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GN 극장판 (성난 비디오 게임 얼간이: 극장판, Angry Video Game Nerd: The Movie) 영화

제임스 롤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임스 롤프는 어릴 때부터 굉장한 영화광이었는데 영화 중에는 공상적인 판타지물이나 공포 영화, 거대한 괴물이 나와서 도시를 부수는 영화 같은 것들을 열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서 선물로 사준 캠코더로 동네 친구들과 장난 처럼 영화 장면들을 찍으며 놀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무렵이 되자, 제임스 롤프는 좀 더 진지하게 영화 찍기를 취미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언젠가 영화 감독이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상어 나오는 썩은 영화만 40편을 줄줄이 소개해 대는 리뷰에서, 자기가 모은 썩은 상어 영화에 파묻힌 제임스 롤프)

영화와 관련 있는 전공으로 대학을 다니기는 했지만 별볼 일 없는 경력을 이어 가고 있었고, 기업체의 교육용 영상의 편집일을 맡아 하는 정도가 영화와 관련있는 일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제임스 롤프는 영화판에서 두각을 나타낼 엄두도 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딱히 멋지게 무슨 직장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길도 못찾던 상황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반백수와 같이 살던 참이었는데,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살던 중 대학에서 만난 친구인 마이크 마테이가 제임스 롤프에게 "옛날 비디오 게임 중에 별 거지 같은 게임들도 다 있었다"면서, 못만든 엉성한 옛날 비디오 게임을 다시 붙잡고 하면서 비웃으며 노는 재미를 알려 주게 됩니다.

영화 못지 않게 어릴 때 비디오 게임도 좋아했던 제임스 롤프는, 마이크 마테이와 맥주 마시며 그렇게 놀며 히죽거리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제임스 롤프는 그렇게 놀다가 재미 삼아 80년대와 90년대의 못 만든 게임때문에 좌절하여 괴로워하고 꾸짖고 욕하는 영상을 찍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보여 주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그야 말로 그냥 재미로 찍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웃긴 표정을 짓고, 웃긴 행동과 말투로 이상한 옛날 게임을 욕하는 모습이 굉장히 웃기게 찍혔습니다.


(AVGN으로 나오는 제임스 롤프의 전형적인 모습)

결정적인 계기는 2006년, 그게 제임스 롤프가 27살이던 해에 찾아 왔습니다. 마이크 마테이가 제임스 롤프에게 "인터넷에 동영상 올려 놓고 사람들이 보는 사이트가 있는데 유튜브라고 하는데 거기에 한 번 못만든 게임 때문에 좌절한 모습 동영상을 올려 보자"라고 제안 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상상도 못했지만, 제임스 롤프에게는 그게 바로 모든 것을 바꾼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를 두고 제임스 롤프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던 그 순간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2000년대 중반은 90년대 초반을 추억으로 되돌아 보는 것이 유행이던 때였습니다. 어릴적 하던 80, 90년대 고전 비디오 게임에 다시 추억을 갖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한창 빠르게 늘어나던 때였습니다. 못 만든 게임을 욕하는 제임스 롤프의 영상은 삽시간에 인기를 얻어 엄청난 속도로 조회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최악의 게임으로 제임스 롤프가 자주 꼽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게임판)

처음에는 성난 닌텐도 얼간이(Angry Nintendo Nerd)라는 이름으로 나중에는 AVGN(Angry Video Game Nered, 성난 비디오 게임 얼간이)이라는 이름으로 제임스 롤프는 시리즈로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갖가지 못 만든 옛날 비디오 게임을 발견하여 소개하면서, 거기에 좌절하고, 그 게임에 화를 내고, 조롱하고, 비웃는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AVGN은 수년간 꾸준히 계속해서 이런 웃긴 리뷰 영상을 공들여서 만들어 올렸습니다. 한편이 10분에서 20분 사이인 이 짧은 게임 소개/리뷰 영상들은 무척 재미있고 인기가 있어서, AVGN 시리즈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고, 결국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영상 시리즈 중에 하나로 올라 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AVGN 시리즈는 매편당 조회수가 1백만을 가볍게 상회하게 되었습니다. AVGN 시리즈와 제임스 롤프는 게임과 관련된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하게 되기도 하였고, 마침 이런 영상 작업을 제임스 롤프는 생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띄엄띄엄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100편이 훨씬 넘어 가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모습으로 꽤 알려져 있습니다)

