 왠일인지 모르지만, 안개나 바람을 묘하게 타고 올라가 비에 섞여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도 많다. 또 비가 올때 활발히 활동한다. 사람들에게 특별히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숫자가 많고 모양이 징그러우며, 위험한 것을 사람들이 꺼려 피해 다닌다. 어느 정도 숫자가 모이면 서로서로 얽혀서 실타래나 천과 같이 기묘한 묘양을 이루며 뭉치고 엉켜 버리는 습성이 있다. 1221년, 1227년 등 여러차례 개성 땅에서 목격된 일이,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 기록되어 있다.


53. 종 (䗥)

(경기대 소장 금운비조도)
작은 벌과 같은 벌레인데, 말이나 소의 위장속에 기생한다. 단지 말이나 소 속에서 사는 것 뿐만 아니라, 입을 통해 안팍으로 출입하면서 사는데, 둥지를 말이나 소의 위장에 짓는 것이다. 애벌레 상태일 때는 위장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는데, 벌 모양이 되면 수시로 출입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자라서 소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면, 다른 말이나 소에게 알을 낳으려고 간다고 짐작되는데, 이 때에는, 위장 속에서 입으로 뜯어 물어 구멍을 판 뒤에 살을 뚫고 가죽에 구멍을 만들며 튀어 나온다. 추측하기에 이때 소나 말은 매우 고통스러워 하며, 이렇게 나온뒤에, 다른 말이나 소의 입속으로 들어가 위장에 알을 슬고 죽거나 다시 나오는 듯 한 것으로 짐작된다. 운산, 안산에서 오래 산 1681년생 이익 이 쓴 "성호사설"에 당시에 유행해서 사람들 사이에 당연시 된 일로 기록되어 있다.

- 원래 "종"은 나나니벌 등의 기생충을 가리키는 말인데, 원문에는 위 제목의 글자가 아니라 좇을 종자와 벌레충자가 위아래로 놓여 있는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일곱째. 빛, 불, 별 따위와 닮은 무리들:

(고려 도자기)


54. 완전전요 (宛轉纏繞: 뱅긍뱅글 돈다는 뜻)

(경기대 소장 작묘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높이가 사람 키의 여섯 일곱 배 정도의 기묘한 물체로, 호리병 모양으로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커다랗고, 색깔은 붉은 색이다. 그 붉은 빛의 잔상을 붉은 색 천처럼 길게 남긴다. 불타는 듯한 빛을 내며 움직일 때 대포 소리처럼 커다란 소리를 낸다. 이 소리가 매우 커서 땅을 뒤흔드는데, 연속적으로 소리가 울려서 북치는듯 요란하게 울릴 때도 있다. 흰 구름과 같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질 수도 있고 두 조각으로 나뉘어 질 수도 있다. 하늘에서 움직이는 속도도 매우 빠르며 날아다닐때 뱅글뱅글 돌면서 움직인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세수대야처럼 생긴 빛나는 물체를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세수대야 모양의 크기는 사람정도 이고, 중앙이 파란색으로 빛을 내뿜고 좌우는 빨강색과 흰색이다. 강원도 땅 일대에서 1609년에 목격된 일이, 실록의 "광해군일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비슷한 사건이 몇 건 더 보인다.

- 로켓이나 미사일, 제트전투기에 대한 목격담과 비슷하며, 현대의 UFO 목격담과도 비슷하여, 대표적인 "조선시대 UFO"로 불리우는 이야기 입니다. 그 형태가 호리병 형태이며, 움직일 때 폭음이 났다는 사실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 주목할만합니다.


55. 청목형형 (靑目熒熒: 푸른 눈이 빛난다는 뜻)

(경기대 소장 당채대후불탱화)
멀리서 보면, 땅을 굴러다니는 사람 키 절반 정도의 둥근 불덩어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불덩어리 속에 조그마한 사람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금발에 푸른눈을 하고 있으며, 손에 낫같이 구부러진 칼을 들고 무장하고 있다. 불로 된 공이 굴러다니는 듯한 모습으로 이동하며, 움직일 때는 커다란 굉음이 들린다. 필요에 따라 갑자기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눈동자를 굴리며 사방을 노려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사람을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고, 소나기나 폭풍우 때문에 낮인데도 갑자기 어두워졌을 때 주로 사람의 눈에 뜨인다고 한다. 여주, 이천 근처에서 농사 짓고 있던 이순몽이 목격한 일이, 1569년생인 박동량이 쓴 "기재잡기"에 기록되어 있다.


