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허니문 (Hatchet for the Honeymoon, Il Rosso segno della follia, 1970) 영화

“공포의 허니문”은 1970년 마리오 바바가 감독을 맡았던 영화입니다. 줄줄이 나온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 중에서 독특한 부류를 일컫는 지알로 영화에 대강 묶일 수 있을만한 내용인데, 줄거리는 젊은 미남 부자가 자기 회사 소속인 웨딩드레스 모델들을 모델의 결혼 직전-직후에 도끼 비슷하게 생긴 칼로 죽인다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살인마의 관점에서 왜 이러고 다니는지, 범죄를 들킬 지 말 지 이야기 하며 따라가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포스터)

공포물 효과가 어느 정도 들어간 영화입니다만, 코미디 향도 묘하게 서려 있는 영화입니다. 일단 이 영화의 이 젊은 미남 부자가 삶과 사랑, 아름다움과 죄에 대해서 나름대로 철학적으로 말해 보겠답시고 읊조리는 헛소리가 초장부터 나오는데, 이게 정말 폼 잡다가 죽죽 미끄러지는 그야말로 헛소리라서 묘하게 조금씩 웃기게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은 부인에게 열등감과 패배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엄청 여자에게 인기 많은 듯한 미남인 듯이 싸돌아 다니면서도 사실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침대에서는 전혀 제 구실을 못해서 좌절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또 웨딩드레스와 여성 속옷을 만드는 회사의 사장으로 대저택에서 사는 갑부로 나오지만, 사실은 파산 직전에 부인 덕에 돈을 구한 처지라 경제적으로도 부인에게 굽신거려야 마땅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꼬인 허영과 위선이 겹쳐 있는 괴상한 인물인 것입니다.

이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인 스티븐 포사이드가 그걸 극적으로 보여 주는 실력은 뛰어 났습니다.

이렇게 열등감 덩어리에 마땅할 인물이면서도 표정은 괴상하게 당당하고 멋있는 듯이 하고 있어서, 단순히 못난 사람이 아니라 좀 이상하고 웃기게 못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죄 없는 여자들을 살해하는 살인마이기도 하니까, 비교적 요즘 영화와 비교하자면, “아메리칸 사이코” 주인공하고도 상당히 닮은 느낌인데,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 섬뜩한 미치광이 느낌이 더 강한데 비해서 이 사람은 무서운 미치광이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좀 정신 나간 웃긴 놈이라는 느낌도 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되어 줄거리를 생기 있게 끌고 가기에는 더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이탈리안 사이코?)

이야기 진행도 분위기를 잘 살려가면서도 항상 긴장감 있게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 주면서 달려 가고 있어서 속도도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왠 미친 놈이 죄 없는 아름다운 여자를 죽이고 다니나 싶다가, 그 다음에 바로 그 미친놈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그 주인공이 사실은 갑부 웨딩드레스 회사 사장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어떻게 희생자를 끌어 들이는지, 어떻게 증거를 없애는지, 하는 것들을 단계별로 보여 줍니다.

뒤이어지는 이야기거리들도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껏 대단한 매력남인척 하는 주인공을 간단하게 멸시해 버리는 부인과 그 부인에 대한 주인공의 혐오가 이어지고,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죽는 여자를 볼 때 마다, 어릴 때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죽어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언뜻언뜻 돌아오는 것 같아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고 싶어 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거기에 경찰이 주인공을 추적하는 이야기와 주인공이 경찰의 의심을 따돌리려고 노력할 때, 아슬아슬하게 들킬 듯 말 듯 하는 장면도 잘 달라 붙어 들어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죽인 시체가 바로 2층에 누워 있는데, 경찰이 들어 오자 태연히 주인공은 “비명 소리가 난 것은 TV에서 본 공포영화 소리였습니다”라고 경찰에게 설명합니다. 경찰은 의심하면서 돌아 보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경찰의 의심스러워하는 얼굴, 주인공의 태연한 척하려는 표정과 바로 몇 미터 떨어진 그늘 아래에 누워 있는 시체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여 줍니다. 경찰은 “범인인 것 같은데, 같은데”하면서 알쏭달쏭해 하는데, 그 경찰이 못 보는 바로 옆으로 2층에 누워 있는 시체에서 피가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겁니다. 들키겠습니까? 말겠습니까?

