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자정에 걷는다 (Death Walks at Midnight, 1972) 영화

“죽음은 자정에 걷는다” (Death Walks at Midnight, La morte accarezza a mezzanotte)는 1972년작 이탈리아산 추리물로, 비슷한 영화들을 일컫는 지알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니에베스 나바로(수잔 스콧)가 맡은 활기차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주인공이 약물 실험에 자원하는데, 그 실험을 하는 도중에 환각처럼 살인 사건을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때 살인 사건에서 본 인물이 주인공에게 접근하고, 실제 그 사건이 있었던 것 같다는 정황을 포착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주변의 불신에 맞서 자신의 의문을 파헤치려고 합니다.


(포스터)

“죽음은 자정에 걷는다”는 시작 장면의 흡인력이 뛰어난 편이고, 뒤이어 성격을 드러내는 주인공의 매력으로 절반을 먹고 들어 가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모델인데, 자기와 적당히 가까웠던 적이 있는 관계였던 잡지사 기자의 요청으로 시험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시험이란, 정신과 의사의 감독 아래 합법적으로 새로 나온 환각제를 투여해 보고, 어떤 느낌인지 체험한 뒤 그 경과를 기록해 보는 겁니다. 그걸 잡지에 자세히 기록해서 자극적인 기사로 싣는 다는 계획입니다. 주인공은 자기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가면을 쓴 채로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잡지사 기자라는 인간은 거의 사기꾼 같은 인간이라서, 그렇게 이야기 해 놓고 주인공이 약에 취해서 슬슬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하자 은근슬쩍 가면을 벗겨 버립니다. 그리고 얼굴이 드러나는 사진을 펑펑 찍어 대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정신과 의사”라는 양반은 그냥 잡지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영감님일 뿐이었습니다.

완전히 속아서 당하고 있는 주인공의 처지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취해서 웃으며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 껀수 잡았다고 날카로운 웃음을 짓는 비열한 기자의 모습 부터 제대로 화면을 장식합니다.

그런데 뒤이어 주인공이 환각 속에 살인마의 모습까지 나타납니다. 괴상한 선글라스를 쓴 이상한 모습의 살인마가 아무것도 없는 희고 넓은 방에 등장하는 것부터가 환상적인데, 이 살인마가 쓰는 무기는 갑옷 입을 때 장착하는 강철 가시 달린 장갑, 즉 건틀렛입니다. 별별 이야기 거리가 괴상하지만 아주 부드럽게 빠르게 결합해서 확확 나오는 것입니다.


(흉기)

자기 얼굴이 그대로 까발려진 채, “충격 실화! 환각제 투약 모델의 실제 체험 수기” 비스무레한 제목으로 기사가 나와서 온 사방에 잡지가 깔린 것을 확인한 주인공은 열 받아서 바로 기자를 찾아 갑니다. 기자를 찾아가서, 화를 내며 따져 대는 주인공의 모습은 강해 보이고 후련한 느낌이 들게 아주 멋지게 연기 되어 있었습니다.

기자는 “걱정할 거 없어요. 이런 잡지에 실리는 기사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 안해요.” 따위의 개떡 같은 소리를 하면서, 뭘 잘못했냐는 듯이 태연히 구는 능구렁이 소리를 하는데, 이 역시 극히 얄미워서 영화 속을 엎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연기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아무 배상도 받지 못하고 사과도 받지 못합니다. 괜히 열받아서 잡지사 사무실 유리창에 돌을 던졌다가 경찰서에 가게 되기나 합니다.


(주인공,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기자, 경찰)

이후의 이야기들도 계속해서 재미있게 이어지고, 동시에 불길하고 호기심 생기는 소재들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주변에 환각에서 본 인물이 나타나서, 그 환각에 보인 살인 사건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찰이나 주변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 살인 사건에서 본 것 같은 인간이 실제로 자꾸 자기 주변에 나타나는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정반대로 바로 그 살인사건 때문에 자기 동생이 희생 되었다고 말하는 신비스러운 부인이 나타나, 자기에게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일도 벌어 집니다.

그러는 사이에, 살인 사건의 범인이 갇혀 있다는 정신 병원에 가서, 갖가지 미치광이 같은 광경을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람과 자기가 환각 속에서 본 사람의 모습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더 의문이 커지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갑니다. 그러니, 중반이 넘어갈 때 쯤이 되면 도대체 누가 정말 악당인지 다들 의심스러워 보이는 지경이 됩니다.

이 많은 수수께끼들이 쌓인 것에 비해 막판 결말은 그 수수께끼들이 잘 연결되어 있는 후련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는 좀 말이 안되는 방식으로 억지를 써서 대충 때워 내서 결말을 짓는 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막판 부분에 강렬한 장면들이 몇 개 모여 있어서 결말이 아주 헛헛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

그 끝을 밝혀 보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막판 쯤 되면 그전까지는 큰 비중 없이 살짝 얼굴만 비치는 정도였던 날건달 두 명이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사는 동네에 등장 합니다. 이 날건달 두 명은 다름 아닌 마약 밀매범으로 그 중에 한 놈은 낄낄거리는 웃음 소리를 내는데, 그야 말로 제대로 맛이 간 무서운 사람들로 그럴듯하게 묘사 되어 있습니다. 즉 이 모든 사건들은 마약 밀매범들의 수작이었던 것입니다.

