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The Martian, 2015) 영화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비행사가 구조대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로빈슨크루소처럼 버틴다는 것이 “마션”의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가끔씩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기본은 항상 용감하고 건장하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한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이고, 전체 영화 형태도 과감하게 깔아 놓은 음악을 제외하면 할리우드 대형 상업 영화의 틀에 맞춘 방식으로 재미난 영화였습니다.


(포스터)

우주 외딴 곳에서 사고로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든 애를 써서 살아 남고 구조된다는 형식의 이야기는 SF의 황금기 때 상당히 유행한 형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서 클라크의 대표작 중에는 지구 궤도의 우주 공간에서 살아 남는 이야기나, 달 표면을 탐사하다가 살아 남는 이야기로 유명한 것이 몇 편 있었고, 다른 작가들의 대표작도 여러 편 쉽게 생각날 만한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끔은 살아 남는데 실패하는 이야기를 슬프거나 무섭게 다룬 것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만 화성이나 먼 외계 행성에서 조난 당한 영화인 경우에는 단지 생존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과정에서 뭔가 더 어마어마한 비밀이나 신비로운 사실을 만난다거나, 아니면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외계인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거나, 외계인이 남겨 놓은 고대 문명이나 괴물과 만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조금 더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목이 “화성인”이지만, 화성 외계인이 나온다기 보다는 “화성의 사람”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은 간만에 원류로 돌아 가 보는 이 영화의 특징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화성에 남겨진 주인공이 신비로운 곳을 모험하는 것 보다도,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사실 자체와 그 생존기술, 특히 맥가이버처럼 임시변통과 잡다한 도구 활용으로 버티는 아이디어를 열심히 불어 넣은 것이 영화의 돋보이는 점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나홀로 화성에)

재미의 일부는 순수하게 베어그릴스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생존술 보여주기 TV시리즈 같은 점도 있었고, 그런 이야기의 유행과 통하는 점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 와중에 꾸준히 이어진 NASA의 우주탐험 역사를 예찬하고, 과거의 도전에 경의를 표하는 듯한 아이디어가 한 두 가지 나오는데 이런 점은 특별히 멋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저는 “스팀펑크”나 “디젤펑크” 같은 말처럼, 미래 세계의 풍경을 그리면서도 80년대 90년대 쯤의 과학기술을 추억처럼 활용하는 것을 “디스켓 펑크”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 영화에도 디스켓 펑크 감성을 살리는 굉장히 멋진 맥가이버 같은 수법이 하나 나옵니다. 이 대목이 저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재밌었습니다. 좀 지나면 8비트 아스키 코드 문자표도 한번 나오고, 심지어 흘러간 디스코 음악을 배경 음악으로 대폭 활용하는 것 조차도 이런 디스켓 펑크 감성하고 통하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NASA 지상 본부)

또 한 가지 이 영화에서 멋졌던 점은 생존 이야기를 처절하고 외로운 이야기로만 포장하지 않고, 주인공의 낙천성에 기대어 밝게 그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개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머나먼 행성에 홀로 남겨져서 살아날 가망은 희박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저것 해 보면서 버티는 이야기를 껄렁껄렁한 태도로 웃으며 다루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반쯤은 맛이 간 것 같은 주인공의 괴상한 정신머리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브루스 윌리스나 존 웨인 같은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여유로운 농담을 던지는 순간을 따라간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생존의 진지하고 막막한 느낌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이런 낙천성을 잘 연결하고 있어서, 무서워 죽겠지만 꿋꿋이 버텨 보려는 용기를 짜내는 것이 더 보기 좋게 살아나는 멋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무조건 “나는 이렇게나 괴로웠는데 너 정도는 별 거 아니니까 참아라”라는 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밝은 정신을 찾아 가는 주인공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러 고달픈 일로 암담해하는 관객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만큼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 보라면, 그런 만큼 주인공도 조금 덜 할리우드 영웅스러운 사람이었으면 더 그런 겨우겨우 버티면서도 용기를 짜내는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점부터 일단 생각 났습니다. 지금 주인공을 맡은 맷 데이먼도 나무랄 데는 없었지만, 더 위험해 보이고, 더 밑천 없어 보이는 배우이지만, 그래도 더 재밌게 버텨 본다는 식의 이야기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예를 들어서 왕년의 마이클 J. 폭스 같은 배우가 주인공이었다면 더 재밌지 않았겠나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세한탄하면서도 농담도 하고, 자기 처지에 대해 욕도 하면서도 이죽거리며 웃어 보기도 하는 주인공의 독백을 좀 더 많이 살렸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기록 동영상을 남기면서 말하는 장면으로 그런 대사를 하게 했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비록 “영화스럽지 않아”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냥 과감하게 독백 나래이션으로 주렁주렁 계속 주인공의 그런 재미난 말들이 더 나오는 편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혼자 밖에 없는 화성에서 버텨야 하는 상황을 살리는데에도, 자기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의 비중은 더 높이면 재밌었을 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맷 데이먼)

