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밀리 (Thoroughlt Modern Millie, 1967) 영화

1967년작 “모던 밀리”는 당시 “매리 포핀스”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을 맡아 줄줄이 초대형 흥행을 성공시킨 줄리 앤드류스를 기용해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 영화입니다. 60년대 후반이면 뮤지컬 영화의 유행은 점차 저물어 가던 시기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 영화는 50년대 MGM 영화사의 뮤지컬과 비슷한 실내 세트 촬영 위주로 내용이 담겨 있고, 중심 소재도 20년대를 돌아 보는 복고풍 코미디입니다.


(포스터)

가족 영화, 어린이 영화에 가까웠던 “매리 포핀스”나 “사운드 오브 뮤직”과 달리 이 영화는 사회상에 대한 풍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복고풍 소재를 대거 가져온 연애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모던 밀리” 입니다만, 여기서 “모던”이라는 것은 영화가 나온 시점에서도 40년전인 1920년대의 “최신 유행”을 다시 들추면서 웃음을 자아내자는 것입니다. 도시 생활과 거기에 맞춰 생겨난 빠르게 변하는 유행이라든가, 투표권을 갖고 독립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직장 여성들과 같이, 20년대에 일어난 변화라고 당시에 화제거리가 되었던 소재들을 다시 가져와 추억처럼 농담에 섞어 보여 주는 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뼈대였습니다.

줄거리는 주인공인 모던 밀리가 도시에서 현대적으로 유행에 맞춰 살려고 애쓰면서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한 몫 잡으려고 꿈을 꾸는데, 뜻대로 안되어 소동을 겪는 와중에, 여자를 납치해서 팔아 넘기는 인신매매 조직과 관련된 사건도 섞여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줄리 앤드류스를 기용한 만큼, 그 사이에 춤과 노래도 모자라지 않게 채워 넣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잘 안 움직여서 발을 굴러 줘야 하는데, 계속 발을 구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탭댄스를 춥니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아쉬운 점도 꽤 많은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우선 중심 줄거리와 그 결말이 괴상했습니다. 주인공 밀리가 돈 있는 남자를 낚으려는데 모든 것을 거는 것을 처음에는 비판하는 듯이 묘사 합니다. 그리고 꼭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중요하다”는 상투적인 결론으로 가려는 듯 합니다. 하지만, 막상 결말의 끝까지 다 보면 또 그렇다고 정말 “사랑의 승리”인 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매하게 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예,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가 다 하나의 익살스러운 풍자냐, 라고 본다면 그러기에는 중간에 사랑과 돈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즐거워하는 주인공의 노래 장면은 또 공들여 들어가 있었단 말입니다.

아무래도, 하여간 해피엔딩으로 몰아 붙이자는 정신과, 뭔가 세상을 비웃는 이야기를 넣자는 생각, 편안하게 흘러 가는 흔한 할리우드 이야기를 그냥 따라 가려는 생각이 어찌저찌 이상하게 섞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돈된 이야기나, 통쾌하게 결말을 짓는 이야기에서는 영 벗어나 버렸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 줄리 앤드류스, 그러나 돈 많은 상사와 결혼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로 나옵니다.)

또 한 가지 보기 이상한 것은 이 영화에 나오는 중국인 악당들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중국인 악당 조직이 문제의 비밀 인신매매 조직으로 나오는데, 그 묘사가 전형적인 인종 특징을 맥없이 뽑아 온 것입니다.

아시아인의 옷차림, 말투, 외모를 괴상하게 과장하고, 영어를 잘 못하고 답답해 보이면서도 지극히 멍청하지만, 사실은 불법적이고 음험한 인간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악당 범죄 조직의 중국인들만 이렇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차이나타운의 중국인 시민들도 대부분 이렇게 묘사 되어 있고, 심지어 한 명 나오는 “우리편 중국인” 조차도 괴짜 얼간이로 나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국 도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보여 주는 영화면서도 흑인은 안 나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수 인종을 묘사하는 것 마저도 20년대 풍습을 가져온 것이기는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재밌게 활용하지도 못하고 그냥 거기에 생기 없이 주저 앉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악당 중국인들과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 장면은 정말 황당하고 재미 없습니다. 중국인 악당들이 별 재미있을 만한 인간들이 아니니까, 싸움을 벌일 재료도 제대로 못 찾은 모양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대결전에서는, 그냥 주인공들이 갑자기 나타난 악당을 딱 보고 “세게 때리니까” 악당들이 쓰러진다는 걸로 끝입니다. 웃기라고 일부러 황당하게 만든 장면이기는 한데, 그래도 뜸들인 갈등에 비해서 너무 허망했습니다.


