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의 혓바닥을 내민 이구아나 (The Iguana with the Tongue of Fire, 1971) 영화

"화염의 혓바닥을 내민 이구아나"(The Iguana with the Tongue of Fire, L'iguana dalla lingua di fuoco, 1971)는 1971년작 이탈리아산 추리물로, 당시 비슷한 부류를 묶어 부르던 지알로 영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내용은 아주 귀족적으로 보이는 외교관 집안이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주변 인물들이 하나 둘 더 희생되는데, 이 집안과 그 주변 사람들 중에서 누가 범인인지 추적해 나가는 것입니다.


(독일판 포스터)

처음은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야기 본론과 전혀 상관이 없는 감상적인 음악과 풍경 보여 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배경 음악이 상당히 듣기 좋았습니다. 당시 유럽 유행가 분위기가 도는 귀에 잘 들어 오는 곡조 이면서도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오후의 도시, 그 나른한 한 구석에 무슨 일이 벌어 지고 있을 것 같은 신비함도 살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본론과 상관이 있는 장면도 괜찮않습니다. 대뜸 악당이 한 사람을 어두운 곳에서 습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독극물을 희생자의 얼굴에 집어 던져서 공격한 뒤에 칼부림을 하는 것이 화면에 확 드러나게 잡혀 있었습니다. 특수효과는 모자라기도 했지만, 강렬한 느낌은 충분했다고 생각 합니다.

이어지는 그 다음 장면도 이야기를 밀어 올리기에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다음 장면은 처음 나왔던 어두컴컴한 곳에서 악당이 무고한 사람 공격하는 이야기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밝은 장면입니다. 거기다가 장소는 어마어마한 갑부나 대단한 가문의 자손 쯤 되어 보이는 사람의 대저택 앞마당 입니다. 이야기가 바로 안 이어지고 널뛰나 싶은데, 곧이어 저택 앞에 나타난 자동차의 트렁크에서 바로 그 첫번째 희생자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상반된 두 가지 인상의 이야기, 그러니까 어두컴컴한 혼자인 희생자가 당하는 장면과 화려하고 밝은 저택 사람들의 모습을 꿰뚫으면서 이야기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 오면서, 이 집안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이 집은 그냥 갑부의 저택이 아니라 대사관저였습니다. 이 집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이 평가 받는 외국 대사의 집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집안이 왜 이런 사건과 엮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외교관들에게 특별히 적용되는 면책특권과 국가간의 외교 관계 때문에 경찰은 이 집안 사람들을 함부로 조사하기가 어려운 부담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영화가 시작한 지 한 10분에서 20분 사이가 되는 동안 이런 내용이 이어지는데, 여기까지만 해도 저는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음악이 좋았고, 연출은 강해 보였고, 수수께끼의 내막은 뭘 지 궁금해 보였습니다.


(대사관의 사모님)

그렇지만 이후 이어지는 중반부와 후반부는 이 기대에는 약간 못 미치는 것들이었다고 느꼈습니다.

우선 음악부터 이후로 멋있게 써먹는 대목이 없었습니다. 음악은 유행가 분위기의 밝은 곡이기는 했습니다만, 듣기 좋았는데 중요한 장면에 제대로 쓰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나와도 그만 안나와도 그만인 듯한 주인공의 무의미한 찝쩍거리는 장면 등에나 깔릴 뿐이었습니다.

대신에 괜히 놀래키는 장면에 다른 음악이 쓰였습니다. 강조해서 짧게 “무시무시하지롱?” “신비하지롱?” 하는 다른 놀래키는 음악이 깔리는 장면은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영화에는 괴상한 웃음을 잘 짓는 의사가 한 명 나옵니다. 이 의사는 뻔히 “범인은 아니지만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범인일 수 있겠다고 위장으로 나오는 인물”이라고 자막이라도 같이 깔리며 나올 법한 인간이었는데, 이 의사가 이상한 웃음을 지을 때 마다, 뭔가 놀라운 것을 보여줬다는 듯이 음악을 확 때려 넣는 것이었습니다.

악당의 공격 장면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악당의 첫번째 끔찍한 공격은 확실히 인상이 강할 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법이 이후에 제대로 이용된다거나, 악당을 찾아 밝혀 내는데 단서로 활용된다거나 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습니다. 악당이 독극물을 던지는 장면은 두 번 다시 제대로 활용이 안됩니다. 여러 가지로 비판적인 영향과 심리를 따져 볼 수 있는 소재였는데, 그냥 초장에 충격 한 번 주는 용도에 그친 것입니다.

