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검협정 (魔劍俠情, 1981) 영화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의 1981년작 “마검협정”은 막상 영화를 보면, “다정검객 무정검”의 속편입니다. “다정검객 무정검”과는 다른 악당이 등장해서 새롭게 싸우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편을 안 봐도 별 상관은 없지만, 주인공 이심환과 조연 아비의 과거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기 때문에 전편을 보면 조금 더 이야기 거리를 알아 보기 좋습니다. 내용은 쓸쓸하지만 귀족적인 방랑 검객 이심환이 전금당이란 악의 조직이 “강호를 차지”하기 위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차근차근 전금당의 핵심에 접근하며 싸운다는 것 입니다.


(운치 있는 달밤의 결투)

따지고 보면 말도 못하게 틀에 박힌 줄거리 구도이고, 내용도 악당 두목에 점차 접근해 가는 가운데, 의리 있는 사람, 배신 잘 하는 사람, 칼 잘 쓰는 사람, 독약 잘 쓰는 사람, 이상한 영감님, 이상한 아이, 아름다운 여자, 괴상한 무기 쓰는 사람 등등을 하나 둘 만난다는 그야 말로 무협물에서 줄창 울궈 먹던 이야기 흐름 그대로 진행 됩니다. 그 와중에 이 영화는 많은 진기한 이야기 거리를 줄기차게 소개해서 관객을 신기 해 하게 만드는 게 장점 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신기한 것이 많이 나오면서도 영화 본론은 딱히 선명한 특징이 많지 않고 그저 어김 없이 틀대로 그 자체인 형식입니다.

이렇게 신기한 사건과 대사가 막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이 나오지만, 신기할 때는 잠깐 뿐이고 결국 전체 줄거리는 평탄한 영화를 여러 편 봤다는 기억입니다. 저는 고룡 원작 무협소설을 영화화하면 이런 공통점이 생기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고룡 소설의 기묘한 인물의 등장, 소위 “명대사” 분위기의 폼 잡기 대사가 많은 것들, 이런 것들을 빠뜨리지 않고 영상으로 옮기고, 줄거리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도 소재가 재밌어서 빠뜨리고 싶지 않은 것도 다 우겨 넣고, 그러다 보면 이야기 하나하나는 너무 가벼워져 버리고 영화 전체는 갈팡질팡 초점이 없어지는 것 같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등장은 멋있지만 막상 활약은 그저그런 인물들이 유독 많이 보이는 듯도 했습니다.


(괴상한 악당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줄거리 틀 속에 들어 있는 인물들만은 선명한 특이함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전작부터가 끝내 주는 제목인 “다정검객 무정검”인데, 바로 그 무정검을 들고 있는 다정검객인 주인공 이심환부터가 재밌습니다. 이런 "악의 대마왕"을 물리치는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소박하지만 의리 있고 활기 찬 청년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대신, 쓸쓸한 병든 아저씨이면서 귀하게 산 사람인데다가, 그 동료는 왕년의 고수였지만 손 씻고 그냥 사랑에 빠져 조용히 사는 친구가 무공도 잊게 되어 약해진 상태로 등장한다는 겁니다.


(왼쪽 다정검객 이심환과 오른쪽 그의 손 씻은 동료 아비)

거기다가 그 많이 나온다는 신기한 것들도, 이런 무협물 특유의 초현실적인 과장과 전설 같은 놀라운 이야기 거리를 중심으로 잘 골라서 꽤 볼만하게 흩어 놓은 모양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손으로 던져 날리는 조그마한 칼을 쓰는데, 이 칼을 쓰는 재주가 어마어마하게 뛰어 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해괴할 정도의 실력을 보여 주는데, 예를 들면 던진 칼이 빗맞은 줄 알았는데 바닥에 한 번 튀어서 방향이 바뀌는 바람에 상대방이 예상 못한 급소를 찌른다든지, 던진 칼을 상대방이 피했는데 두번째로 던진 칼을 공중에서 부딪치게 해서 방향이 바뀌어 상대를 다시 맞힌다든지, 뭐 그런게 나옵니다.

또 무협물에 자주 나오는, 의리와 목적을 위해 목숨을 지나치게 아끼지 않아서 놀라운 느낌을 주는 수법도 종종 나옵니다.

무림서열 1위부터 6위가 있어서, 서열을 높여 보려는 이유 하나로 결투해서 죽이려 든다 든가, 결투를 해서 겨루어서 내 서열을 올려야 하므로, “그 사람은 내가 죽일 사람이니 다른 놈들은 죽이지 말라”면서 자기가 죽이고 싶은 사람의 적을 대신 내쫓아 주는 장면 같은 대목도 또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몸에 칼 맞은 흔적을 구분하기 좋게 잘 남겨 둬서 나중에 발견한 사람에게 상대방의 칼 쓰는 수법에 대한 힌트를 주기 위해 일부러 끝까지 안 싸우고 도중에 죽기를 택하는 사람도 나오고, 자주 나오는 것처럼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면서 사람 목숨 뺏는 일도 흥정해서 사고 파는 인간도 나옵니다. 특히 막판 무렵에 악당 두목은 강호를 차지 하기 위한 권력욕이 너무나 강해서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조차도 그 정도 실력이면 자기 편으로 섭외해서 자기 양아들로 삼겠다고 외치는데, 이 장면은 그 광기어린 연기가 훌륭했습니다. 좀 썰렁한 장면에서 억지로 때우는 장면일 수도 있는데도 썩 볼만했습니다.

분명한 약점을 꼽아 본다면, 이심환과 악당 두목, 양아들이 함께 벌이는 막판 1대2 결투 이외에 나머지 장면들은 무술 장면이 약한 편이었다는 것부터 생각 납니다. 고수들의 놀라운 싸움을 보여 주는 내용이 되어야 마땅한데 그 정도로 놀라운 장면은 적었고, 특히 중간중간 들어간 느린 동작 장면은 역효과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비중이 높은 편인 임선아)

그 외에 남자를 유혹해서 정신 없이 빠지게 만든 뒤에 자꾸 배신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죽이는데 이용만 하는 아름다운 인물 임선아가 나와서 고비마다 중요한 시련과 상황 변화를 만드는데, 재미난 소재가 될만한 인물인데도 그냥 사람 잘 속이고 병적으로 바람을 잘 피운다는 답답한 상상 속의 악녀 모습 이외에 딱히 생동감 있는 절묘한 구석이 없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 밖에...

“다정검객 무정검”과 같이 주인공 이심환은 적룡, 조연 아비는 이동승이 맡았습니다. 주요 악당 역할인 형무명은 부성이 맡았고 악녀 역할인 임선아는 초상운이 맡았습니다.

“다정검객 무정검”은 보통 “소리비도” 이야기하면 대강 통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영웅도”라는 제목으로 나온 판본이 꽤 널리 읽힌 편이지 싶습니다.

당시 영화 포스터를 보면 감독을 맡은 초원의 100번째 영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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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ㅇㅇ 2016/06/14 21:54 # 삭제 답글

    옛날만 따지면 중국 영화가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했었음을 새삼 실감되네요
  • 게렉터 2016/06/15 08:15 # 삭제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영화 내용의 질도 질이지만, 요즘 볼 때의 보존 상태도 홍콩 영화쪽이 비할 바 없이 월등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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