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Die Fledermaus) - 2014년 서울 공연 오페라

오페레타 “박쥐”의 내용은 요즘도 대학로 코미디 연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극(farce)으로, 등장인물들이 바람 피우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까 거짓말을 하고 정체를 오해하기도 해서 웃긴 소동이 벌어진다는 내용 입니다. 특히 “박쥐”에는 박쥐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남자 주인공을 망신 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오해와 협잡을 부추기면서, 중간에 휘황찬란한 무도회에 가서 노는 내용도 들어 가 있는 이야기 입니다.


(흥청망청 캬바레)

그러다보니 웃고 즐기는 장면을 나타내는 대목이 많은 편이고, 무도회를 캬바레나 요란한 클럽으로 연출하면 이 장면에서는 즐거운 쇼를 즐기면서 하룻밤 신나게 노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이야기 중에 중요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음악에서도 신나고 즐겁고 빠른 곡이 많이 사용 되어 있고, 쿵작거리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화려하게 깔리면서 다같이 합창하며 떠드는 대목도 많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노는 장면에서 “캬바레에서 주목 받는 사람의 솜씨를 보여 주는 쇼가 펼쳐진다”는 형태로 주요 인물이 혼자 개인기를 갖가지로 자랑하는 장면이 선명하게 자리 잡은 이야기라고도 생각 해 봅니다.

그렇습니다만, 즐겁게 웃고 지나가는 간단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정말 엉망진창으로 일이 꼬이는 제대로된 소극에는 이야기가 확연히 못미친다는 단점이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비슷하게 소극을 오페라로 꾸민 “피가로의 결혼”이나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비하면 일단 각본이 단순하기도 단순 한데다가, 서로 오해하고 속이는 내용의 특성을 재미난 노래로 잘 꾸민 “피가로의 결혼”이나 이야기 사이의 공간에 흥겨운 노래자랑을 넉넉히 펼쳐 놓는 느낌의 로시니 오페라들에 비하면, “박쥐”는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따로 놀고 그 틈틈히 노래는 노래대로 따로 즐기는 느낌이라고 할만했습니다. 뭐, 그런대로 좀 물러서서, 이야기가 한번 웃고 넘어 가자는 분위기를 깔아 놓자는 정도로 보고, 노래는 그런 분위기 바탕에서 그냥 흥겨운 왈츠를 뻐근하게 들어 보자는 식으로 받아 들인다면 그 역할은 해준다고 생각 합니다.

2014년 예술의 전당 공연 “박쥐”는 2012년 공연판과 거의 같게 구성된 연출이었습니다. 오페라 연출에서는, 19세기 말의 호사스러운 귀족 분위기에 맞춘 이야기를 표현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종종 20세기초, 1920년대 쯤의 소란스러운 무렵으로 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방향을 따라 갔습니다. 특히 이번 연출에는 “박쥐” 이야기가 흥청망청 노는 귀족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그런데 약간은 비판적인 느낌, 어두운 느낌도 살짝 드리우는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좀 집어 넣기도 했습니다.

박쥐 역할의 복장부터 괴기스러운 느낌도 들어 간데다가, 간간히 고스족 느낌의 가죽 의상이나 분이 뽀얀 화장을 쓰기도 했습니다. 도착증적인 복장을 보여 주는 러시아의 귀족 모습이나, 유혹적인 몸짓의 댄서들에게 괴상한 쥐, 박쥐 모양의 가면을 모두 씌워 놓은 것도 같은 흐름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이게 이번 공연에서 깔끔하게 잘 먹혀 들어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이렇게 약간 어두운 느낌도 걸고 넘어 가는 무대와 의상을 썼지만, 이야기를 끌어 나가고 웃겨 보려는 방향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는 마냥 밝고 가벼운 방향이었습니다. 간간히 어지럽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겹치면서 우연히 “록키 호러 픽쳐쇼” 장면 같은 괴상한 재미가 살 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전체 코미디 방향이 별로 그런 취향에 집중하는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코미디 취향이 뭔가 싶은데, 이게 이상하게 보이는 점이 있었습니다.