(음험한 악당이면서도 매우 멍청한 사람으로 나오는 중국인 인신매매범)

건질 것으 찾아 본다면, 중간에 인터미션까지 집어 넣은 넉넉한 시간 동안 여유롭게 펼쳐 보이는 20년대 유행 보여주기와 몇 곡의 좋은 노래들입니다. 20년대식 옷, 20년대 머리 모양, 20년대 사무실 풍경, 20년대 자동차, 갑자기 기술이 발전한 20세기 초를 마음껏 즐기는 미국의 갑부들의 모습은 공들여 제작진들이 집어 넣어 놓은 구경거리였습니다. 높은 빌딩에 매달리는 20년대 코미디 영화 장면들을 따라하는 장면들도 즐거운 편이었습니다. 좋은 노래들과 함께 이런 느긋한 분위기를 즐기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면, 걱정 없이 세상 살이 재밌게 보자는 흥에 몇 시간 빠져 있어 보면서 그 여운을 느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20년대 옷차림, 20년대 자동차)

노래 중에는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는 “Thoroughly Modern Millie”와 새로 춤을 개발했다고 하면서 보여주는 “Tapioca” 춤 장면에서 배우들의 솜씨가 확실히 보였습니다. 줄리 앤드류스가 전성기 때의 솜씨 그대로 부르는 “Thoroughly Modern Millie”는 영화를 재미 없게 봤더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수준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반면에 코미디 담당을 맡았다고 할 만한 캐롤 채닝의 춤과 노래 장면들은 분량이 많은 데도 일부러 특이한 것을 보여주려고 쥐어짜서 보내주는 식이라서 재미가 덜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신비의 괴상한 중국인" 역할로 이번에도 단역을 맡은 필립 안의 모습)

단역을 주로 맡으면서 오랜 시간 활동한 필립 안이 역시 단역으로 잠깐 나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로도 잘 알려진 사람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 “우리편 중국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뭔가 비밀스러운 도술이라도 숨기고 있는 듯한 신비의 중국 할아버지로 등장하는데, 옛날 할리우드 영화에 흔히 나오던 “신비의 중국인” 인물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중국인 배역 답게 알고 보면 역시 얼간이인 역할입니다. 출연시간을 다 해 봐야 1,2분 정도 되는 작은 배역인데 그래도 시간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비중이 주어진 편입니다.


그 밖에...

2000년대 초에 공연용 뮤지컬 판이 나왔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이 판에서는 역시 중국인 배역들의 역할이 이 영화와는 다르게 많이 수정되었습니다.

영화와 상관 없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이 영화에서 줄리 앤드류스가 혹시 같이 연기한 단역 배우 필립 안이 한국에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는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지 어땠을 지 상상해 봅니다. 혹은 필립 안의 주변에서 매번 이런 단역만 하는 필립 안에게 괜히 이상한 소리는 안 했을 지, 갑자기 궁금하기도 합니다. 시대가 전혀 안 맞기는 한데, 만약 윈스턴 처칠 쯤 되는 사람의 아들이 한국 아이돌 가수의 백댄서로 활동하고 있다면 그건 또 주변에서 뭐라고들 할까, 상상도 한 번 해 봅니다. 뭐라고 무슨 말을 꼭 해야 할까 싶습니다만.

덧글

  • rumic71 2015/08/15 15:56 # 답글

    클린턴 대통령의 동생은 가수...(아니 그건 특별할 게 없잖아!)
  • 게렉터 2015/08/30 22:32 #

    그것도 비슷하다면 비슷한 경우라는 생각도 듭니다.
  • 2015/08/23 16: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8/30 22: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fatman 2015/09/01 17:30 # 답글

    [십계], [앵무새 죽이기],[황야의 7인], [순수의 시대], [파 프롬 헤븐]으로 유명한 거장 엘머 번스타인이 본 영화로 그의 유일한 오스카를 받았지요.

    로저 이버트는 본 영화에 별 네개를 줬지만 나중에 그게 옳은 판단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두고두고 얘기하곤 했지요.
  • 게렉터 2015/09/08 18:55 #

    절대 별 네 개 급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로저 이버트 선생도 다시 봤다면 잘 주면 세 개, 아마도 두 개에서 두 개 반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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