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야승 괴물열전 (71~100) 기타

* 이 글은 괴물 백과 사전 시리즈로 올린 것입니다. 현재 조선시대 이전의 그림들이 참고로 곁들여져 있습니다. 유럽권 그림을 이용한 과거 버전의 글은 여기 http://gerecter.egloos.com/3272197 에 있습니다.


아홉째. 사람과 닮은 무리들:

(고려 도자기)


71. 기남삼인 (奇男三人: 기이한 남자 세 사람이라는 말)

(서울 소재 무신도)
향태(香台)라는 사람을 어머니로, 강가시(姜加屎)라는 사람을 아버지로 삼아서 태어난 것이다. 덩치가 보통 사람보다 좀 큰 편이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눈이 보통 사람보다 크다. 삼형제가 있는데, 첫째가 가장 수염이 길고, 셋째는 수염이 짧다. 쳇째, 둘째는 검은 색 모자를 쓰고 있고, 셋째는 황색이 나는 모자를 쓰고 있으며, 둘째는 얼굴이 뛰어난 미남이다. 사람의 말을 완전히 알고 있으나, 셋 간에는 말이 없다. 모두 옷은 아래 위로 모두 까만색인데, 옷에서 이상한 붉은 색 빛이 난다. 사람의 음식을 먹고 살 수 있다. 셋의 모습은 매우 엄숙하고 진지해서, 어지간한 사람은 한 번 보면 기세에 눌려 무서워 한다. 사람과 비슷하지만 분명히 사람과는 다른 모습이라서, 사람이 되다가 만든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단 1년 만에 갓난아기의 모습에서 성인으로 자라나며, 지혜가 뛰어 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한 순간에 먼거리를 움직여 갈 수 있는 재주도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말이 돌아서, 마을 사람들이 신령 같은 떠받들었다고 한다. 선천에서 1604년에 목격된 일이 김신원이 알린 일이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 외계인 목격담과 닮아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72. 신기원요 (伸妓寃妖)

(양산 지산리 소재 부부상)
사람 형체인데 온 몸이 조각조각 나뉘어 있는 것이다. 몸통, 왼쪽 팔, 오른쪽 팔, 왼쪽 다리, 오른쪽 다리, 머리의 여섯 조각으로 분리되어 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분리된 것이 스물스물 기어 다니는데, 한 군데에 모이면 붙어서 이어져 합쳐질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여섯조각이 모두 연결되면, 완연한 사람의 모습이 되며, 이 경우에 보통 사람과 별 다를 바 없다. 특별히 사람을 해치지는 않지만, 조각이 기어다니는 모습과 그것이 하나로 합쳐져 일어서는 모습이 너무나 무섭기 때문에 사람을 실성하게 하거나 놀라서 죽게 만든다. 조광원이 평안북도 일원에서 본 일이 홍만종이 쓴 "명엽지해"에 나와 있다.

* 특별히 사람을 해치지는 않지만 너무 모습이 무서워서 보통 사람은 보면 죽게 된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널리 퍼져 있는데, 기록이 구체적이고 형태가 선명히 나타나 있는 것에는 이 항목과 “압골마자” 항목이 있다.


73. 금갑장군 (金甲將軍), 도끼를 든 모습

(사천왕도 중 발췌)
키가 보통 사람의 두 배 쯤인 사람 형태인데, 황금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이다. 커다란 도끼를 들고 싸우는데, 선을 수호하고, 나쁜 괴물이나 악한 귀신 따위를 처단한다. 갑장군과 사이가 썩 좋지는 않지만, 막상 싸울 때에는 힘을 합쳐 활약할 때가 많다. 중국 고전의 영향으로 그 구체적인 모습은 여러가지로 변형되는데, 대체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을 그려놓은 그림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국 당나라 태종 때의 울지공을 그린 그림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나쁜 것을 쫓기 위해 이것의 그림을 그려서, 설날에 서울 대궐 문에 갑장군의 그림과 함께 나란히 놓았다고 한다. 1749년생인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에 기록되어 있다.


74. 금갑장군 (金甲將軍), 깃발을 든 모습

(사천왕도 중 발췌)
키가 보통 사람의 두 배 쯤인 사람 형태인데, 둘 다 황금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이다. 선한 것을 지키고, 나쁜 괴물이나 악한 귀신 따위를 물리친다.
그 중 하나는 커다란 도끼를 들고 싸우는데, 중국 고전의 이야기들을 닮게 되어 그 모습은 여러가지로 바뀌어 갔는데, 대체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을 그려놓은 그림을 닮았다고도 했고, 중국 당나라 태종 때의 울지공을 그린 그림을 닮았다고도 한다.
나머지 하나는 커다란 깃발을 들고 싸우는데, 이것도 대체로 “삼국지”에 나오는 주유를 그려놓은 그림을 닮았다고도 하고, 중국 당나라 태종 때의 진숙보를 그린 그림을 닮았다고도 한다. 나쁜 것을 쫓기 위해 이것의 그림을 그려서, 설날에 서울 대궐 문에 금장군의 그림과 함께 나란히 붙여 놓았다고 한다.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에 기록되어 있다.

* 장군의 그림을 그려서 문에 붙여 놓는 것은 중국 사람들도 믿었던 풍습이다. 그 중에서도 울지공과 진숙보를 그려서 붙이는 것이 바로 당나라 태종 이후로 유래된 중국의 풍속이다. 문에 그려 놓는 그림으로는 도교 계열의 신장 그림도 중국에서 이곳저곳에서 이야기 된 바 있다. 그러므로 중국 문물이 조선에 퍼지면서, 금장군, 갑장군의 모양도 그런 모습들과 섞이게 되면서 또다른 모습으로 변한 듯 하다. 서울의 궁전 문에 그려 놓는 그림은 중국의 어느 한 그림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원전의 이야기에서 제갈량, 주유, 울지공, 진숙보가 언급된 것을 보면, 두 장군은 서로 사이가 썩 좋지는 않지만, 막상 싸울 때에는 힘을 합쳐 활약할 때가 많고, 누가 조금 더 뛰어나고 하나는 조금 더 못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75. 야광 (夜光)

(불화 중 발췌)
불타 죽어 뼈와 꺼멓게 탄 살만 남은 고통스러운 사람의 모습인데, 정수리 부분에 조그마한 등불이나 화로 같은 것이 있어서 밤이면 계속 활활 타오르며 불을 내뿜고 있다. 보통 약초나 약초 주머니 같은 것을 들고 다니는데, 이것을 빼앗아 사람이 먹으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밤에만 활동하고, 낮이되면 활동할 수 없으며, 사는 곳은 하늘 저편 어느 곳으로 짐작되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날아 올라간다. 사람의 신발을 좋아해서, 신발을 자주 훔쳐간다. 그런데, 물건, 특히 네모 모양의 구멍의 갯수를 헤아리는 것에 매달리는 버릇이 있어서, 지나가다가 눈에 뜨이는 구멍 같은 것이 있으면 하나둘 계속 헤아린다. 그래서 곡식 등을 거르는 체가 가는 길에 있으면 체에 구멍이 몇개나 있는지 계속 세려고 하면서 밤새도록 그 앞에 붙어 있는다고 한다. 매년 연말에 온갖 곳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서울의 어린이들이 믿었다는 이야기가,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에 기록되어 있다.

