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서대문 되살아나 뛰어간 시체 사건 기타

우연히 옛날 신문기사에서 찾아내서 소개해 보는 사건입니다. 사실 정말 시체가 되살아난 사건은 아닙니다만, (어떻게 그렇겠습니까) 당시 동아일보 기사(1949년 12월 14일자)에서 그렇게 헤드라인을 썼기 때문에 이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1년이 겨우 좀 더 지난 1949년. 이맘 때인 12월 12일의 추운 날 새벽이었습니다. 아직 컴컴한 하늘, 칼바람이 부는 거리. 마침 갑작스러운 남북 분단으로 북쪽에서 전기를 제대로 공급해 주지 않아서, 발전 설비가 부족한 서울은 전기가 모자라서 전등불 조차 잘 켜지지 않는 시절이라, 유난히 더 어두운 새벽이었습니다. 그런 어두운 새벽 길의 서대문 경찰서 대현동 지서로 한 사나이가 찾아 왔습니다.

그 사나이는 꽤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자신을 연희동 주민이라고 설명하면서, 놀랍게도,

"시체가 도망쳤으니 찾아 주십시오."

라고 경찰에 말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경찰은 찬찬히 사정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내용인즉, 이러했습니다.

이 사람은 홀아비인 김모씨로 유일한 가족은 19세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19세의 딸이 3일전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12월 10일 그녀는, "내가 죽거든 남자 옷을 입혀 주세요."라는 알 수 없는 유언을 남기고 독약을 먹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이 사나이는 장례를 치르고 묘를 쓸 돈도 없이 가난한 사람이어서, 결국 그 딸의 시체를 그냥 화장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을 하기를 앞두고 그 앞에서 문상객도 많지 않았을 외로운 초상을 치르는데, 깊어 가는 밤에 잠깐 졸다 보니 관 속에 있다가 곧 화장되기로 한 딸의 시체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했고,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 7시, 어렴풋이 해가 퍼렇게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 수색역 근처 철길 옆을 하염 없이 걷고 있는 여자를 발견합니다. 아마도 경찰도 이상한 모습에 약간 겁을 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찰은 여자에게 다가 갔고, 다름이 아닌 문제의 그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그녀에게 사건의 사연에 대해 여러 가지로 물었습니다만, 그녀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고, 경찰은 더 이상 아무 사실도 알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해를 당한 사람이 있었던 사건은 아니어서, 경찰은 그것으로 그냥 사건을 끝내 버렸고, 그냥 정신병자가 길거리를 돌아 다닌 일 정도로 처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는 접수 몇 시간만에 종결된 사건입니다만, 당시 사건을 취재한 기자는 너무나 괴이함을 잊지 못해 기사로 쓴 듯 합니다. - 도대체 그렇다면 그녀는 독을 마실 때 정말로 죽은 것으로 착각될만큼 많이 마셨던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기절해 있다가 3일만에 깨어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잠깐 쓰러지거나 별 영향이 없었는데 3일 동안 가만히 죽은 척을 했던 것인가. 왜 그래야 했을까. 애초에 왜 죽으려고 했던 것인가.

이제는 이 모든 사건이 끝난지도 65년이나 지났으니, 그 추운 새벽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


* 전에 1984년 김포공항 돈가방 사건 http://gerecter.egloos.com/3734241 을 이야기 할 때에도 꺼냈던 이야기인데, 이런 수수께끼의 사건을 두고 도대체 그 진상이 무엇인지를 여러 작가들에게 과제로 던지고 작가들마다 서로 다르게 상상해서 똑같은 내용으로 시작하지만 서로 다른 내용으로 펼쳐가는 소설들 시리즈를 만들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다들 그 결말을 항상 똑같은 내용으로 하게 하고, 발단과 전개에서 진상을 펼치는 방식으로 해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나아가서,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에서 서로 다른 작가/연출가가 팀을 이루어서 똑같은 배우들을 기용하되, 숨겨진 진상은 팀별로 서로 다른 내용으로 각자 이야기를 꾸며서, 매 에피소드마다 같은 결말이지만 시작과 중간은 서로 다른 내용인 이야기로 만들어도 재밌을 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아예 이 기사의 내용을 보여 주는 에피소드별로 같은 내용인 시작 장면(구성하기에 따라서는 결말 장면)은 모든 에피소드들이 항상 똑같은 영상을 계속 써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진상은 뭐였겠습니까?

덧글

  • 동사서독 2014/12/16 22:45 # 답글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소녀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네요. 또래 소녀들간의 동성애 관계에서 남자 역할을 맡았던 건장한 소녀. 그 건장함이 라스푸틴급 생명력을 가져왔다.... 뭐 이렇게 말이죠.
  • 게렉터 2014/12/21 17:45 #

    말씀하신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남장여자로 장사를 지내는 것이 조선시대나 당시 일본의 어떤 풍습과도 관련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도 해 봅니다.
  • 행인1 2014/12/16 23:44 # 답글

    워낙 흉흉한 시절이라 뭔가가 있지 않을까하네요.
  • 게렉터 2014/12/21 18:14 #

    당시 기사들을 보면 별별일들이 다 있습니다. 어느 정도 보이면 블로그에서 따로 한 번 소개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 나른한 치타 2014/12/17 02:00 # 답글

    완전 진상이네요.



    아... 죄송합니다.
  • 게렉터 2014/12/21 18:14 #

    하하. 종종 들러주십시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