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Fury Road, 2015) 영화

대학시절 제 룸메이트 중 한 명은 영화 중에서 유난히 자동차 추격전 장면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하게 된 이야기가 뭐였냐면, 자동차 추격전이야말로 진짜 영화에서만 보여 줄 수 있는 영화다운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자동차 추격전은 계속해서 속력을 내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니까, 정지된 화면으로 표현되는 미술이나 만화로는 표현이 어렵습니다. 움직이는 동작을 보여 준다는 면에서 본다면 무술이나 서커스 액션 장면은 연극이나 공연에 집어 넣을 수 있겠지만, 자동차 추격전은 그러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 컴퓨터 게임과 비교해 본다고 해도, 영화 속 자동차 추격전에서 자동차의 움직임과 충돌에 따라 계속 시점을 바꾸어 가며 그 흔들림과 충돌을 표현해 내는 맛은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시리즈가 유명해진 명성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만큼, 영화 내내 온통 아주 뻐근한 커다란 자동차 추격전 장면으로 꽉꽉 차 있는 영화였습니다.


(포스터)

이 영화가 자동차 추격전을 펼치면서 따라 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이 영화가 공포 영화스러운 면도 많이 가져다 넣었다고 느꼈습니다. 초장에 특히 그런 느낌이 강했습니다. 맥스의 시선을 따라 가면서, 이 영화는 세상이 대충 망한 뒤의 풍경을 보여 주는데, 이게 말하자면 지옥 여행기 같아 보였습니다. 문명이 거진 다 파괴되고, 먹고 살기 위한 자원은 극히 부족한 황량한 사막 세상에서, 미쳐 날뛰며 살아 가는 인간들의 비참한 모습을 여러 가지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공포 영화 같은 섬뜩한 소재들을 풀어 놓는 데, 그 발상 자체를 이용해서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어찌 보면 공포 영화로서도 훌륭했다고 생각 합니다.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 대는 미치광이들이 끊임 없이 득실거리며 나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딱히 칼질 하고 피 튀기는 장면을 직접 보여 주거나 피칠갑 하는 식의 잔인한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이 거의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충실하게 멸망한 세상의 몸서리 나는 그 끔찍함을 잘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내용들이 그저 혐오스럽고 징그럽게만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러 연출에서 느린 움직임을 살리거나 웅장하면서도 처량한 음악을 이용해서, 이런 세상에 빠진 정신 나간 사람들의 비참함을 슬픈 느낌으로 강조하는 대목들도 선명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이야기들이 현실의 비슷한 문제들과 이어져 돌아 보게 하는 힘도 강한 편이었습니다. 고작 한 바가지의 물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빈곤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자동차 운전 잘하는 날건달일 뿐인 지배자가 전지전능한 살아 있는 신이라고 믿고 목숨을 내던지는 전사들의 모습은, 맹목적인 신념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의 몇몇 모습들과 쉽게 이어지는 모양이었습니다.


(개떡처럼 개조된 낡아 빠진 자동차들)

이 영화는 이런 모든 내용들을 끊임 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싸움 장면, 자동차 추격전 장면에 담아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싸움과 자동차 추격전이 무진장 넘쳐 나도록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영화 내내 거의 계속 달리고 달린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닐 지경이었습니다.

이 장면들은 모든 것이 파괴된 황량한 사막을 배경에 완벽하게 걸맞았습니다. 황야에서 말을 달리는 장면이나, 열차 강도가 나오는 장면이야, 영화 연출의 고전적인 전통이라면 전통인 장면인데, 이 영화 속은 모든 세상이 황무지인 곳이니, 이런 이야기를 아주 뻐근하도록 채워 넣기에 더욱더 어울렸다고 생각 합니다. 길도 없고 집도 없는 그저 계속해서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는 벌판 밖에 없는 세상이니까, 자동차들이 떼로 나와서 죽자고 줄기차게 달리는 것입니다.

말이 자동차 추격전이지, 사실 벌판에서 수십대의 자동차들이 넓은 대형을 짜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장면들은 옛날 영화 속의 기마 부대 전쟁 장면과 비슷한 느낌을 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지휘하는 대장과 역할 별로 대열에서 분리 되어 있는 여러 자동차들은 전쟁 영화 속 기병대나 유목민족 약탈단의 돌격 장면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자동차를 타고 하니까, 더 크고 더 시끄럽고 훨씬 더 빠르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잘 촬영 되어 있었고, 이런 멸망 후의 세상에서 쓸법한 무기와 공격 방법들이 다채롭게 싸움 속에 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반복되면 단조로울 수도 있는 계속 이어지는 자동차 추격전 장면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새롭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소품, 의상, 분장도 아주 좋아서,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괴상하게 개조되어 있는 몰골의 자동차들은 하나 하나가 색다른 공포 영화 속 괴물 같았습니다. 부두교나 식인 종족의 섬뜩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분장이나 탄피를 가발처럼 두르고 있는 모습처럼 멸망 후의 세상을 소재로 정신병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효과적이었습니다.