AVGN 영상 시리즈는 일단 리뷰 자체의 솜씨 부터가 핵심을 찌르면서 게임의 느낌을 잘 알려 주는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할만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여러 가지로 집어 넣은 웃긴 상황이나, 제임스 롤프의 웃긴 표정, 말투와 특유의 장황하고 리드미컬하면서도 역겹고 황당 무계한 화려한 욕설도 재밌게 버무려져 있었습니다. 나중으로 갈 수록 소재가 고갈되는 느낌은 있습니다만, 보기만 해도 눈길을 끄는 괴이한 게임들을 잡아 보여 주는 소재 자체도 희귀한 면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악마성 드라큐라" 시리즈 리뷰에서, "왜 게임 속 세계에서는 벽을 때리면 거기서 통닭(칠면조) 같은 음식이 아이템이랍시고 튀어 나오는가. 그리고 왜 사람이 무너진 벽에서 나온 통닭을 좋다고 먹는가?" 같은 이야기를 하던 것처럼, 게임 속 세계에 푹빠져서 관찰할 때 찾을 수 있는 풍자적인 클리셰를 재치있게 잘 잡아 채기도 했습니다.

"터미네이터" 게임 시리즈 리뷰에서는, 한 자리에 서서 계속 총 쏘는 버튼만 누르고 있으면 절대 죽지 않고 계속 이득을 볼 수 있는 지점을 찾아서 거기에 캐릭터를 세워 놓고 총 쏘는 버튼을 렌치로 고정시켜서 눌러 놓고 한숨 자고 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장면은 별것도 아닌 게임에 어린 시절 푹 빠져서 그 재미에 울고 울었던 그 영혼을 떨리게 하는 웃긴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AVGN 시리즈의 성공에 자신을 얻은 제임스 롤프는 마침내 자신의 오랜 꿈에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제임스 롤프는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올려서 AVGN을 소재로 극장판 장편 영화를 찍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제임스 롤프는 32살이 되던 해인 2011년 인터넷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평소 AVGN을 즐겨 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액 투자를 끌어 모았습니다. 제임스 롤프가 목표한 액수는 7만 5천 달러였는데, 30만 달러가 넘는 돈이 모였고, 2012년 제임스 롤프는 드디어 평생 동안 꿈에 그리던 진짜 영화 감독이 된다는 도전에 뛰어 들게 됩니다. 전문 배우와 전문 스탭들을 고용해서 AVGN 영화판 제작을 시작한 것입니다.


(AVGN 영화판)

영화 제작이 역시 쉽지만은 않아서, 제임스 롤프는 완성된다고 처음에 예상했던 기한을 넘겨 버렸고, 본래 생각했던 영화가 끝난다는 시점이 되어도 영화가 나올 기미가 안보이면서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제임스 롤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제임스 롤프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에서 팬들을 통해서 조건 없이 투자를 받은 제작비로 그야말로 독립 영화 중에 독립 영화로 제작했기 때문아닌가 싶습니다.

연기에 연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AVGN 극장판은 2014년 7월 21일 개봉되었습니다. 와이드 릴리즈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상당히 많은 극장들을 섭외하는데 성공한 AVGN은 미국 전역에서 수십군데의 극장을 잡아 영화를 걸었고, 많은 상영관을 많은 회차로 도배하지는 못했지만, 그 몇 번 안되는 상영 동안만은 AVGN을 좋아하는 사람들, 옛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극장에 모여 들어, 축제처럼 유쾌하게 모두들 영화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AVGN의 이야기와 AVGN 극장판이 나오기 까지의 이야기들은 영화 자체의 내용을 떠나서 그 발전과 제작 과정이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 입니다. 꿈을 좇는 한 사람이 어떻게 계속 꿈을 따라가고, 어떻게 좌절을 버텨내고, 어떻게 새로운 기회를 얻는 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고 할 만합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서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그 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바뀌어 가는 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나 제작하려고 상상해 보는 사람들에게 이만큼 눈길을 끄는 사연도 또 없을 거라고 생각도 듭니다.

