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의 모험 II (Le avventure dell'incredibile Ercole, 1985) 영화

이렇게 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1983년에 나온 “헤라클레스(헤라클레스의 모험 I)”의 1985년작 속편 “헤라클레스의 모험 II(Le avventure dell'incredibile Ercole)”는 전편의 재미를 산산히 다 까먹은 망한 영화입니다. 배우들이 최소한의 연기는 하고 있어서 영화 줄거리 정도만 대충 알아 볼 수 있는 수준일 뿐, 트래쉬 무비라 불려도 아까울 것이 없을 정도로 전락했습니다. 내용은 전편에 이어 루 페리뇨가 연기한 헤라클레스가 다른 신들의 음모로 잃어버린 제우스의 번개 7개를 찾아 세상을 돌아 다니는데, 그러면서 잡다한 가면을 쓴 실력 없는 스턴트맨들을 상대로 대충 싸우는 시늉을 하며 괴물을 물리치는 모험을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내용에 비하면 매우 멀쩡한 포스터)

전편 “헤라클레스”도 깔끔한 영화는 아니었고, 혹평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 독특한 운치는 팬들이 생길만 했습니다. 결코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오묘하게 살짝 서려 있는 전편의 SF 흥취라든가, 거기에 어울리게 모든 신화 속의 괴물이 옛날 오토마타스러운 묘한 모습의 로봇으로 표현 되어 있다든가, 우주의 어느 행성에 머물고 있는 신들의 신비로운 모습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속편 “헤라클레스의 모험 II”에는 이 모든 게 나오지 않습니다. 신화 속 괴물을 표현한 로봇은 단 한 대, 단 한 마리도 안 나옵니다. 대신 이 영화에 나오는 괴물들이란, 다 그냥 사람이 괴물 가면이나 괴물 옷을 입고 변장한 것 뿐입니다. 그것도 무슨 특수촬영도 없이 그냥 보통 사람 크기로 그대로 가면 쓰고 나와서 대충 싸우는 시늉을 하는 게 끝입니다. 가면이나 옷도 질이 아주 안 좋아서 하나도 안 신기해 보이게 되어 있고, 싸우는 방식도 재주 좋게 싸우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트라고 해봐야 이정도 - 괜히 불빛 번쩍거리는 효과에 재미 붙였는지 여기도 번쩍번쩍)

SF 흥취도 완전히 제거 되어 있었습니다. 전편에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을, 꼭 우주선 처럼 생긴 것이 지구에 도착한 뒤에 부서지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은 안 하고 있었지만, 꼭 먼 우주에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을 싣고 다니던 우주선이 지구에 표착하면서 거기서 어떤 물질이 흘러 나오는 바람에, 지구에 생명이 넘치게 되었고 인간이 생기게 되었고, 따라서 온갖 번뇌와 근심도 가득 차게 되었다는 암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1편에 나온 판도라의 상자 우주선)

(1편에 나온 히드라 괴물의 모습)

그런데 이 영화에는 이런 게 전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헤라클레스의 목표는 세계에 흩어진 제우스의 번개 7 조각을 찾는 것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꼭 제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고도의 기술을 가진 외계인이 사용하는 강력한 기계나 컴퓨터의 주요 부품 7개를 찾는 이야기로 꾸밀 수도 있을 법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찾아낸 그 제우스의 번개가 뭐 다른 식으로 신비로운 모양인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가장 성의 없이 만들 수 있는 번개 아이콘 같이 생긴 뭔 판자 조각 같은 것일 뿐입니다.

꼭 SF 흥취가 서려 있어야만 재밌는 영화가 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비록 그게 전편에서 핵심적인 개성이기는 했습니다만, 뭐 속편에서는 과감하게 포기할 수도 있기도 하다고 칩시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이 영화에 나오는 악당 미노스왕이 굳이 계속 “이제 내가 신화의 시대를 끝내고 과학의 시대를 열겠다” 운운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뭐 그럴듯한 대사이고, 재미난 갈등을 끌어 낼 수 있는 이야기 거리 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모험의 내용이나 나오는 소재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걸맞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 영화에서 미노스왕은 “신비로운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신들을 물리치고 과학의 시대를 열겠다” 어쩌고 말합니다. 그러면 뭐 원자폭탄을 개발한다든지, 뭐 하여간 과학스러운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그 과학 운운하는 미노스왕이 사용하는 무기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최강의 무기라고 주장하는 신비의 마법검입니다.