* 유득공의 글에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밤에 빨리 재우려고, 밤이 되면 괴물이 나타난다고 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괴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거기에다가 당시에는 불교의 "약왕보살"이 끔찍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수가 많기에 약왕보살 처럼 생긴 괴물이 나온다고 어린이들에게 말했던 이야기가 와전되어 "야광"이라는 이름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실려 있다.
다른 이야기로는 조수삼의 “세시기”에서는 이름을 “야유광(夜遊珖)”이라고 하고, “모귀(耗鬼)”의 종류라고 하여, 흉년을 가져 오는 귀신 또는 굶는 것에 대한 귀신이라는 듯이 설명하였고, 권용정의 “한양세시기”에서는 귀신의 이름을 “척발(瘠魃)”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역시 가뭄과 굶는 것에 대한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운종의 “세시기속”에서는 “야귀왕(夜鬼王)”이라고 하여 귀신들의 임금인 것처럼 높은 것인 듯이 설명하기도 하고, 신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그 신발을 가져 가는 귀신이라고 하기도 했다. “면암집”등 다른 기록에서는 “야광신구("夜光神嫗")”라고 하여 밤에 빛을 뿜고 신령스러운 할머니의 모습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체로 어느 정도 위엄을 갖추고 있으면서 빛을 뿜고 있고 마르고 여윈 모습으로 흉칙하면서 사람을 굶주리거나 농사를 망치는 것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수룩한 점도 있는 신발 훔치는 귀신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76. 천신 (天神)

(조선시대판 천로역정 삽화)
등에 커다란 날개 달린 여자의 모습으로, 길다란 창을 들고 있다. 아홉 등급으로 높고 낮은 직위를 가진 무리를 이루고 있어 많은 숫자가 활동하는데, 세상의 악을 내쫓고, 착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날개를 이용해서 하늘로 날아갈 수 있으며, 사는 곳도 하늘이다. 매우 용맹하게 잘 싸운다. 그 성품도 극히 착하고 의롭다. 안정복이 쓴 "천학문답"에 기록되어 있다.

- 원전의 설명은 천주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신자도 서서히 생겨 남에 따라 유럽 기독교 문화 속 천사를 받아 들여 믿던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천신”이라는 말 자체는 하늘에 있는 신령스러운 것으로 선한 것을 지키고 악한 것을 내 쫓는다는 생각으로 불교나 도교 문화에서 종종 언급되어 그 전부터 쓰이고 있던 것이다. 유럽 기독교 문화의 천사에 대한 이야기가 더 뿌리 깊게 퍼져 있던 불교에서 말하는 불교 진리를 수호한다는 인도 신화 전설의, 팔부중, 제석천 등의 신령스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섞여서 특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77. 마귀 (魔鬼)

(조선시대판 천로역정 삽화)
크기가 매우 커서 온 세상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크며, 머리통이 여러개 달린 사람의 모습이다. 박쥐와 같은 날개를 갖고 있으며, 날아다닐 수 있다. 사는 곳은 땅 속에 있는 거대한 감옥 또는 땅 속에 있는 궁전 같은 곳이다. 수많은 악한 괴물과 귀신들을 다스리고 명령한다. 성품이 지극히 악하고, 사람을 유혹해서 타락시키려고 노력하며, 흉악한 일을 자주 꾸민다. 천신과 곧잘 다툰다. 안정복이 쓴 "천학문답"에 기록되어 있다.

- 원전의 설명은 천주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신자도 서서히 생겨 남에 따라 유럽 기독교 문화 속 악마를 받아 들여 믿던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놓은 것이다. 유럽 기독교 문화의 악마에 대한 이야기가 더 뿌리 깊게 퍼져 있던 불교의 마귀라는 용어로 나타나면서, 사탄, 루시퍼 등에 대한 이야기와 불교의 마귀 이야기가 섞여서 특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78. 희광 (희광이, 휘겡이, 방상씨 方相氏 가면을 쓴 사람)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방상씨 그림)
얼굴이 황금으로 되어 있는 사람과 비슷한 것이다. 이마 위에 눈이 하나씩 더 있어서 눈이 네 개이다. 귀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고 머리는 대머리이다. 몸은 곰과 같은 가죽으로 되어 있고, 붉은 색 옷을 입고 있다. 오른손은 창으로 무장하고 있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다. 비슷한 모습의 부하 이삼십명 정도를 거느리고 다니는데 부하들은 보통 몽둥이를 들고 있다. 동물이나 사람을 살해하는데 아주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지만, 악한 괴물들과 귀신들만을 사냥하고 잡아 먹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선한 것으로 여겨서 이것이 악한 것들을 쫓기를 기원한다. 1040년 등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매년 이것의 행차를 믿고 연극과 춤으로 재현하던 일이 "고려사" 등에 기록되어 있다.

- "방상씨" 가면을 만들어 악귀를 쫓는 춤을 추는 것은 중국 고대의 풍습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점차 그것이 과거에 비해 덜 유행하게 되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었던데 비해, 고려와 조선에는 갈수록 오히려 뚜렷한 의식으로 남으면서 변형되었다. 궁전에서도 방상씨가 춤을 추고, 시장터를 행진하면서 춤을 추기도 하는데, 이 때, 보통 도우한 즉, 정육점 직원이나 도축업자가 이 괴물 역할을 맡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희광"은 무시무시한 일을 하는 특이한 사람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말로 보이는데, 죄수의 사형을 집행하는 일을 맡는 도축업자가 있었다고 하여, 이런 사람들이 귀신을 쫓는 방상씨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일을 맡기는 일이 종종 있었으므로, 이런 사람들을 흔히 "망나니", "희광"이라고 부르곤 했다고 한다.


79. 죽통미녀 (竹筒美女)

(국립민속박물관 천문신장 그림)
보통 작은 대나무 통 속에 담아 둔 작은 사람과 같은 것이다. 대개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인데, 크기는 매우 작아서 대나무 통속에서 오랫동안 계속 살 수 있는 정도이다. 하나의 통안에 두 세 명씩이 있는데, 통 밖으로 나오게 하면, 옆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거나 웃고 떠들 수 있다. 신라 때 경상도 지역 서부에서 경주로 오는 길에 목격된 이야기가, "수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 “거타지 설화”에는 사람과 같은 모양을 갖고 있는 것을 꽃으로 바꾸어 품 속에 지니고 가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와 엮어 보면, 꽃이나 풀처럼 죽통 속에 아주 작은 사람을 넣어 살게 하면서 화초를 기르듯이 두는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80. 약산저상 (若山猪狀: 산 돼지 모양 비슷하다는 말)

(통도사 오계수호신장도)
어릴 때는 사람과 같으나 곧 온몸이 산돼지 같은 털로 뒤덮인 사람 비슷한 동물이 되는 것이다. 기운이 세고, 매우 잘 달리고, 산속으로 깊이 숨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을 오랫동안 먹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으나, 반대로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엄청난 양을 먹는다. 갑갑한 것을 싫어하고, 깊은 산중을 이리저리 숨어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쇠사슬로 묶어 놓으면, 밤새도록 계속 쇠사슬을 풀기 위해 꼼지락 거리며 소리를 낸다. 수명이 길어서 1백년을 훌쩍 넘기며, 사람과의 사이에 혼혈을 낳을 수가 있는데, 이 경우에 자손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보통 사람이 어떤 사건 사고나 병에 걸려서 이것으로 변하게 되는 듯 하기도 하다. 강원도에서 목격된 이야기가, 1643년생인 홍만종이 쓴 "순오지"에 기록되어 있다.