정신이 나간 채 병원에 갇혀 있는 첫번째 범인도 마약 밀매범이었고, 그 정신 병원 원장도 마약 빼돌리는데 가담한 사람이었습니다. 살인 사건은 사실 두 건이 일어난 것으로, 두번째 살인 사건은 첫번째 살인 사건과 범인은 다르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마약 밀매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었고, 자기가 한 게 아니라 첫번째 살인 사건 범인이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첫번째 살인 사건을 흉내낸 것입니다. 주인공이 본 것은 두번째 사건이었고, 주인공을 찾아 온 신비로운 부인은 첫번째 살인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이 발생한 것입니다.

마약 밀매범들은 모든 것을 숨기기 위해 주인공을 없애려고 합니다. 마약 밀매범들은 주인공의 입을 틀어 막은 뒤, 목에 밧줄을 걸어 놓으려고 하는데, 바깥에서 우유 배달이 오는 등의 일이 일어 나서, 마약 밀매범들이 들킬까 말까 하는 장면도 있고, 주인공의 공포 연출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힘이 강한 소재와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잘 연결 되어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에 막판 반전이 곁다리로 하나 더 나옵니다. 주인공이 당하려는 순간, 주인공과 싸운 뒤 헤어지려고 했던 주인공의 남자 친구가 주인공을 찾아 오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남자 친구는 조각가였는데 자기는 가난한 예술가라고 자학하다가 괜히 주인공에게도 화를 냈던 적이 있습니다. 남자 친구는 사과를 하려는 지 선물 상자도 하나 들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이제 주인공이 악당에게 당하기 전에 남자 친구가 도착해서 구출해 주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주인공이 당하기 직전 남자 친구가 정말로 도착합니다.

드디어 남자 친구와 악당들이 결투를 벌이고 그 틈에 주인공은 살아 남겠지, 관객들이 안도하려는데, 왜 인지 남자 친구와 악당들은 서로 얼굴을 보고 잠시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무슨 뜸을 들이려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드러나는 진실인 즉슨 남자 친구야 말로 마약 밀매 조직의 두령에 해당하는 인간이었습니다. 들고 온 선물 상자에는 사과의 선물이 아니라 마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주인공의 시체가 발견된다면 주인공도 마약 밀매에 가담했던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집에 적당히 갖다 놓으려고 들고 온 것이랍니다. 남자 친구가 만들던 조각품은 가난한 예술가가 만든 안 팔리는 조각품이 아니라, 그 안에 마약을 숨기기 위한 위장 도구였다는 것도 밝혀 집니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의 마지막 희망 마저 날아 가려는 순간, 그 사기꾼 같았던 기자가 나타나 악당들과 결투를 벌입니다. 마지막에 벌어지는 기자와 악당들의 결투는 대단할 것은 없지만 성실히 싸우고 있었고, 주인공이나 뒤늦게 나타난 경찰도 한 자락씩 거들어서 대충 막을 내리는데 어울릴 만한 장면은 되어 주었습니다.


(사기꾼이나 다름 없는 기자로 나온 시몬 안드레우)

마지막 부분에서 어쨌거나 처음부터 복선처럼 언급되던 약물 소재가 또 나와서 걸맞기는 했습니다만, 깨끗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맨 먼저 생긴 가장 궁금한 수수께끼에 대해 정확히 답을 해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주인공이 처음에 약물을 주입 받고 그런 환각을 본 것입니까? 두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주인공의 집에서 보려면 볼 수 있는 위치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니, 약물 때문에 갑자기 집중력이나 시력이 좋아져서 그것을 본 것이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전에 우연히 무심결에 그런 모습을 자기도 모르게 언뜻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잊고 있다가 약물의 효과 때문에 선명히 기억해 내게 된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더 황당하게 약물의 신비한 능력 때문에 텔레파시나 천리안 능력이 생겨서 보게 된 것이겠습니까? 영화 속에서는 끝까지 봐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정 안되면 마지막에 경찰이 구구하게 한 마디 쯤 설명을 덧붙여 줄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해결이 충분하지 않고 억지가 많은 데다가, 해결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역할도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좌우 대칭 구도를 보여주다가 구도를 깨면서 쫓기는 주인공 등장)

