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방울 떨어지는 집 (The House Dripped Blood, 1970) 영화

“핏방울 떨어지는 집(The House Dripped Blood)”은 1970년작으로 4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엮여 있는 앤솔로지 형태의 영화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짧은 이야기들을 연결하거나 감싸는 이야기로 앞뒤를 장식하고 있기 마련일 겁니다. 이 영화는 한 영화 배우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한 형사가 어느 마을에 찾아 오는데, 그 영화 배우가 사는 집에서는 그 사건 말고도 과거에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 났다고 해서,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의 기록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포스터)

흔히 무서운 이야기들 중에는 짤막한 형태로 되어 있어서 신비로운 것들이 많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짧은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면 너무 짧아서 영화 상영 시간을 다 채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 짧은 이야기를 여러 개 모아서 보여주는 형태의 영화들이 특히 공포 영화 중에 많다고 생각 합니다. 지금까지도 공포 영화 중에는 이런 모양으로 된 영화들이 종종 나오니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영국의 아미커스(Amicus) 영화사는 "테러 박사의 공포의 패(Dr. Terror's House of Horror)"를 필두로 60, 70년대에 이런 여러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형태의 앤솔로지로 된 영화들을 유난히 많이 만들었던 곳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결말까지 모두 다 설명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책 속의 등장인물을 발견한 남자의 이야기
주인공은 새로 쓰는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머물 집을 찾아 문제의 집에 이사를 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 죽이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미치광이 살인마의 모습이 자기 앞에도 자꾸만 나타나는 것 같아 이상하게 생각 합니다. 주인공은 부인의 권유에 따라 정신과 상담을 받는데, 정신과 상담은 배우가 배역에 빠져 들어서 자신이 실제 인물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나, 작가가 작품에 빠져 들어서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 주인공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 도중에 살인마가 나타나 의사를 살해하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알고 보니, 이것은 부인이 어떤 배우와 바람이 났는데, 그 배우를 시켜서 소설 속 살인마 역할로 변장하고 흉내 내면서 가끔 나타나게 한 것이었습니다. 살인은 그 배우가 한 짓이지만, 주인공은 자꾸 “소설 속 등장인물이 나타나 살인을 했다”고만 경찰에게 말할테니, 주인공이 미쳐서 살인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함정을 판 것입니다.

그런데 배우는 의사를 죽이고 주인공까지 죽였다고 말합니다. 부인이 주인공까지 죽이면 주인공을 타살한 범인을 추적할 것이고, 그러면 배우의 꼬리가 밟힐지 모른다고 화를 냅니다. 그런데, 배우는 자신이 배우라니 무슨 소리냐, 자신은 살인마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배역에 완전히 빠진 채 부인까지 죽여 버립니다.

(이 이야기 속의 무시무시한 살인마는 이런 모습입니다.)


2. 미녀의 밀납인형을 발견한 남자의 이야기
주인공은 과거를 잊고 혼자서 평화롭게 지내야겠다는 듯, 한적한 곳에 있는 문제의 집으로 이사 옵니다. 이 주인공 역할은 60,70년대 영국 공포 영화의 간판 배우인 피터 쿠싱이 맡았습니다. 주인공은 소일하며 조용히 지내다가 문득 시내에 있는 살인자들을 전시하는 밀납인형 박물관에서 매우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한 살인자 밀납인형을 보고, 과거의 기억에 남아 있던 여자를 생각 합니다.

주인공은 너무 그 모습이 기억 속의 모습과 똑같고 강렬해서 해괴하다고 생각하고 그 밀납인형 박물관을 불길하게 생각 합니다만, 주인공의 친구가 오래간만에 놀러 왔다가 그 밀납인형 박물관에 갑니다. 알고 보니, 그 모습은 주인공과 친구 모두가 예전에 사랑했던 한 여자의 모습과 같았던 것입니다.

주인공은 얼마 후 친구가 떠나려다가 다시 돌아 왔다는데 소식이 없자, 다시 밀납인형 박물관에 찾아 가 봅니다. 가 보니, 밀납인형 박물관 주인이 미친 것 같은 얼굴로, 자기의 부인이 매우 아름다웠는데, 자꾸 다른 남자들이 부인에게 접근해서 부인을 죽여서 그 모습만 밀납인형으로 남겨 보존한 것이 바로 저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죽어서도 자기 부인에게 남자들이 자꾸 접근한다고 합니다. 문제의 밀납인형이 들고 있는 쟁반에는 주인공 친구의 목이 올려져 있습니다. 박물관 주인은 주인공도 부인을 넘보러 왔다고 생각하고 주인공을 도끼로 공격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박물관의 밀납인형이 들고 있는 쟁반에는 주인공의 목이 올려져 있습니다.