황당하게 우스꽝스러운 맛을 핵심으로 삼은 코미디 영화로 제작된 AVGN 극장판의 줄거리 전체를 결말까지 다 밝히면서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뉴멕시코 사막의 AVGN)

한 게임 회사는 AVGN의 인기에 영감을 얻어서, 일부러 못만든 게임을 만들고 못만들었다는 점을 신기하게 선전해서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렇게하면 제작비는 덜 들고, 돈은 더 쉽게 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회사는 사상 최악의 게임으로 악명 높은 "Eee Tee"의 속편을 만들기로 하고, 홍보를 위해서 AVGN에게 "Eee Tee" 원작을 리뷰하도록 유도 합니다.

그런데 1982년 발매된 "Eee Tee" 원판 게임은 너무 심한 최악의 게임이라서, 안 팔린 게임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아 돌았고, 결국 제작사에서는 그 게임들을 뉴멕시코 사막에다가 그냥 파묻어 버렸다는 악명 높은 소문으로 유명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아타리 사에서 5주일 반 만에 날림으로 만들었다는 것으로 악명 높은 1982년판 "E.T." 게임의 사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사실 어찌저찌해서 게임 자체의 판매는 냉정하게 보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너무 거품 경기에 취해 있을 때라 아타리 사에서는 이 날림으로 만든 게임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아치울 상상을 하며 너무나 많은 물량을 찍어낸 상태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은 게임 카트리지들을 그냥 사막에 묻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최근에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Atari 2600판 E.T. 게임)

이 E.T.의 실패를 정점으로 해서 미국 비디오 게임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악명 높은 "1983년 비디오 게임 산업 붕괴"가 일어 났고, 이 때문에 초창기 미국 비디오 게임 산업은 통째로 확 주저 앉아 버리게 됩니다. 덕분에 80년대 중반 일본의 닌텐도가 제패 하는 시대가 올 때까지 미국 가정용 비디오 게임 산업은 경쟁력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AVGN 극장판은 바로 이 전설적인 한 편의 비디오 게임에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것입니다. AVGN 극장판도 영화는 영화지만 AVGN 극장판 영화가 나오기 까지의 사연도 흥미진진하다는 점에서, 게임 자체는 별 볼 일 없지만 게임에 얽힌 사연과 사상 최악의 게임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하다는 "E.T." 게임이라는 소재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울리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AVGN 극장판의 이야기는 여기서 한 번 더 재미있게 꺾어 집니다. 바로 뉴멕시코 사막이라면, UFO 음모론으로 악명 높은 51구역(Area 51)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즉 "Eee Tee" 게임을 사막에서 파 내기 위해 찾아 온 AVGN 일행을 보고, 추락한 UFO를 관리하는 군대의 미치광이 장군이 진짜 E.T. 즉 외계인을 찾아 내려고 한다고 오해한 것입니다. 미치광이 장군은 미국 국가의 안보를 위해 비밀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AVGN 일행을 저지하려고 합니다.


(미치광이 장군에게 붙잡힌 AVGN)

그러다 AVGN 일행은 옛날 "Eee Tee" 게임을 만들었던 제작자와 그 친구였던 미친 과학자를 만납니다. 미친 과학자는 군대에서 추
락한 UFO의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외계인을 학대하는 것에 회의를 느껴서, 모든 비밀을 숨겨 놓고 도망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비밀을 찾는 열쇠를 "Eee Tee" 게임 속에 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AVGN은 미치광이 장군의 군대에 쫓긴 끝에 진짜 외계인을 만나서 같이 탈출하게 됩니다만, 미치광이 장군은 열 받아서, "이렇게 된 이상, 일본을 공격한다"고 외치면서 후지산에 미사일을 쏘아 버립니다. 뭐,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아타리 회사의 로고는 후지산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AVGN이 너무 미워서 게임의 상징인 아타리 회사의 상징인 후지산을 공격한다"고 외치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후지산이 부서지자 그 안에서 해골 모양과 은박지로 장식된 모양의 거대한 괴물이 튀어 나옵니다. 이 괴물은 온 우주를 없앨 수 있는 어마어마한 괴물인데, 일본을 좀 파괴하고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좀 파괴하다가 라스베가스를 파괴 합니다. 얼마 안 있어 이 거대 괴물이 온 우주를 없앨 참입니다.