일단 이번 연출은 2012년 공연을 따라 가는 것이라 중간에 노래 없이 말로만 하는 대사 부분이 독일어로 되어 있는 부분도 있고, 한국어로 되어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짐작하기로 2012년에는 외국인 가수들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 가수가 대사하는 부분이나, 외국인 가수와 함께 대사하는 부분에서는 독일어로 대사를 하고, 한국인 가수끼리만 대사하는 부분은 더 알아 듣기 쉽고 웃기기 쉽게 한국어로 대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노래 가사와 어울리는 것이나 노래로 넘어 가는 연결을 고려해서 독일어를 쓴 부분도 있었겠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외국인 가수가 참여하기 때문에 독일어 대사를 썼던 것이 더 큰 이유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런데 가수들이 거의 전부 한국인인 이번 2014년 공연에서도 이게 그대로 넘어 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은 황당하게도 별 뚜렷한 이유 없이 어떨 때는 독일어로 대사를 하고 어떨 때는 한국어로 대사를 하며 오락가락하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안그래도 연기력이 충분한 가수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렇게 별 기준 없이 두 언어를 오가면서 대사를 하니, 연기력은 괜히 더 떨어져 보이고, 이해하기는 더 어렵게 변했다고 생각 합니다.

이번 공연 같았으면, 아무래도 100% 대사는 다 한국어로 하고, 가능하면 노래들도 전부 한국어로 번안해서 부르는 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오페라 공연에서는 한국어로 번역된 가사를 쓰는 것이 많았고, 90년대에도 한국어로 번역한 가사로 하는 오페라가 종종 있었으니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노래가 꽤 널리 알려져서 원어 가사가 아주 중요하게 느껴지는 오페라들이라면 모를까, “박쥐”처럼 대사의 분량이 많고 더군다나 이번 공연처럼 “관객들이 음악 감상도 음악 감상이지만 일단 웃고 즐기는 분위기”를 중시하는 내용이었다면 한국어 번역 대사, 가사를 안 쓸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방향이다 보니 웃겨 보려는 시도들도 좀 어긋난 데가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서 초반에는 독일어로 대사를 막 하다가 갑자기 한국어를 섞어 써서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이게 왜 웃기는 시도인가 싶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면 이렇습니다. 독일어로 막 대사를 하다가, 식사로 특별 메뉴가 나왔는데, 그게 “삼겹살”이라서, “오오! 삼겹살!”하고 독일어 중간에 한 번 한국말을 쓴다는 것입니다. 이런 게 한 열 번쯤 나오는 듯 한데, 개 중에는 무섭게도 프랑스어 “대단히 감사합니다”를 “멸치 볶음”이라고 발음한다는(!!) 투탕카멘의 묘지에 잠들어 있을 듯한 개그도 섞여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하기야, 외국인 가수들을 대거 기용한 2012년 공연 같았다면, 외국인 가수들이 독일어 대사를 줄줄 늘어 놓다가 문득 “오우, 삼굡싸아르!” 라고 외치다가 “으으음- 소오쥬~”라면서 소주를 한 잔 마시는 장면이 뭔가 “두 유 노 싸이?” “두 유 라이크 김치?” 같은 맛이라도 있어서 어찌저찌 비슷하게 웃기는 줄이라도 한 번 탈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공연은 한국인 가수들이 하다 보니, 그런 느낌조차도 부족했습니다.

