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Her, 2013) 영화

“그녀”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SF물입니다. 이 영화의 특징을 찾는다면, 그 와중에 사랑에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사람의 감정을 다소 쓸쓸하고 가라 앉은 색조로 차분하게 그려 내는 느낌을 많이 낸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외로움, 공허함 같은 느낌을 다루되, 요란하거나 격정적인 인물 보다는 좀 더 친근하고 일상적인 직장인의 모습에 견주어 풀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포스터)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보다 좀 더 흔한 것은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 겠습니다만, 육체가 없는 “인공지능”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로봇 이야기 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인간 다운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거나 “감정”의 미묘함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에 좋은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한국 SF 소설 중에 인공지능과 사람의 사랑 이야기라면 90년대 초반에 나왔던 “용의 전설”이 그래도 조금은 알려진 편 아닌가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돌아 보면, 이 “용의 전설”은 이 영화처럼 애정 이야기가 중심이라기 보다는 모험과 활극 중심이고, 천재가 만든 숨겨진 인공지능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들을 해킹을 해서 별별 일 다 한다는 좀 흔한 구성입니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 속 여자 주인공과 실제 여자 주인공이 연계 되어 있는 복선이라든가, 중간에 컴퓨터를 이용 해 내기 바둑을 하는 장면의 묘사는 훌륭했다는 기억 입니다.

이 영화에서 일단 눈에 뜨이게 잘 된 부분은 이 영화의 미래 풍경 묘사였다고 생각 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영화 장면처럼 정말 미래 같은 미래 풍경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자면 딱히 현대와 크게 다를 것은 없는 풍경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가구와 옷차림, 거리와 직장의 모습들이 애플 회사 출신 디자이너들과 그걸 베끼라는 지시를 받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한 것처럼 정갈하고 산뜻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니멀”하고 미래 지향적인 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마음 붙일 곳 없어 외로워하고, 항상 쓸쓸하고 지쳐 있는 현대 인간들의 모습과 완전히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 그 정갈한 모습들이 그 만큼 매정하다고 해야할 지, 비인간적이라고 해야할 지, 그런 식의 효과를 주고도 있었습니다.

대단한 고층 빌딩들이 스모그 속에서 빽빽하지만 항상 날씨는 따뜻하고 햇살은 밝은 친근하면서도 미래 풍경 같은 도시 모습 역시 주인공의 출퇴근 길이나, 여행길 차창 밖으로 어우러져서 근사하게 영화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집안)

캐스팅과 연기도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보다 보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직장 있겠다, 돈 있겠다, 뭘 그만한 일로 징징대냐 이 배부른 것들아”라고 욕하고 싶을 만큼 과하게 감성적인 면도 부분적으로는 있는 이야기였다고도 볼만 합니다. 그런 점을 적당히 잘 표현해 주고, 한편으로는 그 속에서도 재밌게 잘 살려 주는 핵심이 배우들의 모습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지적이고 친절하고 감정이 넘치지만 그래서 얼간이 같기도 한 남자를 표현하는 호아킨 피닉스는 그냥 그 사람 본인이 진짜로 그런 것 같아 보일 지경이고, 배우들의 모습에 맡게 걸려든 그 역할을 그대로 한다 싶은 에이미 아담스나 스칼렛 요한슨도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배우들 모습이 주는 효과에 대해서는 중간에 주인공의 전처가 등장하는 장면은 단적인 예라고 생각 합니다. 조명과 배경 풍경이 좋고, 주인공의 전처가 화면에 얼굴을 들이 밀 때의 촬영도 훌륭해서, 그냥 배우가 화면에 얼굴을 보여 주는 것 뿐인데, 그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저러니까 주인공이 잊지를 못하지”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해 줄 지경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나아가서는 “그냥 다 집어 치우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이 여자를 잡아라”고 관객들이 생각하게까지 만들어서, 뒤이어지는 이야기를 더 아슬아슬하고 안타깝게 만들어 버린다고 느꼈습니다.


(이혼 서류 서명하려고 만나기)

아쉬운 점들을 이야기 해 본다면 역시 결말 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하여간 영화를 끝내려면 뭔가 끝장 내야 하니까 오늘 갑자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확 끝날 수 밖에 없다고 우기자, 라는 식입니다. 이런 결말에 대한 복선이 잠깐 앞에 있기는 한데, 이 복선 자체도 사실 좀 뜬금 없이 그냥 툭 튀어 나오는 것이라 별로 복선 다운 역할을 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SF물의 중요한 소재 하나를 활용하는 결말이 이렇게 갑작스럽고 그냥 억지스럽게 끝내기 위한 난데 없는 핑계로 밖에 안느껴지는 만큼, 중간 중간에 인공지능과의 사랑에 대한 난관을 위해 집어 넣은 장면들도 다소 억지스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서는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위해 중간에 대리인을 집어 넣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나오는 데, 어쩔 수 없는 비극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에게 “견디기 어려운 나쁜 여자의 뒤틀린 요구”라는 난관을 넣기 위해 그냥 영화 속에서 억지를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억지스러운 비극 보다야, 어차피 인공지능은 개인의 소유물인 소프트웨어였을텐데, 그걸 노예처럼 학대하고 동물 이하로 괴롭히는 악당 같은 인간의 이야기라든가, 그런 악당 같은 행동을 즐기는 것이 사회적인 유행으로 번진다든가, 거기에 반대하는 무리가 나타나 싸운다든지, 싸움을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사나 소프트웨어가 저장된 저장장치, 네트워크를 두고 다툰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텐데, 이런 이야기는 오히려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 전체에서 벌어지는 모험이나 소동 보다는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한 영화로 꾸미려다 보니 적당히 선을 그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현대의 인권 문제와도 비교 대상이 되는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사회가 받아 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또 그냥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살짝 당겨 와서 이리저리 꾸민다고 이야기를 뿌리기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정말 이야기 속에 빨려 들기에는 어떤 부분은 그냥 허한 가짜 같은 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이야기 보다는 부분 부분의 감정들이 더 재미난 영화였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우울하고 쓸쓸해진 사람이 그저 밝고 즐거운 사람과 우연히 만나 부대끼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밝아 지게 되고, 웃게 되는 몇몇 순간을 포착한 대목 같은 것들은 다시 보면 또 새로워 보일 듯 합니다.


그 밖에...

사실 실제로 생물적인 남녀라는 것이 없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것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 인공지능의 “목소리 설정을 여자”로 해 놓았다는 점 때문에 그냥 목소리만 있는 여자 유령 같은 것과 사랑에 빠지는 느낌으로 별 갈등 없이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듀나의 “태평양횡단특급” 수록작인 “첼로”에서 다른 국면이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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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tomtom 2014/07/06 17:50 # 삭제 답글

    저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게렉터 2014/07/26 12:59 #

    간만에 흥미진진하게 지켜 본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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