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위의 다른 사람 (Una sull'altra, Perversion Story, 1969) 영화

“한 사람 위의 다른 사람 (Una sull'altra, Perversion Story, 1969)”은 1969년에 나온 이탈리아산 추리물로, 70년대 이탈리아산 추리물, 연쇄살인마 이야기들 중 몇몇을 묶어 부르는 “지알로”와 약간은 통하는 데가 있는 내용입니다. 줄거리는 한 병원 원장의 부인이 죽는데, 원장이 이후 죽은 부인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으로 진행 됩니다.


(포스터)

주인공은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아 바람나 있던 상태이고, 부인의 죽음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마주친 부인과 똑같이 생긴 사람은 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냥 나훈아-너훈아나 김정일 닮은 사람처럼 우연히 아주아주 닮은 사람일 뿐인 것입니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주인공은 부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부인과 똑같이 생긴 사람의 정체는 뭔지 천천히 추적하고, 한편으로는 부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설마 주인공 자신이 범인인건지, 궁금하게 하면서 이야기는 후반으로 가게 됩니다.

죽은 부인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돌아 온 것을 만나는 것이 신비롭게 묘사되어 있었고, 이 무렵 이탈리아 영화 특유의 신비로운 음악과도 어울려 그런 감흥은 조금 더 살아 났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은 그 대표작 “현기증”과 매우 비슷한 소재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더 대조가 극명했습니다. 부유한 병원 원장의 부인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끈적한 춤을 추는 껄렁한 댄서가 얼굴이 똑같이 생긴 상황인 것입니다. 거기다가 주인공 입장에서는 자기가 잘 아는 가족인 부인이 죽은 상황이라 수수께끼는 더 신기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반면에 연출이 이런 신비로움을 확확 밀어 붙이게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음악이 좋은 편이기는 했지만 잘 활용되지도 못하고 그냥 끈끈한 장면에 끈끈하게 사용되기나 하는 정도였고, 화면 구성에서 신비로움을 살리는 장면도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한 가지 괜찮은 장면이 있었다면, 독약으로 쓰일 수 있는 약이 마침 댄서의 집에도 있다는 것을 화면에 보여주어서 영화 속 주인공과 관객을 동시에 의심쩍게 만들면서 빨려들게 하는 장면 정도가 좋았고 나머지는 약했다고 생각 합니다.


(문제의 죽은 부인과 똑같이 생긴 사람)

그 와중에, 뭔가 노출 장면을 보여 주려고 느릿느릿 이야기를 끌어 가는 가운데 괜히 끈적한 춤을 추는 장면 등을 장황하게 보여 주는데, 이런 것들이 또 좀 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체가 비교적 느리게 흘러 가는 영화라 아주 거슬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만, 별로 영화의 긴장감이나 몽환적인 느낌을 살리는 방향은 아니었다고 느겼습니다.

보고 있으면 70,80년대 한국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는 시작되면 영화 본론과 거의 관계가 없는 주인공과 주인공이 바람난 여자가 헤어지려고 하다가 말다가 하는 이야기를 멜로드라마 톤으로 한참 느릿느릿 보여 줍니다. (여자가 우리는 헤어질 수 밖에 없겠지라면서 기차 타고 떠나니까 기차 역에서 이별의 말을 하며 떠나 보낸 후, 남자가 갑자기 자기 차를 타고 고속으로 달려서 여자가 도착하는 기차역에 미리 도착해서 당신을 보낼 수 없었다며 깜짝 등장하는 장면이 감상적인 음악과 함께 나오는 등등)

결말에 밝혀지는 수수께끼의 진실은 재미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평균 이상은 재밌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이 밝혀지는 방법이나, 마지막에 다들 어떻게 되었는 지 보여주는 방식은 무척 초라했습니다.

일단 진실을 밝혀 보자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남자와 바람난 여자)

문제의 부인과 똑같이 생긴 댄서는 진짜 부인이 맞았습니다. 주인공에게 부인이 죽었다는 누명을 씌우기 위해 죽은 척 한 뒤에, 부인은 다른 사람인 댄서인척 한 것입니다. 예전부터 부인은 주인공이 출장 가서 바람 피울 때 마다,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고 댄서 일을 하면서 이중생활을 해 왔는데, 자기가 죽은척 하면서 아예 댄서가 자기 원래 신분인것처럼 해 버린 것입니다. 왜 이런 짓을 했는고 하니, 병원 동업자인 주인공의 형과 짜고 주인공이 사형 당해서 죽으면 그 유산을 먹은 뒤에 해외로 튀려고 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어마어마한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이 그냥 주인공 형이 누명쓰고 감옥에 갇혀 있는 주인공에게 찾아와 주렁주렁 설명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공범인 형이 주인공에게 이런 이야기를 굳이 친절하게 해 주는 이유도 그냥 “조롱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이 어떻게서든 누명을 벗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친구들은 부인인 줄 알았던 시체를 파내서 그 치아 형태를 석고로 뜬 뒤에 치과 기록과 비교하는 정석 방법으로 죽은 시체는 사실 부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부인은 주인공이 운영하는 병원의 치과 밖에 다니지 않았고 그 병원의 기록은 미리 조작을 해 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 계획도 실패 합니다.