(거대 괴물)

한편 AVGN은 외계인에게 사실 사막에 묻어 놓은 모든 "Eee Tee" 게임 카트리지 속에는 외계인의 우주선 조각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듣습니다. AVGN은 사막에 묻혀 있던 백만개의 게임 카트리지들이 하나로 합체하여 우주선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AVGN 일행과 외계인은 우주선을 조종하여 거대 괴물을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부위인 머리 위의 접시 안테나에 광선총을 발사하고, 명중하자 거대 괴물은 우주로 떠나갑니다.

AVGN은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사람들 앞에 나타나, 마지막으로 할 일을 하겠다며, 영화가 다 끝나서 자막이 올라 가는 동안 "Eee Tee" 원판 게임에 대해 리뷰를 합니다.


(외계인)

전체적으로 영화 내용과 분위기는 브루스 캠벨이 나온 "내 이름은 브루스 My Name Is Bruce"와 무척 비슷합니다. 우스꽝스러운 황당한 이야기를 둘러 싸고, 헐렁하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데 그 와중에 이래저래 농담을 주워 담고 한편으로는 주인공을 그 동안 오래도록 좋아해 준 골수팬들에게 고마워 한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한편으로는 그 골수팬들이 좋아하던 취향에 장단도 맞춰 준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가끔씩은 영화 속 이야기 그 자체의 재미 보다, "그동안 재밌게 봐주신 팬 여러분께 감사합니다"라는 부분에 영화를 할애하는 것에 더 무게를 실을 정도 입니다.

이것은 이 영화의 독특한 특징일 수도 있었던 점을 상상해 보면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AVGN 극장판인데, 의외로 게임에 대한 이야기, 게임 자체를 둘러싼 독특한 소재들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임 세계를 소재로 한 "주먹왕 랄프"도 게임 소재가 약간 부족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AVGN 극장판은 주먹왕 랄프 보다도 훨씬 더 게임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적은 편입니다.

물론 그런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맨 마지막 장면 최후의 대단원을 그야말로 정공법 AVGN 에피소드 같은 리뷰 그 자체로 하고 있어서 분위기 상으로는 만족스럽고 흥겨운 맛은 삽니다만, 그래도 아무래도 돌아 보면, 게임 이야기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일부러 못만든 게임을 만드는 제작사", "사상 최악의 게임 E.T.", "뉴멕시코의 외계인 음모론"이 하나로 엮여 드는 절묘한 소재를 초장에 잘 제시한 것을 생각하면 흥미를 끌고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하는 시작에 비해서, 중반과 절정 부분에 게임 이야기, 게임 소재를 이용한 재미난 분위기들이 있기는 있어도 생각보다는 적은 편이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후반에 난데 없이 거대 괴물이 나타나 싸우는 이야기가 나온 것의 비중이 상당히 큰 것에 비하면 더 아깝습니다. 거대 괴물이 도시를 부수는 장면은 사람이 안 등장하는 장면은 놀랍게도 의외로 봐 줄만하게 찍혀 있기는 했고, AVGN을 비롯한 제작진이 평소에 고질라 류의 일본식 괴물 영화를 워낙에 어릴적 부터 좋아하던 사람들이라 한번 찍어 보고 싶던 것을 마음껏 찍어 보고 싶지도 했겠습니다만, AVGN이라는 소재와 잘 어울리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산으로 가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살리기에 갑자기 막판에 거대 괴물이 나타나는 것만한 수법도 없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내 차 봤냐?(Dude, Where's My Car?)" 같은 영화에서는 막판에 거대 괴물이 나타날 때 나타나더라도 적절한 복선과 잘 이어지는 내용으로 영화를 전체적으로 통일감 있게 잘 유지시켜 주는 것에 비하면, 이 영화 속의 막판 거대 괴물은 그전까지의 AVGN의 특징이나, 비디오 게임에 관한 이야기 분위기와 너무 상관이 없어 보였습니다.

