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곱하기 일곱 (Woman Times Seven, 1967) 영화

1967년작 영화 "여자 곱하기 일곱(Woman Times Seven)"은 일곱 가지 짧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영화로, 당시 로맨틱 코미디들을 풍미했던 셜리 맥레인이 일곱 이야기 전부에서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일곱 이야기는 모두 당시의 파리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셜리 맥레인은 혼자서 다양한 신분, 성격의 인물들을 이야기에 따라 바꾸어 가며 나오는 영화입니다.


(포스터)

모든 이야기들은 코미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유쾌하기만 하다기 보다는 살짝 서글픈 감흥이 서려 있거나, 사회 풍자적인 이야기 속에서 '세상 사는 게 저렇지, 뭐'하는 가라 앉은 감상을 조금 깔아 놓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아련한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음악이 여러가지로 변주되며 배경에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곱 이야기의 내용을 모두 결말까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폴레트(Paullette)
폴레트는 남편이 죽어서 그 장례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관을 메고 행진하는 뒤를 따라 가고 있는데 슬퍼하는 그녀를 약간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주치의가 위로하고 있습니다. 주치의는 위로하는 가운데, 점차 그가 오래전부터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녀는 슬퍼하면서도 대화하는 가운데 슬며시 그의 제안에 찬성하는 듯, 남편의 관을 따라가다 말고 주치의와 둘이서 따로 빠집니다.

(장례식의 폴레트와 주치의)

2.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
마리아 테레사는 남편이 자신의 친구와 침대에 있는 것을 보고 배신감에 분노하여 집안의 집기를 던지며 화를 내다가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 자기도 아무나랑 바람을 피울거라고 합니다. 그러다 마리아 테레사는 길거리 여자들이 있는 구역에 가게 되고, 그 여자들과 한패가 되어 남자를 한 명 낚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테레사는 마지막 순간에 도망치고, 그녀를 찾아 나온 남편은 마리아 테레사의 손님이었던 남자에게 얻어 맞습니다. 얻어 맞아 쓰러진 남편을 보고 마리아 테레사는 다시 남편을 걱정해 달려 옵니다.

(손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마리아 테레사)

3. 린다(Linda)
린다라는 여러 언어에 능통한 미국 통역사가 있는데, 국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통역 좀 해달라는 핑계로 그녀에게 집적거립니다. 그녀는 무미건조하게 통역만 할 뿐 차갑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러다 결국 프랑스인 한명과 이탈리아인 한명이 그녀의 거처까지 따라 가는데, 그곳에서 린다는 인간의 순수와 슬픔에 대해 설교하며 옷을 모두 다 벗고 시집을 읽어 대는 괴상한 취향의 사람임이 밝혀 집니다. 두 남자는 그런 그녀에게 동조하는 척 하면서 음흉한 속내를 숨기느라 셋은 티격태격합니다.

(시집을 읽는 린다)

4. 이디스(Edith)
이디스는 차분한 가정 주부 입니다. 그런데 그의 남편은 유명 작가로 종잡을 수 업는 매력을 가진 여자인 시몽을 주인공으로한 소설을 쓰면서 그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절절히 표현합니다. 이디스는 그걸 보고 자기도 시몽처럼 제멋대로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연기하느라, 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특이한 옷을 입으려 합니다. 남편은 그 매력에 빠지기는 커녕 괴상하다고 생각하다고 정신과 의사를 불러 오고, 이디스는 그로부터 도망치려고 지붕 위로 달아 납니다. 지붕 위에서 이디스는 "난 미친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거라고요"라고 울며 말합니다.

(작가 남편 앞에서 갑자기 해괴한 행동을 하는 이디스)

5. 이브(Eve)
귀부인인 이브는 오페라에 갈 때 화려한 옷을 입어 사교계에 자신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와 똑같은 옷을 라이벌도 입을 거라는 것을 알고 분노하여 무슨 수를 써서든 그 옷을 라이벌이 못 입게 하라고 부하직원들에게 호통을 칩니다. 부하직원 하나는 고심 끝에 폭탄테러를 하는 것처럼 겁을 줘서 라이벌을 오페라에 늦게 오도록 합니다. 마침내 이브는 자신만만하게 옷을 자랑하려고 오페라 극장에 가는데, 공교롭게도 제3의 인물이 똑같은 옷을 입고 먼저 온 것을 보고 실망하고 부끄러워하며 오페라가 시작할 때 도망쳐 나와 버립니다. 이브는 거기서 뒤늦게 똑같은 옷을 입고 허겁지겁 달려 오는 라이벌을 보고, 모든 것이 웃기는 짓거리라는 듯 깔깔 웃습니다.

