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량첸살인기 (2015)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의 주인공은 케이블 방송의 기자입니다. 적당히 권태롭게 기자 생활을 하고 있던 기자는 어쩌다 보니 실직하게 되는데, 실직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연쇄살인사건의 제보를 받고 특종을 보도하면서 일거에 다시 화제의 인물이 됩니다. 그런데, 이후로 일은 계속 꼬여가고 주인공은 엉망진창이 되어 가는 소동 속에 빨려 들어 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특종에 환호)

이 영화는 코미디 기조를 뼈대로 해서, 적당히 수수께끼 풀이가 있고 살짝 스릴러 느낌도 들어 가 있고, 사회 비판을 하면서,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눈물 이야기도 섞어 치는 비빔밥식 한국 영화와 비스무레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판 신파극 같은 이야기는 거의 최소한으로 자제 되어 있고, 섞어친 비중 조절도 큰 무리가 없는 수준이어서 막잡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비빔밥식 한국 영화의 평균 보다는 나은 편에 속하는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좋은 점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일단 언론,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은 모양이 괜찮은 편이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야기가 꼬여 돌아 가는 중심 소재부터가 언론을 비판하기에 잘 들어 맞는 것이어서 좋았고, 그 소재를 끝까지 붙들고 가는 이야기라서 비빔밥 영화 같을 때도 있었던 것 치고는 이야기가 방향이 일관성 있게 잘 잡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꼬여 돌아 가는 상황에서 환장할 것 같은 주인공을 중심에 둔 이야기라서, 주인공을 관객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것 역시 언론 비판의 생동감을 살리기에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주인공이 기자라고 해서 사회 비리를 캐내는 정의감에 불타는 영웅으로 설정한다거나, 혹은 반대로 비열한 시청률 벌레 악당으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직에 연연하고 승진에 고민하며 선후배와 동료 관계에 엮여 있는 보통 사람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덕택에 주인공이 종사하는 업계에 대한 비판이 더 실감나게 보이게 되기도 했고, 비판의 각도가 다채롭게 잡히기도 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직장인)

그 재미를 살리는 주인공을 맡은 조정석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대목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야기가 꼬여 돌아가면서 어쩔 줄 몰라하고 당황하고 겁먹는 모습을 보여 주고, 사실대로 털어 놓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망설이는 연기를 보여 주는데, 제대로 잘 먹히게 해 내고 있었습니다. 흥분한 모습이나 화내는 모습도 지나친 과장이나 폼잡기를 피해서 자연스러웠고, 중간에 이혼을 앞둔 부인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대사가 그저그런 흔한 각본이었는데도 배역에 배우가 잘 맞고 연기가 기술적으로 좋아서 그럴싸해 보였다고 생각 합니다.


(난처한 조정석)

부족한 점은 중심 주제를 빼 놓고 나면, 이야기가 너무 오래된 관습에 머물고 있어서 따분하게 연출된 대목이 많았고, 그런 때는 가짜 같아 보이고 빠져들기 어려워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 일단 생각납니다.

대표적으로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이야기에서 위기와 아슬아슬함을 만들기 위해 써먹는 수법이 지나치게 다른 영화에서 하던 틀대로 였다는 것이 눈에 뜨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연쇄살인마가 한 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연쇄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뻔히 보고도, 여자 등장인물이 도망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비명만 지릅니다.

이 영화의 연쇄살인마는 “할로윈” 시리즈 이후로 수없이 많은 연쇄살인마가 그랬던 것처럼 괜히 뚜벅뚜벅 분위기 잡으면서 천천히 걸어 옵니다. 일단 뛰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못 도망치더라도 시도는 해봐야 겠지 않습니까? 사방이 트여 있는 공원이라 도망 못 칠 이유도 없습니다. 게다가 연쇄살인마는 둔중한 옷차림의 뚱뚱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희생자 쪽은 그 보다야 조깅이라도 많이 한 사람으로 보여서 뛰어 도망치는 것을 충분히 시도할 수 있을 만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굳이 안 뜁니다.

안 뛸 뿐만 아니라, 굳이 뒷걸음질을 칩니다. 한 발, 두 발 떨면서 걸음을 움직입니다. 왜 그렇게 사뿐사뿐 움직입니까? 칼 들고 있는 돈 놈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뒤돌아서서 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안 뜁니다. 뒷걸음질을 치다가 또 어김 없이 자빠지는데, 자빠진 다음에 바로 다시 일어서서 뛰는 것이 아니라, 굳이 자빠진 채로 엉거주춤 기듯이 하면서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렇게 기어 봐야 무슨 수가 나겠습니까.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일어 서서 돌아서 뛰면 되지 않겠습니까. 수많은 공포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 입니다. 이러니 아무리 굼뜬 연쇄살인마가 뚜벅뚜벅 걸어 오는 것일 뿐이라고 해도 도망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너무 겁을 먹어서 다리에 힘이 들어 가지 않는 상황을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또 연쇄살인마 앞에서 도망 안치고 자빠져서 기어 가는 여자 희생자를 다른 수많은 영화와 똑같이 또 보여줘야 겠습니까? “스크림” 시리즈 때부터 대놓고 놀림 거리가 되던 상투적인 연출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정말로 일어나는 일 같이 실감나게 보이지가 않았고, 그냥 영화 장면을 위해서 흔히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해 써먹는 수법대로 대충 갖다 놓은 장면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의 연결이 생기 없게 꾸며져 있는 것들이 꽤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연쇄살인마를 조사하는 경찰)

예를 들어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의 임신한 부인이 나오고 그 부인이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나옵니다. 뭐겠습니까? 분명히 무슨 액션, 구출 이야기가 중간에 들어 가서 주인공이 그 부인과 재결합할만한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임산한 여자는 그만큼 더 연약해서 더 아슬아슬해 보이는 희생양 역할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기대 그대로, 뒤에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임신한 부인은 어김 없이 희생양이 되어 위기에 빠지고, 주인공은 어기 없이 부인을 구출하러 갑니다.