81. 편신모 (遍身毛: 온 몸에 털이 나 있다는 말)

(원주 시립 박물관 소장 민화)
깊은 산에서 사는 동물인데, 사람과 거의 비슷하나 덩치가 크고 몸이 육중하며 온몸은 털로 뒤덮여 있다. 말 같은 것을 하나 사람의 말은 아니고, 소리도 사람목소리와는 다른 소리이다. 나무 위 등을 날듯이 날렵하게 뛰어다닐 수 있다. 날아 다니거나 날듯이 움직일 수 있어 지붕에서 내려 온다. 나무 위에 그물 등 덫을 잘 설치한다면 이것을 잡을 수도 있다. 불냄새를 맡고 불이 있는 곳으로 오는데, 불씨를 훔쳐가거나 불을 꺼뜨린다. 두류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홍만종이 쓴 "순오지"에 기록되어 있다.

* 원전의 이야기에서 이것을 붙잡은 뒤에 승려가, “사람이오? 신선이오?”라고 물었다고 되어 있고, 이 이야기가 산 속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사는 것, 신선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도 아주 긴 시간 동안 장수할 수 있는 것이라거나, 사람이 깨달음을 얻은 뒤에 이런 모습으로 변신해서 긴 수명과 날아 다닐 수 있는 재주를 얻은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82. 용손 (龍孫)

(사천왕도 중 발췌)
용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다. 모든 면에서 사람과 같으나 몸의 어딘가에 반드시 비늘이 있다고 한다.
조선 초 기록인 “동국여지승람”에서 당시 조사 되었던 각 지역별 설화, 전설을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괴물은 용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고전에서는 예로부터 용이 임금의 상징이라든가, 용이 승천한다든가, 용이 비를 내리게 한다든가, 아주 옛날에 용을 길들이던 사람이 있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많이 나온다.
중국 고전에는 용이 아홉가지 자식을 낳는데 각각 성향과 이름이 있는 다양한 괴물이라는 “용생구자(龍生九子)” 류의 이야기도 있는데, 한국에도 전래 되기는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 설화는 많지 않은 편이다.
대신, 한때 굉장히 널리 퍼진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의외로 한국 전설을 활용한 이야기에서 그만큼은 잘 쓰이지 않는 용에 관한 이야기로는 “용손”을 꼽을 만하다. 용은 용의 자손인 사람이라는 뜻인데, 여자일 때는 “용녀”라는 말도 많이 보인다. “용녀”는 용이 사람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한 것을 일컫는 경우도 많다. 비슷하게, 바다 속을 다스리는 “용왕”이라는 것, 역시 용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지닌 사람이라든가, 사람처럼 행동하는 용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용손, 특히 용녀 이야기는 중국에서도 여러 이야기에 종종 나오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용손 이야기가 특별히 더 색다른 형태로 널리 퍼진 것은 다름 아닌 고려 태조 왕건이 바로 용왕의 자손이라는 이야기가 고려시대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려사” 등에는 왕건의 할머니인 원창왕후가 용왕의 딸, 즉 용녀라는 전설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왕건의 선조는 활발히 바다에서 무역을 하던 사람들이었으니, 아마도 처음에는 당나라에서 돌았던 용녀에 대한 소설, 설화의 영향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후 한국 지역에서 이 이야기는 더 퍼져 나가면서, 왕건의 후예는 몸에 비늘이 나 있다든가, 고려 우왕이 죽을 때 자신이 왕건의 정통 자손이라는 증표로 몸의 용 비늘을 보여 주었다든가 하는 전설이 조선시대에도 “어우야담”, “송와잡설”등에 기록 되어 널리 돌게 되었다. 약간 다르지만 고려시대의 이의민이 자신이 “용손”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울 생각을 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고려사절요”등에 언급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 “박연폭포”라든가 그 이후 오래도록 이어진 박연폭포 여러 전설에는 옛날 박진사라는 사람이 박연 폭포 연못가에서 피리를 불었는데 그것이 너무 멋져서, 용녀가 자기 원래 남편을 죽여 버리고 나와서는 박진사를 취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용과 사람의 중간 형태인, 용손, 용녀 전설은 비교적 흔한 이야기였던 셈이다.
이런 부류의 이야기가 유행한 한 이유로 저는 불교의 영향도 일부 있을 것이다. 불교 경전에는 불교의 이치가 너무나 훌륭한 나머지, 물 속의 괴물인 용왕 마저도 감복해서 불교에 귀의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꽤 나타난다. 그러니 그 때문에 불교가 번창하던 삼국시대 이후로, 용의 임금인 용왕이 마치 사람처럼 표현된 영향을 받았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손의 특징을 정리해 보자면, 앞서 언급한 몸 깊숙한 곳에 용 비늘이 있다는 것 이외에, 용으로 변신할 수 있다든가, 물 속에서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든가 하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용궁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을 데려 가는 형태의 이야기에서는 본인 뿐만 아니라 동행하는 사람도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조금 특색 있는 것으로는, "고려사"에 실린 원창왕후의 이야기가 다시 눈에 뜨인다. 이 이야기에서는 사람과 결혼한 원창왕후, 즉 용녀가 "자신이 용궁으로 돌아 가는 모습은 절대 보면 안된다"고 약속을 받는다. 그렇지만, 몰래 엿볼 때 황룡의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이 드러나고, 그 사실을 알자 남편을 떠난다는 것이다.
이런 소재들을 그대로 살려서, 정체를 숨기고 사는 신비한 용손 이야기를 한국 배경으로 다시 만들어 보아도 재미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초기에 고려 왕씨를 다 죽인다고 했던 일 이후로, 용손이 대대로 현대까지 정체를 숨기고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물에 빠지는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이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구한다고 능력을 발휘한다는 식의 이야기라든가, 용손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잠수사나 수영 선수로 성공하는 이야기도 상상해 볼만 하다.


83. 황연의구 (恍然依舊: 전과 다름 없이 황홀하다는 말)

(궁중 기록화 중 발췌)
사람과 흡사한데, 얼굴이 상대방이 반하여 빠져들 만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본 모습은 푸릇빛이 나는 털이 많이 나 있는 하늘거리는 천 같아서 형체가 분명치 않은 모양이다. 걸음이 매우 빨라서 잘 도망다닌다. 이때 뒷걸음질로 도망갈 때가 더 빠르다. 사방에 뜨거운 기운을 내뿜어 불을 붙이고 그 불길과 열을 스스로 다스릴 수도 있는 재주도 있어 보인다.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 최원서가 본 일이 1640년생 임방 이 쓴 "천예록"에 기록되어 있다.