(1편에서는 과학 운운하는 미노스왕이 이렇게 기계 괴물들을 만들어 헤라클레스 앞에 투하했습니다.)

다른 줄거리도 대단히 엉성합니다. 헤라클레스를 다시 지상으로 내 보내자, 갑자기 헤라클레스는 어디서 났는지 갑자기 멋있게 생긴 백마를 타고 나타나는데, 그 흐뭇한 폼잡기 미소하며 대충 적당한 야산에서 찍은 배경하며 좀 우스워 보일 지경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나서 폼 잡는 시간 1분 정도가 끝나면 편리하게도 그 앞에 잡괴물 악당이 두 서넛 나타나 줍니다. 두어대 두들겨 패서 이 악당들을 물리치면, 무슨 환상의 우연인지 바로 그 괴물들이 헤라클레스가 찾아야 하는 제우스의 번개를 숨기고 있어서 시작하자 마자 7개 중에 하나를 얻습니다

이야기가 더 진행 되어도 계속 그 판입니다. “제우스 번개 레이더”라도 들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서인지는 안 가르쳐 주지만 항상 다음에 어디에 가야할 지 알고 있는 두 명의 여자 동료와 함께 항상 꿋꿋한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시간을 때우는 겁니다.


(그냥 대책 없이 어슬렁 어슬렁 싸돌아다니는 3인조)

그러면서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를 원하는 불의 괴물을 만나기도 하고, 모든 대원이 여자로만 구성된 아마존 전사들과 싸우기도 하고, 바다 세계에도 들어 가고 어쩌고 합니다. 그러나 그래 봐야 다 그냥 특이한 가면을 쓴 스턴트맨 서너명과 싸우는 시늉 조금 하면 헤라클레스가 이기고 그걸로 끝입니다.

이게 무슨 아마추어가 시험용으로 만들어 본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불의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 얼음의 속성을 가진 갑옷을 찾고 어쩌고 하는 내용도 잠깐 나옵니다. 이 역시 그냥 다른 내용 없이 그냥 말로 그러니 저러니 주절거리면서 그런 줄거리를 최소한으로 표현하는 것이 끝입니다.

하다 못해 이 영화에는 쳐다 보면 돌로 변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괴물도 나옵니다. 생긴 것도 메두사 모양 비슷합니다. 같은 그리스 로마 신화라지만 이건 헤라클레스가 아니라 페르세우스 쪽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냥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오는데, 헤라클레스도 똑같이 방패인지 뭔지 거울처럼 반사되는 것을 장치하는 꾀도 쓰고 합니다. 그러나, 지켜 보면, 막상 싸울 때는 그런 꾀나 능력과 아무 상관 없이 그냥 헤라클레스가 다른 때와 똑같이 몇 대 두들겨 패는 것으로 끝냅니다. 메두사의 머리를 아이템으로 들고 있다가 공격용으로 다시 쓴다든가 뭐 그런 것은 전혀 안 나옵니다.


(이것이 헤라클레스도 붙잡은 아마존 전사들의 무시무시한 마법 그물 - 헤라클레스가 당황하지만 그냥 헤라클레스가 힘을 좀 더 세게 주니까 풀림)

끝까지 봐 봐야 부질 없기는 매한가지 입니다. 다만 미노스왕과 헤라클레스가 갑자기 우주 공간으로 이동하여 펼치는 마지막 결투 만큼은 너무 해괴해서 결코 잊혀지지는 않습니다.

미노스왕과 헤라클레스는 우주의 운명을 걸고 결투를 벌이는데, 미노스왕을 맡은 배우 윌리엄 버거가 딱히 성룡이나 이소룡이 아니니 그냥 대충 싸우는 시늉을 하는 정도 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대단한 싸움 같은 느낌이 안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작진은 빛나는 광선이 번쩍번쩍 나오는 조잡한 애니매이션으로 치장을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애니매이션 효과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제작진이 갑자기 술에 취한 건지 뭔지, 이렇게 싸움을 하다가 미노스왕이 필살기를 쓰자, 애니매이션 효과로 우주 공간에서 칼싸움을 하던 미노스왕이 갑자기 확 티라노사우러스로 변신해 버립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킹콩으로 변신해 버립니다!


