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 영화

1947년작,“과거로부터”는 고전 느와르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중 하나 입니다. “씬 시티” 같은 요즘 영화들이 고전 느와르 영화를 흉내내는 느낌 그대로의 영화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느와르 영화하면 바로 떠오르는 비정한 인물들, 위험한 여자, 대조가 뚜렷한 조명, 과거 회상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구조, 탐정과 탐정의 독백 나래이션 등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 중에서 꼽아 보자면 문제의 ”위험한 여자”쪽 이야기는 강하고 재밌는 이야기이고, 독백 나래이션 탐정은 전형적인 모습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습니다. 영화의 비중은 아쉽게도 남자 주인공 쪽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편입니다.


(포스터)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략 설명해 보면 이렇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시골 마을에 우리의 주인공 터프 가이 로버트 미첨은 주유소를 운영하며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그 시골 마을의 참한 아가씨가 로버트 미첨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로버트 미첨에게 껄렁한 인물들이 찾아 오자 로버트 미첨은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로버트 미첨이 한참 잘돼가던 시골 아가씨에게 어쩔 수 없이 “내가 이 마을에 오기 전에는 이런 사람이었다”라고 과거의 이야기를 해 주는 것입니다.


(시골 아가씨와 독백하는 사나이)

과거 회상 장면이 나오고, 시골 아가씨에게 설명해 주는 형식이 독백 나래이션이니 만큼, 과거의 로버트 미첨은 다름 아닌 탐정이었습니다.

로버트 미첨이 맡은 의뢰는 한 여자를 찾아 오는 것입니다. 그 여자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여자는 별로 정직해 보이지는 않는 부자의 애인이었는데, 부자를 죽이려고 하고 부자의 돈을 들고 튀었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미첨은 멕시코의 아카풀코까지 가서 이 문제의 “위험한 여자”를 만납니다. 음악이 흐르는 밤의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위험한 여자를 만나지 않겠습니까. 이 장면에서 로버트 미첨의 고독하게 폼 잡는 장면은 고전적이고, 위험한 여자의 분위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밤거리 분위기에다가 바에 흐르는 음악까지 이런 영화 답게 잘 어울리고 있어서, 둘이 만나고 서로 대화를 하며 뻐꾸기 날리고 하는 장면들은 그대로 교과서를 써도 될 정도입니다.

이런 영화에서 그렇게 되면 항상 그렇게 되는대로, 로버트 미첨은 바로 위험한 여자에게 빠집니다. 위험한 여자는 부자가 사실은 매우 싫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싸운 것은 맞지만 돈을 노리고 돈 들고 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로버트 미첨은 여자를 붙잡아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의 다른 부하들로부터 여자를 숨겨 주고, 여자를 도망치게 해서 둘이 같이 샌프란시스코로 야반도주를 합니다.

그야말로 “여자의 눈물”에 녹아 그것을 믿고 모든 것을 걸고 내달리는 느와르 영화 주인공 같이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날 밤, 바에서 만난 위험한 여자와 주인공)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알콩달콩 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부자의 부하들은 이들을 추적해 따라 오는데 성공합니다. 여자는 다시 도주하려고 하다가 한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여자가 대책 없이 도주해 버린 탓에 로버트 미첨이 대신 살인 사건을 묻어 버리는 뒤처리를 하게 되고, 그리고 조용하게 숨어 지내기 위해 이 시골 마을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야기는 다시 현재로 돌아 옵니다. 이 시골 마을까지 부자의 부하들이 찾아 왔고, 로버트 미첨은 각오를 하고 이제 부자와 마주 서려고 한 것입니다. 로버트 미첨은 시골 아가씨에게 꼭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고 부자를 찾아 가는데, 이게 왠 일입니까. 부자의 옆에는 다정하게 “위험한 여자”가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 하니, 이 문제의 “위험한 여자”는 갈 데가 없으니 결국 부자의 곁으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부자 역할은 다름 아닌 커크 더글라스가 맡았습니다.)

부자는 로버트 미첨에게 어차피 이제 일은 다 정리되었으니, 그 동안의 소동을 사죄하는 뜻에서 자기가 시키는 일을 한 가지 하라고 합니다. 로버트 미첨에게 부자의 탈세 증거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탈세의 증거를 받아 오라는 의뢰를 맡긴 것입니다. 로버트 미첨은 시키는대로 하는데 뭔가 찜찜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알고 보니, 부자 일당은 탈세의 증거를 가진 사람을 그냥 죽여 버린 것이고, 그때 마침 로버트 미첨을 거기에 보내서 로버트 미첨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려고 한 것입니다. 로버트 미첨은 그대로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시체를 숨겨 버리고 탈세 증거는 자기가 챙겨 버립니다. 부자는 죽어 있어야 할 시체는 발견되지 않고 탈세의 증거도 손에 들어 오지 않으니 당황합니다. 부자 일당은 로버트 미첨을 추적하여 없애 버리기로 합니다만, 로버트 미첨이 운영하던 주유소의 아르바이트 소년(!)이 활약하여 로버트 미첨을 추적하던 총잡이는 절벽에서 발을 헛딛어 죽어 버립니다. (아르바이트 소년은 낚시대를 던져 낚시줄로 총잡이를 걸려 넘어지게 해서 절벽에서 떨어뜨립니다.)


