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아는 여자 (La ragazza che sapeva troppo, The Girl Who Knew Too Much, 1963) 영화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거장, 마리오 바바가 연출한 1963년작 “너무 많이 아는 여자 (La ragazza che sapeva troppo, The Girl Who Knew Too Much)”는 이후 한동안 유행한 이탈리아산 연쇄살인마 영화의 한 부류를 일컫는 “지알로 영화”의 시초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내용인 즉슨,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미국인 주인공이 뭔가 신비로운 장면을 목격하고, 거기에 얽힌 괴상한 살인 사건이 주변에 자꾸 벌어지면서 무서운 분위기로 가는데, 그러다가 막판에 정신 나간 진상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틀이야 말로, 이후에 10여년 이상 유행이 되어 쏟아져 나온 지알로 영화의 틀 그대로 입니다.


(포스터)

그렇습니다만, 영상이 덜 현란한 흑백화면이라 지알로 영화 다운 맛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고, 화면 속에 펼쳐지는 사건들도 놀랍거나 신기한 정도가 덜한 느낌입니다. 분위기 묘한 음악이 귀를 사로 잡는 것이 큰 재미인 후대 지알로 영화들에 비하면, 음악도 그저 나쁘지 않은 정도였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되는 속도가 느리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주인공의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여 준다거나, 그냥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잡담하는 장면 같은 데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하고 막상 이야기 본론을 진행하는데는 시간을 덜 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간중간 전환점 마다 해설자가 해설로 “이리저리 해서 이런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라고 별도로 줄거리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본론이 부족하고 지루하게 나가니 한번씩 다잡는다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일은 이런 것입니다. 주인공이 로마의 스페인 광장 한 복판에서 밤에 몽롱할 때 살인 사건을 목격하는데, 아침이 되어 보니 그 살인 사건의 흔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그와 똑같은 사건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본 것은 그 자리에 나타난 유령인 것입니까? 아니면 주인공이 과거로 잠시 시간여행을 한 것이겠습니까?


(놀라운 일 목격)

괴상한 일이 주변에 자꾸 벌어지고, 어디서 이상한 협박전화도 걸려 오고 주인공을 죽이려 드는 사람도 나타나고 하다가 결국 밝혀지는 진실은 이렇습니다.

거기 광장에 사는 어떤 사람이 심심하면 살인을 하는 연쇄살인범인데, 몇 년 참고 있다가 마침 또 똑같은 수법으로 엊그제 살인을 했다는 것입니다. 살인을 한 다음에 워낙 뒤처리를 잘 했기 때문에 엊그제 살인이 발각 되지는 않은 겁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같은 수법으로 새로 저지른 사건을 목격했지만 그게 새로 저지른 사건인 줄은 모르고, 수 년 전에 저지른 사건의 유령을 목격했다는 식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밌었던 대목은 이 진실을 밝히는 장면이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딱히 좋은 장면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냥 범인이 주절주절 자기 혼자 해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재미 없고 가짜 같고 진부할 수도 있었는데, 맛이 간 표정에 말투 연기가 그만이어서 괴이함도 잘 살았고 무서운 점도 어지간히 살았다고 느겼습니다.

그 외에 이야기가 처음 시작 되는 도입부에서, 주인공 옆자리에서 수작 걸던 남자가 건넨 담배가 알고 보니 마약 넣은 담배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을 대사 하나 쓰지 않고 화면 구성과 간접적인 사연 만으로 긴장감 있게 표현하는 것의 연출이 그만이었습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납치 수법에 관한 뜬소문”, “외국 여행 갔을 때 장기 빼 가는 속임수” 같은 이야기가 그대로 영상이 되어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담배 권하는 비행기 옆자리 사람)

자극적인 영상에 더해 훨씬 더 신비롭고 괴상한 분위기로 몰아 붙이는 본격 지알로 영화 느낌에 비해서는 훨씬 단정한 편인 영화였고 그래서 잔재미는 모자란 느린 편인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도 몇 가지 장점 덕택에 영화는 볼만 했습니다. 무서운 얼굴을 강조해서 화면에 담아 내는 연출도 기억에 남는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이런 이야기의 틀을 제시한 덕택에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같은 사람들이 70년대 지알로 영화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또 달리 보이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얼굴)


그 밖에...

“용쟁호투”에 나오는 존 색슨이 주인공과 함께 조사하러 다니는 의사 역할을 맡았습니다. 로마 토박이인척 하면서 로마의 멋있는 점을 주절주절 설명하는 등장인물인데, 실제로는 이 영화에서 몇 안되는 미국인 배우입니다.

원래 각본은 두 남녀가 알콩달콩하며 신기한 사건을 파헤치며 정이 드는 로맨틱 코미디 느낌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그런 방향이었다면 같은 해에 나온 “샤레이드” 비슷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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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지알로 영화 2016-06-27 17: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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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6/06/27 19:27 # 답글

    그러고보니 존 색슨은 아르젠토 영화에도...
  • 게렉터 2016/07/06 17:19 #

    맞습니다. 큰 영화에서 대배우로 이름 남기는 배우들도 있지만, 이렇게 쏠쏠하게 팬들의 기억에 선명히 남는 역할을 잘 챙겨 갖는 배우들도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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