중반 이후 악당의 공격 중에 그나마 하나 건져 보자면, 중반에 대사의 부인이 공격을 당했다가 겨우 목숨을 건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대사 부인의 연기가 좋아서 살아난 것 뿐이지, 악당의 역할 때문에 좋아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외교관의 집안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을 모아 놓고 그 중에 누가 범인인지 궁금하게 하면서 밀고 나가는 줄거리도 제대로 못 살았다고 생각 합니다.

이 집안 주변에는 반항적인 아들, 자유롭게 살면서 매우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졌지만 정작 범인은 추리하지 못하는 딸, 의심스러운 운전 기사, 의심스러우라고 등장시켰지만 끽해야 가짜 범인일 것이 뻔한 의사 등등의 인물들이 계속 나옵니다. 거기다가 귀여운 주인공 탐정의 딸, 주인공 탐정의 어두운 과거에 엮인 사람,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팬이면서 자기가 범인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력이 나쁜 주인공의 어머니 등등 이야기에 한 가닥씩 엮이려고 하는 다른 인물들도 여럿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들 등장만 보면 그런대로 개성은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명 줄거리에 깊게 얽히는 것은 부족했고 서로 재미난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도 부족해서, 그냥 “범인 후보” 인물을 지나치게 많이 늘어 놓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나마 그 때문에 지루함은 덜어지는 편이었고, 그래도 결말의 마지막 결전은 아주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서, 다 보고 나서 허무하지는 않은 이야기이기는 했습니다.


(주인공 탐정)

결말을 밝혀 보면 이렇습니다.

일단 초반에 괴상한 날건달 같은 인간이 나와서 수상쩍게 외교관의 딸에게 접근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날건달도 범인 후보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3분의 1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이 날건달은 사실 탐정으로 밝혀 집니다.

상대가 외교관이라 본격적인 수사가 어려워지자, 경찰 측에서는 무슨 “비정통적인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겠다고 한 마디 하는데, 바로 정식 경찰 임무로 수사를 하는 사람이 아닌 이 날건달 같이 보였던 사람을 투입시켜서 조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날건달은 사실 원래는 경찰이었는데, 붙잡은 용의자를 심문하면서 가혹 행위를 하는 죄를 저질렀고 그 시절의 기억을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식 경찰 일은 못하고 있고 이런 부류의 “비정통적인” 수사를 할 때 도움을 주는 탐정 역할 정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탐정은 악당을 한 번 붙잡을 뻔도 하는데, 그때의 기억 때문에 폭력을 쓰는 것에 대해 약간 망설이고 그러다가 악당을 놓친다는 이야기도 잠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만, 별로 진지하게 이런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었던지라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 자체가 과거의 기억에 괴로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건들건들하며 여유부리며 대단히 유능한 사람인척 제임스 본드 흉내나 내며 등장하는 게 대부분의 장면입니다. 좀 과장하자면 아픈 과거라는 것도 그냥 상처 하나 쯤은 있어야 고뇌하는 멋도 있어 보일테니까 “사실은 나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지” 운운하며 치장해 놓은 수작에 지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을 법 했습니다. 이러니 진정한 반성이라기보다는 자아도취에 조금 더 가깝게 보일 정도 였습니다.


(주요 증인이자 용의자인 외교관 딸과 엮여 제임스 본드 흉내 내는 장면)

이 영화의 마지막은 탐정에게 추적 당하던 악당이 탐정을 역습하려고 마침내 탐정 집에 쳐들어 오면서 정체가 까발려 지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 직전까지만 해도, 악당의 실루엣이 여자 모습이라 탐정과 엮이던 외교관 딸이 범인이 아닌가 싶게 이야기가 흘러 갑니다만, 아닙니다. 이 외교관 딸도 악당에게 추적 당합니다. 악당으로부터 도망쳐서 다리를 건너다가 다리가 들어올려 지는 도개교라서 다리 끝에 매달리고 헤매고 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래서 긴박감은 있는 편입니다.

그 다음으로, 악당이 탐정 집에까지 쳐들어 간 장면에서 바로 이 긴박감이 이어졌습니다.