(아...안돼...)

그리고 헤라클레스가 변신한 킹콩과 미노스왕이 변신한 티라노사우러스가 우주 공간에 붕 뜬 채로 막 서로 싸우는 겁니다.

이런 정신 나간 장면이 갑자기 막판에 왜 나오는 지, 보는 제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어, 이런게 왜 나오지? 내가 어제 저녁에 술을 마시고 아직 덜 깬건가? 혹시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악당이 방금 내가 마신 커피에 환각제를 탄 것인가?” 영화를 보다 말고 그런 생각을 정말로 했습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맨 마지막에는 악당들의 음모로 달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헤라클레스가 엄청나게 거대화 되어 지구를 두 손으로 밀어 내는 장면도 마지막으로 한 판 나옵니다. 뭐, 그런다고 지구 위의 생명체들이 멸망하지 않을 것 같지는 않지만, 다들 뿌듯해 합니다. 정말 쓸쓸한 것은, 헤라클레스가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밀어 내는 장면을 표현하는 데, 우주 공간에서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발을 디딜 데도 없으니까 헤라클레스를 표현하기가 좀 애매했든지, 헤라클레스의 상체만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지구와 달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해서 이 불행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유일하게 이 영화에서 건질만한 아이디어는 헤라가 제우스의 번개를 절대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두기 위해, 헤라클레스와 동료가 되어 사랑에 빠질 운명인 자기 딸의 심장 속에 마지막 번개 조각 하나를 숨겨 놓았다는 것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임무를 완수하고 제우스가 번개를 모두 모으기 위해서는 헤라와 헤라클레스가 사랑하는 그녀를 희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역시 앞뒤 따지고 보자면 엉뚱한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고, 그나마 전혀 전체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게 막판에 문득 다같이 눈물을 흘리는 얼토당토 않은 신파극 타임으로 몇 분 때우는 데 소모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 터무니 없이 주저 앉아 버린 이 속편에, 음악만은 전편에서 녹음된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 없는 음악이 그대로 재활용 되어 어처구니 없는 장면에서 멋지다는 듯이 깔리는 것을 듣고 있으면, 문득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 오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그 밖에...

IMDB Travia를 보면, 주인공을 맡은 루 페리뇨는 헤라클레스 영화의 속편을 찍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다른 검투사 영화를 찍으면서 적당히 이 영화에 필요한 장면을 촬영을 하고 몇 장면 대충 더 촬영한 뒤에 속편으로 꾸며 버린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어 원래 제목으로는 1편이 “헤라클레스”이고 2편이 “헤라클레스의 모험”이라는 뜻이지만, 흔히 1편을 “헤라클레스의 모험 I”, 2편을 “헤라클레스의 모험 II”라고도 합니다. 제목이나 속편 관계가 헷갈리는 것도 이런 막만든 영화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공통점 아닌가 싶습니다.

덧글

  • Limccy 2016/07/06 20:54 # 답글

    괴이한 영화는 괴이하다는 정보만 알고 봐도 성공이죠 ㅋㅋ
  • 게렉터 2016/07/09 08:29 #

    이 영화는 괴이할 것이라는 정도는 예상했습니다만 1편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이렇게 망해먹을 줄은 몰랐습니다.
  • 홍차도둑 2016/07/06 22:27 # 답글

    이 영화 KBS인지 MBC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무려 공중파 방영도 되었던 영화 되겠습니다...
  • 게렉터 2016/07/09 08:29 #

    KBS였습니다.저 역시 KBS 토요일밤 영화 방영 시간에 처음 이 시리즈를 봤습니다.
  • rumic71 2016/07/07 22:26 # 답글

    1탄에서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들어갔던 모양이군요.
  • 게렉터 2016/07/09 08:32 #

    1편과 2편을 비교해 보면 2편이 어마어마하게 저예산입니다. 1편은 어쨌거나 할리우드 대작 분위기로 나아가는데 2편은 우뢰매와 견주어지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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