(여기 근처에서 갑자기 당대에 몸매 자랑으로 유명한 배우였던 론다 플레밍이 잠깐 나왔다가 들어 갑니다. 엄청나게 작은 비중인데, 포스터 등에는 제2의 여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시골 아가씨 역할의 버지니아 휴스턴 보다 더 큰 비중처럼 광고 되어 있습니다.)

로버트 미첨은 부자와 위험한 여자를 찾아 가서는 경찰에 사실대로 말하고 죄값을 받으라고 말 합니다. 이 대목 앞 뒤에서, 밤 풍경에서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얼굴에 그림자가 지는 느와르 영화 분위기가 물씬 나는 화면이 꽤 많이 나오게 됩니다.


(느와르 조명)

로버트 미첨이 부자와 위험한 여자를 다그치자 이 여자는 놀랍게도 총으로 부자를 쏘아 없애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로버트 미첨에게 이제 음모에 대해 하는 사람은 로버트 미첨과 자기 밖에 없으니까 경찰이 도대체 누구 말을 더 믿을 거 같냐고 하면서 로버트 미첨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자기와 함께 도주하여 옛날처럼 둘이서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고 애타게 말합니다.

관객들로서는 “저 여우 같은 여자에게 속지마!”라고 영화 속 로버트 미첨에게 외치고 싶어지는 대목 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저 여자의 마음 속에 어느 정도는 진심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하게 되는 복잡한 장면이었습니다. 로버트 미첨은 결국 이 여우 같은 여자에게 속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몰래 전화를 걸어 경찰서에 신고를 합니다.


(돌변하여 매달리는 여우 같은 여자와 주인공)

여자와 로버트 미첨은 야반도주를 하는데, 찻길을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들이 막고 있습니다. 여자는 로버트 미첨이 신고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로버트 미첨에게 “비열하게 배신을 하다니!”라고 짜증을 확 내며 소리를 지르는데, 이 짧은 장면에서 보는 관객들은 모두 “지가 배신은 훨씬 더 많이 했으면서”라고 마음 속에서 소리를 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과격하게도 바로 로버트 미첨에게 총을 쏘아 죽여 버립니다. 여자는 경찰에게도 총을 쏘며 저항을 하는데, 결국 경찰은 기관총으로 시원하게 난사를 퍼부어 여자도 죽어 버립니다.

마지막 장면은 시골 아가씨의 이야기 입니다. 시골 아가씨는 로버트 미첨이 보이지 않자 이제 원래부터 시골 아가씨를 좋아했던 소꿉친구 남자와 가까워질랑말랑하는 판입니다. 그렇지만, 로버트 미첨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골 아가씨는 주유소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로버트 미첨이 “위험한 여자”와 같이 가버린거냐고 묻습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유소 아르바이트 소년은 길게 설명하지 못해서 그러는지, 일부러 그렇게 말하려고 그러는지, 그냥 고개만 끄덕입니다.

시골 아가씨는 안타까워하지만 로버트 미첨을 잊기로 한 듯한 모습으로 돌아 서고, 영화는 알듯말듯한 주유소 아르바이트 소년의 표정과 뒷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주인공들)

당시에 유행하던 느와르 영화 연출 수법에 꽤 재미난 이야기를 얹어 놓은 영화라고 생각 합니다. 이야기에서 특히 재미난 부분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어디서부터가 야비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알듯말듯한 문제의 “위험한 여자”의 사연입니다. 제인 그리어가 맡은 이 여자가 사실 영화 이야기의 핵심으로, 이 여자의 숨겨진 본심, 내지는 본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본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말았다 하면서 이야기가 계속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며 다음 장면,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아까웠던 점은 이 여자의 인물이 굉장히 재미있지만, 대체로 이 영화는 주인공 로버트 미첨의 폼잡기 장면에 훨씬 더 비중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막판에 여자 주인공이 과격하게도 확 “배신자 자식!”이라면서 로버트 미첨을 죽여 버리는 부분은 느와르 영화의 역사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순간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이 영화의 제인 그리어는 초반에 로버트 미첨에게 “매우 아름다운 여자”로 나타나 홀리는 장면 이외에는 그렇게 강인하고 무서운 느낌은 아니라서 더 쳐지는 점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그런 만큼 옛날 영화 다운 폼잡기 대사라든가, 독백 나래이션과 함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펼쳐지는 느와르 영화만의 운치는 또 사는 점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그 밖에...

약간 초점을 바꾸어 꾸미면 또 재밌겠다 싶은 생각이 과연 드는 영화인지, 제프 브리지스 주연으로 리메이크가 된 적이 있습니다.

로버트 미첨, 제인 그리어 쌍은 훨씬 더 밝은 분위기로 되어 있는 느와르 영화 요소가 들어간 영화인 "빅 스틸"에서 얼마 후 다시 같이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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