하지만, 그래도 반대로 따져 보자면, 그런 아쉬움이 생길만큼 주인공의 초중반 모습이 보기 좋았던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이 시절 이탈리아산 추리물에서는 흔하지 않은 편인 독립적이고 강한 모습의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 모습을 유혹적이면서도 기품 있고 또 활달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그 연기를 맡은 니에베스 나바로의 물결치는 아름다운 머릿결도 인상에 남았습니다. 이 영화 속 세상에는 어째 남자들이라고는 다 이렇게 쓰레기 같은 놈들 밖에 없나 싶은 이야기라서, 더 주인공의 모습은 멋지게 잘 드러났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 중에 안전해 보이는 사람은 정신병원에서 쉴 새 없이 계속 탭댄스를 추며 노래만 부르는 정신병자 정도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나는 흰 방이라든지, 굳게 닫힌 정신 병원 건물의 창문처럼, 원근법 구도나 좌우 대칭 구도를 잘 꾸민 장면처럼 쓰고 있는 것도 잘 잡혀 있었습니다. 항상 흐린날처럼 약간 칙칙한 장면들이지만 선은 날카롭게 살면서 주인공의 붉은 머리카락 빛은 잘 보이는 화면도 좋았습니다. 몽환적인 느낌이 잘 사는 70년대 지알로 영화에서는 현실적인 범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꼭 악마나 마귀가 나와서 세상의 어느 구석을 돌아 다니고 있는 것을 언뜻 본 듯한 느낌이 감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환각 속에서 괴이한 것을 보았다는 시작과 이런 화명 구성이 여기에 일조했다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별로 대놓고 활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배경이 되는 밀라노의 특징 때문에, 차가운 도시 공간과 예스러운 과거의 건축물들이 언뜻언뜻 엮이면서 현실세계와 환상세계를 헤메는 느낌을 주는 점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려 외곽으로 나아 가면, 왕궁처럼 생긴 옛 건물을 개조한 거대한 정신병원이 있다거나, 건물 지붕 위에서 결투를 벌일 때 멀리 뾰족뾰족한 옛 건물의 첨탑이나 성당의 윗 부분이 보이는 모습 등등이 오묘한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이전에 나온 “의혹 없는 부인의 금지된 사진”, “죽음은 하이힐을 신고 걷는다” 에 이어지는 세번째 루치아노 에르콜리 감독, 에르네스토 가스탈디 각본, 니에베스 나바로, 시몬 안드레우 출연 작 입니다. 대충 3부작 이탈리아산 추리물이라고 할 만한데, 역시 에르네스토 가스탈디가 각본을 맡은 “워드 부인의 이상한 죄악”, “모든 어둠의 색깔”,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가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 에드위지 페네크 주연, 이반 라시모프 조연의 3부작 이탈리아산 추리물이라고 할 만한 것과 견주어 볼만 합니다.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 3부작과 루치아노 에르콜리 감독 3부작을 비교해 보면,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의 형인 영화인 루치아노 마르티노가 출연자인 에드위지 페네크가 당시 결혼했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감독인 루치아노 에르콜리 감독도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니에베스 나바로와 결혼했다는 점도 공교롭습니다. 이 루치아노 에르콜리 감독 3부작에 당시 이탈리아의 지알로 영화에 많은 편이 아닌 당당한 여자 주인공이 유독 인상적으로 등장한 것은 자기 부인이 주인공을 맡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인터넷에는 꽤 보입니다.

저는 이 영화 “죽음은 자정에 걷는다”가 제일 재미 있었고, “의혹 없는 부인의 금지된 사진”이 그 다음, “죽음은 하이힐을 신고 걷는다”가 가장 재미 없었습니다.

막판에 갑자기 사기꾼 같은 기자가 주인공을 구하러 달려간 이유는, 우연히 날건달 같은 사람 둘이 앉았던 카페 자리에서 그 사람들이 보던 잡지의 주인공 사진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은 것을 발견하고, 그 날건달들이 주인공을 노리고 있다고 직감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영화 속 악당들은 왜 이렇게 스크랩이나 표시, 밑줄로 자신의 다음 행적에 대한 단서 남겨 놓기를 좋아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연쇄살인마의 집에 찾아가 보면, 집 한쪽 변멱 가득히 자기 범죄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서 붙여 놓고 있다는 장면은 심지어 아직까지도 영화나 TV물에도 종종 나오는 듯 합니다. 연쇄살인마이거나 말거나, 그렇게 정성스럽게 스크랩을 해서 보기 좋게 벽에 꾸미는 사람들이 요새 있기는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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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5/10/29 16:56 # 답글

    저도 요즘 수사물 드라마 볼 때마다, 그것도 심지어 범인이 아니라 주인공도 종종 그러는 걸 보면 좀 유난스럽다 싶더군요.
  • 게렉터 2015/10/29 21:22 #

    저는 그래도 수사진 측에서 그러는 것은 한번에 눈에 보기 좋게 정리해 놓고 있으면 옆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토의하기도 싶고 정리도 잘 돼서 그런다...는 식으로 그래도 빌미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악당들이 왜 그렇게 친절하게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 같은 장식을 자기 기지에 만드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듀나 작가가 클리셰 사전에서 이걸 지적한 것만 해도 벌써 몇년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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