(문제의 옷을 차려 입은 이브)

6. 마리(Marie)
정체 불명의 남녀가 낡은 호텔에 들어 옵니다. 두 사람은 부도덕한 세상에 대해 분개하는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녹음하기도 합니다. 알고보니, 두 사람은 이 호텔에서 자결을 하러 온 사람들로 각자 배우자가 따로 있는데 바람난 짝입니다. 뭘 녹음할 것이냐, 어떤 방법을 쓸것이냐를 두고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여자가 마지막 옷차림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겠다며 치장을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남자는 마음이 바뀐듯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살금살금 도망치려는 중에 알고 보니,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야 말로 유리창을 깨고 먼저 도망쳐 버립니다.

(낡은 호텔에 들어온 정체불명의 마리)

7. 잔(Jeanne)
잔은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여자인데, 한 젊은 남자가 자기를 계속 따라오는 것을 보고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갖가지 생각을 하다가 낭만적인 기분에 흠뻑 빠집니다. 잔은 자신의 집앞까지 남자가 따라오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남자는 의처증 심한 남편이 부인이 바람이 든 기분인것처럼 보여서 미행하라고 붙여 놓은 사립탐정이었고, 부인이 아무 남자와도 바람이 나지 않은 것 같다는 그의 보고를 듣고 남편은 기뻐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잔은 기뻐하는 남편을 옆에서도 눈 내리는 파리의 거리에서 그 남자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저 계속 낭만에 빠져 있을 뿐입니다.

(계속 자신을 따라 오는 남자에 궁금함을 느끼는 잔)

첫 네 이야기는 간단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 셜리 맥레인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면, 이브, 마리, 잔, 세 이야기는 콩트 형식으로 되어 있고 이야기의 전개와 반전이 뚜렷한 편인 이야기였습니다. 제한된 작은 무대에서 꽉 짜인 상황을 잘 활용해 이야기를 꾸민 것으로는 "마리"가 좋은 편이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펼쳐 나간다는 면에서는 "잔"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배경은 전부 파리 일대에서 펼쳐집니다. 한 명의 배우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삶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도시 이곳저곳에서 따지고보면 다들 같은 한 명의 사람인 우리 인생에서 각자 주어진 운명에 따라 어떻게 다른 모습, 다른 삶으로 살아 가는 지, 한 번에 비춰 주는 느낌이 납니다. 이런 느낌이 영화 전체를 휘감고 있는 음악에다가, 약간 회색빛으로 메말라 있지만 여전히 화려한 도시의 향취도 갖고 있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 가는 시절의 파리 풍경이 잘 잡혀 있는 것과 엮이면, 가볍게 꾸며진 이 영화가 한결 더 감상적으로 느껴질 듯 합니다.

크게 대단할 것 없는 소박한 코미디 일곱 개를 모아 놓은 영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런 감상이 좀 더 크게 느껴진다면 그 이상으로 좋게 볼 여지도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자전거 도둑", "보카치오 70"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을 맡았고, 배경은 프랑스이고, 그 밖에 미국 영화사 인력들도 참여를 한 영화로, 이탈리아-프랑스-미국 합작 영화인 셈입니다.

"폴레트" 편에서 주치의 역할은 핑크팬더 시리즈로 유명한 피터 셀러즈가 맡았고, "이디스" 편에서 작가인 남편 역할은 타잔 시리즈로 유명한 렉스 바커가 맡았습니다. "잔" 편에서 주인공을 따라 다니는 남자 역할은 영국의 명배우이자, 요즘에는 배트맨 시리즈의 집사 역할로도 유명한 마이클 케인이 맡았습니다. 피터 셀러즈의 역할은 너무 작은 편이긴 합니다만, 셋 다 연기는 매우 훌륭합니다. 특히 잔 편에서 마이클 케인은 그 "수수께끼의 따라다니는 남자"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단 한마디의 대사도 말하지 않고 연기하고 있습니다.

포스터에 "女,女,女"라고 적혀 있는 한국 영화 "여"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이 한국 영화는 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여자 주인공을 똑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 신성일이 세 이야기에 공통으로 나와서 세 명의 여자 배우와 번갈아가며 짝을 맞춰 나오는 형식입니다. 이 한국영화는 1968년작인데, 아마 이 영화 "여자 곱하기 일곱"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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