(밀납 인형 박물관에 찾아 온 피터 쿠싱)


3. 특이한 아이를 발견한 여자의 이야기
주인공은 가정교사로, 외딴 곳에 숨어 사는 듯이 문제의 집으로 이사 온, 어느 아버지와 딸에게 채용 됩니다. 아버지 역할은 60,70년대 영국 공포 영화의 최고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리가 맡았습니다. 주인공은 아직 어린 딸을 가르치는데, 주인공의 아버지는 딸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학교도 보내지 않고, 장난감 인형도 모두 빼앗아 불사르는 듯 가혹하기만 합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따지는 데, 아버지는 사연이 있다고 말하면서 나중에 말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양초가 없어진 것을 보고 매우 당황하고 주인공은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얼마 후 아버지는 갑자기 큰 병에 걸린 듯 매우 고통스러워 합니다.

아버지는 비밀을 말해 주는데, 죽은 애엄마는 마녀였고, 딸도 마녀의 피를 이어 받은 사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딸은 양초를 녹여 인형처럼 만들고 거기에 면도기에서 아버지 수염을 빼내서 주술을 걸어 인형을 찔러서 아버지를 저주하며 괴롭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공은 딸을 꾸짖고 달래며 주술 인형을 달라고 하지만, 딸은 아버지가 인형을 안 사줘서 내가 만든 것이라고 하더니 양초로 만든 그 인형을 벽난로 속에 던져 버립니다. 인형이 녹아 내릴 때 아버지는 죽어 가는 듯 길게 비명을 지릅니다.

(인형은 안된다는 크리스토퍼 리)


4. 신비로운 망토를 발견한 남자의 이야기
주인공은 나이든 명배우로 주로 공포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이 주인공 역할은 정말로 오랫동안 활약해 온 명배우인 존 퍼튀가 맡았습니다. 주인공은 고집불통으로 새로 시작하는 흡혈귀 영화의 제작진에게 사사건건 툴툴거리는데, 의상이 마음에 안든다면서 자기 스스로 의상을 구하겠다고 한 골동품 상에 가서 “진짜 흡혈귀 망토 같은 망토”를 구해 옵니다.

그런데 그 망토를 걸치자 주인공은 진짜 흡혈귀로 변신을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겁을 먹습니다. 주인공의 애인이자 상대역인 여배우는 그런 것이 어디 있냐고 하면서 자기가 보는 앞에서 다시 망토를 입어 보라고 합니다. 이 여배우 역할은 60년대 해머 영화사 공포 영화 두 편으로 영원히 이름을 아로 새긴 공포 영화계의 명배우, 잉그리드 피트가 맡았습니다. 여배우 앞에서 주인공이 다시 망토를 입어 보자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여배우는 장난스럽게 망토를 소품실에 원래 있던 의상과 바꿔치기 했다면서 주인공이 구한 멋진 망토는 자기가 입겠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안된다고 말리지만, 여배우가 망토를 입자 과연 흡혈귀로 변신하고, 당신이 흡혈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정말 우리 중에 하나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을 하면서 여배우는 주인공을 공격합니다.

(과장된 공포 연기를 하고 있는 존 퍼튀와 잉그리드 피트)


마지막 부분:
과거의 사연에 대한 소문을 다 전해 들은 형사는 그런 미신 같은 이야기는 안 믿는다면서 문제의 집에 직접 가서 실종된 배우에 대해 조사를 해 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안에는 아무도 없고 지하실에 관이 숨겨져 있는데, 관에서 흡혈귀로 변한 배우가 나타나 형사를 공격합니다. 형사는 맞서 싸우다가 겨우 나무 조각으로 심장을 찔러 격퇴하지만, 다른 관에서 흡혈귀로 변한 여배우가 다시 나타나는 또 공격하는 바람에 죽게 됩니다.

맨 마지막 장면은 다시 빈집이 된 문제의 집 앞에, 이야기 틈틈히 등장 해 집소개를 하던 부동산 업자가 나와서, 어울리는 사람이 산다면 괜찮은 집이라고 하고는, 관객들을 향해 한 번 이 집에 와 보시겠냐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흡혈귀로 변신한 잉그리드 피트)