결국 주인공은 사형 당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부인과 형은 프랑스 파리로 도주해서 희희낙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끝나는 가 싶은데, 난데 없이 파리에 부인이 댄서로 일할 때 부인에게 들러 붙었던 단골 고객이자 스토커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부인이 - 그러니까 이 스토커 입장에서는 자기가 스토킹하던 댄서가 - 자신을 배신했다면서 부인과 형에게 권총을 쏘아 버립니다!


(댄서로 활동할 때의 모습)

완전범죄를 위해서 자기 신분을 댄서로 바꿨지만, 그렇게 신분을 바꾼 바람에 그 신분에 달라 붙은 스토커에게 당한다는 것은 제 꾀에 제가 빠지는 것 같은, 말하자면 “시적 정의”가 나타나는 듯한 이야기 느낌은 나서 괜찮은 편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얼간이 같던 스토커가 프랑스 파리까지 따라가서 난데없이 튀어 나오는 것은 갑작스러웠던데다가, 그렇게 죽자 마자 프랑스 경찰이 여권 조회를 잘 해서 부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바람에 주인공은 사형을 면했다고 하면서, 그렇게 벗기 어려웠던 누명이 아주 일사천리로 일이 확확 벗겨져 버립니다.

심지어 부인이 총 맞은 뒤의 이런 해결되는 이야기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장면으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이 사건을 소개하는 어느 미국 라디오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사건의 개요를 들려주는 식으로 짧게 요약해서 관객들에게 내던지듯이 한 몇 십초 간단하게 말로 때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형수가 되어 갇힌 주인공)

괜찮은 중심 반전을 가진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 줄거리만 풀어 놓는다면 20분이 채 안될 “경찰청 사람들” 재연 에피소드 하나 정도로 끝낼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현기증”처럼 절묘한 심리 잡아 내기라든가 나중의 더 본격적인 지알로 영화들처럼 신비로운 연출을 곁들여서 영화를 채웠다면 훨씬 멋졌을 테지만, 지금 영화는 느릿느릿 여유롭게 가면서 노출 장면을 섞어치는 것 정도로 타협하고 있었습니다.

몽환적인 느낌이 잘 사는 70년대 지알로 영화에서는 현실적인 범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꼭 악마나 마귀가 나와서 세상의 어느 구석을 돌아 다니고 있는 것을 언뜻 본 듯한 느낌이 감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죽은 사람이 돌아 오고, 누군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도시 한 켠에 있는 신비로운 소재를 쓰는 영화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화면이 흔들리고 흐리멍텅한 색채로 붕 뜬 듯이 일탈적인 오후 장면을 잡는 듯한 색조도 어울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보면 영화를 대강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

나중에 좀 잡스러운 영화들을 포함해서 공포물로 더욱더 명성을 얻은 루치오 풀치가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죽은 부인과 똑같은 사람을 본다는 유령 이야기 같은 맛이 나는 내용이었지만, 검시를 위해서 시체 파내는 장면 하나를 빼 놓고는 공포 비슷한 장면도 없습니다. 그나마 그 장면도 그냥 검시하는 장면 뿐이지 딱히 공포 장면으로 연출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산 영화이지만, 극중 배경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미국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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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5/11/01 17:54 # 답글

    사실 풀치는 서부극이라던가 이것저것 잡다하게 찍었으니...
  • 게렉터 2015/11/02 19:06 #

    지알로 영화만 해도 이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새끼 오리를 고문하지 말라"는 좋은 편이었고, "여인의 피부를 뒤집어 쓴 도마뱀"은 지알로의 대표작으로 꼽을만하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영화를 보면 극단적인 형태의 공포 영화 감독으로 주로 알려진 게 아쉬울 때도 있었습니다.
  • 먹통XKim 2016/01/15 21:45 # 답글

    풀치말고도 이탈리아 여러 감독들이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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