56. 빙탁지성 (氷坼之聲: 얼음 깨지는 소리라는 뜻)

(경기대 소장 민화)
하늘에 나타나 날아다니는 것으로 활과 화살로 무장한 사람의 모습이다. 온몸은 불덩어리처럼 밝은 빛을 낸다. 날아다니며 움직일 수 있는데,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내고 속도를 낼 때에는 파도치는 소리나 물살을 가르는 듯한 묘한 소리가 난다. 이것이 들고 있는 화살을 쏘거나 하면, 천둥 번개가 쏟아지는 듯 하다. 전쟁을 관장하거나, 전쟁을 상징하는 어떤 신령스러운 존재로 볼 수도 있다. 온성 땅에서 1588년에 발견된 일이, 1736년생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임진왜란의 전쟁을 나타내는 주술적인 사연으로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다.


57. 경주의 빛을 뿜는 구슬

(시왕도 중 발췌)
달걀 크기의 구슬 만한 것으로 매우 밝은 빛을 낸다. 어디에 두더라도 주변을 대낮처럼 환하게 해 준다. 천둥 번개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다. 사람에게 좋은 운을 가져다 주는데, 이익이나 장사에 대한 행운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건강이나 성격을 바꾸는 힘을 내뿜는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곁에 두고 있으면, 정확한 영문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은 점차 돈을 많이 벌고 부자가 된다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여 부자가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알리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거나, 알리기 곤란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경주 땅에서 발견된 일이, 1420년생인 서거정이 쓴 "필원잡기"에 기록되어 있다.




여덟째. 무리를 짓기 어려운 것들:

(고려 도자기)


58. 광주의 버섯이 자라는 가면

(궁중기록화 중 발췌)
수많은 괴물 중에서도 가히 가장 이상하다고 할만한 종류의 괴물이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버섯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모양이 얼굴에 쓰는 가면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가면을 좋아하는 가면 수집가에게 집어 가기를 바라는 듯 하다. 재질은 꼭 나무와 같다. 사람은 이것을 얼굴에 써보면서 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가까이 두거나 닿으면, 병에 걸리고 고통받게 된다. 일단 가면을 자주 쓰는 사람에게 전염되게 되면, 그 주변사람도 병에 걸린다.

사람이 눈치를 채고 이것을 버린다거나, 사람에게 집혀 가지 않고 오랜시간 방치되면, 그때는 보통 버섯으로 살기 위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보통 버섯처럼 기둥과 삿갓을 틔우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모습이 평범한 먹는 버섯과 똑같다. 그러나 만약 이 버섯을 먹게 되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며 웃음이 나오는 등 마약과 비슷한 효과를 갖고 있다. 그래서 깔깔거리며 웃고 즐거워 하게 된다. 중독성이 있어서 하나 둘 계속 먹게 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너무나 노래하고 춤을 추고 싶어져서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버섯을 먹은 사람들이 다같이 춤을 추게 된다. 이렇게 추는 춤은 매우 격렬하여 마치 미치광이 같아 보인다고 한다. 경기도 광주 땅에서 발견된 일이 1438년생인 이륙이 쓴 "청파극담"에 기록되어 있다.


59. 적색일괴 (赤色一塊: 붉은 빛 한 덩어리라는 뜻)

(경기대 소장 송록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밥그릇 모양의 거대한 해파리 같은 것인데 크기는 사람 키의 열 배 정도이다. 색은 붉은 색과 흰색으로 왔다갔다하며 변하는데 비단처럼 윤택이 나고, 너울너울 천처럼 펼쳐질 수 있다. 너울너울 움직일 때는 몸이 자유롭게 구부러져서 온몸이 몇번씩 굴곡을 이루게 된다. 머리와 발을 숨기고 있는데, 머리를 내밀면 그 모습은 용 같은 무서운 모습이라고 한다. 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가는 일이 목격된다. 1701년에 부산의 동래 땅에서 목격된 일이 "숙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60. 귀봉변괴 (鬼棒變怪)

