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술라의 언니 (The Sister of Ursula, 1978) 영화

1978년작 이탈리아산 추리물인 “우르술라의 언니(The Sister of Ursula, La sorella di Ursula)”는 70년대에 나왔던 이탈리아산 추리물 중 한 부류를 이루었던 지알로 영화의 그 유행 말미에 나온 영화입니다. 내용은 아버지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뒤에 기분 전환 겸 휴양지의 호텔에 여행 온 우르술라와 그 언니 주변에 자꾸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에, 우르술라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아버지의 유령이 우리를 따라와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듯한 말을 자꾸 중얼 거립니다.


(포스터)

무슨 유행이 됐든 그 유행 말미에 나오는 영화들이 좀 그런 편이 듯이, 이 영화도 유행한 부류에서 쉽게 팔릴 것 같은 요소만 잘라 와서 막 뿌려 놓고 남용한 감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당시 이탈리아산 추리물에서 자극적인 장면, 노출 장면이 눈에 뜨였던 것을 과하게 몰아 넣은 영화 입니다. 이 영화는 그게 가장 큰 문제여서 그런대로 평균 내지는 평균 이상인 영화의 다른 특징들이 그 때문에 망하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무서운 살인이 일어 나고, 혹시 죽은 아버지의 망령이 돌아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신비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 줄거리 핵심 아니었겠습니까? 결코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정체를 아주 알기 어려운 살인하는 무언가가 돌아 다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와 중에 그 아버지의 딸인 우르술라는 아직까지도 약간 정신이 불안한 상태로 보입니다. 헛것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의 유령을 느낄 수 있다는 식으로도 이야기 합니다. 한편 호텔에는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계속 보이고, 죽어나가는 시체들도 이어지는 영화 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이야기로 잘 나가다 말고, 시간 됐다 싶으면 갑자기 자극적인 장면을 보여 주며 장황하게 시간을 끕니다. 그것도 이야기에 어울리는 “원초적 본능” 같은 영화처럼 불안하게 연출되어 있는 게 아니라, 무슨 “크라이막스 원”이나 “차라리 불덩이가 되리” 부류로 연출되어 있는데, 그 잡다하게 긴 상영시간을 잡아 먹는 끈끈한 모습을 보면, 차라리 “크라이막스 원”쪽은 웃기기라도 하지 이 영화는 그저 흐름을 끊어 먹기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의 줄거리 결말에 무게가 깊었다면 보고난 뒤의 합계는 가치가 없지는 않다는 감상이 들 수도 있을텐데, 이 영화는 중반의 궁금증에 비해서 결말이 모자란 편이라서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결말이 안 어울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에 잘 맞는 결말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결말이 이런 영화에 워낙 영향을 많이 끼친 다른 옛 영화를 거의 똑같이 따라한 결말이라 다소 지루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르술라의 언니와 우르술라)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밝히면서 결말까지 이야기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르술라와 그 언니가 묵고 있는 호텔에는 자꾸 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살인 수법은 여자를 학대하는 잔인한 방식입니다. 살인 순간 자체는 그림자로만 보여 주는데 그 연출이 약간 잡다해서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수상한 사람들은 여럿 있습니다.

호텔 직원이라든가, 호텔에 고용된 가수라든가.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로 얼굴 잘생긴 어떤 남자 날건달도 있습니다. 수상한 사람들의 행동은 점점 이상해지지만, 범인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정신이 흔들리고 있는 우르술라는 세상을 뜬 아버지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등 괴상한 말을 합니다. 우르술라와 그 언니의 대화 도중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바람 나서 헤어진 이후로 인생이 망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한 때문에 세상을 못 떠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지막 순간 밝혀지는 진상은 이렇습니다.

범인은 다름 아닌 우르술라 본인입니다. 우르술라는 갑자기 발작을 하게 되면, 자기가 아버지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 흉내를 냅니다. 그리고 “나를 배신한 내 부인처럼 여자들은 못 믿는다”면서 그에 걸맞게 응징을 해 준다며 아버지 옷과 모자를 쓴 채로 아버지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세상의 여자란 여자는 다 괴롭히는 흉칙한 짓을 하고 다닌 겁니다. 정신 나간 우르술라는 언니까지 공격하려고 행패 부리다가 실수로 창 밖으로 떨어지면서 최후를 맞이 합니다. 이 정신 나간 모습이 밝혀지는 결말에서 아버지 흉내를 내고 있다는 연출까지 히치콕 감독작인 다른 옛 영화의 모방이었습니다. 원본 쪽은 어머니와 아들이었다면, 이 영화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차이만 있는 정도입니다.