전환점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부드럽게 넘어가게 하려고 요리조리 앞뒤로 이야기를 맞춰 꾸몄던 "내 차 봤냐?" 수준의 영화와 비교해 보자면,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도 이야기가 배경과 소재가 바뀔 때 마다 "그냥 그렇다치고 대강 넘어 가자고"라는 식으로 설렁설렁 넘어 가는 대목이 더 많은 편입니다.

한편으로 중간 중간에 일부러 못만든 특수효과를 집어 넣어서 웃긴 장면으로 꾸미려고 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재미가 산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같은 그 분야의 진짜 걸작에서 코미디를 잘 빚어낸 그 솜씨와는 차이가 확연했고, 자동차 운전하는 장면에서 배경과 자동차안을 합성한 것처럼, 그냥 어색하기만 할 뿐 어정쩡한 장면도 많았습니다.


(여자 주인공)

그렇습니다만, AVGN 극장판은 대체로 지루할 새 없이 빠르게 막 흘러가는 이야기가 신나는 즐겁게 본 영화였습니다.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서 임원희가 그랬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제임스 롤프 본인은 더할나위 없이 역할에 잘 어울리며 특유의 괴로워하는 표정이라든가, 운율을 살려 노래하듯 욕설을 늘어 놓는 장면은 과연 흥겨웠습니다. AVGN의 매니저이자 친구 역할로 나온 배우는 너무 평범하게 연기를 했다고 느꼈습니다만, 대신에 악당인 미치광이 장군이나 여자 주인공은 독립영화 배우로 기용한 무명배우들이었지만 연기가 상당히 안정감 있었고 제 몫을 출중히 잘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 구성을 정교하게 맞춰야 하는 부분들에서 지나치게 많이 포기를 한 것에 비하면, 지나가는 헛농담이나, 헛소리를 하며 한번 짧게 웃기려는 대사들 중에는 재밌는 것들이 상당히 많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여러 장면에 AVGN 시리즈 팬들이 보낸 영상들을 섞어 친 것이나, AVGN 시리즈 좋아하던 사람들이 엑스트라로 출연한 장면, 인터넷에서 비디오 게임 리뷰를 하는 다른 비슷한 동지들이 잠깐 잠깐씩 얼굴을 내미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런 장면들의 숫자가 약간은 과하게 많지 않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그 동안 꾸준히 AVGN 시리즈나 비슷한 유튜브 영상 시리즈들을 즐겨 보았다면 반갑게 재밌어할만한 대목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이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같은 사람들이 기가 찰 만큼 적은 제작비로 기적과 같이 멋진 영화를 만들어낸 걸작들의 수준에 다가 서는 영화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인 형태로 실력 있는 감독에게 제작비가 30만 달러 밖에 없으니까 그 선에서 최대한 알아서 뭔가를 만들어 보라고 했을 때 나올만한 영화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렇게 만들어질만한 영화에 비해서는 더 개성이 강하고, 더 특이한 영화였습니다.

가끔 중심 소재인 비디오 게임 분위기가 살아 나는 몇몇 장면들에는 비할 바 없는 묘미가 있기도 했습니다. 초장에 영화가 시작될 때, 신나는 전자 기타 연주와 진짜 게임 음악 같은 칩튠(chip tune) 소리도 살짝 끼어드는 음악이 깔리는데, 무척 듣기 좋았습니다.

E.T. 게임과 UFO 음모론을 연결시키는 핵심 아이디어는 빛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아무 걱정 없이 흔들리는 내용을 AVGN 분위기에 푹 젖어 즐길 수 있다면, "어릴 때 재밌게 하던 게임" 같은 사소하고 작은 기억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런 것들이 또 삶에서 얼마나 재밌고 따뜻한 지 기억하기에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임 리뷰 장면들을 보면, 제임스 롤프는 역시 보통 극영화 같은 극적인 내용이나 짜낸 이야기 보다는, 현실에 있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성 영상, 리뷰 영상에 훨씬 더 능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임스 롤프의 홈페이지 http://cinemassacre.com/ 를 보면, 제임스 롤프는 다양한 영화에 관한 리뷰 영상들도 올리고 있고, 특히 B급 영화, 공포 영화에 대한 영상들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어지간한 TV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 보다 훨씬 더 짜임새 있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록키가 영화에서 뛰어 넘은 벤치를 소개해 주는 영상이나, 제임스 롤프가 어릴 때 TV에서 본 만화에 대해서 소개해 주는 영상들도 사소하다면 사소한 소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서 가끔은 감동을 줄 정도로 만들어 놓은 구성이 훌륭했다고 느꼈습니다.