중반 이후로 화성에서 생존하며 버티는 기술을 이야기로 담아낸 것이 줄어드는 것도 조금 재미가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살아남기 기법들은 초반에 잘 표현된 편이고, 후반에도 우주선 개조하는 이야기가 비중을 갖고 들어 가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화성의 자연 환경이나 남아 있는 자원의 특성, 시도해 본 방법과 실패한 이유 같은 것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성의 풍경을 환상적으로 연출한 대목도 생각보다 적다고 느꼈습니다. 그에 비해 세계 각지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무사 귀환을 기도하고 전광판에 뉴스에서 상황을 보도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아주 전형적인 연출로 나오는데, 이런 것들은 더 빼버려도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우주선)

소재가 비슷한 점이 있는 “그래비티”와 비교해 보자면, “마션”은 못지 않게 재미난 영화로 더 낙천성이 드러나는 이야기이고, 그만큼 할리우드 영화 전형에 더 가까웠습니다. 한편 이야기나 영상 표현에서 혁신적인 느낌은 “그래비티” 보다는 빠져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션”에서는 “현실감 나는 대사”를 위해서 욕을 섞어 쓰는 고전적인 방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보다야 이 영화 속에서도 베네딕트 웡이 연기한 JPL 책임자가 영겁과 같이 끝없는 야근을 마주하며 점점 정신이 우주로 빠져 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작은 표정 변화가 더 좋았습니다.


그 밖에...

“빽 투 더 퓨처”나 “블레이드 러너” 같은 80년대 SF물을 보면, 미래는 일본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허다했습니다. 그에 비해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래는 이제 중국인 듯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원작 소설 한국어 번역판이 나오기 전에, 출판사에서 다름아닌 저에게 책의 추천사를 써달라는 제안을 비공식적으로 해왔던 일이 있었습니다. 반가운 일이었고, 기꺼이 번역판이 나오면 읽고 추천사를 쓰려고 준비했습니다만, 그 제안을 해 주셨던 담당 편집자께서 급 퇴사하시는 바람에 다 잊혀진 일이 되었다는 사연이 있습니다.

덧글

  • 고고 2015/10/26 22:39 # 삭제 답글

    헤르메스호가 지구를 도는동안 중국이 발사체를 옮기고 데이빗 보위의 스타맨이 흐르는 부분이 인상적이더군요. 그야말로 지구촌이 화합하는 이상적인 장면이어서 후반부의 전개도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ps는 안타깝네요;
  • 게렉터 2015/10/28 20:38 #

    재밌는 책이라 저도 더욱 아까웠습니다.
  • kr 2015/10/27 04:28 # 삭제 답글

    덜 건장하고 더 불쌍해보이는 인물이 더 현실적이었을까....
    라고 반문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은 게....


    "애초에 우주비행사 자격 요건 자체가 다부진 신체,
    강한 멘탈을 전제조건으로 두고 선발할 거기 때문"


    에 말이죠.
  • 게렉터 2015/10/28 20:39 #

    마이클 J 폭스 정도면, 적당히 우주비행사로 부족함 없을 정도로 멀쩡해 보이면서, 화성에 혼자 남겨졌을 때는 더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처럼도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 역사관심 2015/10/27 12:43 # 답글

    꼭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 게렉터 2015/10/28 20:39 #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은 충분히 들었습니다.
  • 라리오 2015/10/27 17:45 # 삭제 답글

    그나마 최근에 돈이 아깝지 않았던 영화.
  • 게렉터 2015/10/28 20:39 #

    저는 요즘 호평인 "특종"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