이런 장면은 “히치콕과의 대화” 책에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서스펜스란 이런 것이다”라면서 설명하는 폭탄 곁에 앉은 사람 이야기의 수법을 마치 교과서처럼 살려서 보여 주는 연출이었습니다. 경찰은 사실을 모르고, 주인공은 들킬 지 말 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모든 상황을 알고 있고, 과연 어떻게 될까 점점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감독을 맡은 마리오 바바의 실력이 잘 드러난 장면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위기에 빠지는 모델)

그 외에 70년대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 유행에 앞서서 그걸 이끌었던 영화 답게, 살인 장면 전후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직접 피가 튀기는 잔인한 장면은 거의 전혀 안 나오고 놀래키는 장면도 사실상 없는 영화인데도 으시시한 느낌은 꽤 들게 해 놓았습니다. 창백한 시체처럼 생긴 마네킹들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괴상한 그늘진 조명 아래에 서 있는 장면들은 인형으로 무섭게 하는 영화 장면의 모범으로, 과도하지 않게 잘 들어가 있었습니다. 또 살인을 저지를 때 순간 흉칙해지는 주인공의 광기 어린 얼굴 역시 여느 영화 못지 않게 잘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마네킹들이 서 있는 방)

이 영화의 전환점과 결말을 말해 보면서 더 설명해 보자면, 아쉬운 대목들도 몇 가지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이야기를 밝혀 보겠습니다.

이야기 중반에 주인공은 드디어 미워했던 자기 부인까지 없애 버립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후 부인의 귀신이 나온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부인이 죽은 후인데도 주인공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부인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듯이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공에게는 부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귀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건가, 어떻게 죽인 부인이 되돌아온 건가 두려워 하는데, 환청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다 보이지만 너에게만은 보이지 않아서 너를 괴롭게 해 주마”라는 부인 귀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영원히 널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주인공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미칠 지경이지만 터놓고 확인해 볼 수도 없습니다. “내가 죽였는데 어떻게 내 부인이 여기 있다는 겁니까?”라고 옆사람에게 물어 볼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주인공은 속이 탑니다.

이런 장면들은 관객들에게도 정말 궁금하고 신기하기 때문에 실체가 궁금해 집니다. 아마 나중 유행대로인 70년대 이탈리아산 지알로 영화라면 결말 무렵에서 이 모든 게 어떤 묘한 이유로 설명되는 반전이 나올 겁니다. 당시 상투적인 수법이라면, 주인공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 주인공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짜고 보이지 않는 주인공 부인이 보이는 척 주인공을 속였다는 따위의 결말이 아마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길을 가는 듯이 하다가 결국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해 집니다. 심지어 주인공은 그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짜고 벌이는 속임수일지 모른다고 스스로 짐작을 하고, 그걸 증명하려고 시도해 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나이트클럽에 가서 아무 여자나 붙잡고, 자기 집에 가서 즐기자고 하는 겁니다. 그러자 그 “아무 여자”는 당신 옆에 여자가 이미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아무리 주인공 주변 사람들이 다 합심해서 주인공을 속이려고 한 것이라고 해도 나이트클럽에서 무작위로 고른 여자1까지 음모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울 테니, 주인공은 이것이 다같이 합심한 속임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정말로 자기 눈에는 안 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만 보이는 부인 귀신이 계속 자기를 따라 다니고 있나 이제 증면 된 건가 싶습니다.

혼란에 빠진 주인공은 그래도 증명에 미련이 남아서 괜히 나이트클럽의 여자에게 말을 더 이어 붙여 보려고 “뭐 셋이면 또 어떻소?”라면서 개수작을 걸다가 여자는 변태라고 욕하면서 때리고 나이트클럽 직원들에게도 진상 손님으로 몰려서 얻어 맞고 쫓겨 납니다. 이 역시 이 영화의 공포와 코미디가 엮인 장면이었습니다.


(주인공의 부인)

