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극장 (Theater of Blood, 1973) 영화

1973년작 “피의 극장”은 영국을 배경으로 빈센트 프라이스가 맛이 간 늙은 셰익스피어 전문 대배우로 나와서, 사람을 하나 둘 극장으로 끌어 들인 뒤에 셰익스피어 연극의 장면을 연출하는 미친 짓을 하면서 잡아 죽이는 이야기 입니다. 주인공이 왜 이런 짓거리를 하냐면, 연기에 대해 평론가들에게 너무 심한 모욕을 받아서 인생을 포기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복수로 평론가를 하나 둘 잡아 죽이는 것입니다.


(포스터)

이 영화는 이런 부류의 연쇄 살인 영화의 핵심을 잘 잡아 가고 있어서, 영화 내용은 차례 차례 살인을 어떻게 하는 지 다양하게 보여 주는 것이 거진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살인 방식이 하나 같이 셰익스피어 연극에 나오는 죽음 장면을 따라하는 미치광이 놀음이라서, 그 특징이 눈에 확 뜨이게 살아 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것처럼 살 1파운드를 떼어 내려 한다거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것처럼 검술 결투를 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사람을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연극의 무겁고 어두운 중세색이 미치광이 같은 살인 행각과 맞아 떨어지는 모양이 잘 살아 났습니다. 과시하듯이 살인을 하는 미치광이와 정신 나간 연출의 연극 무대가 맞아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살인마가 미친 연극 배우인데, 허물어져 가는 철거 직전의 극장을 살인을 위한 소굴로 삼고 있고, 거기에 사는 알콜중독자, 약물중독자, 정신병자 걸인들을 자기 부하로 삼고 있었습니다.

정신병자 광대들을 거느린 미치광이 왕이 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연극 배우의 모습은 몽환적으로 연출된 대목도 많아서 한편으로는 환상적이고 과시적인 영상으로 일가를 이루었던 이 무렵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공포 영화, 곧 지알로 영화 같은 색채까지 서려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유럽색이 많이 나는 낡은 영국 거리를 무대로 하는 장면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걸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 연극 배우는 아름다운 딸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이 전체 구도가 그 자체로 또다른 셰익스피어 연극인 리어왕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연극 줄리어스 시저의 연기를 하며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하기 직전)

한편으로는 어릿광대와 미치광이를 소재로한 살인 이야기에 어울릴 법하게 묘하게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살짝살짝 연결되어 더 정신병적인 느낌을 살리는 것도 잘 된 편이었습니다.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연극을 소재로한 살인은 그런 특징이 특히 잘 살아나 있어서, 내용만 보면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끔찍한 살해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보기에는 전혀 잔인한 것 없이 도리어 귀엽고 밝은 소품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면은 나중에 영화로 표현되는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의 모습 같은 면과 통한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고보면, 갑자기 사람을 납치해서 미치광이의 소굴에 붙잡아 간 뒤에, 그 미치광이 나름대로의 예술적인 계획에 따라 죽인다는 구성은 연극 극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옛날 프랑스 그랑기뇰 연극과 닮아 보이기도 했고, 21세기초에 유행한 사람 납치해서 죽이는 이야기를 소재로하는 공포 영화들과 소재가 닮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잔인함이나 당하는 사람의 공포에 집중하는 대신, 화려한 연극색을 살리고, 당시 유행하던 유럽 공포물과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분위기는 많이 다르며 더 독창적인 느낌이 났습니다.


(연극 무대 위에서 장치를 이용해서 보여주기식으로 살인)

아쉬운 점을 찾자면, 꿈 같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약간씩 느리게 가는 연출이 잠깐 지루할 때가 있다는 것이라든가, 결말이 그야말로 이런 부류의 살인극 영화의 전형 그대로 예정된 살인이 다 끝나면 별 것 없이 영화도 확 끝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도 막판 무렵에 마지막 희생자격인 평론가가 “리어왕”의 명대사를 역으로 활용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장면을 더 클라이막스로 살려야 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신에 미친 주인공이 고전 공포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극장에 불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장면은 화려하고, 중간중간의 살인 장면들도 정신이 망가진 걸인들의 미친 표정과 어울리면 꽤나 섬뜩해 보일 때도 많아서 본분을 다하는 영화였습니다. 과장된 형태의 연기를 워낙에 잘하는 빈센트 프라이스가 노령에 이 역할을 맡아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거진 다 셰익스피어 연극에 나오는 말로 골라 읊어대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볼거리였습니다.


그 밖에...

극중 빈센트 프라이스 역할의 딸로, 제임스 본드 영화나 옛날 텔레비전판 첩보물 “어벤저스”의 출연으로도 친숙한 다이아나 리그가 나옵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2015년에 글을 써본 것 중에서 최고의 영화들 2015-12-31 20:27:17 #

    ... p://gerecter.egloos.com/5246734 1.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 영화: "피의 극장 (Theater of Blood, 1973)" http://gerecter.egloos.com/5281681 빈센트 프라이스가 셰익스피어 연극 장면을 재현하며 사람을 죽이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로 나오는 영화로, 배우 개인의 개성이 폭발하는 배우인 빈센트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