비슷한 억지 이야기 중에 압권은 이 부인이 위기에 빠지는 과정입니다. 이 부인이 위기에 빠지는 모양은 공포영화에서 “제발 좀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라”고 관객의 속을 터지게 하며 일부러 위기를 찾아 걸어 들어 가는 멍청해 보이는 역할을 골라서 하게 해 놓았습니다. 이 대목의 각본은 무척 나빴다고 생각합니다.

부인이 이런 바보짓을 하게 만드려고 일단 남편인 주인공이 굳이 “일단 몰라도 되니까 시키는대로 해”라고 말을 안해서 오해를 억지로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대강이라도 사실을 설명해 주거나, 하다 못해 거짓말로 대충 둘러대기만 해도 부인이 오해를 안했을 텐데 굳이 끝까지 아무 설명을 안 해서 오해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부인이 위험한 곳에 도착했을 때,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그냥 “뭔가 이상하다”고 하면서 돌아 나오면 될텐데 굳이 어디서 그런 호기심이 폭발했는지 괜히 그 안으로 한참 헤집고 걸어 들어가 뒤지고 다니게 했습니다. 거기다가 더해서 마침 그 시각이 거기에 또 악당이 있어서 둘이 공교롭게 마주치기까지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시각에 더더욱 공교롭게도 악당이 일을 저지르는 때라 목격자를 없애겠다고 공격할 이유까지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그냥 영화 속 세상에서 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앞뒤 이야기가 사실처럼 맞아 들어가며 “진짜 저러면 어떡하지”라면서 제대로 상상하며 빨려들 수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악당의 공격과 피해자의 처지만을 강조하는 공포물이나 활극이었다면 이런 대목이 적당히 말이 안되어도 별 무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 풍자의 소재로 삼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표현이 모자라서 사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결점으로 재미를 갉아 먹었습니다.


(부인)

무심한 이런 연출은 구석구석에 꽤 많은 듯 했습니다. 방송국 기자들이 일하는 사무실 풍경도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그냥 다음 이야기를 위해 빚어 놓은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경찰과 기자들이 대립하는 모양도 아무래도 실제 경찰과 기자들의 현실을 포착해 보여주는 것 같은 구석은 없었습니다. 경찰 패와 기자 패가 말싸움을 할 때의 연출도 한 마디 소리 지르고, 반대쪽에서 한 마디 또 소리지르고, 그러고 양쪽에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이 막 소리지르면서 왁왁 소리지르며 싸우고 그러면 서서히 카메라가 물러 나면서 양쪽의 모습을 화면에 담는데, 뭔 음악 레파토리 연주하듯이 맨날 보던 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벌레떼처럼 우글우글 몰려 들어서 아무데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모습을 비인간적으로 보여 주는 것도, 여러 많은 언론 비판하는 한국 영화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였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중심 소재로 중요한 것인데도 딱히 보여 주는 방식에 특별한 것은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취재 경쟁)

이 영화는 계속해서 꼬이는 소동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구체적인 줄거리는 전혀 모르는 채로, 홍보 자료나 전단지 조차 보지 않고(홍보 전단지에 주요 전환점이 나와 있습니다), 극장에 가서 주인공의 기구한 사연을 지켜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되려고 저러나”하면서 보는 것이 제 맛일 영화라고 생각 합니다. 다행히 중심 줄기는 괜찮은 편이고 끝까지 보면 주인공의 꼬인 상황을 오히려 마지막으로 역이용하려는 악당의 핵심 발상도 아귀가 맞아 들어서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는 이야기 주제와 잘 연결 되고 있었습니다.

매번 보던 인물, 대사에 욕을 섞으면 사실적인 것 같은 대사가 된다는 느낌에 젖어 있는 형사 역할이나, 위기를 만드는 도구에 불과한 여자 등장 인물의 연기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악당 역할의 연기는 그럴듯해 보이는 수준으로 무난했고, 역할은 작아도 쩔고 쩔은 기자를 연기한 주인공의 지인 기자 역할의 김민재 배우는 양념 연기가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 썩 어울려 보였던 이미숙의 보도국 국장 모습은 나중에 가면 각본이 억지로 꿰맞추는 것 같아지면서 재미가 훨씬 없어졌다고 생각 했습니다.

역시, 주인공 조정석의 모습이 제일 재밌고 좋았다는 기억입니다.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수사기관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 주인공이 어쩌다 보니 탐정 역할을 하며 직접 뛰어 다니게 하는 이야기로 몰아 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영화는 꼬여 있는 사연 속에서 부드럽게 주인공을 탐정 역할로 몰아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도 주인공의 연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밖에...

예전에 엄정화가 주인공으로 나온 “베스트셀러”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습니다만, 철거 직전의 쓰레기 굴러 다니는 한국의 시멘트 건물을 방 하나 하나 걸어 다니며 으시시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 이 영화에도 나옵니다. 이것은 이제 자주 써먹을 만한 공식으로 굳어져 가는 듯 합니다. 옛날 할리우드 영화의 “공포의 저택” 분위기를 다른 방식으로 계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딥 레드” 같은 영화에 잘 표현 되어 있었던 70년대 이탈리아산 추리공포물, 지알로 영화의 어딘가 환상적이고 멍한 장면이 스산하게 나오는 장면과 통하는 느낌 같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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