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Macao, 1952) 영화

1940, 50년대 흑백 느와르 영화의 전성시대에는 이국적인 지명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꽤 있었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전에 나온 모험 영화들을 이어 받은 것이지 싶은데, 낯선 곳을 배경으로 삼아서 그곳에 흘러든 주인공이 범죄에 휘말리는 내용을 다루면서, 범죄물, 느와르 영화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 영화 “마카오”가 대표격이고, “카사블랑카”를 느와르 영화로 본다면 역시 여기에 속할 거라고 생각 합니다. 요즘 영화 중에 “샹하이”도 이런 전통을 복고풍으로 따라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포스터)

느와르 영화라고 했습니다만, “마카오”는 사실 무척 밝은 분위기의 영화입니다. 터프 가이 떠돌이 로버트 미첨과 매력이 철철 넘치는 무대의 가수이지만 차가움도 철철 넘치는 제인 러셀이 이국땅 마카오에서 소동에 휘말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설명에 걸맞게, 로버트 미첨은 여유만만한 할리우드 배우 다운 멋부리는 농담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미어 터질때까지 읊조리면서 여기 건들, 저기 건들 분위기 잡고 걸어 다니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잠깐 느와르 영화 분위기로 빠진 로버트 미첨)

이 영화 소동의 중심은 마카오에 숨어 있는 미국 거물 범죄자 두목에 얽힌 이야기 입니다. 행정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 경찰이 검거를 하기 위해서는 이 범죄자를 마카오 밖으로 끌어 내야 하는데, 범죄자는 절대 마카오 바깥으로 안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술수를 써서 범죄자를 잡기 위해 미국에서 경찰 특수 요원을 마카오에 보냈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범죄자는 정체 불명의 사나이 로버트 미첨이 그럴 듯하게 분위기를 잡고 다니니까, 아마 그가 경찰 특수요원일거라고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로버트 미첨은 아닌 척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마카오에 들어 온 미국인 가수인 제인 러셀과 삼각관계도 생기고 보석 밀매에 관한 이야기도 얽혀들고 뭐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재료와 배경은 괜찮게 갖춰져 있었습니다.


(윌리엄 벤딕스와 이국 분위기를 일부러 내어 보는 제인 러셀)

그렇습니다만, 이야기를 끝까지 보면 그렇게 썩 재밌는 편은 못 되었습니다. 일단 중간에 나름대로 반전이 있기는 합니다. 밝힐 가치도 없습니다만, 굳이 밝혀 보자면, 분위기 팍 잡고 다니던 로버트 미첨은 그냥 분위기만 잘 잡는 날건달일 뿐이었고, 촐싹대던 얼간이 장사꾼인 듯 보이던 윌리엄 벤딕스가 사실은 진짜 경찰 특수요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 앞 부분에서 악당이 로버트 미첨을 경찰 요원으로 의심하는 장면이 나오자마자 관객들이 대부분 “사실은 아니고 오해겠지”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어서, 그냥 반전만으로는 아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반전을 이용해서 오해하고 그 오해를 다른 사람이 또 오해하고 어떤 사람은 오해를 역이용하면서 꼬인 사연, 진기한 상황이 나와야 재미가 될텐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것들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러니, 영화를 억지로 이어 가기 위해서 싱겁게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바람에, 마음에 와닿지 않는 장면들만 나옵니다. 악당들은 우르르 몰려와서 주인공을 잡으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왜인지 총은 놔두고 칼로 공격한다든가, 주인공 옆에 있는 사람을 실수로 죽이고 나서 주인공은 살려 두고 이유 없이 악당들이 그냥 가 버린다든가, 악당 두목인 범죄자가 영화 끝날 때 쯤 되니까 결국 그냥 “속터져서”라는 허망한 이유로 갑자기 다 엎어 버리고 마카오 바깥으로 나온다는, 그냥 때우는 식의 이야기로 진행 됩니다.


(마카오 거리를 꾸며 놓은 세트)

그러니 이 영화에서 볼 만한 부분을 찾는다면, 줄거리나 절묘한 장면이 중심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대신에 옛날 구식 느와르 영화 시기에 나온 그 “영화 같은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라고 생각해 봅니다. 순전히 할리우드에 지어 놓았을 세트에서 찍어 놓고 여기가 마카오라고 하는 영화의 소품과 아시아계 단역 배우들을 살펴 본다든가, 너무 남발 되어서 어색할 지경이 되어 버린 주연 배우들의 “영화 대사 같은 말”들을 60%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보는 겁니다. 로버트 미첨은 입만 열면 비꼬는 농담을 하는데 그때마다 ‘멋지지? 멋있지?’라고 써놓은 팻말이라도 같이 드는 듯했습니다. 상대가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자, “당신은 옛날에 내가 이집트에서 알았던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스핑크스 말이오.” 라는 등의 대사를 하면서 멋을 부리려고 합니다.


(악당 두목과 대화하는 필립 안. 가운데 서 있는 배우 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번에도 단역으로 나오는 필립 안을 찾아 보는 것도 잔재미입니다. 필립 안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로도 한국에서는 알려진 편인데, 할리우드에서는 동양인 역할이 필요한 장면에서 주로 작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로 긴 시간 장수하며 활동 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작은 역할인데, 범죄자 악당 두목이 거느리고 있는 중국인 똘마니1과 중국인 똘마니2 중에, 똘마니2 역할로 나옵니다.


그 밖에...

하워드 휴즈 제작, 니콜라스 레이 감독, 로버트 미첨, 제인 러셀 주연이면 할리우드의 거물들이 꽤 많이 모인 영화인데도 이 정도에 그쳤다는 것은 안타까운 느낌이 듭니다. 자료를 찾아 보니, 하워드 휴즈가 영화가 마음에 안들어서 중간에 감독을 바꾸고 영화를 뜯어 고쳐 찍도록 했다는데, 그런 혼란의 와중에 괴상한 결과가 나온 것이 이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핑백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