(부안 수성당 당화)
원문의 제목은 "귀봉변괴 鬼棒變怪"로 되어 있다. 형상은 끝이 뭉툭한 나무 몽둥이 같은 것이고 길이는 한 뼘을 넘는 정도이다. 흡사 도깨비 방망이를 연상시키는데가 있으나, 결코 나무나 철로 된 것은 아니며, 뭘로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평소 때에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그냥 방망이 처럼 가만히 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사람이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고 궁금해하는 혼잣말을 하면, 순간 갑자기 날듯이 움직이면서 달려들어, 엄청나게 맹렬한 기세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한 사람을 성적으로 희롱한다. 매우 힘이 강하여 결코 저항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때, 마치 건장한 더벅머리 청년이 설치는 것과 같은 환영을 보게 되고, 그 후에는 다시 아무런 움직임도, 환영도 없는 그저 방망이 같은 모양으로 돌아간다. 망치로 내리치고, 불로 태우거나 뜨거운 물로 삶으려 해도 어떠한 손상도 입지 않는다. 조선 어느 시골의 이야기로 1424년생인 강의맹이 쓴 "촌담해이"에 기록되어 있다.


61. 취생 (臭眚: 냄새 나는 재앙이라는 뜻)

(경기대 소장 북새선은도)
매우 고약한 비릿한 썩는 냄새를 풍기는 안개와 같은 것이다. 안개가 서서히 뭉쳐서 덩어리가 되면 키가 사람의 두 세 배 정도가 되는 커다란 형체가 일정치 않은 괴물이 된다. 다만 안광을 내뿜는 번쩍이는 두 눈만은 사람의 눈이 달려 있음직한 위치에 달려 있다. 사람을 공격해서 자주 죽이곤 한다. 안개 형상의 괴물이지만, 칼로 공격하면 효과가 있고, 죽을 때에는 벼락과 같은 커다란 소리를 낸다. 죽고나면, 안개가 흩어지고 냄새도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아무 흔적이 남지 않는다. 함경북도 일원에서 목격된 일이 1640년생인 임방 이 쓴 "천예록"에 기록되어 있다.


62. 복기 (腹飢: 이 괴물이 한 말로 기록되어 있는 것) - "배가 고파요"

(경기대 소장 기명책갑도)
나무 뭉치 처럼 생긴 것인데, 검정색 보자기 같은 것을 옷이나 모자라도 되는냥 덮고 있는 알 수 없는 모양이다. 보통 세 마리가 한 조가 되어 움직이고, 날쌔게 움직인다.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 항상 배고파 하며, 사람을 보면 "배가 고파요"라고 말한다. 필요한 경우에 사람을 죽이는데 아무런 꺼리낌이 없지만, 굳이 흉폭하게 날뛰며 사람을 죽이려 들지는 않는다. 서서히 사람에게 다가온 뒤에 세 마리가 동시에 사람을 밀어 붙여 압사시키는 방법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의외로 겁이 많아서 소리치며 무섭게 대하면 두려워하고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다. 별해 땅에서 이만기가 목격한 일이 1640년생인 임방 이 쓴 "천예록"에 기록되어 있다


63. 착착귀신 (斲斲鬼神)

(경기대 소장 효행고사도)
바람의 형태인 괴물이다. "샤아아아-악" 혹은 "차아아-악" 하는 기묘한 바람 소리로만 존재를 알 수 있으며, 무엇인가 모양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데, 어두운 밤에 바람처럼 나타나 갑자기 덥치고 사라지므로 결코 정확한 정체를 목격한 사람이 없다. 급격히 움직이면서 사람을 덥치면 사람들에게 굉장한 공포심을 줘서 비명을 지르게 하고, 사람을 울게 하기도 한다. 비가 올 때 주로 나타난다고 하며, 전쟁, 학살이나 잔혹한 사건의 현장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믿음도 퍼졌다고 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소문으로 퍼졌으며, 1637년에 충청, 경상, 전라 일원에도 널리 이야기 되면서 한동안 세상에 이야기거리가 되었던 것으로, 1736년생인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 사기유사 괴물열전의 13. 무고경주 항목과도 매우 비슷합니다만, 바람과 비로 나타난다는 특징과 정확한 이름이 있어서 다른 항목으로 구분 해 보았습니다.