(다양한 공격)

음악이 대단히 훌륭한 영화라고도 느꼈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 주는 멸망 후의 암담함과 자동차 추격전, 두 가지를 몇 단계 더 위로 끌어 올려 주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음악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공포 영화 분위기의 어두운 내용에 어울리도록 묵시록적인 느낌이 나는 무거운 곡이면서 심장 박동을 울려 대는 쿵쿵 거리는 박자가 계속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면서 빠르게 진행되는 커다란 추격전 장면에 어울리도록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휘몰아치는 연주가 나오고, 그것이 필요할 때마다 폭발적인 헤비메탈 연주와도 그저 메기는 소리 받는 소리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여기서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음악이 영화 속에서 큰 소리를 내며 달리는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 배기음과도 엮여서 들린 다는 것입니다. 질주하는 자동차 소음들이 마치 악기처럼 이용될 때가 있었습니다.

음악이 이야기를 살려 주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효과가 정말 좋다 보니, 이 영화에는 아예 음악 연주하는 인물이 꽤 눈에 뜨이게 등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미쳐 돌아 가는 세상이라는 분위기를 살리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열광적으로 빠져드는 분위기의 음악이 극장 안에 울려퍼질 때 거기에 휩싸이면, 영화 속에서 정신 나간 인간들이 광기에 휩싸여 싸우겠다고 달겨 드는 그 기분이 음악을 통해 극장 안에 전달 되는 듯 했습니다.


(질주)

이 영화에서 단점을 찾으려 든다면, 저는 초장에 강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상대적으로 막판은 결말에 어울리는 화려한 끝이라기에는 조금 약한 느낌이 난다는 점 아닐까 생각 했습니다. 싸움 장면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그랬습니다. 초장에는 “저 차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거기에 가면 과연 그게 있을까” 이런 수수께끼들을 계속 던지면서 이야기가 긴박하게 펼쳐졌지만, 막판은 따지고 보면 “그냥 아주 아주 열심히 싸워서 해결하자”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약간은 재미가 덜했습니다.

비슷한 면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퓨리오사가 겪는 마지막 시련도 과연 그게 필요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맥스가 겪은 사건의 복선과 연결시킨다는 면에서는 좋은 내용이었지만, 퓨리오사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냥 약간 더 안타깝게 하자는 느낌이나, 성경 속 소재를 따라 간다는 느낌 정도 이외에 별 뜻 없이 시련이 닥쳤다가, 몇 장면 안되는 사이에 손쉽게 해결되는 것 같아서, 깊은 감정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보면, 영화 제목이 “매드 맥스”입니다만, 맥스 보다는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하는 퓨리오사가 더 역할도 많고 주인공 같은 영화라고 생각 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은 싸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만, 막상 치고 받는 싸움 동작이 가장 많았다고 생각은 안들고, 싸우는 동작이 가장 화려했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런 상황에서도 믿음직스럽고 노련하고 정말 정말 싸움 잘할 것 같은 표정과 인상, 서 있는 자세 등등을 연기로 보여 주었는데, 그게 확 잘 먹혀서 최고의 전사,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싸운 사람이라는 감상이 확 났습니다. 연기가 무척 멋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광활한 사막 풍경을 화면에 담아 놓은 회화적인 구도도 뛰어난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넓은 황무지와 아무것도 없는 세상의 하늘에 이글이글하는 햇빛 하며, 피어 오르는 흙먼지까지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풍경이 잘 담겨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끔씩은 정말로 시 구절처럼 “열사의 끝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사막의 신”과도 어울리는 신화에 어울릴만한 풍경을 펼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에 멸망 이후의 황량한 무법천지에서 싸우는 SF소재 컴퓨터 게임의 세계나, 페미니즘 SF로 분류되는 이야기의 소재들이 반영되어 잘 결합된 것들도 제몫을 하는 이야기 거리였다고 느꼈습니다.


그 밖에...

계속 떠돌이 맥스가 이 세상이 대충 망한 곳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이 동네 저 동네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하나씩 목격하는 형태로, 관찰자가 맥스고 속편에서는 사건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은 계속 바뀌는 형태로 펼쳐져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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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133 2015/05/23 13:12 # 삭제 답글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공감이 많이 가네요
  • 게렉터 2015/05/26 19:24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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