반면에 이 영화에서 가장 김빠졌던 것 역시 이 “부인 귀신”이라는 기막힌 신비로운 사연을, 결국 영화 끝까지 봐도 그냥 별 해명이나 파국 없이 그냥 끝내버린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대책 없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끝맺음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검거 되어 붙잡혀 가는 주인공 앞에 부인 귀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뒤에, 반대로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오직 당신에게만 보이는 모습으로 영원히 당신을 따라 다니겠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철창을 붙잡고 도망치고 싶어서 절규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자기를 압도 하고 있던 부인을 살해한 긴장감이 너무 컸던 나머지 주인공이 그냥 돌아 버렸고 그래서 계속 환상을 보고 환청을 들은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기는 됩니다. 아니면,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호기심을 생기게 하는 귀신이 이 영화 속에 있었다고 생각해도 될 겁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중반에 궁금증을 팍팍 끌어 올리면서 섬뜩하게 했던 기대에는 못 미치지 않나 싶습니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들켜서 검거되는 순간이나, 주인공의 범죄와 연결 되어 있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도 분위기를 잘 잡은 중반에 비해서는 약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자기가 살해한 희생자의 언니가 접근했을 때 언니도 살해하려고 하는데, 사실은 그게 함정 수사였기 때문에 붙잡히는 것으로 죄가 탄로 납니다. 복선이 약한 편이고, 구도 자체도 “싸이코”의 심심한 모방이라서 별 건질 것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선 장면에서 경찰이 “제가 어떻게 범인을 잡을 거냐면... 꾸준히 기다리고 끈질기게 또 기다리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나오는데, 그 말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끈기 있게 따라 가겠다는 경찰의 복선으로 들려서, 함정수사라는 결말과는 어긋나기도 했습니다.


(갑부 주인공)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 이야기도 별로 다른 이야기들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밝혀지는 바에 따르면, 어린 시절 웨딩드레스를 입은 어머니를 죽인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어린 주인공 본인으로 나옵니다. 마지막 순간, 어머니가 재혼하는 것이 싫어서 그런 짓거리를 했다는 기억이 돌아 옵니다. 금기를 깨는 끔직한 이야기이고, 구식 정신분석학식으로 엮어 보면, 주인공이 왜 이런 성격이 되어 이런 짓거리를 했는지 잡다하게 설명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가득 서 있는 저택에서 깊은 밤 춤을 추고 있는 붕 떠 있는 꿈과 같은 장면 사이에 설렁설렁 코미디스러운 내용도 엮어 치던 영화에 별로 잘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아 보자면, 자극적이지는 않은데도 공포 분위기, 긴장감이 잘 살아 있는 장면 장면이 군데군데 볼 만한 영화였던 대신에, 웨딩드레스 연쇄 살인 이야기 - 부인 귀신 이야기 - 어린시절 충격적인 기억 이야기 세 가지가 잘 연결되지는 못했던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대신에 그만큼 이야기 거리가 많았고, 살인마의 시점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바보 같은 꼴을 보여 주기도 하는 잘난 척 주인공의 뒤틀린 코미디 성격이 모든 것을 품어 주고 있어서 그 만큼은 더 볼만 했던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살인마, 마네킹, 모델)

몽환적인 느낌이 잘 사는 70년대 지알로 영화에서는 현실적인 범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꼭 악마나 마귀가 나와서 세상의 어느 구석을 돌아 다니고 있는 것을 언뜻 본 듯한 느낌이 감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지알로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을 알려 주는데다가 웃긴 느낌에도 무게가 실려 있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자기 목표인 웨딩드레스 입은 모델을 데려 와서 "파티를 열어 주겠다"며 웨딩드레스 입은 마네킹들 사이를 빙빙 돌며 춤을 추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과 그 배경 음악에는 지알로 영화 감성이 꽤 살아 났습니다.


그 밖에...

마리오 바바가 감독을 맡은 영화인데, 중간에 주인공이 비명 소리를 덮기 위해서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하는 공포영화가 다름아닌 마리오 바바가 감독을 맡았던 다른 영화인 “블랙 사바스”입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지알로 영화 2015-10-08 21:14:28 #

    ... ambole per la luna d'agosto, Five Dolls for an August Moon, 1970) 공포의 허니문 (Hatchet for the Honeymoon, Il Rosso segno della follia, 1970)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 (Lo Strano vizio della Signora Wardh, The Stran ... more

  • 게렉터블로그 : 에블린이 무덤에서 나온 밤 (La Notte che Evelyn uscì dalla tomba, 1971) 2016-07-12 17:22:52 #

    ... 후 전 부인의 귀신이 본격적으로 등장 합니다. (변태 부자 남자,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여자) 세부사항이 달라서 눈에 안뜨여서 그렇지,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만 놓고 보면 “공포의 허니문”과 거의 같은 이야기입니다. 거장 대접을 받는 마리오 바바가 감독을 맡은 “공포의 허니문” 역시 맛이 간 갑부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들을 끌어 들여 살인한다는 것이 출발이 ... more

덧글

  • 먹통XKim 2016/01/15 22:14 # 답글

    국내에 특이하게 마리오 바바 영화로 유일하게 비디오로 나온 영화였죠.그것도 2곳에서...

    국딩 시절, 동네 가게에서 웨딩드레스 여자차림 여주인공에게 도끼날이 번쩍이던 표지를 본 기억이 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