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추종 (망명원앙, 亡命鴛鴦, On the Run, 1988) 영화

“극도추종(망명원앙, On the Run)”은 1988년에 나온 영화로, 당시 흔히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우던 영화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멋을 부리는 암흑가의 악당이 나오고 열심히 뛰어 다니는 의협심 강한 경찰도 나오고, 악당이 그 바닥에서 발 빼려 하는데 지긋지긋하게 헤어 나오기 어려운 이야기도 나오고, 한번 싸움을 하면 권총에서도 탄환이 빗발치며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영화의 특징은 경찰 역할을 좀 더 전통적인 무술 액션에서 훨씬 더 이름을 떨친 원표가 맡았고, 멋지게 묘사 되어 있는 우수에 차 있는 악당 역할을 여자 주인공이 맡았다는 것입니다.


(포스터)

대강 내용을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원표는 열심히 악당을 잡으러 다니는 고지식한 형사입니다. 그 와중에 악당 조직 중에서 천재적인 총솜씨를 가진 살인 청부 업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표는 조금씩 조금씩 이 살인 청부 업자에게 접근을 해 가는데, 그 와중에 원표는 악당들이 사실은 경찰들과 부패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알게 됩니다. 결국 원표는 경찰 상부에서도 미움을 받아 악당과 경찰 양쪽에서 쫓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원표의 연기가 단순하지만 와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범죄자를 잡는 것만 앞세우는 충직하고 순수한면이 강하면서 대신에 의지만은 가득한 사람인데 결코 그걸 그대로 놔 두는 세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간단한 생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야 말로 단순한 연기로 보여 주고 있어서, 관객에게 아주 보통 사람처럼 와닿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원표가 연기를 하니까 아주 잘 뛰어 다니고 싸울 때는 발차기가 휙휙 하늘을 찌릅니다만, 그러면서도 삶의 태도나 사회에서의 위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월급쟁이 같은 보통 사람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원표가 수사도 잘하고 온힘을 다해서 빠져 나가 보려고 하지만, 악당들의 공격에 점차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고, 그만큼 그런 쫓고 쫓기는 장면들은 아슬아슬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반대로 악당들은 그야말로 지저분하고 썩어 빠진 놈들로 현실감 있게 묘사 되어 있어서, 악당이 원표의 가족을 공격하려고 집으로 쳐들어 갈 때, 등등의 장면에서는 자뭇 무섭고 살벌해 보이는 느낌이 똑똑히 느껴졌습니다. 방향은 70년대말의 “데스 위시” 시리즈 같이 미치광이에 가까운 악당들의 모습을 비정하게 드러내는 수법이었습니다만, 홍콩 느와르 영화 답게 더 짧고 간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밤거리 불빛에 스치는 불길한 분위기를 잘 이용해서 더러운 놈들이라는 표현은 꽤 잘 되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원표가 경찰과 범죄집단, 양쪽에서 도망치고 다치기도 하다가, 결국 악을 쓰고 조금씩 반격의 기회를 찾으려고 해서 막판에는 부패한 경찰 두령과도 결전을 벌인다는 방향을 따라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린이, 경찰, 살인 청부 업자, 악당)

