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필드 10번지 (10 Cloverfield Lane, 2016) 영화

우리의 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 보니 이상한 지하실에 갇혀 있습니다. 잠시 후 맷집 좋은 남자가 나타나 “적의 공격으로 세계가 대충 멸망했는데, 내가 만든 생존용 지하 대피실에 너를 옮겨 놓은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주인공이 좀 나가보겠다고 하자, 바깥은 공기가 오염 되었으니 절대 나가면 안되고 계속 이 대피소 안에 갇혀 있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 정신인 것입니까? 이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이런 이야기로 출발하는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핵전쟁이나 비슷한 세계 멸망에 가까운 일이 일어난 상태의 지하 대피소라는 배경은 중저예산 SF극의 단골집이라고 생각 합니다. 적당한 지하실만 하나 있으면 되니까 세트도 별 것 없이 찍을 수 있고, 거기 숨어 있는 사람이 등장 인물 전부니까 엑스트라도 별로 안 써도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극한 상황에서 개인의 행동이라는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는 내용으로 갈 수도 있고, 반대로 세계의 운명이나 인류의 최후와 같은 어마어마한 큰 주제를 잘 다루기도 좋습니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여러 차례 영상화 되어 나온 바 있었습니다. 특히 짧고 강렬한 이야기를 크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야 하는 TV 단막극 시리즈에 꼬박꼬박 등장한 것들이 기억이 납니다. 원판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 제6지대)”에도 지하 대피소를 배경으로 한 것이 있었고, “제3의 눈(The Outer Limits)”이나, “기묘한 이야기”에도 이런 소재의 이야기는 계속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 역시 그 전통을 따라 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존 굿맨)

그 와중에 한 가지 이 영화의 재미거리는 정말로 세상이 멸망했는지, 아니면 그냥 주인공을 대피소에 옮겨 놓은 인간이 그런 망상에 빠진 미치광이인지, 잘 모르겠다는 내용으로 초반을 꾸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궁금증을 이용하는 줄거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이 영화는 그런 중저예산 SF물 다운 재미를 잘 뽑아 내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지켜 보다보면 정말 세상이 멸망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보면 대피소 주인이 미치광이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한쪽을 지지하는 증거를 던져 줘서 “진짜인가보다” 싶게 하다가도 또 좀 있으면 반대쪽을 지지하는 증거도 던져 줘서 “아닌건가” 싶게 하기도 합니다. 그 줄타기가 잘 되어 있어서 계속 이야기를 지켜 보며 진실을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냥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만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조금씩 발전시켜서 “세상에 큰 일이 벌어진 것까지는 맞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겠지”라거나 “세상이 망했거나 말거나 이 인간이 미치광이라는 것은 확실하지 않나”라는 그 중간지점 해당하는 가능성도 점차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관객 역시 주인공과 같이 스스로 상황을 추측하게 됩니다. 대피소 주인의 표정이나 말투까지 살펴 보며 진실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대피소 주인의 저 말투와 눈빛이 과연 제정신인 사람의 것인가, 아닌가, 영화 화면을 보며 관찰하게 합니다. 주인공과 영화를 보는 관객이 같은 것을 보며 같이 고민하게 되는 연출이었습니다.


(밖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와서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게도 만들고)

이런 이야기에서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것은 결말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합니다. 너무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만들수록 그만큼 해답은 뭐가 되든지 아쉽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주인공이 대피소 바깥으로 나가 직접 진실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쉽게 짐작 못했던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앞뒤 아귀가 꽉 들어 맞는 제3의 새롭고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결말을 짜내기는 너무 어려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트 샤말란 감독작 “빌리지”만 해도, 저는 그 정도면 괜찮은 제3의 결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꽤 욕도 많이 들어 먹었으니 말입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제3의 짐작 못한 놀라운 결과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허망하지는 않을 정도로 어울리는 이야기와 장면을 퍼부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대피소 바깥 이야기도 재미가 없기까지 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대피소 바깥으로 나온 뒤의 모험이 꽤 분량이 있고 나쁘지 않은 신기한 장면들이 있는데도 대피소 안에 있을 때 상상했던 이야기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한계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밖에...

대피소 주인은 존 굿맨이 맡았는데, 맨 정신인듯 맛이 간 듯 좀 알 수 없는 눈빛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괜히 위협적인 모습하며, 아주 잘 맞는 훌륭한 모습이었다고 느꼈습니다.

“클로버필드” 영화와 같은 시리즈, 스핀 오프의 영화라고는 합니다만, 내용에 별 상관은 없습니다. “클로버필드”와 아무 상관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봐도 아무 지장 없이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히려 “클로버필드” 영화와 같은 시리즈라는 사실, 그 제목 덕택에 대피소에서 나간 후 바깥 세상에서 무엇을 보게 될 지를 어느 정도 암시하게 되므로, 궁금증을 갖고 초반부를 지켜 보는 맛을 까먹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여러 유형의 스포일러 중에서도 제목이 스포일러인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제작진이 이런 것은 아예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텐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또 그런 궁금증을 중시하는 다른 영화, TV물과 닮은 점이 많아서 약간 엇박자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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