누가 봐도 대충은 재미난 영화입니다만, 고전 게임 팬이나 AVGN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큰 인기는 끌기 어려운 영화이니 한국 개봉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독립 영화 만드는 것에 대해 감흥을 주기에는 이만한 영화도 또 없는 만큼, 영화 관련 기관이라든가 영화제에서라도 한번 초청해서 한국에서 극장 상영 해 보면 어떤가합니다. 내년 부천 영화제에서 한 번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현재 VIMEO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유료 다운로드 할 수 있습니다. https://vimeo.com/ondemand/avgn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한국에서도 VISA 카드로 결제도 잘 되고, 재생도 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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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랜덤여신 2014/09/04 23:46 # 답글

    와, 어떻게 벌써 보셨는지 놀랐는데 VOD가 나왔었군요. 올해 말 출시 예정이라더니 굉장히 일정을 앞당겼네요. 혹시 일본 개봉하면 일본에 가서 볼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고 기쁩니다.
  • 게렉터 2014/09/05 21:31 #

    꽤 많은 극장을 잡은 편이지만 그래도 와이드 릴리즈는 아니었으니, 워낙 세계 각지의 기대하던 사람들을 위해 VOD를 서둘렀던 듯 합니다.
  • 곰늑대 2014/09/04 23:50 # 답글

    뭔이야기지 이게??? 하다가 보니까 출시작이었네욬ㅋㅋㅋ

    혹시 비메오에 한글자막 지원되나욬ㅋㅋ
  • 게렉터 2014/09/05 21:31 #

    한글자막은 요원한 느낌입니다. 저는 내년 부천 영화제에 한번 걸렸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 오오 2014/09/05 03:14 # 답글

    이글 보고 바로 구매버튼을 눌렀어요.
    그러나 글은 줄거리 부분에서 그냥 스크롤 다운
  • 게렉터 2014/09/05 21:31 #

    보고 나신 후에 또 이야기 더 나누어도 좋겠지요.
  • TokaNG 2014/09/05 09:38 # 답글

    AVGN 재밌게 봤었는데, 흥미로운 영화네요.
    DVD가 국내에 발매된다면 사보겠는데...
  • 게렉터 2014/09/05 21:32 #

    그렇게 되긴 요원할 듯하고. 일단 VOD는 잘 되는 편인데, DVD나 블루레이는 직구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김안전 2014/09/05 10:17 # 답글

    사실 제임스 롤프가 뜰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나 유럽권의 문화, 즉 솔직함의 정서를 관통했다고 봅니다. 동양이 겸손, 겸양을 강조한다면 저쪽은 포장이 없는 있는 그대로를 상당히 강조하니 말이죠. 이 분야 최초는 게임센터 CX이고 그 프로그램은 만년 못나가는 개그맨 아리노가 상부상조 하자는 데서 시작했고 중고 패키지, 업소, 기부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면, 제임스 롤프는 추억은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재미 없는건 재미 없는거고 니들은 세상 좋은 줄 알아야 한다. 이런게 주된 내용이니 말이죠.

    뭐 그 솔직함 속에 과장도 섞이고 여러가지를 가미하다 보니 대변인에서 아이콘으로 신분 상승도 했고 말이죠. 영화는 그의 오랜 꿈이었다니 더 대차게 말아먹을지, 하던거 할지 봐야겠죠.
  • 에우리드改 2014/09/05 11:10 #

    '옛날엔 구렸는데 요즘은 참 좋다'는 고질라 게임 리뷰편이 절정이었죠... '난 너무 일찍태어났어!'
  • 게렉터 2014/09/05 21:35 #

    리뷰 영상 각본을 쓰고 잘 찍고 편집해 만드는 솜씨 자체가 제임스 롤프가 뛰어 나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에 비해 극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좀 약한 것 같아서 사실 이번 영화가 엄청난 히트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팬층이 두텁고 그 팬층을 실망시킬 물건은 아니니까 저는 큰 실패는 안하리라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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