특징적인 점은 이 영화는 당시 영화평에서 흔히 이야기 되던 “이 영화는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을 반영했다”는 내용이 전면에 나타나 있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누가 시작해서 유행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중에는 괜히 “홍콩 반환을 앞둔 불안감”이라고 하면 시대적인 맥락이나 국제 정세까지 영화평을 하면서 포착한 느낌이 나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80년대말 90년대초 홍콩 영화에 대해서 평론할 때는 하여간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이 나타나 있다”는 평이 아주 남용 되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초장에는 좀 아슬아슬하거나 슬픈 내용이 나오면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아주 아무 홍콩영화에나 그 말을 갖다 붙이게 되어, 웃긴 영화도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이 불안감을 잊기 위해서 보는 영화”라고 하지를 않나, 사극을 꾸며도 “홍콩 방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는 등등 지겹도록 보던 문구라는 생각도 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진짜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이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범죄자들이나 부패한 경찰들이 움직이는 주요 동기가 홍콩이 반환되기 전에 다른 나라로 이민 갈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로 나오고, 대화 중에도 “홍콩 반환 되기 전에 어서 이민가야지”라는 말들이 자주 나옵니다. 가끔씩은 홍콩 반환 전에 이민 가는 것이 사회 상류층의 얍삽한 도망으로 언급되는 느낌도 들고, 반대로 그런 분위기 속에서 홍콩 반환 후에도 남겨져야 하는 일반 시민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괜히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세기말 분위기로도 표현되기도 한 느낌이었습니다. 1988년 시점의 이 영화에서 언급되는 "1997년 홍콩 반환"은 조금 과장하자면 앞으로 9년 후에 대한민국이 북의 김정은 정권에 병합될 예정이라는 식의 배경으로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서로 비겁하게 속고 속이는 가운데, 선해야 하는 사람도 선한 사람이 아니고, 악해야 하는 사람도 악한 사람이 아닌게 되는 영화 클라이막스의 눈물겨운 상황과 이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이라는 소재가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야 말로 느와르 영화 다운, 희뿌연 네온 사인 조명이 밤이 깊도록 열기가 가시지 않는 80년대 호경기 홍콩 밤거리에 쏟아지는 그 특유의 밤풍경이 펼쳐질 때, 이 모든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처럼 그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묘한 허망감, 환상적인 느낌을 더하는 효과는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만큼, 홍콩 느와르 영화 다운 홍콩 밤풍경과 그 밤풍경의 사람 가득한 거리 불빛 사이를 뛰어 다니며 경찰과 악당이 서로 쫓고 쫓기는 화면들이 여느 홍콩 느와르 영화들 못지 않게 꽤 잘 잡혀 있는 편인 영화였습니다.


(80년대 홍콩 밤거리를 헤메며 악당을 쫓는 원표)

끝으로 이 영화의 멋 부리는 살인 청부 업자 역할인 하문석의 모습도 결코 잊혀지기 어려운 그럴싸한 모습입니다. 무표정하고 마른 여자의 모습으로 등장해서는 귀신 같은 솜씨로 살인을 해내고 바로 사라지는 그 모습은, 마치 홍콩 밤거리를 스쳐 가는 유령처럼 신비감을 풍기도록 포장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단순한 편인데다가, 하문석의 연기가 좋긴 해도 주윤발처럼 기막히지는 않아서, 이 시기의 주윤발, 이수현 같은 배우들이 보여 주던 “영화 속에나 나올 법 하게 극적이지만 또 진짜 같이 생생하다”의 경지에서는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훤칠한 외모가 눈에 잘 뜨이기도 해서, 몇몇 멋부리는 장면은 기억에 선명히 남았습니다.


그 밖에...

하문석은 다른 이 시기 홍콩 느와르 영화인 “영웅투혼”(강호용호투)에서도 여자 주인공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서는 그냥 총질하는 남자들 사이에 있는 가녀린 여인 역할 입니다.

진상림은 우리나라에서는 복성고조, 칠복성 등의 영화에서 멀쩡하게 생겼지만 헛 코미디를 주워 담는 역할로 가장 친숙할만한데 여기서는 비열한 악당으로 나옵니다.

액션과 음악이 어울리는 장면 하나가 아주 근사하게 들어 가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액션과 음악이 어울리는 장면은 “허드슨 호크”에서 노래 리듬에 맞춰서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재밌긴 하지만 어째 웃음거리가 되는 것들도 있고, “킬 빌”의 칼싸움 장면처럼 동작의 리듬에 맞춰 배경 음악이 깔리는 것도 있겠습니다. 이 영화에는 아주 짤막하게 노래 한 구절을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예들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중요한 장면 하나를 다 밝히게 됩니다만, 이야기해보자면 이렇습니다. 홍콩 느와르 영화의 관습대로 이 영화에서는 쓸쓸하게 우수에 찬 살인청부업자인 하문석과 형사인 원표가 비정한 세상에서 도리어 점차 가까워집니다. 그러는 중에 살인청부업자 하문석은 원표의 딸과도 친해져서 노래를 부르며 머리를 까닥거리는 율동을 합니다. 얼마 후, 악당의 공격으로 원표의 딸이 악당에게 붙잡혀 악당은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데, 그때 하문석은 바로 그 노래를 귀신의 곡성처럼 스산하게 부릅니다. 그러자 딸은 노래에 맞춰서 머리를 까닥거립니다. 그리고 머리를 까닥거려서 딸이 고개를 살짝 돌린 순간, 그 틈으로 하문석은 악당의 머리 정중앙을 저격하여 악당을 쓰러뜨리고 딸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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