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워 (의담홍진, 義膽紅唇, City War, 1988) 영화

“시티 워”는 소위 말하는 홍콩 느와르 영화가 유행하던 시기에 나온 홍콩 느와르 영화 중에 하나로, “영웅본색”으로 홍콩 느와르의 시대를 연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는 주윤발과 적룡이 다시 동료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영웅본색”에서 적룡과 주윤발이 서로 동료인 범죄자로 나왔고 적룡이 주윤발의 선배격으로 나왔다면, 이 영화에서는 주윤발과 적룡이 서로 동료인 경찰로 나오고, 주윤발이 적룡의 선배로 나옵니다. 영화는 아주 재밌는 편은 못됩니다만, 이 시절 홍콩 느와르 영화의 특징들 몇몇은 잘 드러나고 있어서 그걸 맛보기는 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포스터에 나오는 이 호방한 문구: 주윤발 + 적룡 = 의)

내용을 좀 더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타협 없이 악당을 오직 열심히 뛰어 다니며 잡는 것만 아는 경찰 적룡이 있습니다. 그런데 적룡이 예전에 잡아 넣은 악당 하나가 경제인이라는 이유로 빨리 가석방을 받은 건지 뭔지 감옥에서 출소하게 됩니다. 이 악당은 과거 적룡이 붙잡으려고 하던 순간 저항하며 난리치다가 불구가 되었기 때문에 적룡에게 원한이 깊은 상태입니다. 악당은 적룡에게 복수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풍깁니다.

한편 주윤발은 적룡의 상사이자 절친한 동료입니다. 주윤발도 뛰어난 경찰이지만 적룡에 비하면 세상을 즐기면서 살자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윤발이 클럽에서 만난 한 여자 때문에 주윤발역시 그 악당과 엮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물 설정은 거진 완벽합니다. 친구로 나오는 주윤발과 적룡은 영웅본색 때의 바로 그 두 사람이 다시 되돌아온 듯 할 지경이고, 진지하고 타협하지 않는 경찰 역할의 적룡과 농담 잘하고 여유로운 면이 있는 그 동료 역할의 주윤발도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이 상황에서 타협하지 않는 적룡이 점점 더 사건의 구렁텅이로 흘러 들어 가는데, 주윤발이 그냥 손 털자고 애타게 설득하지만 그 와중에도 친구를 떠날 수 없어 엮여 가는 모양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엄살부리는 주윤발과 웃는 적룡)

아쉬운 쪽은 악당 인물이었습니다. 무협 영화에서 멋진 무술 솜씨로도 잘 알려졌던 서소강이 강한 두목이지만 불구가 된 후 열등감에 사로 잡혀 더 악한 짓을 하는 인간으로 나오는데, 너무 단순한 느낌이 심했습니다. 서소강이 80년대 후반 이후로는 이런 악당 연기도 곧잘 맡은 만큼 연기가 부자연스럽거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초반에는 별 하는 일 없이 괜히 무서운 놈인척 말만 하면서 뜸만 들이고, 그러다 적룡, 주윤발과 전면으로 결투를 벌이는 후반에는 그냥 갑자기 정형화된 악역으로 확 돌변해서 관객이 싫어하도록 여자 등장인물이나 괴롭히고 소리지르며 난동이나 부리는 그저그런 악당이 하는 짓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만큼 이런 영화의 절정이어야할 마지막 결전도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홍콩 느와르 영화 답게 막판이 되면 죽는 사람도 많고, 탄환도 소나기처럼 쏟아 부으며 소란스럽게 싸웁니다만, 아슬아슬한 대목 격정적인 싸움이 없고 특별히 인물의 특성을 나타내는 상황도 없이 다른 많은 영화들과 구분되지 않을만한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주인공이 너무 역할이 적고 약하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의 위치는 여러 사람 엮인 열쇠가 되는 인물로 갈등을 복잡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은 악당의 옛 애인이면서, 동시에 그 적인 경찰에게 끌리고 있는 인물이니, 어찌보면 영웅본색의 장국영 역할에 해당하는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너무 적어서, 여자 주인공이 대사를 한 마디도 하지 않게 해도 이야기 흐름에 큰 지장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갈등 구조만 놓고 보면 여자 주인공이 아주 중요한 역할인데, 장면이나 대사에 실린 비중은 남자들간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옛날 고전 느와르 영화처럼 여자 주인공이 클럽에서 노래를 멋있게 부르면 주인공이 빠져드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장면에서는 기술적으로 노래 자체가 별로 잘 녹음이 안되어 있고 여자 주인공이 잘 부르는 것처럼 연출도 안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기도 했습니다.