평화롭게 탐정의 딸과 어머니가 있는 집이 일상의 모습을 강조하는 형태로 비춰지는데, 바로 이 집에 무시무시한 칼 든 악당이 숨어 들어 온 것입니다. 악당은 먼저 딸을 공격하는데, 딸은 마구 위기에 몰리면서도 겨우 살아 남습니다. 어머니는 안경이 없고 귀가 잘 안들리는지라, 악당이 딸을 공격하는 것을 알듯말듯 못 알아채서 “조금만 더 신경쓰지” “바로 그 문만 열어 보면 악당이 보일텐데!” 하면서 관객을 안타깝게 하고, 이야기를 더 아슬아슬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어머니 조차 악당에게 희생이 됩니다. 지금껏 음험한 이야기 진행 중에도 탐정의 직업과 관련 없는 그냥 가족으로 일상 속의 평범한 사람이었던 두 사람이 악당의 난폭한 빛나는 칼날을 마주하는 장면이라서, 그 격렬함도 꽤 살아 나 보였습니다. 이윽고 주인공 탐정이 도착했을 때, 딸이 온힘을 다해 달려 들며 소리치는 바람에 탐정은 악당을 알아차려 제압하고, 그 정체를 까 발립니다. 악당은 다름 아닌 심경이 꼬여 맛이 간 외교관의 아들로 자기 누나인냥 여자 옷을 차려 입고 다니며 범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쌓여 오는 신비로운 복선이 부족했고, 별 노력 없이 그냥 악당이 스스로 덤벼들어 정체가 밝혀 지는 이야기였습니다. 더군다나 이 시절 이탈리아산 추리물에서 지겹도록 나오던 “악당의 정체는 여자 옷을 입고 있는 남자” 또는 “남자 옷을 입고 있는 여자”에 또 그대로 떨어지는 내용이라서 심드렁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어차피 멋진 추리극을 만들 재료도 없는 마당에, 너무 많은 가짜 범인들을 집어 넣고 “모르겠지? 궁금하지? 알쏭달쏭하지?”하는 식으로 자꾸 들이 밀지 말고, 처음에 괜찮았던 재료만 잘 살려 갔으면 더 좋았을 영화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줄거리가 헐렁하고 인물도 겉멋만 부린다고 해도, 범인과 쫓고 쫓기는 장면만이라도 시각적인 연출 아이디어를 많이 살려 나갔다면, 그래서 영화 초장 수준으로만 유지했어도 더 재밌었을텐데 싶었습니다.

따로 떼어 놓고 들으면 오히려 들을 만한 음악은 떠올릴 수록 안타까웠습니다. 소재 역시 다른 방식으로 다시 잘 조합해 놓는다면, 철없는 열등감만 폭발한 젊은 남자가 괜히 여자를 공격하는 악행에 대해 여러 면모를 파헤쳐 까발릴 수 있는 구도는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배역 중에는 허영과 사치가 심한 귀부인으로 나오는 외교관 부인은 그러면서도 자신의 그러한 허영이 깨질까봐 아슬아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재밌게 보여 주는 인물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 호사스럽던 인물이 처참하게 악당의 칼에 당해 넋나간 모습은 절묘했고, 그러면서도 왜 범인의 정체는 말을 못하고 정신나간 표정만 짓는지 안타깝게 해서 더 영화 이야기를 재밌게 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범인이라서 바로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인물에 비중을 더 많이 실었다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밖에...

중간에 경찰 간부 중에 한 사람이 “범인은 우리 근처에서 범인이 아닌척 하고 숨어 있는거야”라면서 뜬금 없는 비유로, 자기가 예전에 브라질에 여행을 갔을 때 보호색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이구아나를 밟은 적이 있는데, 이 범인이야 말로 딱 그런 모양이라면서, 범인이 희생자를 노리고 있으니 “화염의 혓바닥을 내민 이구아나”라고 할만하다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게 제목의 의미인데, 제목부터 먼저 그럴듯하게 짓고 적당히 갖다 붙인 장면 같은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지알로 영화 2015-12-27 00:30:23 #

    ... 된 사진 (Forbidden Photos of a Lady Above Suspicion, 1970) "화염의 혓바닥을 내민 이구아나"(The Iguana with the Tongue of Fire, L'iguana dalla lingua di fuoco, 1971) 죽음은 하이힐을 신고 걷는다 (Death Walks on High Heels, 1971) 워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