64. 천우인 (天雨人: 하늘이 사람을 비처럼 뿌린다는 뜻)

(조선대 소장 삼국검무도)
사람의 머리와 똑같이 생긴 우박이다. 눈, 코, 입 등도 선명하고 정확하게 모양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땅에 떨어진 그 자리에서는 얼마지나지 않아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 우박이 우수수 쏟아지면, 그 지역에서 대학살이나, 참혹한 전투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1625년, 창성 땅에서 발견된 것이 1736년생인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65. 숙청문의 쌀바위

(경기대 소장 독선인도)
구멍이 하나 뚤린 바위의 모양이다. 가끔 그 구멍에서는 이상한 액체와 건더기가 쏟아져 나온다. 일종의 분비물 같은 것인데, 액체는 술과 비슷하고, 건더기는 떡과 비슷하여 상당히 맛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먹으면 온갖 기괴한 일을 벌어지게 하는 성질이 있다. 예를 들면, 돼지가 사람처럼 생긴 돼지를 낳게 되고, 석상이 스스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춤을 추는가 하면, 동물들도 이상한 모양의 새끼를 낳게 된다고 한다. 서울의 경복궁 북쪽 땅에서 발견된 일이 1736년생인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 "주천" 등의 이름으로 물이 아니라 술이 나오는 샘물에 대한 전설은 여러 곳에 있습니다만, 그 중에 가장 이상한 경우인 숙청문 앞의 쌀바위 이야기를 내세워서 항목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66. 울타리를 오르는 할머니 머리통

(경기대 소장 팔사품도)
높이나 너비가 사람 키의 두 세 배를 넘어가는 매우 거대한 사람의 머리통이다. 머리만 있을 뿐, 몸의 다른 부분은 없이 그냥 꾸물꾸물 거리며 움직인다. 보통 늙은 할머니의 모습이다. 사람의 말을 할 줄 알고,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잘하는 분위기이다. 손이나 다리도 없으면서 그 커다란 나무나 울타리 위로 기어 올라가는 일도 잘한다. 추측하기에 아마 달팽이나 지네 따위처럼 빨판있거나 다리 구실을 하는 작은 다리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짐작 된다. 특별히 잔인하거나 악독하지는 않아서, 사람이 싫어하고 내쫓으려 하면 별 불만없이 물러간다. 주로 서울에서 살았던 송희규가 목격한 일이, 1589년생인 권별 이 쓴 "해동잡록"에 기록되어 있다.


67. 공주산 (公州山)

(시왕도 중 발췌)
걸어다니는 산이다. 주로 밤을 이용해서 걸어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몰래 걸어다니는 습성이기 때문에, 사람이 산이 걸어다니는 것임을 알아보고 쳐다보면, 그대로 주저 앉아 굳어서 보통 산이 된다는 말도 있다. 대체로 선하고 순박한 성격이다. 전국 각지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군산땅 에서 공주산에 관한 이야기로 예부터 사람들이 믿어온 것이,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 울산 바위 이야기를 비롯해서 비슷한 산이 걸어 다닌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초기 기록으로 명확하게 남아 있는 "공주산"을 대표로 해서 항목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68. 근화초 (槿花草)

(경기대 소장 화접도)
단 하루만에 싹을 틔우고 잎이 자라난뒤, 나무 줄기를 뻗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다시 씨를 맺은 뒤 죽어버리는 급격하게 자라나는 꽃이다. 죽은 후에, 남은 씨가 그 다음날이 되면 또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또 죽는다. 허구헌날 날마다 이것을 반복한다. 꽃은 잎이 다섯이고, 색깔은 분홍 혹은 흰색으로 아름다운 편이다. 삼한 전역에서 자라는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남부의 상징과 같은 것으로, 1563년생인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기록되어 있다.

- 현대에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꽃으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무궁화를 일컫는 말입니다. 무궁화의 습성이 와전되어 "산해경"을 비롯한 중국 고전에 터무니 없는 과장으로 기록되었던 것이 다시 전해져서 남은 경우 입니다. 실제 무궁화는 그 꽃이 피고 지는 것만 하루동안에 일어납니다. 즉, 새벽에 꽃을 피우고, 오후에는 꽃이 오무라들어서 해질때 꽃이 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것이 나무 각 부분에서 반복되면서 계속 꽃을 피워나가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무궁화 자체를 우리나라의 상징으로 공식적으로 제시한 것은 기록이 남아 있는 것만 봐도 신라 말 무렵부터 조선,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왔고, "무궁화"라는 우리나라식 이름도 고려 때부터 그 어원을 따져본 기록이 있습니다.