(여자 주인공)

오히려 이 영화의 멋진 대목은 처음 시작할 때 두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 주기 위해 본론과 큰 관계없는 잡범을 잡는 장면과 적룡의 집이 악당에게 공격 당하는 중간 싸움 장면이었습니다.

중간 싸움 장면은 유리창도 깨고 물도 터지고 총이 불을 뿜는데, 좁은 집을 두고도 이리저리 숨고 구르고 하는 홍콩 영화다운 피터지는 총싸움 장면으로 그만입니다. 그러나 중간에 적룡의 가족들이 괜히 당황해서 당장 먼저 도망쳐야 할 상황에서 “싫어요 당신이랑 있을래요”라면서 악당이 들이치는 집 가운데에 멍하는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관객들의 입에서 절로 '왜 그러고 있어, 빨리 도망치라니까'라고 속터지는 소리가 나올 만했습니다. 그런만큼 이야기 중에서 정말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되는 싸움이라기 보다는, 억지로 아슬아슬함을 쥐어 짜는 느낌이 났습니다.


(홍콩 밤거리의 형사 적룡)

대신에 바람잡이용 첫번째 싸움 장면은 영화를 보는 기대를 한껏 높여 줄 수 있을만큼 멋졌습니다. 푸르스름한 불빛이 쏟아져 내리는 무더운 80년대 홍콩의 밤거리에, 악당과 경찰이 정신 없이 뛰어 다니고 시민들은 소란스러운 그 분위기는 거의 낭만적일 정도였습니다. 길지 않은 장면이고 간단한 잡범 하나를 잡는 장면이었지만, 적룡과 주윤발의 재미난 성격, 두 사람의 성격 차이, 두 사람의 관계도 극적으로 잘 드러내주었다고 느꼈습니다. “리쎌웨폰”시리즈 같은 영화의 비슷한 대목 못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

쇼브라더스 영화사에서 꽤 덩치 큰 무술 영화의 감독을 맡기도 했던 손중이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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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보만세 2014/12/30 22:24 # 답글

    맨 아래 사진 속 홍콩경찰 정복차림 우측 사나이는 '오진우' 아닌가요? 무간도2에도 출연했던..

    영웅본색1편으로 주윤발이 한국에서 떴다면(홍콩 관객들에겐 큰형님으로서 적룡이 더 손색없었겠지만), 영웅본색2에선 적룡과 장국영이 떴던 기억이 납니다.

    장국영의 경우엔 그 이후 내한활동 등을 통해, 한국팬들과 친밀해지는 기회가 있던 반면 적룡 주연의 느와르 물에 목말라 하던 팬들에겐 아마 언급하신 작품이 어필하지 않았나 하네요(덤으로 주윤발까지!!)

    덕분에 오랜만에 재개봉관에서 손에 땀쥐고 보던 홍콩느와르의 추억에 잠겨 보았습니다..

    포스팅 감사드리고, 아무쪼록 즐거운 연말 되시길 ^^
  • 게렉터 2014/12/31 20:53 # 답글

    그러고보니까 비슷하기는 한데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80년대에도 여기저기 출연한 배우이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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