호텔의 수상한 사람들은 살인 사건과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수상해 보였는고 하니, 그 와는 별도로 마약 밀매에 얽혀 있기 때문에 수상한 짓을 한 것으로 밝혀 집니다. 가장 수상한 인물이었던 잘생긴 날건달은 가장 수상한 인물은 범인이 아니라는 70년대 이탈리아 연쇄살인마 영화의 법칙에 따라 범인이 아니었고, 오히려 위장 잠입한 경찰로 밝혀 집니다.


(버려진 교회)

결말과 범인을 숨긴 아이디어는 모방이었지만, 그걸 해낸 기술 중 일부는 틈틈히 괜찮은 점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넋나간 모습, 유령을 느낀다고 하는 우르술라의 모습은 그럴싸하게 표현 되어 있었고 연기도 썩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넋나간 우르술라가 호텔 근처의 버려진 교회를 홀린 듯이 걸어 다니며 음침한 분위기를 내는 장면은 이어지는 이야기에 의미는 별로 없었지만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뭘 숨겨 놓았는지 궁금하게 하면서도 보여 주지는 않는 가방 속에 우르술라가 유품으로 소중히 숨겨 보관해 온 것의 정체가, 바로 우르술라가 돌았을 때는 변장하면서 쓰는 아버지 옷이라는 복선과 반전 같은 것도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배경이 되는 휴양지 호텔)

그 밖에도 좋은 점들은 있었습니다. 가장 수상한 사람이었던 잘생긴 날건달이 그렇게 심하게 수상해 보였던 이유가 바로 그 사람은 위장 잠입한 경찰이었기 때문에 함정 수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수상해 보였다는 이야기는 이야기 본론과는 잘 안 얽혀 있지만 이치에 맞는 이야기로 표현되어 있어서 괜찮았다고 생각 합니다. 이야기의 멍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면서 동시에 유령 이야기와는 좀 동떨어져 있는 밝은 곡조라서 오히려 더 꿈처럼 느껴지는 음악도 당시 영화 다운 멋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지중해 휴양지를 잡아 놓은 풍경 촬영이 훌륭했습니다. 새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바다, 눈부신 햇빛이 화면에 잘 드러나 있어서, 평범한 세상과는 확 동떨어진 환상의 추억 속을 몽롱히 걷는 듯한 기분이 담겨 있었습니다. 유령, 귀신과 같은 스산하고 신비로운 소재와 현실적인 살인 사건, 정신적인 붕괴가 함께 어울려 있는 표준대로인 줄거리와 들어 맞기도 했습니다.

더 줄거리가 참신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잡다하게 오락가락하며 괴상하게 길기만 한 자극적인 장면 묘사를 적당한 수준으로 뜯어 고쳐야 마땅했던 영화라고 생각 합니다.


(우르술라)

그렇게 못하고 실패했기 때문인지, 이 영화는 지금 보면, 여성 혐오 분위기가 과하다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반론으로 영화 속 악당이 대놓고 여성 혐오자니까, 어찌 보면 줄거리 뼈대가 악당을 비판하는 내용이니 여성 혐오 반대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말해 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진지하게 여성 혐오를 반대한다기 보다는 그냥 여섬 혐오 분위기에 스산히 젖어 있다 보니까 떠오르는 악당도 그 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밖에 없어서 툭 등장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따지고 보자면, 악당 스스로도 자기를 아버지라고 믿고 있는 상태의 “여자”로 해 놓지 않았겠습니까.


그 밖에...

잘 생긴 날건달 역할로 “새끼 오리를 고문하지 말라” http://gerecter.egloos.com/5283854 에서 잘 생긴 신부 역할을 맡았던 마크 포렐이 나옵니다.

인터넷에서 출처 없이 본 정보라서 확실하지는 않은데, 이 영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는 호텔은 영화 촬영 중에는 아직 개장 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영화 촬영 후에도 필요한 허가를 받지 못해서 영영 개장하지 못한 호텔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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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iekie 2015/12/31 09:53 # 답글

    본문에서 말씀주신대로 히치콕의 '사이코'가 생각나는 전개네요. 지루하다고 하셨는데 리뷰를 보니 왠지 재미있어보여요. 호텔이 영영 개장 못한 것도 흥미롭네요,
  • 게렉터 2015/12/31 20:31 #

    재밌는 대목만 캐 내서 보면 충분히 재밌을 영화였습니다. 정말 아버지 유령이 있는 건지, 홀린 건지 어떤건지 스산하게 관광지를 헤메다가 버려진 교회로 들어 가는 우르술라의 모습 같은 장면은 호기심도 굉장히 생기게 합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면 그 감상을 중간중간 막 집어 넣은 끈끈한 노출 장면으로 홱홱 다 잘라 먹습니다. 괜찮은 각본을 더 영화를 잘팔리게 하겠답시고 손을 댄 제작이 망쳐 먹은 느낌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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