비슷한 부류의 60,70년대 앤솔로지 영화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 영화는 대강 평균정도에 속하는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약간 추리극에 가깝게 되어 있는데, 추리물에서 “괴물 같은 것이 나오는데 알고보니 진짜 괴물은 아니고 함정을 파기 위해 변장하고 흉내낸 것이었다”는 반전은 끝도 없이 반복해서 나오던 것이니만큼 줄거리의 핵심이 아주 강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복선이 잘 배치되어 있어서 결말을 깔끔하게 잘 맺고 있었던 점은 괜찮았다고 생각 합니다. “괴물은 없었고 범죄자들이 속임수로 꾸민 음모였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혹시 괴물이 진짜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여운을 남긴다...”로 끝났다면 정말로 수백번도 여기저기에서 보던 진부한 이야기일 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작가가 괴물로 보고, 악당인 배우가 괴물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괴물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정말로 괴물이 있었던 셈이 되는 것이 결론 입니다. 흡혈귀나 처녀귀신과는 다르게,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미치광이가 되고, 살인을 하고 다니면 정말로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는 것이니까, 이 영화에서는 어떤 면에서 보면 변장하고 괴물인척 했던 것이면서 동시에 그 괴물이 진짜이기도 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이야기에서 단점은 미치광이 살인마로 변장한 모습이 별로 눈에 뜨이거나, 무섭다거나,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범죄자들이 사기 칠려고 급히하는 분장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장이 정교하지 않고 마땅히 핵심이어야 할 이 영화의 “괴물”에 해당하는 인물이 눈길을 못 끌고 있어서 나올 때 마다 영 놀라거나, 겁내거나 신기해 하는 감정이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피터 쿠싱과 크리스토퍼 리가 주요 배역을 맡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는 이야기가 너무 단순한 면이 단점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밀납인형 이야기는 피터 쿠싱이 과거에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렇지만 조용히 살려고 한다는 점, 하필 밀납 인형이 그 여자의 모습이라는 점, 피터 쿠싱의 과거 연적이 나타났다는 점, 등등의 선명한 전환점들이 차례로 좋은 리듬으로 잘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구구한 표현 없이 눈에 잘 들어오게 선명히 연출 되어 있었다는 것도 보기 좋은 점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리의 이야기는 그런 특징이 약해서 그보다 더 모자란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만, 도대체 크리스토퍼 리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뭘까를 궁금하게 하는 초반부는 재밌었습니다. 별것 아니라도 진지하게 이런 부분을 궁금하게 만들도록 연기를 잘 하는 크리스토퍼 리가 볼만했습니다.


(서로 농담 따먹기 하면서 공포 영화 바닥에 대한 이야기도 나눕니다.)

마지막 흡혈귀 망토 이야기는 역시 이야기 구조는 단순 합니다만, "과연 진짜로 흡혈귀로 변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이용해서 긴장감을 자아 내는 점은 흥미를 자아내는 면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등장 인물들이 전형적인 공포물 배우의 틀에 박힌 연기를 일부러 하는 척 하면서 일종의 스스로를 패러디하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이런 부분도 이 시절 공포 영화를 즐겨 보아 왔다면 상당히 즐거운 구경 거리가 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내용의 결말도 정말 무섭다거나 놀랍다거나 한다기 보다는 살짝 놀라운 느낌을 깔고 공포물 패러디 분위기로 한 번 놀고 지나가자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야기 전체를 꾸민 형식도 괜찮았다고 생각 합니다. "귀신 들린 집"이나 "귀신 들린 연못/계곡/바닷가/산골짜기/고갯길/골목/장소"가 있어서 거기에 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도 있었다더라, 저런 일도 있었다더라 하는 것은 전통적인 무서운 이야기 형식인데,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모아 놓은 방식도 그것을 그대로 잘 따라 가는 것이고, 이야기 자체에 회의적인 형사가 조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도 전체적인 응집성을 높이고 다음 이야기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데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밖에...

흡혈귀 망토를 다룬 마지막 이야기에서, 고전 공포물 배우로 나오는 주인공은 요즘 공포 영화는 옛날 같은 맛이 없다면서, 벨라 루고시 드라큘라 영화가 좋았고, 요즘 그 유행하는 새 배우가 나온 드라큘라 영화는 아니다라고 투덜거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앞 이야기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크리스토퍼 리를 들먹이는 농담인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크리스토퍼 리가 책을 읽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크리스토퍼 리는 자기가 직접 평소 좋아하던 책을 소품을 가져 왔다고 합니다. 마침 크리스토퍼 리가 읽은 책은 다름 아닌 "반지의 제왕"입니다. 거진 30년 후에 크리스토퍼 리 본인이 반지의 제왕 영화판에 등장했으니 재미난 우연이 있는 셈입니다.

이 영화의 존 퍼튀는 다름 아닌 영국 TV물 "닥터 후"가 처음 나왔을 때 닥터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한편 피터 쿠싱은 영화판 "닥터 후"에서 닥터 역할을 맡았습니다.

"싸이코"의 작가로 아마 가장 유명할 로버트 블록이 각본을 맡은 영화입니다. 아미커스 영화사의 60,70년대 앤솔로지 형태 영화들 중에는 로버트 블록이 각본을 맡은 것들이 꽤 있는 편입니다.

60.70년대 영국 아미커스 영화사에서 만든 이런 앤솔로지 형태의 영화들은 7편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포함해서 차례대로 소개 해보면, 테러 박사의 공포의 패 (Dr. Terror’s House of Horror, 1965), “고문 정원(Torture Garden, 1967)”, “피를 흘린 집(The House That Dripped Blood, 1970)”, “정신병원 (Asylum, 1972)”, “납골당의 미스테리(Tales from the Crypt, 1972)”, “공포의 지하실(The Vault of Horror, 1973)”, “무덤 아래에서부터 (From Beyond the Grave, 1974)”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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