심지어 "두 유 노 강남스타일?"도 빠지지 않는 것이 뭔가 웃기게 해 보려고 말춤을 추는 장면도 몇 차례 집어 넣었습니다. 2012년 공연을 그대로 옮겨 오다 그때 유행하던 것을 그대로 반복하느라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오페라 가수들이 어떻게든 웃겨 보려고 노래를 하다 말춤을 추며 웃어달라는 표정을 얼굴에 띄우는데, 지친 표정의 관객들이 고요해져만 가는 객석의 그 어색함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장례식장이나 무슨 엄숙한 기념식에서 억지로 웃음을 참아야 할 때 한번씩 두고두고 떠올리면 효과가 좋을 것 같다는 정도 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웃겨 보려고 악착 같이 애를 쓰는 개그맨들이 무덤으로 들어 가는 수의와 같이 입게 된다는, 여장으로 웃기려는 것도 중반 이후에 몇번 나오고, TV에서 다른 코미디언들이 만들어낸 유행어라도 주워 담아서 웃어야 될 순간이라고 표시라도 하려고 “내맘 같지 않네”라고 대사를 읊조리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냥 너무 오래된 연출이 안타까웠던 대목도 있어서, 1막 초반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여서 하고 있다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가수들이 화면 중앙에 옹기종기 모이고, 기차 놀이 하는 모습을 하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나 하면서, 얼굴로만 “재밌다 재밌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노래하기도 했는데, 이런 것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더 나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현대적인 뮤지컬과 예스러운 오페라의 중간 단계에 있는 오페레타 박쥐의 특성상 연출이 애매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터져 나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간에 수많은 가수들이 서로 짝을 맞추어 캬바레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장면은 음악에 따라서 화려한 의상을 자랑하며 빙글빙글 돌며 다같이 춤을 춰야 마땅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다른 어느 부분에서라도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인 만큼 화려한 왈츠 장면이 하나쯤 들어 가도 좋았을 거라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춤, 노래,연기를 한꺼번에 다 하겠다는 각오의 뮤지컬 배우가 아니라 오페라 가수들이 맡고 있는 무대이다 보니, 춤 장면에서는 그저 손 하나 발 하나를 이쪽 저쪽 까닥까닥 휘저으며 춤추는 시늉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2012년 공연 장면)

물론 재미있는 대목도 없는 편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노래 장면에서는 제 인물에 어울리는 정도의 재미난 노래를 보여 주었다고 느꼈습니다. 남자 배우가 맡아 연기한 러시아 공작 오를로프스키 공작의 기교적인 모습들은 깔끔했고, 혼자 개인기 자랑하는 시간이 있는 여자 주인공 로잘린데의 노래는 개인기 자랑 시간을 소화해 낼 정도의 힘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캬바레 무대 장면을 입체적으로 구성해서, 한 인물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다른 인물들의 행동도 같이 드러나 보이면서 동시에 음악에 맞추어 웨이터들이 춤을 추는 구성은 볼거리였고, 노래에 맞춰 칵테일을 만드는 장면처럼 짤막하지만 재치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신나게 놀다가 다들 술에 취해 합창하는 2막 마지막 장면만큼은 온통 비누방울이 쏟아지고 다같이 술잔을 쳐들고 댄서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과연 20년대 엑스타라바간자 쇼 같은 흥청망청한 난리 쇼 느낌은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페레타 "박쥐"가 본래 연말 밤에 공연 해서, 관객들과 함께 한 해 미련 없이 이제 보내자는 느낌으로 즐기는 전통이라면 전통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런 연출은 어울리는 편이었다고 느꼈습니다.


(댄서들)

2012년의 연출을 그대로 반복하기 보다는, 이번에는 약간 방향을 수정한 새로운 틀을 잡았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싶은 생각이 드는 공연이었습니다. 다만 준수한 점도 있었던 공연인만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의 레파토리를 늘려 가는 방향에서, 내년, 후내년에 또 새롭게 더 좋아진 모습으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 밖에...
3막 시작 부분에 성지루 배우가 나와서 혼자서 원맨쇼로 웃기는 부분이 한 15분 정도가 있습니다. 2012년 공연에서는 김병만이 맡았던 것입니다. 이번에 꾸민 내용 자체는 아주 정통파 아저씨 개그로 아저씨 개그의 장단점이 그대로 지도처럼 펼쳐지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관객들의 시선을 모아 무대를 장악하는 성지루 배우의 솜씨는 감탄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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