84. 청군여귀 (靑裙女鬼: 푸른 치마를 입은 여자 귀신이라는 말)

(궁중 기록화 중 발췌)
크기가 사람 키의 절반 정도로 작아서 찬장이나 다락에 들어가서도 마음대로 움직인다. 키를 속이고 큰 모습으로 있을 수도 있으며, 푸른색 치마를 입고 있으며, 머리카락이 모두 하얀색이다. 나무 위 같은 곳으로 잘 올라가며,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때에는 늙고도 추한 모습이다.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데, 매섭게 휘두를 수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나 먼저 칼을 휘두르는 일은 많지 않다. 요란스럽게 거문고를 튕기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목숨을 나타내는 어떤 물건을 몸 밖에 두고 보관하고 있는데 이것을 불태울 경우에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철철 쏟으며 죽어버린다. 서울 묵정동 땅에 있던 흉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일이 임방 이 쓴 "천예록"에 기록되어 있다


85. 거치봉발 (鋸齒蓬髮: 톱니이빨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이라는 말)

(통도사 오계수호신장도)
크기는 보통 사람 정도 인데, 이빨이 톱니 같은 뾰족뾰족한 모양으로 크고 날카롭다. 또 눈이 흉악하게 큼지막하며, 머리칼이 길게 흐트러져서 난삽하게 휘날린다.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있는데, 오른손은 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어서, 불덩이를 집어 던지거나 하는 공격도 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날 기미가 있어 흉흉한 기운이 감돌때 산에서 도시가 있는 쪽으로 내려온다는 말도 있다. 1583년에 갑산에서 목격된 일이, 1736년생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86. 마면졸속 (馬面卒屬), 우두나찰(牛頭羅刹)

(시왕도 중 발췌)
암컷 말에서 태어나는 것인데, 얼굴만 말 같고 몸은 사람과 같다. 오래 살지 못한다. 흉악한 동물로 여기며 악한 일의 결과로 여긴다. 사람과 말 사이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1547년 서울 어느 거리쯤에서 발견된 일이,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 “증 의림도인 효 능엄경” 등에 언급되어 있다.

* “마면졸속”이라는 말은 유몽인이 “증 의림도인 효 능엄경(贈義林道人效楞嚴經)”에서 쓴 말을 가져온 것이다. “마면졸속”은 저승세계에서 병졸처럼 일하는 무서운 것을 말한 것인데, 얼굴이 말의 얼굴인 병졸을 말한다. 이것은 소의 머리를 한 괴물인 “우두나찰(牛頭羅刹)”과 대응되는 것으로 이를 불교에서 그려내고 있는 저승의 모습에 나타나는 괴물로 둘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유몽인의 이 글에서는 저승 중에서도 지옥에서 일하며 저승의 명령을 받드는 관리, 죽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병졸의 대표로 우두나찰과 마면졸속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둘을 지옥의 상징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말 얼굴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서울에 나타난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이런 지옥의 세계를 나타내는 가장 흔한 것이 실제 세상에 나타난 느낌을 주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87. 염매 (魘魅)

(불화 중 발췌)
대나무 따위로 만든 큼지 막한 통속에서 사는 것으로 비참하도록 비쩍 마른 죽기직전의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먹을 것을 조금씩 주는 것으로 사람이 길들일 수 있다. 사람에게 병을 옮길 수 있는데, 먹을 것을 주어 달래면, 그 병이 삭아 없어진다. 아기를 몰래 붙잡아서 통속에 가두어 기르면서, 간신히 목숨을 이을 정도로만 음식을 주면서 반쯤 죽게 한 뒤에 날카로운 칼로 몸의 정해진 부위를 찌르고 끊으면 이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것을 만들어서 병을 퍼뜨리고 또 치료하면서 돈을 버는 흉악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익 이 쓴 "성호사설"에 기록되어 있다.