69. 부석 (浮石)

(경기대 소장 해상군선도)
재질은 사람 키의 스무 배, 서른 배 정도의 커다란 바위처럼 되어 있는 것인데, 하늘을 떠다니고, 물살을 가르며 물위를 빠르게 떠갈 수도 있다. 전체적인 형상은 거북이나 용과 비슷하나, 정확하게 닮은 점은 많지 않다. 보통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것은 착하거나 학식이 높은 사람, 남자를 열렬히 사랑한다. 대부분의 용이나 고래 같은 것들이 풍랑을 일으키거나, 비를 내리는데 비해서, 이것은 그런 것과는 관계 없으며, 오히려 사람의 배를 물속에서 떠받쳐 주어서 안전하고 삐른 항해를 돕는다. 특별한 일이 생겨 싸워야 할 때는, 그 돌과 같은 재질과 커다란 덩치를 이용해서 몸으로 부딪히고 찧는다. 하늘을 높이 떠다니다가 땅에 있는 상대를 짓밟거나 찍어버리는 것이다. 신라 때, 의상법사를 사랑한 선묘라는 여자가 이것의 모습으로 의상법사를 따라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영주 땅의 부석사에 그 조각이 남아 있어서 부석사의 이름이 되었다. 1736년생인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70. 선비화 (禪扉花)

(경기대 소장 수복신선도)
생명력이 매우 강한 꽃나무이다. 토막 내고 가공해서 나무 지팡이 따위를 만들어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다. 특히, 그 지팡이를 소유한 사람이 학식이 풍부하거나,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더욱 생생히 살아 있다. 그렇게 몇십년 동안 가만히 살아 있다가, 땅에 꽂아두면, 다시 자라나 뿌리를 내리며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면서 평범하게 살아간다. 모래땅 같은 곳에서도 살 수 있고, 물이 거의 없어도 꽃나무로서 잘 자라날 수 있다. 심지어 햇빛조차 별로 비치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데 별 문제가 없다. 나무가지는 가늘고 꽃은 보통 작은 노랑색 꽃으로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신라 때 의상법사의 지팡이가 꽃나무로 자라난 일이 유명하며, 영주 땅의 부석사에 있는 것으로 널리 소문이 났다. 1737년생인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 실제로 영주 부석사에 있는 선비화라는 꽃은 그냥 골담초 입니다. 담장 아래에 자주 싶는 보통 1미터에서 2미터 정도 키로 자라는 크지 않은 꽃나무인데, 여기저기 한약재가 되기도 해서 전국 각지에 꽤 많이 있습니다.


* 더 많은 괴물들에 대해서는 괴물 백과 사전 글 목록으로 돌아 가는 링크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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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4/04/24 23:23 # 답글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경기대에 소장되어 있는 민화가 꽤 많네요~.
    부유광이야기와 악취무기는 한번 알리려고 저장해둔 참이라 반갑습니다. 꽤 신기한 이야기라 ^^

    가면역이야기는 얼마전에 한번 다뤄봤습니다 (그리고보니 게렉터님 이야기를 댓글로 나눴군요).
    http://luckcrow.egloos.com/2463484
  • 게렉터 2014/04/25 22:45 #

    경기대 소장 자료가 민화의 숫자가 많기도 많지만 비교적 해상도가 높은 그림이 많은 편이라 더 고를 것이 많았습니다. 국보, 보물 지정 그림에 대해서만이라도, 문화재청이 초고해상도 스캔 및 무료 공개 작업을 포털사이트 같은 곳과 함께 협력해서 하는 것도 의미있는 사업 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 역사관심 2014/04/26 00:26 #

    동감입니다, 언제 건의라도 해봐야겠네요.
  • 맛난당근 2015/01/25 19:37 # 답글

    66번은 저번글에는 대면두라고 나와있는데 여기는 울타리를 오르는 할머니 머리통이라고 나와있네요. 정식명칭은 대면두인가요?
  • 게렉터 2015/02/10 00:19 #

    대면두는 한문으로된 원전에서 발췌했던 것인데, 처음 사전 만들때만해도 대충 제가 가진 자료 정리한다는 정도여서 자료가 치밀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한문 원전이 어디였는지 잘 못찾겠어서, 일단 찾을 때까지 특별한 제목을 안쓰고 자연스럽게 우리말로 설명한 내용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 MUUN 2015/07/13 22:26 # 삭제 답글

    여기 나오는 괴물들의 이름들은 직접 지으신 건가요?
  • 게렉터 2015/07/13 22:52 #

    사전 첫머리 http://gerecter.egloos.com/5228625 에 써놓은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괴물의 이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억지로 "뭐뭐 귀鬼" 라든가 "천天 뭐뭐", "선仙 뭐뭐" 하는 식으로 한자를 조합해 이름을 짓는 일은 피했습니다. 대신에, 책 원문에 나와있는 괴물을 묘사하는 한문어구를 그대로 발췌해서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유의해야 할 것이, 이런 경우에는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단지 항목의 제목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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