88. 도깨비

(통도사 오계수호신장도)
도깨비란, 출몰이 분명하지 않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환상과 같은 괴물, 귀신을 일컫는 통칭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현대 한국 동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호피 무늬 옷을 입은 뿔 달린 도깨비의 모습이 일본 동화 속의 “오니(鬼, おに)”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것은 일본 오니의 모습이고 한국 도깨비의 원래 모습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여러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많이 돌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도깨비 이야기가 어떻게 내려온 것인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일본 전설 속에서 무서운 괴물로 등장하는 “오니(鬼)”는 일찌 감치 자리 잡았고, 많은 일본 고전 그림을 통해 그 모습도 다양하고 선명하게 퍼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활발하게 일본 대중 문화에서 응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가 되자, 이런 일본의 “오니”에 대한 그림, 이야기, 문화가 한국으로도 넘어 왔다. 그러면서, “오니”에 대한 번역어가 필요하게 되었고, 1920년대 무렵이 되면, 일본의 “오니”를 한국에서는 “도깨비”로 번역해 부른 사례가 종종 보인다. 당시 이미 “괴상하고 알 수 없는 것”을 널리 통칭해서 부르는 말로 “도깨비”가 널리 쓰이고 있었으니, 이는 있을 만한 일이었다.
“오니” 즉 “鬼”를 “도깨비”로 번역하는 것은 1930년대에는 완연히 자리 잡아 굳어진 듯 보인다. 예를 들어, “술래잡기”등의 놀이에서 “술래” 역할을 일본에서는 “오니”라고 하는데, 일본의 어린이 놀이를 소개하면서 “오니”를 “도깨비”로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1932년 1월 28일 동아일보 기사의 어린이 놀이 소개 기사 등이 그 사례이다.
한편으로 이와 동시에 우리 나라 옛날 전설 중에 “鬼(귀)”가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들도 대거 “도깨비”로 번역해서 소개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었던 것에는 일본 “오니(鬼)”를 “도깨비”로 번역하던 버릇의 영향도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방향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서, 1970년대까지도 많은 전설 속에서 “귀”라는 말로 기록된 괴물들이 “도깨비”로 번역 되어 소개 되었다.
이 때문에 이야기는 한결 복잡해진다. 1980, 90년대 전후가 되자 한국인들에게 당시 가장 친근했던 동화 속 “도깨비”의 모습이 일본 동화의 “오니”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점이 널리 홍보 되게 된다. 그러면서 이후 역으로 일본의 “오니”와 어떻게든 다른 상반된 “도깨비”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 다시 조선시대 이전의 한국 옛 전설, 기록, 그림 속의 “도깨비”를 찾게 되었는데, 이때 한국 기록, 그림 속의 “귀”들을 찾아낸 다음에 그게 “전부 다 도깨비다”라고 부르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나는 이때 왜곡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즉 “오니(鬼)”가 아닌 “도깨비”를 찾기 위해 “귀” 이야기를 찾는 상황인데, “귀”를 모두 “도깨비”라고 여기는 것이 다름아닌 “오니(鬼)”를 "도깨비"로 번역하다가 생긴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고유의 도깨비 얼굴은 "귀면와(鬼面瓦)" 기왓장에 새겨진 귀신 얼굴 모양에 나와 있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것은 일본에서 "鬼瓦"를 "오니가와라(おにがわら)"라고 읽어 오니의 얼굴이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오니”와 “도깨비”를 대응시켜 생각한 또다른 결과인 셈이다.
“귀”와 “도깨비”는 다른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고 본다. 조선 초기의 “훈몽자회”에서부터, 최근의 옥편까지 다수의 옥편에서 “귀”라는 말 자체의 뜻을 바로 “도깨비”로 보고 있지는 않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귀”나 “귀신”을 주제로 사람의 혼령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긴 글을 여럿 쓰기도 했는데, 이런 글을 읽어 보면 “귀”가 그대로 “도깨비”라는 의미로 나타지는 않는다.
게다가 기록 속의 많은 “귀”들을 보면,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도깨비”와 닮은 것도 있지만, 아주 다른 것들도 적지 않다. 들짐승이나 새 모양의 괴물을 “귀”로 지칭한 사례도 많고, 불교 설화 속에 나오는 다양한 마귀들을 “귀”로 지칭한 사례도 많다. 이런 것들은 흔히 생각하는 “도깨비 이야기” 속의 도깨비와 닿지 않는다.
그러니, 감히 좀 과장하면, 90년대의 “우리 도깨비 모습을 찾자”는 연구는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대체로 “귀”가 나오는 한국 기록 중에 그냥 “왠지 연구자가 보기에 도깨비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대강 고른 것이라는 느낌이다. 게다가 선배 학자가 한번 이렇게 딱히 엄밀한 근거 없이 “이게 한국 도깨비 이야기다”라고 밝히면 후배 학자는 그것을 치밀히 따지는 대신에 그대로 받아 들이면서 살을 덧붙이는 듯 했다. 그러니 막상 “일본 오니가 아닌 한국의 진짜 전통적인 도깨비” 모습이라고 나온 것이, 역설적으로 90년대 몇몇 학자들의 막연한 고정관념에 의해 임의로 꾸며진 것이 적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옛 기록에 “도깨비”라고 남아 있는 “도깨비”의 모습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도깨비”에 대한 초기 기록으로 자주 꼽게 되는 것은 조선 초기에 나온 “석보상절” 제9권에 나오는 “돗가비”라는 말이다. 이것은 불경의 "약사경" 줄거리를 써 놓은 대목으로 사람이 비명횡사 하는 9가지 경우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이 부질 없이 “돗가비”에게 수명이 연장 되기를 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니까, “돗가비”가 무슨 신령 같은 것처럼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대상이고 수명, 즉 사고나 질병과 관계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불교를 칭송하는 “석보상절”과 "약사경"의 성격상, 대단한 신령은 못되는 부정적인 것이 “돗가비”라는 어감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석보상절"의 이 대목에서 "돗가비"에 해당하는 "약사경"의 원문은 "망량(魍魎)"이다. "망량"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귀신, 괴물의 한 종류인데, 그러니까 "석보상절"을 쓰던 시기에는 이 "망량"이 도깨비와 비슷하다고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어감의 도깨비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온다. 1745년 2월 13일 기록 등에는 “독갑방(獨甲房)”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 내용은 “차섬”이라는 무당이 자신의 별명을 “독갑방”이라고 했고, 독갑방이 주술을 써서 궁전 사람들을 저주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독갑”은 도깨비라는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독갑방”은 나중에 “이매방(魑魅房)”이라고도 언급된다. 이 “이매”라는 한문 어구 역시 중국 고전의 귀신, 괴물 한 종류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선시대 기록 중에 “이매(魑魅)”, "망량(魍魎)"이라는 한문으로 기록된 이야기 중에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도깨비와 비슷한 것을 지칭한 경우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도전이 쓴 유명한 “사리매문(謝魑魅文: 도깨비에게 사과하는 글)”에 묘사된 “이매망량”의 경우 우리가 막연히 갖고 있는 도깨비에 대한 상상과 상당히 인상이 비슷하기도 하며, 이 글은 널리 정도전이 도깨비를 소재로 쓴 글로 언급 되어 오기도 했다. "사리매문"에서는 "이매망량"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며 흐릿한 것도 아니고 또렸한 것도 아니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독갑방”에서 “방”은 “심방” 등의 말의 예처럼 무당이라는 뜻일테니, “독갑방”이라는 말은 “도깨비 무당”이라는 뜻일 것이다. 실록의 전후 기록을 보면 차섬은 “독갑방”이라는 별명을 쓰기 전에 “호구방”이라는 별명을 쓰기도 했다. 이때 “호구방”은 “호구” 그러니까 “천연두 신” 무당이라는 뜻일 것이다. 천연두의 신과 통한다는 무당은 대단히 유행하여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니 “방”이 무당, 귀신 부리는 사람이라는 뜻은 들어 맞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이무렵에 도깨비가 신령스러운 소원을 비는 대상이되, 좀 음침한 느낌이 들고 주술과 연결 되어 있다는 관점은 옳은 듯 하다.
도깨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기록은 “성호사설”의 “기선(箕仙)” 항목에 나온다. 이것은 중국 고전에 언급된 “기선”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개된 “기선”과 그와 유사한 부류는 오래된 쓰레받기, 빗자루, 절구공이에 붙은 귀신 같은 것으로 사람이 부르면 오는데 사람처럼 행동하며 대화도 하고 시도 짓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괴이한 짓을 하는 것을 “독각(獨脚)”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독각”은 “도깨비”의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본다. 그리고, 도깨비들은 모두 자기의 성을 “김”씨라고 한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오래된 빗자루, 절구공이등이 나무라는 성질과 “쇠 금”자 “김”씨라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언급한다.
이 기록에는 겉모습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사람 흉내를 내고, 사람과 같이 어울리기도 하고, 본 모습은 절구공이나 빗자루이고, 김씨 성을 쓴다는 것은 현대까지 이어진 도깨비 이야기 중 상당수와 닮아 있다.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8년 일본의 우스다 잔운이 펴낸 "암흑의 조선" (暗黒なる朝鮮)에도 도깨비가 소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조선의 독특한 "요괴귀신" 중에 "이매망량(魑魅魍魎)"과 "독각(獨脚)" 둘을 묶어 소개하면서 둘 다 "김씨 성을 쓴다"고 언급했다. "이매망량"은 불덩이로 휩싸인 모습의 사람보다 커다란 악마 같은 것으로 우연히 흘린 사람 피가 변한 괴물이라고 되어 있고 소위 도깨비 씨름을 한다는 말도 언급 되어 있다. 한편 "독각"은 피가 묻은 빗자루 따위에서 생긴 괴물이라고 되어 있고, 사람에게 많은 돈을 가져다 준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옛 기록 속에 나타나는 도깨비란, 나무, 오래된 물건, 따위에 붙은 신령스러운 것으로 사람이 부를 수 있고 사람이 빌기도 하는 신령스러운 것인데 같이 놀 수도 있는 약간은 친근한 면도 있는 것이지만, 음침하고 주술적인 것이고, 왜인지 스스로 자기 성을 김씨라고 한다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후기 쯤 되면, 도깨비는 구체적인 어떤 종족이나 특정한 괴물이라기 보다는, 막연한 알 수 없는 괴상한 일을 하는 것의 통칭으로 널리 쓰이게 되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17세기말의 사전인 "역어유해"에는 버드나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柳樹精) 뿐만 아니라, 불교의 괴물인 "야차(夜叉)"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夜叉精), 여우나 살쾡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狐狸精)도 모두 "독갑이"로 번역해서 싣고 있다. 불교의 괴물인 "야차"의 경우, 조선 초기에도 "도깨비"로 번역한 사례가 있어서, "월인천강지곡"에는 사리불과 노도차가 서로 요술 대결을 하는 불경의 이야기를 소개할 때 여기서 노도차가 "야차"로 변신했을 때, 한글로 "돗가비"로 변신했다고 하고 있다.
"기관(奇觀)"의 "연귀취부(宴鬼取富)" 이야기에서는 염동이(廉同伊)라는 사람이 장악원 앞에서 스스로를 김첨지라고 하는 이상한 것을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에는 도깨비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널리 알려진 도깨비의 독특한 느낌과 흡사하여, 김씨라고 부른다는 특징도 보이고 이매, 야차와 같은 비슷한 한자어와도 관계가 보인다.
여기에서는 김첨지와 그 부류를 흔히 "이매(魑魅)"와 같다고 부르고 있고, 김첨지의 모습은 패랭이를 쓰고 베 홑것을 걸치고 허리에 전대를 두르고 손에는 채찍을 쥐었는데 키는 8척이고 걸음걸이는 허둥거렸는데, 말은 공손하고, 용모는 아주 기괴하여, 사람 비슷하면서도 사람이 아니고 귀신 비슷하면서도 귀신이 아니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자기 패거리들에게 잔치를 열어 달라고 하는데, 잔치를 열어주면 많은 재물을 주어 부자가 되게 해 준다. 이 패거리들은 청계천 영도교에서 40명 정도가 모여 들며, 불빛이 광희문과 영도교에서 번쩍거리며 노는 형상이 나타나다가 변하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패거리들은 살쾡이 고기를 특히 좋아하는데, 만약 큰 전복과 두더지 고기 삶은 것을 먹이게 되면 죽게 되어 본래 모습으로 돌아 가는데, 그 본래 모습이란 오래된 빗자루에 뼈다귀 따위가 섞인 것이다. 패거리의 두령은 "야차(夜叉)"라고 하여 머리에 뿔이 하나 있고 붉은 털에 푸른 몸뚱이이고, 야차는 김첨지를 붉은 다리 곧 "적각(赤脚)"라고 부른다.
1920년대 이후로는 요즘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부르는 누가 하는 것인지 모습이 안 보이는 데 물건이 날아 다니는 움직임을 두고 “도깨비의 짓”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무척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1924년 11월 14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황금정에 있는 한 집에 한밤에 정체불명의 것이 문을 쾅쾅 두드리고 벼락치는 소리를 낸다는 데 그것이 모습은 안 보여서 “독갑이” 짓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식의 "누가 하는지 도무지 안 보이지만 자꾸 집에 뭘 던지고 해코지 한다"는 “도깨비 집” 이야기는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사례도 적지 않은 편이다. 심지어 집값을 떨어 뜨리려고 부동산 사기꾼들이 몰래 밤마다 돌을 던지고는 “도깨비 집”이라는 소문을 냈다는 식의 사건 기록도 나타난다.
이런 “도깨비 집” 이야기에 해당하는 도깨비들은 조선시대 설화 기록 속에 “귀”로 기록된 이야기 중 일부와는 잘 맞아 떨어지는 사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오니(鬼)” 이야기와는 어느 정도 구분되어 보인다. 예를 들어 “어우야담”에 나오는 신막정 집의 “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면, 원래 일본의 오니보다 더 범위가 넓은 것이 도깨비였고 도깨비 보다도 더 넓은 범위를 지칭해서 조선시대 한문 기록에서는 “귀”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생각해 볼만 하다.
나아가 “도깨비 집”의 도깨비 이외에도 여러가지 다양한 신비로운 것을 널리 일컬어 “도깨비”로 통칭하는 사례 역시 흔했다. 예를 들어, 1941년작 할리우드 영화로 “Hold that Ghost”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명콤비 코미디언인 애봇과 코스텔로의 영화 중 하나였는데 이것이 1949년 한국에 개봉 되었을 때, 번역 제목을 “도깨비 소동”으로 썼다. 다른 사례로 1947년 7월 25일 동아일보에는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문장이 실려 있는데, 보통 요즘에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고 하는 문장을 당시에는 “한 독갑이가 구주를 배회하고 있다.”라고 번역했다.
결국 이런 많은 이야기들을 돌아 보면, 한국 도깨비는 원래 뿔이 2개이네, 1개이네, 없네, 한국 도깨비는 방망이가 쇠로 되어 있다느니, 나무로 되어 있다느니, 야차와 도깨비는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느니 등등의 이야기는 무의미하지 않나 생각한다. 도깨비는 모습이 분명하지 않은 알 수 없는 것을 두루두루 부르는 말에 가까웠으니, 그 본 모습을 엄밀하게 따지면서 그게 아니면 한국 도깨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한편 지금 상상해 볼만한 도깨비 이야기로는 나무로 된 생활용품에 달라 붙는 괴물이라는 옛 기록을 그대로 살려 보는 것도 해 봄직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교육청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교체해 주지 않아서 학교에 가장 낡아 빠진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책상이 있는데, 그 책상에 앉는 운 없는 학생은 도깨비를 부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상상해 볼만 하다. 또는 여러가지 다양한 특징을 가진 도깨비들을 불러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그런 다양한 재주를 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수레나 트럭에 온갖 낡은 빗자루, 당구대, 야구 방망이 따위를 잔뜩 싣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떠올려 본다. 그런 것을 구하기 위해 고물상으로 위장하고 살고 있는 도깨비방(독갑방), 도깨비를 부리는 사람 이야기도 따라 붙을 만 할 것이다.
조선 영조 때에 저주 소동으로 붙잡힌 사람 때문에 남은 기록이기는 하나, 도깨비를 부리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도깨비방”, “독갑방”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야기의 소재로 특기할만하다고 본다.


89. 독각 (獨脚, 종묘의 삿갓 쓴 사람)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불사할머니 무신도)
삿갓과 도롱이를 쓰고 다니는 사람의 모양인데, 다리가 하나 뿐이고, 두 눈을 희번덕 거리며 다닌다. 주로 조금씩 비가 내리는 어두컴컴한 날씨에 다니고, 한 다리로 콩콩 뛰면서 걸어 다닌다. 뛰는 힘이 좋아서, 건물의 지붕 위에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이다. 한 번 힘차게 뛰어오르면, 아주 높이 공중으로 뛰어올라가 멀리까지 날듯이 도망칠 수도 있다. 왜인지 어떤 사람을 시름시름 앓게 하는데, 이것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바로 낫게 된다. 명함이나 문패, 이름을 쓴 종이 따위를 두려워해서 그런것이 많이 있으면 도망간다. 이것이 심한 나쁜 냄새를 풍긴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울의 종묘 근처에서 이유가 이것을 본 일이, 신돈복이 쓴 "학산한언"에 기록되어 있다.

* "학산한언"의 이 이야기에서 신돈복은 이것이 "도피사의" 항목, 즉 "용재총화"의 한 이야기와 비슷한 것으로 보고 있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중국 고전의 "산정(山精)"이라는 괴물과 비슷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귀신설(鬼神說)"에서는 중국 고전의 "소(魈)"라는 괴물을 산정과 견주어 이야기하면서 "독족귀(獨足鬼)"라고 하여 발이 하나 뿐인 귀신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산정"이나 "소" 모두 조선 시대의 시나 글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것들이다. "산정", "소" 내지는 운율을 맞추기 위해 "소"와 비슷한 뜻으로 쓴 "소리(魈魑)", "산소(山魑)" 등의 말은 사람과 떨어진 깊은 산 속, 또는 숲 속에 사는 신비로운 이상한 괴물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의 글에서 사용되었는데, 정약용, 이덕무 같은 학자들의 시에서도 이런 말이 보인다. 예를 들자면, 굉장히 깊은 산 속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우거진 곳을 묘사할 때, "꼭 산정의 울음소리가 들릴 것 같다"는 등의 말을 썼다.
이렇게 자주 언급되던 산정과 소, 모두 발이 하나 뿐이라는 것이 특징이었므로, 자연스레 다리가 하나 뿐인 귀신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돌았던 듯 하다. 다리가 하나 뿐이라는 귀신의 특징을 일컬을 때는 "독각(獨脚)"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고, 이런 말을 쓴 예로는 서거정의 시에 쓰인 경우 등이 보인다. 중국계 기록에도 다리가 하나 뿐인 이상한 것을 말할 때 "독각귀(獨脚鬼)"라는 말을 쓴 기록이 꽤 있으므로 이에 영향을 받아 쓰인 예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익의 "성호사설"에서는 이 "독각"이라는 말을 어느 정도 상세히 설명하면서 중국의 "기선(箕仙)"과 비슷한 조선의 괴상한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정작 "성호사설"에 언급된 "독각" 이야기에서 다리가 하나 뿐이라는 뜻을 밝히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내용으로 보아 "독각"과 말소리가 비슷한 "도깨비"를 한자로 옮겨서 쓴 것에 가깝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도깨비"라는 말은 특정한 형체를 가진 괴물이라기보다는 이상하고 괴상한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였으므로, "독각"이라는 말을 써서 "학산한언"에 나오는 괴물을 일컫는 것도 크게 의미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여기서는 "독각"을 항목 이름으로 사용했다. 즉 도깨비의 다양한 형태 중에, 중국 고전의 "산정"에 가까워서 깊은 산, 깊은 숲 속에서 보통 사람과는 떨어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 가는 다리가 하나인 것을 특별히 일컬어 "독각"으로 보고 이 항목으로 편성했다.


90. 여인국 (女人國)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호구아씨 그림)
"여인국"은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태평양 지역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어느 섬나라이며, 여자 밖에 없는 곳이지만 대부분의 제도가 다른 나라와 같다. 그 나라에는 특이한 샘물, 시냇물이 있는데 이 물에서 목욕을 하게 되면, 물과 몸이 서로 응하고, 그 때 이 물에서 다른 사람이 또 목욕을 하게 되면, 임신을 하게 된다. 남자가 나타나게 되면, 옷을 벗겨 온몸을 샅샅이 조사하여 남자임을 확인한 뒤에, 매우 귀하게 여기면서 여왕에게 바친다고 한다. 그러면 화려한 귀족으로 대우 받으며 살게 되는데, 결국 수 년이내에 골수가 빠지고 온몸이 말라드는 고통을 받게 된다. 남해를 표류하는 사람에 대한 소문으로 떠돌던 이야기가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비슷한 것이 “여국(女國)”이라는 언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중국 고전의 여자국 이야기와 섞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짐작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남해안 방향을 항해한 선원이나 해외를 여행한 사람들이 "여인국 사람을 보았다"라고 하는 실제 같은 목격담이 몇 나타난다. 그래서 항해 중에 많은 사람들이 태평양 어느 곳에 실제로 여인국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례는 장한철의 “표해록” 등에 나타난다.


93. 신선골 (神仙骨)

(충주 부흥당 산신도)
겉보기에는 사람과 꼭 같은데, 사실은 껍데기만 그런 모양일 뿐, 살갗 안 쪽은 텅 빈 것이다. 피부와 혓바닥 등의 겉만 사람과 꼭 같이 움직인다. 이것을 움직이는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칼이나 창 등으로 찔러보면, 살갗에서 하얀색의 기름이 흘러 나오고, 태울 경우에는 푸른색 계통의 아름다운 빛을 띤 작은 보석 같은 것이 70개 정도 굳어져 나온다. "신선골"은 보통 이 보석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이 높은 수련을 통해 신령스럽게 변할 경우, 진정한 실체는 육신을 초월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영원히 불멸하게 되므로, 원래의 육신은 이런 모양이 되어 남겨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한웅이 죽던 무렵의 일로, 홍만종이 쓴 "해동이적"에 기록되어 있다.


94. 분귀 (紛鬼: 어지러운 귀신 또는 귀신과 다툰다는 말)

(공주 소재 산신도)
매우 몸을 잘 숨기는, 사람 키의 절반 정도되는 작은 사람 같은 것으로 얼굴은 뽀얀 흰색이고, 그 얼굴에서는 화장품 가루 같은 가루가 피어오른다. 보통 보자기 같은 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몸을 교묘하게 잘 숨기기 때문에, 바로 등 뒤에 있거나 바로 몸 근처에 있어도 왠만하면 눈치채기 어렵다. 세밀하게 잘 알아 보는 사람 내지는 용맹한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몸을 숨기는 것이 실패하여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사람을 죽여서 그 몸에서 어떤 이익을 취하는 듯 한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몰래 다가와서 사람의 가슴팍을 눌러 기절시키고 서서히 죽인다. 누군가 눈치 채고 이것을 재빨리 내쫓으면 사람은 목숨을 건질 수 있다. 1441년생인 남이 가 자신의 아내와 만나던 날의 이야기로,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다. “명엽지해”에는 “분귀취처(紛鬼娶妻)”라는 제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95. 여용사 (黎勇士)

(진관사 십육나한도)
물가에서 자라는 수박이나 참외와 닮은 열매 안에서 태어나는 사람이다. 보통 시냇물이나 계곡물을 타고 떠내려와서 사람에게 발견되는데, 그 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라나면 키가 훌쩍 큰 건장한 사람이 된다. 얼굴이 아주 까만색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힘이 대단히 세서 맨손으로 호랑이 등뼈를 부수고, 거대한 종을 들어서 장치하고 옮기는 등의 일을 한다. 성품은 순하면서도 선한 편이다. 덩치고 크가 힘이 세므로, 무기를 사용한다면 아주 무거운 거대한 철퇴 따위를 쓰게 된다. 강릉 땅에서 태어나 진시황의 암살을 시도했던 이야기로, 홍만종이 쓴 "순오지"등에 기록되어 있다.

* 중국 계통의 이야기에서는 장량과 함께 진시황 암살을 시도한 사람의 출신 지역을 "창해군"이라는 장소로 하고 있고, 칭호를 "창해역사"라고 부른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중국 역사 속 이야기와 섞이면서 이런 모양으로 남은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6. 망량 (罔兩: 원전의 소제목)

(밀양 박익 묘 벽화)
사람의 그림자의 주변에 항상 숨어 있는 사람 모양의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가 있는 곳에 항상 한 발짝 먼저 가 있는다. 때문에 그림자에 가려 가장자리 모습 약간 외에는 거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사람보다 희미한 모양이며, 귀와 눈이 훨씬 더 크다. 밝은 한낮의 햇빛 속에서 선명한 유리 거울에 비추어 놓고 살펴보면, 언뜻 갑자기 거울 속에서 모습이 보이는 수가 있다고 한다.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기록되어 있다.


97. 조갑여옥 (爪甲如玉: 손 발톱이 옥과 같다는 말)

(김홍도 인물화)
한번 보면 사랑에 빠질 정도로 대단히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며, 신선의 세상에서 왔다고 한다. 아름다운 모자를 쓰고 구슬로 장식한 모습이다. 손톱이 무척 길어서 손가락 마디 한 마디 정도와 비할만 한데, 이 손톱으로 사람이 병이 걸린 부분, 오래토록 가려웠던 부분을 긁으면 낫게 된다. 갑자기 날아 올라 갈 때에는 구름과 안개가 따라 솟아 오르면 검은 학과 같은 형체와 함께, 또는 그런 비슷한 모습을 보이면서 홀연히 사라진다.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선물로 과일과 같은 크기의 커다란 붉은 색 구슬 아홉 개와 작고 아름다운 하얀 구슬 셋을 준다. 조성립이 제주에 왔을 때, 한라산 백록담 근처에서 꿈꾸듯 만난 이야기가 1594년생 이원진이 쓴 "탐라지"에 기록되어 있다.

- 모습을 나타낸 구절들은 마고 등의 신선을 묘사하는 중국 도교 계통의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98. 남굴북벽 (南窟北壁: 남굴의 북쪽 벽이라는 말, 단양, 영춘의 남굴 속 사람들)

(해인사 영산회상도)
깊은 굴로 연결된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인데, 모습은 지상세계와 전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지상세계 사람들이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고, 그 모습을 정확히 느끼기도 어렵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지상세계 사람들을 영혼이나 도깨비, 귀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치 지상세계와 지하세계가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세상이 된다. 지상세계 사람들은 지하세계 사람들이 지상에 나타나면 있다는 것을 정확히 느끼지 못해서 귀신이나 신비한 일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하세계 사람들은 반대로 지상세계 사람들이 지하에 나타나면 또 귀신이나 신비한 일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통 지상 세계와 반대인 세계가 지하에 하나 더 있고, 이 지하세계로 가는 구멍은 세상 어느 곳엔가 몇 군데 숨겨져 있다. 때문에 지하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구멍을 달리해서 나오면, 지상세계에서 매우 먼 거리를 지하세계를 통해 질러서 이동할 수도 있다. 단양 땅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정선이 들었다는 것이, 신돈복이 쓴 "학산한언"에 기록되어 있다.

* 유만주의 "지영춘심남굴북벽기(至永春尋南窟北壁記)"에도 같은 소재로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는 글의 제목에서 이야기 속 이상한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이 그 남굴의 북쪽 벽에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항목의 이름도 여기에서 따왔다.


99. 화위루의 (化爲螻螘: 작은 벌레로 변했다는 말)

(흥국사 수월관음도)
사람과 같은 것인데, 한편으로는 온몸이 작은 개구리 같은 이상한 생물이 연결되어 합쳐져서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죽고 난 후에, 이 살가죽이 썩으면, 개구리 같은 동물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것은 개구리라고 하기에는 물고기와도 비슷한 이상한 동물인데, 바다로 뛰어들어간다. 그렇게 사람 몸 속에서 뛰어나와 물 속에 들어가면, 이번에는 완연한 물고기의 모양이 되어 자유롭게 헤엄치며 멀리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남해안에서 어느 노인이 보았다는 이야기가 1438년생인 이륙 이 쓴 "청파극담"에 기록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려서 죽는데 이렇게 변했다고 하므로, 보통 사람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이런 모양으로 바뀌게 되는 지도 모른다.

* 사람이 물고기처럼 변하는 개구리 비슷한 이상한 것 여러 마리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원전의 중심인데, 만약 살아 있을 때부터 이런 이상한 것이 모여 있는 모양이었다면, 살가죽 껍데기 부분만 사람과 비슷하며, 그 속은 이 개구리와 물고기를 닮은 이상한 것, 수십 수백 마리가 서로 힘을 합해 움직인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속은 그런데도 겉으로는 마치 평범한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였다는 것이다. 어떤 병에 걸려서 몸이 점차 그런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원전에서 이것이 “누의(螻螘)”로 변했다고 되어 있는데, “누의”는 땅강아지 같은 벌레로 볼 수도 있으므로, 개구리가 아니라 땅강아지와 비슷한 이상한 벌레인데 물 속에서 헤엄치다가 작은 물고기 모양처럼 변할 수 있는 벌레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100. 성모 (聖母)

(국립민속박물관 용궁부인 무신도)
선사시대인 아득한 옛날에 세상의 산과 강을 만들었다는 아주 큰 거인으로, 그 스스로 땅과 산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매우 오랜 옛날의 사람이기 때문에 여자인 경우 보통 높여서 할머니, 혹은 큰할머니라는 호칭을 붙여 부른다. 제주지역에서는 선마, 높여서 선마선파라고 하고, 발음그대로 옮기면 설문대할망, 선문대할망 이라고 한다. 그 키가 산이나 한 나라만큼 커다란 크기로 나타나며, 손으로 흙더미를 파거나 다리로 헤치거나 해서 여러가지 산이나 강, 특별한 지형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보통 옷을 입고 있지 않거나, 속옷이나 겉옷의 구분이 없는 매우 단순한 천만을 걸친 모습으로 나타나며, 신선이나, 영웅호걸인 사람과 결혼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러 자식들이 신령스러운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체로 사람과 산, 살아 있는 것, 출산을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섬김을 받는다. 머나먼 서쪽에서 바닷길을 통해 바닷물을 걸어서 나타났다고 전해 오는 이야기도 있다. 제주도 근해에서 선원들이 한라산을 보며 이것에 비는 이야기가 장한철이 쓴 "표해록"에 기록되어 있다.

* 제주도의 설문 대할망, 지리산의 성모, 전국각지의 마고 할머니 이야기와 한 궤로 되어 있는 이야기를 한 항목으로 편성해 본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는 중국의 신선인 "마고"나 중국 도교에서 높은 여자신선으로 나타나는 "서왕모"등과 혼합되었으며, 불교에서 말하는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혼합된 사례도 있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 다양한 산이나 땅을 상징하는 신에 대한 이야기와 잡다하게 혼합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토속 신으로 꼽을 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토속적인 신령스러운 것들 중에서는 기록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성모가 낳은 자식들이 바로 세상 무당의 시조라든가, 혹은 세상 신선들의 시조라든가 하는 이야기도 있고, 석가모니를 낳은 마야부인이 동쪽으로 와서 산으로 들어가서 성모가 되었다는 류의 이야기도 있으며, 이야기들이 서로 섞이고, 전파되고 역전파되는 과정에서, 중국에서는 중국에서 추앙받는 어느 임금의 딸이 신내림 비슷한 일을 겪어 동쪽으로 가서 한국 지역에 있는 어느 산에 살면서 성모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정착했는데, 이런 사례가 “선도성모”이다. 한편 고려의 왕건 어머니인 위숙왕후가 성모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퍼지기도 해서 변화는 다양하다.
그 이름 역시, 성모천왕, 선도성모, 서술성모, 선마고 등등으로 다양한데, 대체로 "성모"가 가장 공통된 부분이라 할만하다. 대체로 제주도의 설문 대할망과 함께 지리산의 성모 할머니가 가장 유명하여, 지리산의 성모 석상과 함께 노고단의 "노고 老姑"가 할머니라는 뜻으로 이 항목의 성모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 더 많은 괴물들에 대해서는 괴물 백과 사전 글 목록으로 돌아 가는 링크를 참조하십시오.

삭제 91. 종단

삭제 92. 황주의 돌 속에 있는 사람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리천문 그림)
바위나 돌, 진주나 보석의 내부에 있는 아주 작은 사람과 같은 것이다. 보통 불교의 성인이나 인도인등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며, 때문에 신비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추앙받는다. 크기는 손가락 길이 정도 내외 이다. 어떤 사건이나 재난 때문에 바위 안에 갖히게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단 돌이나 바위를 쪼개서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 반응도 없으므로, 아주 작은 불상과 같아서, 보물로 거래된다. 황해도 일원에서 발견된 일이 1563년생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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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4/04/26 03:18 # 답글

    역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첫 이야기는 예전에 한번 다룬바도 있던 이야기로 정말 신기합니다.
    http://luckcrow.egloos.com/2429564

    88번 그림은 정말 멋지네요. 말씀대로 DB 구축이 절실합니다. 이렇게 힘들게 찾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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